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27화 (12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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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의 도의도 모르는 놈들.”

청무진인은 말이 없었으나 지켜보던 이들은 달랐다. 그들은 주변에서 수군수군 사냥꾼들을 욕했다.

사냥꾼들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황자배 도사들의 검이 자신들의 도를 막았다는 데 관심을 가졌다.

“역시 무당인가 보군. 늙은 도사들이 제법인데?”

사냥꾼들은 황자배 고수가 나섰음에도 여유를 부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진신절기를 아직 다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무당산 아래 무력대가 이백 명이나 대기하고 있다.

그들이 신호를 하면 언제든 들이닥칠 것이다.

“하나씩 상대하기도 귀찮다. 모두 덤벼라!”

말상의 사냥꾼이 혀를 날름거리더니 앞으로 나섰다.

그때 한쪽에서 젊은 여인이 호들갑 떠는 소리가 들렸다.

“네놈들은 다 죽었다. 오라버니! 여기예요!”

남궁령이 마구 손을 흔들었다.

앞으로 뛰쳐나가려는 걸 남궁우가 온몸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남궁령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두둥실 허공을 떠오다 내려앉은 이는 강소군이었다.

‘아무리 봐도 제운종인데? 아니, 동선이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청무진인을 보좌하는 수좌도사이자 직전 제자인 진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소군을 데리고 통천관으로 올라가며 느꼈던 의문이 다시 한 번 든 것이다.

지금 강적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맞지는 않지만 절로 머릿속에 박혀 버린 의문은 어쩔 수 없었다.

무당의 신법 제운종 같기도 하고 약간 다르기도 했다.

진경은 신법을 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강소군의 얼굴을 보았다.

장내에 내려선 강소군의 시선이 해검지 전각 쪽을 향했다.

무너진 전각 앞에 두 구의 시신이 들것에 놓여 있었다.

흰 천이 덮여 있었는데 그새 두어 군데 피가 배었다. 시신이 워낙 처참하여 피투성이였으니 광목천에까지 밴 것이다.

“….”

강소군이 청무진인을 향해 예를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아무래도 제가 무당에 폐를 끼친 것 같습니다.”

“무량수불. 강 공자의 책임이 아니오. 이미 무당의 일이 됐으니 잠시 기다리시오.”

“아닙니다. 쥐새끼를 달고 무당산에 오른 제 불찰입니다. 저들의 목을 도인들의 영전에 바치겠습니다.”

강소군은 청무진인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렸다.

구레나룻과 말상의 사냥꾼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새파랗게 어린 강소군이 자신들을 쥐새끼에 비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목을 자르겠다 선언한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애초에 강소군을 잡으라는 명령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사냥꾼들이다.

두 사람은 사십 대로 보였으나 실은 이미 육십이 넘었다.

반평생을 유폐되어 무공을 익혀야 했다. 간신히 절대지경에 들어 세상 구경을 하나 싶었는데 첫 번째 떨어진 명이 어린놈을 잡으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후딱 해치우고 자유를 얻을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강소군이 자신들의 목을 취하겠다니 가소로울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 어서 와라. 네놈만 처치하면 귀찮은 일도 끝이다.”

강소군의 시선이 바닥에 놓인 반토막 난 검으로 향했다.

청진 장로의 부러진 검이다.

강소군이 천천히 걸어가 검을 들었다.

“아! 창이 없구나!”

남궁령이 해쓱한 얼굴로 오라버니 남궁우를 보았다.

강소군이 장창을 잘 쓰는 걸로 알고 있으니 걱정이 된 것이다.

손에 익숙한 병기와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크다.

“오라버니, 우리 장창 없어?”

남궁우도 심각한 얼굴로 주위를 보았으나 창을 든 이는 아무도 없다.

“봉이라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오라버니가 좀 노력해 봐.”

무당 제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진경이 강소군에게 다가가 자신의 검을 건넸다.

“이 검을 쓰시오.”

강소군이 고개를 저으며 부러진 검을 들어 보였다.

“이 부러진 검에는 주인의 의지가 담겨 있소. 그 뜻을 이뤄 드려야겠소.”

강소군의 말에 무당의 제자들이 숙연해졌다.

강소군이 검을 들고 사냥꾼들 앞에 섰다.

“지금 반토막 난 검으로 나를 상대하겠다는 것이냐? 병기에 구애받지 않는 절대고수라는 걸 과시하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잘못 생각했다. 잘난 척도 상대를 가려 가며 해야지.”

구레나룻 사냥꾼이 조롱하듯 말했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빨리 해치우고 가자!”

말상의 사냥꾼은 말이 없는 대신 행동이 빨랐다.

강소군이 앞에 나서자마자 대도를 그었다.

-쉬이익!

놀랍게도 커다란 대도에서 새하얀 도기가 뻗어 나오더니 갑자기 도가 반쯤 길어진 듯 보였다.

사냥꾼이 사납게 도를 흔들자 번뜩이는 빛이 강소군을 향해 날아갔다.

“도강?”

주위에 몰려 있던 누군가가 놀라 소리쳤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금 말상의 사냥꾼의 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강을 본 이는 극히 드물다. 다만 도가 길어진 것같이 느꼈을 뿐이다.

강소군이 밀려드는 도강을 보고 한 발을 내디디며 부러진 검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아!”

지켜보던 이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환한 대낮임에도 허공에 찬란한 별들이 떠올랐다.

무수한 별들이 빛을 발하며 말상의 사냥꾼이 날린 도강과 부딪쳤다.

-콰콰쾅!

도와 검이 뿜어낸 빛들이 부딪쳤는데 엄청난 폭음성이 울려 퍼졌다.

사방으로 기파가 퍼져 나가자 수십 장 밖에서 지켜보던 이들도 내력을 끌어 올려 막아야 했다.

호기심이 많아 이제까지 남아 있던 향화객들은 기파를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모두 물러나시오!”

무당의 도사들이 내상을 입은 향화객들을 부축하고 산을 내려갔다.

말상의 사냥꾼은 강소군이 자신의 도강을 막아낸 걸 보고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뭐지? 그 검법은?”

도강을 막으려면 검강이 나와야 했다. 그런데 강소군의 검에서 흘러나온 빛들은 검기였다.

말상의 사냥꾼은 자신이 아는 무리(武理)를 벗어난 상황이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절대경지에 이르러 마음껏 도강을 뿌릴 수 있게 되었다. 강기를 막을 수 있는 건 없다.

강기는 유형화되어 보이는 것일 뿐 기 그 자체이다. 모든 걸 통과하고 파괴한다.

그걸 막을 수 있는 것은 상응하는 강기뿐이다.

그런데 강소군이 검기로 검강을 막아 냈다.

검기는 강기와 차원이 다르다.

기를 발산하는 것과 기를 응축하여 유형화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초절정 고수들이 절대지경의 고수를 넘어설 수 없는 이유다.

“뭐지?”

말상의 사냥꾼이 자신의 대도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그때 구레나룻 사냥꾼이 고함을 질렀다.

“조심해!”

강소군 역시 말이 없는 사람이다.

멍청하게 서 있다고 해서 봐줄 생각이 없었다.

강소군의 검에서 또다시 별빛이 쏟아져 나왔다. 무수한 별빛이 무리 지어 말상의 사냥꾼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구레나룻 사냥꾼이 진각을 내디디며 대도를 후려쳤다.

-콰콰쾅!

다시 한 번 기와 기가 부딪치며 공간이 진동하였다.

“이 자식이?”

구레나룻 사냥꾼은 욕을 하면서도 내심 놀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강소군이 연달아 강기에 버금가는 검기를 쏟아낼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헉!”

구레나룻 사냥꾼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강소군이 돌연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는 순간, 하늘이 온통 별빛으로 뒤덮였다.

구레나룻과 말상의 사냥꾼이 당황하여 각기 전력을 다해 대도를 휘저었다.

-콰콰쾅!

별빛은 예리하였다.

유성처럼 내리꽂히며 구레나룻과 말상의 사냥꾼을 스쳐 갔다.

“큭.”

묵직한 신음성이 터졌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소군이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다시 검을 후려쳤다.

이번에는 정말 은하수처럼 수많은 별들이 무수히 쏟아졌다.

사냥꾼들이 허겁지겁 대도를 휘저었다. 그 순간에도 도의 끝에서 강기들이 뿜어져 나왔다.

-콰콰쾅!

다시 한 번 폭음성이 일었다.

강소군이 사뿐 착지하였다.

사냥꾼들은 자신들의 부러진 도를 보고 망연자실하였다.

이럴 수가 없었다.

절대지경에 들어 적수가 없다고 자신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강소군의 별빛 같은 검기가 두 사냥꾼의 온몸을 관통한 뒤였다.

“크윽.”

두 사람의 몸에서 피분수가 터졌다.

-쿵!

두 사람은 뭔가 말하려다 끝내 아무 말 못 하고 쓰러졌다.

절대고수의 죽음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허망하였다.

강소군은 쓰러진 사냥꾼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해검지 전각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이다.

장내에 있는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이고 강소군을 지켜보았다.

강소군이 광목천으로 덮여 있는 청진의 시신 앞에 검을 놓았다.

그러고는 청무진인을 보고 잠시 묵례를 하더니 몸을 날렸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강소군이 나타나 청무진인과 잠시 말을 나누고 사냥꾼들과 손을 겨룬 시간은 반각이나 될까?

사람들은 악귀처럼 날뛰던 사냥꾼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 있는 걸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무량수불!”

청무진인이 나직이 도호를 흘리고는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저들의 시신을 거두어라.”

무당의 도사들은 말없이 쓰러진 사냥꾼들에게 다가갔다.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자신들이 본 광경이 실제 일어난 것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평생 검을 수련한 황자배 도사들도 강소군의 검법을 보고 놀라워하였다. 어딘가 모르게 무당의 소청검법의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남궁령은 감격하여 눈물까지 글썽였다.

“진정한 대협이야!”

***

강소군은 무당산 옥판봉을 향하여 올라갔다.

‘천성육십사식? 제대로 익혔구나.’

검을 펼칠 때 들려 온 전음.

아니, 전음이 아니었다.

그의 뇌리에 울린 음성은 전음도 전설로 남은 육합전성도 아니었다.

그러나 순간 강소군은 알 수 있었다.

천성육십사식의 주인.

금단진공과 대연의결의 창안자.

그가 무당을 찾아온 이유.

현치자가 그를 부른 것이다.

해검지에서 피가 튀는 격전이 벌어졌으나 무당산 깊숙한 도관들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옥허동천.

현치자는 작은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소군은 옥허동천에 오르자 현치자가 손짓을 하였다.

“이리 와 봐라.”

마치 늘 보던 이를 부르는 듯했다.

강소군이 다가가 현치자 옆에 섰다.

옥허동천에서 보는 광경은 통천관과는 또 달랐다.

앞으로 거대한 절벽이 있고 좌측으로 탁 트여 까마득한 아래가 보였다.

해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사형이 나를 왜 여기 처박아 두었는지 알 것 같구나. 내가 심심해할까 배려한 게 아니었어.”

현치자가 투덜거렸다.

대사형 현종이 그를 끌고 와 유폐시키며 무당산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대신 해검지가 보이는 옥허동천을 내주었다.

현치자는 오가는 향화객을 보며 세월이나 보내라는 뜻으로 알았는데 이제 보니 문지기를 하라는 속셈이 담겨 있었다.

“천성육십사식, 제법 괜찮지?”

현치자는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게 아니었다.

은근 자랑하듯 말을 이었다.

“그게 말이야. 무당의 소청검법에 화산의 매화검, 그리고 도법의 일절이라는 회천십이도를 녹여낸 검법이거든. 그때는 참 내 머리도 잘 돌아갔는데 요즘은 나이 들어 그런지 뻑뻑하단 말이야.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회천십이도….”

강소군은 연성결을 떠올렸다. 회천십이도는 연씨의 가전무공이다.

현치자와 연성결의 집안 간에 무슨 인연이 있었나 보다.

“신법을 보니 추운선이더군. 황궁서고를 탈탈 턴 모양이지?”

강소군이 예를 취했다.

“남기신 절학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강소군은 금단진공 덕분에 무총에서 살아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

현치자가 그런 사실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랬다면 내게도 오는 게 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현치자의 눈빛이 반짝였다.

주름진 얼굴에 장난기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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