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31화 (13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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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고?”

“네.”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려무나.”

강소군이 짐을 싸자 현치자가 아쉬운 듯 잡았다.

도관 작은 석탁에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문을 열어놓았으니 눈 덮인 마당과 건너편 절벽이 한눈에 보인다.

“고맙다.”

현치자가 뜬금없이 한 마디 하였다.

“대사형이 나를 여기에 데려왔을 때 내기를 했지.”

현치자의 시선이 먼 어느 날로 돌아갔다.

“대사형은 무공을 익히는 이유가 심신쌍수에 있다고 봤다. 많은 고수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실제로 그런 자가 몇이나 될까?”

그렇다. 칼 몇 번 휘둘러 몸에 익으면 바로 칼잡이로 나가려는 세상이다. 결국 육신의 공부에 머물고 만다.

반대로 명문세가에서 대성을 이룬 자가 나오기 쉽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신쌍수를 이루기 위해서는 육신 또한 부단히 수련해야 한다. 그러나 명문가의 자제들은 영약 등을 이용해 쉽고 편하게 가고자 한다.

“아무튼 무공 또한 수도의 길이고 사부에서 제자로 전해져야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다고 믿는 대사형은 내가 이런저런 무공을 책자로 남기는 건 오히려 세상에 폐해를 입히는 짓이라고 야단쳤지.”

현치자의 눈에 장난스러운 기운이 스쳤다.

“크크. 나는 솔직히 무당의 무공이 세상으로 나가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 생각해. 근데 대사형은 속 좁은 말코 소리는 듣기 싫으니까 고집을 부린 거지.”

사실 어느 문파가 자신들의 무공이 흘러나가는 걸 좋아할까.

“그런데 말야. 사부의 오의가 제자에게 전해지는 것 또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부의 오의가 틀렸다면? 그래서 나는 스스로 오의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한 거지. 비록 책자이지만 꾸준히 초식을 되풀이하며 그에 담긴 오의를 체득하다보면 대성을 이룰 수 있다고 반박했지.”

앞서 간 자가 길을 잡아주면 빨리 갈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뿐. 더 나아가려면 결국은 스스로 길을 내야 한다.

“결국 대사형은 내가 남긴 책자로 무공을 익힌 자가 대성을 이뤘다는 소식이 들리면 옥판봉을 떠날 수 있다고 한발 물러섰지.”

현치자가 큭큭, 웃었다.

“네 덕분에 나는 옥허동천을 떠날 수가 있게 됐는데…….”

현치자가 찻잔을 들어 마시며 밖을 쳐다봤다.

“갈 곳이 없네.”

마지막 한 마디가 강소군의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길을 가려는지 현치자는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몇 달을 마음공부에 매달렸으나 심마의 벽을 깨지 못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상관무영의 검을 봤을 때 그는 깨달았다.

‘저 걸 깨야 한다!’

상관무영이 보여준 검은 실제의 검이 아니다.

그가 보여준 것인지 아니면 강소군이 보고자 하여 본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검을 치우면 그 자리에 자신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려는가?”

한참 밖을 내다보던 현치자가 물었다.

행선지를 묻는 게 아니었다.

“사람 속으로 가고자 합니다.”

“클클…….”

현치자가 웃었다.

강소군이 일어나 절을 하고는 도관을 나갔다.

현치자가 절벽길을 따라 내려가는 강소군을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중얼거렸다.

“마음공부를 거꾸로 하는 경우는 처음 보는구나. 그나마 다행인 줄 알아라. 갈 길이라도 찾았으니…….”

***

강부.

“출가라도 하겠다는 건가. 대체 거기서 뭐 하는 거지?”

강부 총관 모상이 못마땅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강하는 대정무각으로부터 강소군의 동태를 정기적으로 받아보고 있다.

노이칠은 강소군에게 중원 전역에 깔린 대정무각의 정보망을 알려주었다.

자연 대정무각의 이목들은 강소군의 행적을 주시하고 있었고 이를 십각으로 보냈다.

대정무각 십각은 강소군에 관한 내용을 강부에도 전했다.

‘그래도 소식이라도 알 수 있으니 다행이지.’

한동안은 소식조차 몰라 이대로 강부를 닫아야 하나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소식이라도 들으니 그때 보다야 훨씬 나았다.

‘조정도 안정됐으니 돌아오기만 하면 바로 큰일을 할 건데.’

장영영의 독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한왕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계속 몰리다 결국 산동에서 잡히고 말았다.

한왕이 무너지자 조정을 빠르게 안정되었다.

황제의 권력이 나날이 강해지자 주고수는 알아서 유배지였던 팽덕으로 돌아갔다.

모상이 보기에 이제 강소군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강부는 선대부터 충신 집안이다. 강소군은 어렸을 때부터 황제와 놀던 사이다.

더구나 경성 일전에서 대단한 활약을 했다고 들었다.

‘국공, 공주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공자께서는 이 나라의 동량이 될 겁니다.’

모상은 그리 되리라 믿었다.

강부에 쌓이는 새해 선물만 봐도 알 수 있다.

올해는 산더미 같은 선물이 들어왔다. 게다가 은밀히 매파를 보내오는 집안이 한둘이 아니다.

덩달아 모상의 목도 뻣뻣해졌다.

‘오시기만 하라고요. 바로 보내드릴 테니까.’

혼첩을 보내온 집안의 여식을 면면히 검토하는 게 요즘 모상의 낙이다.

게다가 식구도 늘었다.

무엇보다 진연과 진강 형제는 강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됐다.

중상을 입었던 장오는 이제 불편하지만 거동을 할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이제 누군가와 싸운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몸이다.

평생 전장을 누비던 장오는 강부의 명목상 호위대장이 되었다.

진운초의 미망인 예연은 안살림을 맡아 하고 있다.

강하와 강란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수상했지만 강부는 평화로웠다.

***

작은 마차가 으슥한 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휙!

어디선가 날아든 암기에 마부가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뒤이어 강하가 날아들어 말고삐를 채어 세웠다.

강란은 마차 문을 열었다.

“소리를 지르면 죽는다!”

비명을 지르려던 시비가 싸늘한 강란의 말에 입을 닫았다.

마차에는 양채완이 앉아 있었다.

“이야기 좀 하려는 것뿐이니 걱정 마라.”

강란이 시비를 밖으로 보냈다.

강란이 마차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이죠?”

양채완이 강란을 쏘아보았다.

“당신을 만나기 참 어렵네요. 누구의 명복을 빌고 오는 길이죠?”

양채완은 남경에서 조금 떨어진 절에 다녀오는 길이다.

오랫동안 방씨 일가를 주시하던 강하와 강란은 양채완이 명절을 앞두고 이 작은 절을 찾는 걸 알아냈다.

이 절에 올 때는 호위도 물리고 마부와 시비만 데리고 은밀하게 왔다.

“…….”

“당신은 알고 있을 거예요. 방연소와 방일옥이 어떻게 장 장군부를 모함했는지. 결탁한 자들이 누군지.”

강씨 남매는 여전히 방연소의 뒤를 캐고 있었다.

장 장군부의 복수를 하다 아버지까지 잃었다. 그러니 더더욱 멈출 수가 없었다.

양채완의 표정은 더없이 냉랭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약속하죠. 당신과 아이는 무사할 거예요. 하지만 끝내 부인한다면 방씨 일가가 멸족되고 말 거예요.”

“정말 터무니없군요.”

강란이 양채완의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과연 그럴까요?”

그 순간.

파악!

마차 안으로 검이 쑥 들어왔다.

강란이 황급히 몸을 뒤틀었으나 옆구리를 베였다.

챙! 차차장!

바깥에서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파악!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검이 찔러왔다.

챙!

강란이 황급히 검을 쳐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마차 안에 있는 강란의 움직임을 제대로 읽고 있었다.

콰앙!

마차의 천정이 날아가며 다시 하늘에서 검이 내려왔다.

강란은 마부석 쪽으로 황급히 몸을 굴렸다.

양채완의 옆으로 한 사람이 내려섰다.

“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방부의 호위들이었다.

강하는 두 명의 호위와 싸우고 있었다.

강란은 오늘 일이 실패했음을 알았다.

양채완조차 암중에 호위가 따르고 있는 걸 몰랐던 게 분명했다.

네 명의 호위는 무척이나 강했다. 솜씨로 보아 방부의 군사들이 아니라 무림의 고수들이 분명했다.

‘이 자는 절정에 이른 고수다!’

강란은 양채완 옆에 선 호위의 기도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강하와 강란은 강소군과 함께 있으며 무공이 비약적으로 늘었으나 절정고수를 포함한 고수 네 명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강란이 강하 쪽으로 몸을 날리더니 바로 연막탄을 터뜨렸다.

붉은 연막탄의 기운에 호위들이 재빨리 물러났다. 혹시 독이라도 섞였을까 염려한 것이다.

그 사이 강하와 강란이 숲으로 스며들었다.

“쫓지 마라.”

양채완의 옆을 지키고 있던 이가 호위들을 불러 모았다.

“대형, 왜 그냥 보내는 겁니까?”

호위 중에 하나가 투덜거리며 물었다.

노산사검의 맏이 엄종이 강씨 남매가 간 쪽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내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은 부인의 안위가 우선이다.”

엄종이 양채완을 향해 포권을 하였다.

“부군이 부탁을 하여 몰래 따라왔습니다. 양해하여 주십시오.”

양채완은 그들이 방일옥이 특별히 초빙한 무인들임을 알고 있다.

“감사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가슴은 답답하였다.

방일옥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몰래 나왔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엄종은 더 이상 자객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머지 삼검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부인을 모시고 돌아가라.”

엄종이 직접 강씨 남매의 뒤를 쫓았다.

***

나풀나풀 눈발이 비쳤다.

진연이 목검을 연달아 내질러 눈을 찔렀다.

뭉툭한 목검의 끝이 살아 있다. 어린아이의 솜씨치고는 제법이었다.

“후아!”

연달아 목검을 휘두르던 진연이 목검을 거두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마음먹은 대로 검이 나가지 않은 모양이다.

“왜 여기서 끊기는 거지? 힘이 부족한 걸까?”

진연이 중얼거리며 양발을 벌리고 목검을 지른 자세에서 거두는 과정을 복기하였다.

“맞다. 아직 네 다리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한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진연이 놀라 돌아봤다.

눈이 내리는 연무장 한쪽에 강소군이 서 있었다.

커다래진 진연의 눈에 기쁨이 가득했다.

“공자님!”

진연이 달려갔다.

진연은 아직 어린아이다. 기다리던 강소군이 나타나니 정신없이 달려가 안겼다.

강소군이 번쩍 들어 올렸다.

“많이 컸구나!”

“어, 왜 이러세요. 제가 어린애에요?”

진연이 울상을 지었다.

강소군이 내려주니 멋쩍어 하였다.

“왜 이리 늦으셨어요? 모두 기다렸는데.”

“네가 나를 기다렸구나.”

강소군은 문득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럼요. 그동안 제가 얼마나 열심히 수련을 했는데요.”

“안다. 방금 하는 걸 보니 정말 열심히 했더구나.”

“대연의결도 다 익혔어요.”

진연이 자랑하였다.

“그래,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꾸나.”

두 사람은 연무장을 나오다 기별을 받고 달려온 모상을 만났다.

“오셨습니까? 대체 왜 이제 온 겁니까?”

“무슨 일 있습니까?”

“있지요. 아주 골치 아픈 일이 한둘이 아니에요.”

모상은 할 말이 무척 많았다.

“우선 여기저기서 들어온 혼첩부터 봐야합니다. 기다리는 집안이 한둘이 아니에요.”

강소군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장오와 예씨 부인 그리고 강씨 남매도 몰려왔다.

강하는 팔뚝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어디 다쳤나?”

“별 거 아닙니다.”

강하는 오늘 같은 날 흉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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