133
소걸아는 노씨 폐가의 뒷담을 넘었다.
‘아무도 없잖아?’
얼마나 빨리 달려왔는지 납치범들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평소 노씨 폐가를 지킨다던 놈들도 보이지 않았다.
소걸아가 노씨 폐가를 둘러보는데 마차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대청으로 들어가 대들보 위로 숨었다.
소걸아는 그냥 거지가 아니다.
개방 태상장로 오개의 제자다. 은신술 하나만은 개방에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나타난 이들은 진연을 납치했던 놈들이다. 한 놈이 바깥을 지키고 둘이 대청으로 들어왔다. 그중 한 놈이 진연을 안고 있었다.
놈은 대청 상석에 놓인 석좌에 진연을 놓았다. 수혈이 짚인 진연은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다른 놈이 석좌 밑을 만지작거렸다. 진연을 석좌에 앉혔던 놈이 갑자기 제지하였다.
“잠시만!”
“왜요?”
“얘가 너무 가벼워. 만일 화약이 바로 터지면 어쩌지?”
“설마?”
석좌 밑을 만지던 놈이 몸이 굳었다.
“화약이 자그마치 천근이라고. 자칫하면 뼈도 못 추린다. 조심해.”
잠시 망설이던 놈이 석좌 밑에서 뭔가를 빼냈다. 한 자 길이의 쇠막대였다.
그러자 석좌가 살짝 아래로 내려갔다.
“후우.”
두 놈은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사히 함정을 설치하고 나니 긴장이 풀렸는지 농담까지 하였다.
“크흐흐. 손을 떨고 있네?”
“형님도 다리를 떨고 있잖소.”
두 사람이 조심스레 발을 옮기다 쇠막대를 든 놈이 뒤를 돌아 진연을 보았다.
“저 녀석 묶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혹시라도 깨어나서 내려오면 공염불이잖아.”
“진작 말하지. 지금 와서 그러면 어떡해. 묶다가 터지면 어쩌려고. 지금은 어쩔 수 없어. 어서 나가자고.”
두 놈은 바로 나가지 않고 대청 문 옆 기둥을 만지작거렸다.
-철커덩!
소걸아는 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간이 떨어질 뻔했다.
천장에 쇠창이 수십 발 꽂혀 있는 게 아닌가.
‘흐억! 이 나쁜 새끼들!’
기둥을 만진 놈이 천장을 슬쩍 살피고는 조심스레 대청문을 닫았다.
소걸아는 대들보에 누워 꼼작도 하지 않았다.
‘지독한 놈들!’
석좌 밑에 천근 화약이 묻혀 있는 모양이다.
잘은 몰라도 그 정도면 전각을 통째로 날려버리고도 남을 것이다.
게다가 대청 천장에도 쇠창을 꽂아두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쇠창이 쏟아져 내릴 것이다.
그러면 들어온 이는 일단 몸을 날려 아이부터 구하려 들 게 분명했다.
‘그러면 쾅! 죽는 거지.’
소걸아는 절로 식은땀을 흘렸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지독한 함정이다.
만일 자신이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진연을 구한다고 대뜸 석좌에서 안아 들었다면?
‘나까지 죽을 뻔했잖아?’
강호는 위험하고 또 위험하다고 한 사부의 말이 딱 맞았다.
‘이제 어쩐다?’
모른 척하고 가 버리면 자신은 아무 일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이 자고 있는 아이를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 대청 바깥에서 소리가 들렸다.
“큰형님, 준비 다 됐습니다.”
세 놈 말고도 우두머리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그놈이 오면 적당히 응수하다 도주하면 된다. 십대고수를 꺾은 놈이다.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 없다.”
“크흐흐. 제아무리 십대고수라지만 도주하는 건 우리가 절대고수 아니요. 걱정 마시오.”
“도주라니? 나는 그놈과 제대로 붙어 볼 생각이다.”
노산사검, 아니 노산사흉이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데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노산사흉이 놀라 돌아봤다.
언제 왔는지 강소군이 서 있었다.
엄종이 인상을 썼다.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강소군이 나타난 것이다.
소걸아가 장오가 당한 걸 보고는 곧바로 문지기에게 알렸다는 사실을 노산사흉은 몰랐다.
‘하마터면 일을 그르칠 뻔했구나.’
엄종은 자기도 모르게 대청을 슬쩍 보았다.
십대고수가 아니라 천하제일인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함정이다.
엄종은 짐짓 안색을 가다듬고 강소군을 돌아보았다.
“자네가 혈마인가?”
얼핏 소리만 들어서는 정파의 대종사다운 목소리다.
강소군이 엄종을 보았다. 무심한 눈빛이었으나 엄종은 왠지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눈빛은 본 적이 없다. 마치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엄종은 절정에 이른 후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아니, 강한 자는 피했다고 봐야 했다.
그랬기에 지금처럼 상대의 기도에 눌려 본 적이 없었다. 낯선 느낌이 왠지 껄끄러웠다.
“방일옥이 보냈나?”
강소군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가웠다.
엄종은 자신의 물음에 대답도 없이 방일옥의 하수인 취급하는 강소군의 태도에 모욕감을 느꼈다.
자신을 누르는 강소군의 기도에 반발하여 본성이 튀어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가 음침하게 웃으며 강소군을 노려보았다.
“크크. 선배에 대한 예의도 없는 놈이로군.”
“그냥 죽여 버립시다!”
옆에 있던 나머지 삼흉이 눈짓을 교환하고는 검을 뽑으며 좌우로 흩어졌다.
엄종을 중심으로 반원 형태를 그리며 강소군을 포위하고 검을 겨눴다.
강소군이 검을 뽑았다.
“쳐라!”
엄종의 신호에 삼흉이 먼저 짓쳐들었다.
-쉬쉬식!
검광이 쏟아졌다.
강소군은 피하지 않았다. 검을 뽑아 찔러 오는 검들을 쳐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공격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혈마의 병기가 창이라고 들었던 엄종이 속으로 생각했다.
‘검은 소문보다 떨어지는군.’
삼흉이 그럭저럭 강소군과 어울리자 엄종은 자신감이 솟았다.
역시 강호의 소문은 과장된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며 한 발 내디뎠다.
자신이 가세하면 동수를 이룰 것 같았다.
절정에 이른 그도 강소군의 허허로운 기도에 진정한 무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엄종이 가세하자 싸움은 더욱 흉흉해졌다.
노산사흉은 제법 손발이 맞았다. 게다가 엄종의 검끝에는 검기까지 맺혀 있었다.
-쉬쉭!
-챙, 채챙!
노산사흉은 싸우면 싸울수록 강소군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강소군의 검법은 지극히 단순했다. 자신들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해 보였다.
사 대 일.
아무리 내력이 고강하더라도 결국은 힘이 부칠 것이다.
엄종은 나머지 삼흉에게 공세를 맡기고 자신은 내력을 갈무리하였다.
내력을 비축했다가 일격에 끝내려는 생각이었다.
나머지 삼흉도 엄종의 뜻을 알아채고 있는 힘을 다해 강소군을 몰아붙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더욱 거세게 몰아붙여도 강소군의 검이 흔들림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산전수전 겪은 그들도 검광이 난무하는 격전이 이어지자 흥분한 것이다.
상대가 아슬아슬하게 피하니 오히려 안달이 났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가진 바 힘을 다 쏟았다.
“여기까지다!”
강소군이 좌우에서 날아드는 검을 쳐내는 순간 가슴이 열렸다.
엄종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벼락같이 달려들며 검을 찔렀다. 검기가 쭈욱 나왔다. 그의 필생의 공력이 담긴 검이다.
“오!”
나머지 삼흉은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강소군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사방에서 밀어붙였다.
그러나.
강소군이 검면으로 검기를 앞세워 찔러 오는 검을 막았다.
-쾅!
검기가 작렬하며 폭음이 일었다.
-쉬쉬쉭!
나머지 삼흉의 검이 날아들었다.
강소군 돌연 허공으로 솟구쳐 뒤로 이 장이나 물러났다.
“흥! 도주할 생각은 마라!”
엄종이 뒤따라 몸을 날렸는데 강소군의 뒤로 날아드는 그림자가 있었다.
-휙!
강소군의 뒤를 덮친 방일옥은 있는 내력을 다해 권을 내질렀다.
방일옥은 멀리 떨어진 곳에 은신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노산사흉이 강소군과 싸우다 도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청을 향해 비수를 날리면 대청문이 열리게 되어 있다.
납치된 아이를 본 강소군이 대청으로 뛰어들면 쇠창이 떨어진다.
절정 이상의 고수라면 쇠창을 피해 석좌에 있는 아이를 안고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석좌와 대청 아래 매설한 천근 화약이 터진다.
방일옥은 강소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자신이 직접 훈계하고 죽였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대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기에 죽는 모습이나 보려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강소군이 노산사흉도 감당하지 못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유인하는 게 아닐까 주저했다. 그래서 숨죽여 가까이 다가왔는데 마침 엄종의 일검이 펼쳐졌다.
강소군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몸을 날렸는데 공교롭게도 자신의 바로 앞에 떨어져 등을 보였다.
방일옥은 주저하지 않고 달려들어 권을 내질렀다. 있는 공력을 모두 실었으니 격중하면 척추가 부러질 것이다.
그러나 그건 방일옥의 꿈이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가진.
강소군의 신형이 흔들렸다.
“엇!”
방일옥이 숨을 들이켰으나 그의 팔은 이미 강소군의 겨드랑이 밑에 끼었다.
강소군이 몸을 돌렸다. 방일옥의 몸이 휙 딸려 돌았다.
그 순간.
-푹!
엄종의 검이 방일옥의 가슴을 관통하였다.
방일옥이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을 내려다보았다.
“끄윽!”
뭔가 말을 하려다 피를 토했다. 검기가 실린 검이다. 내장이 단번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헉!”
엄종 또한 놀랐다. 하지만 놀람의 순간은 길지 못했다.
-퍽!
그의 가슴에 강소군의 주먹이 작렬하였다. 가슴이 움푹 꺼지고 등판이 튀어나올 정도로 강력한 권이었다.
“형님!”
삼흉은 수세에 몰리던 강소군이 갑자기 두 사람을 해치우자 기겁을 하였다.
양쪽에 있던 두 사람이 검을 찔러 갔고 한 놈이 뒤로 빠졌다.
검을 찔러 간 자들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제껏 싸운 기세로 달려든 것이다.
도주하려는 이는 그나마 머리가 돌아간 자였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퍼퍽!
강소군이 왼쪽에서 달려드는 놈을 향해 권을 지르며 오른쪽 놈에게는 발을 내질렀다.
주먹과 발이 찔러 오는 검을 타고 상대의 몸에 격중하였다.
“크억!”
금룡기가 실린 권과 발에 복부를 맞은 두 사람은 내장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강소군은 착지하자마자 추운선을 펼쳤다. 가볍게 날아 도주하는 이의 앞에 내려섰다.
도주하던 놈은 자신을 막아서는 강소군을 보자 눈앞이 캄캄했다.
“살, 살려 주시오.”
강소군은 말없이 놈을 보았다.
그러자 놈은 곧바로 부복하였다.
“살려만 주신다면 절대로….”
부복하였던 놈이 품에서 비수를 꺼내 강소군의 발목을 그으려 했다.
-퍽!
강소군의 발이 더 빨랐다. 머리통에서 수박 쪼개지는 소리가 나며 놈이 옆으로 나뒹굴었다.
“아이를 납치했을 때 이미 너는 죽은 목숨이었다.”
강소군이 대청으로 다가갔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소걸아가 옆에서 나왔다. 품에 진연을 안고 있었다.
“저놈들이 지독한 수를 썼더라고요.”
소걸아가 문을 슬쩍 밀었다.
“들어가면 천장에서 쇠창이… 대청 바닥에 화약이 천근이나….”
소걸아가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설명했다.
강소군이 보니 석좌에 작은 통나무가 놓여 있다.
강소군은 소걸아에게서 진연을 건네받아 안았다.
“고맙구나. 신세를 졌다.”
강소군이 나타나 노산사흉과 대치하고 있을 때 소걸아가 전음을 보냈다.
대청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며 시간을 끌어달라고 하였다.
강소군이 노산사흉과 드잡이질을 하며 시간을 끄는 사이 소걸아는 적당한 통나무를 가져와 진연과 바꿔치기하였다.
강소군은 노산사흉을 상대하며 방일옥을 유인하였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가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강소군이 싸움에서 밀리는 듯하자 방일옥이 점차 다가왔다.
강소군은 그가 은신한 곳을 파악하자 엄종의 검을 감당하지 못하고 피한 것처럼 자연스레 다가갔다.
곧바로 방일옥을 덮칠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그가 공격을 해왔다.
어찌 됐든 순식간에 싸움이 끝나고 말았다.
강소군은 진심으로 소걸아를 치하하였다.
“아닙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구하셨을 텐데요.”
강소군이 진지하게 예를 취하니 소걸아가 멋쩍은지 뒤통수를 긁었다.
“아, 참. 인사가 늦었습니다.”
소걸아가 품에서 찌든 헝겊 조각을 꺼냈다.
「개방 남경분타 소걸아」
“아하하. 거의 분타주나 마찬가지랍니다. 남경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저를 불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