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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은 통천관 낮은 마당에 서서 무당의 산천을 내려다보았다.
기파는 저 아래 해검지에서 터졌다. 결코 낮지 않은 경지의 기파였다.
무당에 강적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건 무당의 일.
무당에서 요청하지 않는 한 그가 개입할 일이 아니다.
강소군은 무당산을 둘러보았다. 크고 작은 도관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도관은 거대한 전각과 신상을 갖추고 있고, 또 어떤 도관은 오두막에 불과하기도 했다.
대도를 품기에는 좁다는 청무진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강소군은 알아들었다.
어딘가에 현치자가 있을 것이고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연이 있다면.’
만일 인연이 없다면 끝내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 해검지 쪽에서 다시 기파가 터졌다.
청진 장로가 죽는 순간이란 걸 강소군은 몰랐다.
그 순간 누군가 통천관 뒤쪽에서 걸어 나왔다.
수수한 문사복 차림의 중년 남자.
강소군은 어디선가 그를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년 문사는 다 헤진 섭선을 부치며 다가오더니 강소군 옆에 서서 아래를 내다봤다.
‘아!’
강소군은 헤진 섭선을 보고는 경성으로 가던 길에 들렀던 객잔을 떠올랐다.
남궁우와 남궁령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던 무림인 가운데 있던 문사, 낙서생이다.
낙서생은 산 아래를 보다 중얼거렸다.
“길을 물으려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야 할 텐데….”
강소군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그와 청무진인의 대화를 들은 게 분명했다.
그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청무진인 역시 그랬던 듯했다.
분명 외인이었는데 여기까지 올라온 것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강소군이 빤히 바라보자 낙서생이 씨익, 웃었다.
“가끔은 말이오. 남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기도 해야 한다오.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진 생각이 곧 자신일 수도 있으니까.”
“나의 실체도 모르는 남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강소군은 정중하게 존대를 하였다.
낙서생이 손을 저었다.
“절대고수에게 존대 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오. 나는 내 자리가 어디인지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
낙서생이 산 아래를 보며 말했다. 겸양을 하였지만 말투는 한결 편해졌다.
“무당에 화가 미쳤네. 본인이 그 화를 끌어들였을 것이란 생각은 안 해 봤는가?”
강소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낙서생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가 크면 숲 어디서든 볼 수 있지. 그런 나무가 벼락을 맞는다네.”
“….”
“무림에서 혈마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가? 혈마를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반드시 꺾어야 할 상대로 삼고 무공을 연마하고 있을 거라는 건 생각해 봤나?”
강소군은 낙서생이 누군지도 몰랐고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도 없었다.
“꽤 영민한 걸로 알고 있는데 왜 그 사실을 모르는지 정말 궁금하군.”
낙서생이 가볍게 탄식을 하였다.
“뒤를 따르는 자들이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대정무각, 개방, 동창, 그리고… 천황성.”
천황성이라는 말에 강소군의 안색이 굳었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아야 길도 물을 수 있지 않겠나? 당금 강호에서 자네가 어떤 존재인지 안다면 아무 생각 없이 무당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네. 더욱이 남궁세가와 함께.”
일권삼각 봉무량을 꺾은 그는 십대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서열 구 위.
게다가 최근의 행적으로 인해 그의 정체는 알 만한 이는 다 안다.
남경 명문가 출신이자 황제의 인척.
“황제를 도와 한왕군을 격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혈마가 무림으로 나왔다? 왜? 자네라면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겠나?”
그 십대고수가 남궁세가와 동행하여 무당산을 올랐다. 충분히 이목을 끌 만한 행적이다.
“무당에 천황성의 고수들이 왔다는 거요?”
강소군이 산 아래를 보며 말했다.
하오문은 강소군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하오문주 낙서생은 강소군이 무당파로 향하자 직접 뒤를 따랐다. 천황성에서 분명 꼬리를 붙일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천황성에서 사람을 붙였다. 다만 그 사람들이 생각 이상의 고수들이란 것이 문제였다.
하오문의 이목을 통해 강소군에게 주의를 주려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돌아갔다.
강소군을 쫓아 통천관까지 올라온 그에게 그림자처럼 따르는 호위가 급보를 보내 왔다.
강소군을 따르던 두 고수가 무당산에 난입했다는 것이었다.
강소군이 고개를 돌려 낙서생을 보며 물었다.
“하오문주께서 직접 이런 사실을 알려 주는 이유가 무엇이오?”
낙서생이 씨익, 웃었다.
“알아채셨군. 어찌 아셨는가?”
“나를 쫓는 무리들을 언급하셨잖소.”
낙서생은 대정무각, 개방, 동창과 천황성을 언급했다.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하오문을 거론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듯 눈치가 빠르면서 천황성의 추적이 붙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몰랐소.”
강소군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지난 삼 년 발길 닿는 대로 떠돌아다녔다.
유일하게 그를 쫓아온 이는 신강삼랑이었고 찾아온 이는 연화심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추적하는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앞으로 강호의 이목이 평생 쫓아다닐 거라 생각하면 될 걸세. 그게 지금 무림에서 자네의 위치네.”
낙서생이 말했다.
“….”
강소군이 다시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쩔 셈인가?”
낙서생이 물었다.
“무당산으로 들어온 사람은 두 사람, 고수들이네. 그리고 이백 명의 무력대가 무당산 아래 있다네.”
낙서생은 강소군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다.
천황성을 피해 이대로 무당산을 떠나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천황성 고수들이 무당산에 난입한 이상 이미 무당의 문제가 되었으니까.
그가 신분까지 드러내며 사실을 알려 준 것은 강소군이 정황도 모르고 내려갔다가 천황성 고수에게 당할까 염려하여 그런 것이다.
천황성은 낙서생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제껏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걸 몰랐다는 것 자체가 하오문주로서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천황성을 끌어내려면 강소군이라는 존재가 필요했다.
허망하게 죽어선 곤란했다.
‘게다가 이자는 의뢰인이잖아?’
낙서생이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여하간 그는 강소군에 대해 약간의 호의를 지니고 있었다.
“나를 찾아왔다면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겠소.”
강소군이 훌쩍 몸을 날렸다.
청무진인처럼 허공을 날아 산 아래로 향했다.
“괜찮군.”
강소군이 적어도 자기가 해야 할 몫은 감당하는 자라는 걸 확인하였다.
낙서생이 서서히 멀어져 가는 강소군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
“무당을 찾아온 목적이 무엇이오?”
“이미 밝혔지. 어떤 놈을 쫓고 있는데 무당산으로 숨어들었더군.”
청무진인이 의아해하였다.
“혈마라는 애송이가 오지 않았나?”
말상의 사냥꾼이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청무진인은 말없이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흐흐. 우리 내력이 궁금한 모양이군. 굳이 알려고 들지 마라. 무당이 초토화되는 수가 있으니까.”
오만방자한 말에 무당의 도사들이 분노하였다.
“무당에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는 건가?”
청무진인이 말했다. 목소리 또한 더없이 차가웠다.
제자와 장로의 죽음에 장문인 역시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다만 여러 사람이 보고 있으니 자제하는 중이다.
“크크. 무당을 무림의 태산북두라고 하더군. 나에게는 사냥감으로밖에 보이지를 않아.”
구레나룻 사냥꾼이 대도를 청무진인에게 대도를 겨눴다.
“가장 큰 사냥감은 내 차지다.”
청무진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허공에서 기다란 소성이 울려 퍼지며 두 사람이 날아와 청무진인의 옆에 나란히 내려섰다.
역시 푸른 도포를 두른 늙은 도사들이었다.
“장문인, 본도들에게 맡겨 주시게.”
청무진인이 예를 취하며 말했다.
“사숙들께서 굳이 나서시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새로이 나타난 두 사람은 전대 배분인 황자배의 도사들이었다.
황자배 도사들은 침입자들이 절대지경에 든 고수임을 알아보고 직접 나선 것이다.
당대 청자배에서 절대지경에 든 이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 폐관 수련 중이다.
청무진인은 자신이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그는 초절정을 넘어 절대의 경지를 밟은 지 몇 년 됐다. 그럼에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답보해 왔다.
그러다 어제 현치자를 만나 태극혜검을 논하며 오랜 벽을 깼다.
청무진인이 구레나룻 사냥꾼을 향해 다가가더니 이 장 거리를 두고 검을 뽑았다.
새하얀 검신에 푸른 소나무가 아로새겨져 있는 검!
무당 장문인을 상징하는 송문고검이 뽑혔다.
“후후후. 정말 재밌겠군.”
구레나룻 사냥꾼이 대도를 까닥거렸다. 들어오라는 뜻이다.
청무진인은 검을 세울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구레나룻 사냥꾼의 안색이 꿈틀거렸다.
청무진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는 청진 장로와는 사뭇 달랐다.
‘이 도사는 진짜로군.’
구레나룻 사냥꾼도 내심 긴장하고 대도를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무당 장문인을 잡는다!”
구레나룻 사냥꾼이 대도를 앞세워 달려들었다.
마치 호랑이가 먹이를 향해 달려들 듯 빠르고 거침없었다.
구레나룻 사냥꾼의 이번 초식은 앞서와 다르게 변화무쌍하였다. 청무진인의 검이 단순하니 변화로 제압하고자 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허공에서 춤을 추는 대도에서 거센 도기가 뿜어져 나왔다. 사방에서 도기가 번뜩였다.
단칼에 청무진인을 반토막 낼 기세였다.
“아악!”
이미 두 번의 참혹한 광경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마음이 약한 자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청무진인은 한 발을 반보 앞으로 내세우며 무릎을 살짝 구부리더니 검을 휘저었다.
검끝이 파르르 떨리며 기파가 서서히 퍼져 나왔다.
“우웃?”
구레나룻 사냥꾼은 자신의 도기가 미묘하게 흐트러지는 걸 느꼈다.
“크, 역시 무당 장문이라는 건가?”
구레나룻 사냥꾼이 대도의 변화를 멈추더니 일직선으로 내리쳤다.
이번에는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이다.
-쉬이익!
대도가 허공을 가르고 청무진인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졌다.
그러나 청무진인은 앞으로 뻗은 검을 슬쩍 치켜올렸다.
곧바로 내려오던 대도의 방향이 살짝 비틀렸다. 동시에 검풍 하나가 구레나룻 사냥꾼의 옆구리 빈틈으로 날아갔다.
“제법이구나!”
구레나룻 사냥꾼이 고함을 지르더니 대도를 끌어당기며 수세를 취했다.
그러자 옆구리를 파고들던 검풍이 사라졌다.
구레나룻 사냥꾼이 짓쳐 들어가다 패퇴당한 형국이었다.
“오! 역시 장문인이시다!”
“저게 무슨 검법이지?”
무당 제자들과 지켜보던 세인들이 감탄하였다.
그러자 뒤에 있던 말상의 사냥꾼이 돌연 허공으로 솟더니 도를 내리찍었다.
-번쩍!
빛이 터지며 새하얀 도기가 청무진인을 향해 쏟아졌다.
동시에 구레나룻 사냥꾼이 횡으로 도를 쓸었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합격을 펼친 것이다.
“저런, 나쁜 놈들!”
남궁령이 주먹을 쥐고 흔들며 마구 욕했다.
황자배 도사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각자 검을 던져 허공에 뜬 말상의 사냥꾼과 지면을 쓸 듯 회전하는 구레나룻 사냥꾼에게 던졌다.
두 자루의 검이 빛처럼 날아갔다.
-쾅!
황자배 도사들이 던진 검이 사냥꾼들의 대도와 부딪치며 폭음성이 일었다.
말상의 사냥꾼은 허공에서 뒤로 돌아 내려서고 구레나룻 사냥꾼은 옆으로 회전하며 경력을 흐트러뜨렸다.
청무진인이 송문고검을 휘젓자 황자배 도사들의 검이 다시 주인을 향해 날아갔다.
놀라운 합격술이었고 무당 도사들 또한 기민한 대처를 보여 주었다.
지켜보던 이들은 마치 개안(開眼)을 한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