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32화 (13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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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들의 흔적이 남경으로 이어졌습니다.”

엄종이 말했다.

강씨 남매가 양채완을 죽이려 한 게 아님을 잘 안다. 그럼에도 자객이라 하는 게 생색을 내기에 훨씬 유리하다.

방일옥은 탁자를 내리쳤다.

“역시 그놈들이구나. 분명해!”

방일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굴의 흉터 때문에 더욱 흉악하게 보였다.

방일옥은 지난날 자신을 암습했던 자객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또한 강소군에 대한 원한도 뼈에 사무쳤다.

강부를 꾸준히 감시해 왔는데 낯선 남매가 강소군의 먼 친척이라며 와 있는 걸 의심하고 있었다.

“강소군 그놈이 자객을 썼던 게 확실해!”

방일옥은 자신과 아내를 습격했던 사건을 강소군의 짓이라고 확신하였다.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대학사님께 고하실 생각입니까? 마침 강부의 공자가 돌아온 모양입니다. 적어도 자객을 숨겨 주었다는 죄는 물을 수 있을 겁니다.”

엄종이 물었다. 국법에 맡기겠냐는 뜻이다.

방일옥이 고개를 저었다.

“흥! 장부가 자신의 복수를 남에게 맡길 수야 없지. 이날을 위해 얼마나 준비해 왔는데.”

엄종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방일옥이 복수를 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엄종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소림승과 형산삼우를 연달아 보냈는데 패하고 떠났다.

그리고 나서야 그가 강호를 진동시켰던 혈마라는 사실을 알았다.

방일옥은 원한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고수를 초빙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강소군이 일권삼각 봉무량을 격파했다는 소문에 감히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러자 방일옥은 다른 방도를 택했다. 세상에 드러나면 지탄받을 일이다.

하지만 엄종은 알고 있다.

그런 일일수록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대가가 커진다.

권력 가문의 자제가 저지른 약점을 쥐고 있다는 건 평생을 보장받는 일이다. 내심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정파를 자처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만류하는 척하였다.

“그건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 보시지요.”

엄종이 말꼬리를 흐렸다.

방일옥은 그런 엄종이 가증스러웠다.

자신들을 노산사검이라고 소개했지만 방일옥도 그들의 또 다른 별호가 노산사흉이라는 걸 잘 안다.

겉으로는 정파인이라 자처하지만 뒤로 온갖 음험한 짓을 한다.

하지만 지금 아쉬운 건 방일옥이다.

“섭섭하지 않게 챙겨드리겠소.”

방일옥의 말에 엄종이 한숨을 쉬었다.

“대신 마무리는 확실히 하셔야 합니다.”

“당연한 일이오.”

방일옥이 장담하였다.

엄종이 떠나자 방일옥은 내실로 들어갔다.

양채완이 아이를 안고 멍하니 있었다. 이제 두 돌이 지난 아들이 양채완의 품에 안겨 자고 있었다.

방일옥이 다가가더니 홱, 양채완의 어깨를 잡아챘다.

“그놈들, 알고 있었지?”

양채완이 방일옥을 보았다. 냉랭한 눈빛이다.

자객 사건이 있은 뒤부터 양채완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방일옥은 느끼고 있었다.

방일옥은 양채완이 자신을 경멸하듯 바라보자 격분하였다.

“네년이 감히 나를 농락해?”

“대체 감추고 있는 사실이 뭐죠?”

양채완이 말했다.

-짝!

“으앙!”

방일옥이 양채완의 뺨을 때리자 품에 있던 아이가 깨어 울었다.

양채완이 황급히 아이를 안고 얼렀다.

“아이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에요!”

양채완의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흥!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절에 가서 대체 누구의 명복을 빌고 있는 거지? 장선백, 그놈인가?”

양채완이 움찔, 하였다.

그녀의 눈에는 절망과 회한이 가득했다.

사랑했던 이의 가문이 몰락했다. 다행히 그녀의 가문도 만만치 않아 직접 연루되는 건 피했다.

집안에서는 바로 방씨 가문과 혼사를 준비했다. 혼인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역적 집안과 정혼을 했다는 사실을 하루라도 빨리 지우고 싶었던 것이다.

양채완은 장선백을 잊지 못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정략결혼은 권문세가의 여식들의 숙명이었다.

방일옥 또한 준수한 용모에 기재라고 소문난 이였다. 집안 또한 유력한 가문이니 명문가 여식들이 선망하는 남자였다.

양채완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저잣거리에서 자객이 습격하였다.

복면을 쓴 여자객의 앙칼진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네놈의 죄는 하늘이 알고 내가 알고 땅이 알고 있다. 만천하에 그 죄상이 밝혀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되면 저 음탕한 년과 함께 너희 둘은 사지가 찢기고 성밖에 목이 내걸릴 것이다!’

그날부터 양채완의 마음속에 의심의 싹이 피어올랐다.

장 장군부의 몰락에 방씨 일가가 관여하지 않았을까?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 번 든 의심은 지울 수가 없었다.

마음이 식으니 방일옥과 함께하는 순간순간이 싫었다.

그러다 진실과 마주쳤다.

얼굴이 망가진 뒤 방일옥은 술에 취해 살았다.

어느 날 방일옥이 잔뜩 술에 취해 왔기에 잠자리를 거부했다. 그랬더니 주정을 하였다.

‘내가 널 얻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아? 장선백, 그 자식을 아직 잊지 못한 거야? 크흐흐. 그놈은 지옥에서도 왜 죽었는지 모를 거야. 바로 너 때문이라고.’

방일옥은 그날 일을 기억하지 못했으나 양채완은 똑똑히 기억했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무언가 흑막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만약 정말 방일옥이 농간을 부려 장 장군부를 모함했다면? 그렇더라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때부터 절을 찾아가 장선백의 명복을 빌었던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방일옥은 양채완이 대답을 하지 않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다시 뺨을 내리치려는데 그때까지 울고 있던 어린 아들이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아들과 눈빛이 마주치자 방일옥은 차마 손찌검을 할 수가 없었다.

“에잇!”

방일옥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나갔다.

‘그 자식만 죽이면 되는 거야. 그러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

방일옥이 속으로 다짐했다.

강소군, 그놈만 죽이면 정말 아내에게 잘해 주리라고.

***

소걸아는 강부 앞에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

혈마 강소군은 개방에서도 주시하는 인물이다.

‘크흐흐.’

소걸아는 끊임없이 웃었다.

강소군과 같은 화제의 인물은 두고두고 돈이 된다. 강소군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 팔아먹을 참이다.

소걸아는 자신의 바가지에 돈이 두둑하게 쌓이는 상상을 하며 연신 히죽거렸다.

-삐걱.

강부의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이 나왔다.

진운초의 미망인 예씨와 진연, 그리고 장오다.

춘절을 맞아 강부에서 쓸 물건을 사러 나온 게 틀림없었다.

소걸아는 부스스 일어났다.

강부 앞을 서성이며 장오와 안면을 튼 지 오래다. 동냥을 빌미로 강소군의 동정을 들을 셈이다.

“…?”

그때, 소걸아는 본능적으로 수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골목으로 숨었다.

“소걸아? 저놈이 왜 오다 말고 돌아가는 거지?”

장오가 그런 소걸아를 보고 중얼거렸다.

예씨 부인과 진연은 아무것도 모르고 앞서갔다. 장오가 그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저잣거리로 가는데 두 사람이 길을 막았다.

“이보시오. 길 좀 물읍시다.”

대략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장오에게 손짓을 하였다.

순간 장오는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슬쩍 뒤를 보니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설마 백주대낮에?’

장오는 불길한 생각을 누르며 말을 건 남자를 봤다.

“어디를 가시려는게요?”

“황천길이 어디요?”

“…!”

장오가 허리춤에 찬 도로 손을 가져가는데 뒤에서 뭔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었으나 옆구리가 화끈하였다.

“헉!”

장오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앞에 있던 서른 중반 남자가 발로 장오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쿠당탕!

장오가 팔을 들어 막으려 했으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예씨 부인과 진연도 화들짝 놀랐다.

“앗! 엄마!”

앞에 있던 남자 중 하나가 어느새 다가와 진연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진연이 곧바로 축 늘어졌다.

“아악!”

예씨 부인이 소리를 지르려는데 다른 남자가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휘에게 전해라! 아이를 찾으려면 서문 밖 노씨 폐가로 찾아오라고. 단, 혼자 와야 아이가 산다.”

이어 예씨 부인은 목덜미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세 사람은 진연을 데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곧바로 소걸아가 나타났다. 장오가 소걸아를 알아보고 세 사람이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

“저, 저들을….”

“가만 계셔 보세요.”

소걸아가 장오의 상세를 보니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재빨리 혈도를 눌러 지혈을 하고 예씨 부인을 흔들었으나 깨어나지 못했다.

소걸아가 강부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강부의 문지기가 나왔다.

“이 녀석이 이제는 대놓고 구걸하는 거냐?”

문지기도 소걸아를 안다.

“그게 아니고 저기, 저 골목에 장오 아저씨하고 예씨 아줌마가 쓰러졌어요. 어린애가 납치됐다고요!”

“뭐?”

문지기가 긴가민가하며 골목으로 달려갔다.

소걸아는 곧바로 서문 쪽으로 달려갔다.

세 사람은 이미 사라졌지만 소걸아도 노씨 폐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남경 성에서 일어나는 일은 소걸아의 눈을 벗어날 수가 없다.

‘노씨 폐가! 오랜 흉가가 몇 달 전에 팔렸지.’

팔린 뒤 몇 달이 지났는데 여전히 흉가로 남아 있는 곳이다.

팔리기 전에는 소걸아와 거지 아이들이 개나 산짐승을 잡아 통구이를 해 먹던 곳이다.

지금은 이상한 놈들이 지키고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소걸아는 대번 오늘 일과 상관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냐?’

소걸아는 가슴이 뛰었다.

잘하면 대박이 터질 예감이 든 것이다.

***

“뭐라고? 연이가 납치됐다고?”

문지기의 말에 모상이 화들짝 놀랐다.

진연의 납치 소식은 곧바로 강소군에게까지 들어갔다.

모두 대청에 모였다. 강소군이 뒤늦게 나타났다.

“예 부인은?”

강소군이 예씨의 상태를 물었다.

“충격이 큰 듯하여 일단 수혈을 짚어 주무시게 하였습니다.”

강하가 말했다.

간단히 응급조치만 한 장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명색이 강부의 호위대장이 백주대낮에 길에서 사람을 잃었으니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말해 보게.”

장오가 상황을 설명하고 말을 전했다.

“놈들이 공자님에게 서문 밖 노씨 폐가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게 분명합니다.”

“그놈들인가 봅니다.”

가만 듣고 있던 강하가 침통한 얼굴로 나섰다.

“그놈들?”

강소군이 바라보자 강하가 얼마 전 강란과 양채완의 마차를 덥쳤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때 나타난 호위들의 무공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얘기했어야지!”

모상이 강하를 꾸짖었다.

강하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적이 눈치챘을 거라고는 짐작 못 했습니다.”

모상이 다시 한마디 하려는데 강소군이 나섰다.

“강하 잘못이 아닙니다. 그들은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시려고요? 관에 알려야지요?”

“그러면 연이가 진짜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가 봐야죠.”

“저희가 따르겠습니다.”

강하와 강란이 나섰다.

“아니다. 너희는 강부를 지켜라. 또 다른 습격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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