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25화 (12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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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은 격노하였다.

구레나룻 사냥꾼의 하는 양을 보니 전후 사정을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시비를 걸러 온 것이다.

해검지에서 무당의 제자를 해쳤으니 목숨으로 돌려받아도 누가 뭐랄 상황이 아니다.

청진은 분노한 나머지 단 두 사람이 무당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무얼 의미하는지 간과하였다.

청진이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섰다.

“흐흐흐.”

구레나룻 사냥꾼은 대도를 치켜들었다.

-우웅.

도가 우는 듯했다.

청진은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도에 어린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나는 이럴 때가 좋단 말이야. 크흐흐.”

구레나룻 사냥꾼이 뭐가 좋은지 연신 웃음을 흘렸다.

넘치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발산하는 쾌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진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너는 몇 수 정도는 감당했으면 좋겠군.”

구레나룻 사냥꾼이 한마디 하더니 곧바로 날아올라 대도를 그어 내렸다.

빠르고 정확한 데다 강맹한 기운까지 실렸다. 구레나룻 사냥꾼은 마치 도끼로 내려치듯 도를 내려쳤다.

청진이 사선으로 비끼며 검을 그어 구레나룻 사냥꾼의 복부를 베려 하였다.

구레나룻 사냥꾼은 내려치던 도를 사선으로 홱, 후려쳤다.

도가 청진의 상반신을 찍으려 들었다.

‘막으면 안 된다!’

청진은 무당의 고수다. 본능적으로 구레나룻 사냥꾼의 대도에 실린 기운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청진이 검을 몸에 붙이고 빙그르르 돌며 도를 피한 후 찔러 냈다.

구레나룻 사냥꾼은 풍차처럼 몸을 회전하며 다시 대도를 사선으로 그어 내렸다.

‘빠르다! 위험해!’

도가 오기 전 거센 도기가 먼저 쏟아졌다. 청진은 옆으로 몸을 날리며 땅바닥을 굴렀다.

구레나룻 사냥꾼은 다시 한 번 풍차처럼 몸을 회전하며 날아올라 도를 후려쳤다.

이번에는 도기가 쭉 뻗어 나와 하늘을 덮었다.

‘아!’

청진은 쏟아지는 도기에 그만 탄식을 하고 말았다. 죽음을 직감한 것이다.

청진은 필생의 공력을 담아 검을 내밀어 반원을 그렸다. 아직은 불완전한 태극혜검이다.

그게 그의 실수였다. 차라리 완벽하게 펼칠 수 있는 태청검법으로 막았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무당산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하며 생사를 겨룬 비무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사람을 죽이고자 달려드는 도와는 기세 자체가 달랐다.

“비무를 하자는 거냐! 웃기고 있군. 검을 뽑았으면 목을 걸어라!”

구레나룻 사냥꾼도 청진의 검을 대번 파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파파팍!

“크윽!”

청진의 검이 부러지며 구레나룻 사냥꾼의 도기가 사정없이 청진을 휘감았다.

도기의 폭풍이 지나고 청진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전신에 도가 스쳐 지나가 피가 터져 나왔다.

푸른 도포는 순식간에 붉은 혈포로 바뀌었다.

청진은 부러진 검을 들고 구레나룻 사냥꾼을 노려보았다.

“….”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청진은 시선을 들었다. 푸른 하늘 저 멀리서 한 마리 청학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장문인, 이자는 절대고수요. 조심하시오.’

청진은 날아오는 청무진인에게 경고를 하고 싶었으나 더 이상 의식을 붙잡을 수 없었다.

-쿵!

청진이 선 채로 넘어갔다.

“장로님!”

“사숙!”

무당의 도사들이 경악을 하며 일부는 청진에게 달려가고 나머지는 사냥꾼들을 경계하였다.

“무량수불!”

장엄한 도호와 함께 청무진인이 나타났다.

이미 해검지에는 청자배 장로와 호법들이 몰려와 있었다.

다만 청진이 적의 몇 수를 감당 못하고 패할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허망하게 장로를 잃고 말았다.

***

“뭐라고? 단둘이 무당으로 들어갔다는 말이냐?”

조개량이 놀라 물었다.

홍의발이 날아온 급보를 지체 없이 가져왔다.

‘이런… 대체 이자들은…. 항상 제멋대로구나.’

조개량이 내심 탄식하였다.

애초에 천황성에 청을 한 게 잘못이었을 수도 있다.

천황성에서 파견 나온 고수들은 제멋대로 굴었다.

‘아무리 절대고수라고 해도 무당파와 정면으로 부딪히겠다니. 대체 이들의 오만함은 어디까지인가?’

조개량은 한껏 조심스럽게 천황성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는 주고수의 숨겨둔 책사로 만족할 수 없었다.

주고수를 발판으로 천황성의 내부로 들어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주고수는 조개량을 철저히 배제한 채 천황성과 접촉하였다.

조개량은 천황성에서 주고수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상당히 중요한 위치인 듯하면서도 어느 때는 허수아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삼태상은 감히 그가 떠볼 상대가 아니다.

천황성은 무자비하여 자칫 그가 실수라도 하면 바로 죽일 것이다.

조개량이 그동안 보아 온 천황성은 그랬다.

조개량은 강소군을 주시하였다.

이번 한왕의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복기한 결과였다.

이전까지 조개량에게 강소군은 장기판의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강소군을 통해 천무방 구연강의 수족을 약화시키고 자신이 장악하기 위한 계책에 필요한 존재였을 뿐이다.

그러나 경성 일전의 결과가 나오고 감춰졌던 사실들이 드러나자 강소군이라는 존재를 달리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소군은 한왕군의 예기를 꺾었다. 더욱 놀란 것은 대정무각과 도룡회 양쪽에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 것이다.

강소군에 의해 도룡회주의 암살이 실패한 것은 결과적으로 한왕군이 몰락한 계기가 되었다.

강소군이 일권삼각 봉무량을 꺾고 천무방주 구연강을 상대할 수 있는 절대고수란 사실도 새롭게 다가왔다.

지난날 천무방 무력대와 천무십객을 동원하여 그를 쫓을 때 조개량은 그의 무위를 고려하여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조율하였다.

하지만 드러난 결과로 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전력을 다했어도 강소군을 잡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강소군이라는 존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그는 황실의 일원이다.’

강호의 고수가 황실의 일원이자 남경 권문세가이다.

한 사람이 이만한 힘과 배경을 갖기는 쉽지 않다.

그런 그가 천황성을 쫓고 있다.

위지평 부자의 돌연한 죽음은 아무리 사고를 가장했어도 천황성의 이목을 피할 수 없었다.

주고수의 명을 받아 조개량은 위지평 부자의 죽음을 조사하다 강소군이 찾아왔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천황성은 곧바로 위지평의 남은 가족을 모두 죽이려 했다.

이를 막은 것은 조개량이었다.

지금 위씨 가문을 모두 죽이면 강소군이 눈치챌 것이라는 이유였다.

주고수를 통해 올라간 조개량의 생각이 받아들여져 위씨 가문은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그 사실조차 몰랐지만.

이후 천황성에서 조개량에 대해 주목을 하였다.

주고수가 내리는 명이 이전과는 달라진 것을 조개량이 모를 리 없다.

천황성에서 주고수를 통해 그를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무방을 장악하는 데 실패한 이후 주고수의 관심에서 멀어진 조개량으로서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조개량 역시 천황성의 실체를 가늠하기 위해 강소군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천황성에 고수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천황성에서는 두 사람을 보내 왔다. 조개량은 그 둘을 보좌하기 위해 십이지대 가운데 백서대(白鼠隊)와 철우대(鐵牛隊)를 보냈다.

조개량의 계획은 강소군이 무당산을 나온 뒤 포위한 다음 천황성의 고수들이 강소군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백서대와 철우대는 안중에 두지 않고 곧바로 무당으로 뛰어들었다.

‘미친놈들!’

조개량은 자신의 서재를 왔다 갔다 하며 궁리를 하였다.

“백서대와 철우대에게 전해라. 그 두 사람이 죽더라도 무당산에는 한 발짝도 들어가지 말라고.”

십이지대는 조개량의 밑천이다.

천황성 고수가 벌인 짓이니 스스로 감당하게 놔둘 것이다.

‘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그런지 두고 보자.’

조개량은 봉황수가 백정무를 죽인 사실에 내심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고수가 흔할 것인가. 천황성에 아무리 고수가 많다 해도 봉황수 같은 자는 드물 것이다.

조개량은 사냥꾼들이 무당에서 죽는다고 보고 다음 수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림이 복잡하게 돌아가는데 오히려 번거롭게 만드는군.’

조개량이 한숨을 쉬었다.

최근 남궁세가 등 오대세가와 몇몇 대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각 대파와 세가에 심어 놓은 첩자들의 보고가 연달아 들어오고 있다.

‘무림맹이라고? 그게 가능할까?’

각기 자기만의 명분과 실리를 위해 움직이는 대파와 세가들이 단합하여 맹을 만든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강호를 패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로 만들고자 하는 조개량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움직임이다.

천하사패가 몰락했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지면서 무림은 요동치고 있다.

웅크리고 있던 문파가 고개를 쳐들고 사라졌던 고수가 나타나고 있다.

조개량이 굳이 손을 쓰지 않아도 무림은 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

한 번 실패를 한 후 조개량은 더더욱 세심해졌다. 대파와 세가가 마음만 먹으면 무림맹이 출현할 수도 있다.

조개량은 무림맹이 성사될 경우를 가정하고도 판을 짜는 중이다.

이래저래 머리가 분주한 조개량이다.

***

‘역시 무당 장문인이었어.’

남궁령은 청무진인의 전신에 어린 기운에 감탄했다.

남궁령은 아침 일찍 무당산에 올라 청무진인을 만났다. 그때 본 무당 장문인은 천생 도사였다.

잔잔하기가 호수 같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차분하였다.

그 어디서도 무당 장문인이라는 걸 느낄 수가 없어 내심 실망했던 남궁령이다.

아버지 남궁천은 한 걸음 한 걸음이 태산이 움직이듯 거센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남궁령이 보기에, 무당 장문인은 그저 평범하게 나이든 도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잔혹무도한 마두 앞에 선 청무진인은 달랐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파는 선기와 정기가 어울려 삿된 기운을 억누르고 있었다.

끔찍한 두 번의 죽음에 위축되었던 여러 사람들은 되살아난 정기에 정신을 차렸다.

“무량수불!”

다시 한 번 도호를 흘린 청무진인이 제자들에게 일렀다.

“두 사람의 육신을 수습하거라.”

제자들이 청진과 해검지 수좌도사의 육신을 거두었다.

“흐흐. 계속 죽어 나갈 건데 한꺼번에 거두는 게 어떻겠나?”

청무진인이 구레나룻 사냥꾼에게 시선을 주었다.

“진경(眞境)에 들었으면 그 길을 살피기도 부족할 텐데 살겁을 일으키다니.”

청무진인의 말은 오묘하였다. 주위에 듣는 이들은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구레나룻 사냥꾼은 흠칫, 하고는 청무진인을 노려보았다.

“무당 장문이라고 보는 눈은 있군.”

두 사냥꾼은 최근 절대지경에 들었다.

육신이 인간의 한계를 넘는 절대지경이라고 해서 마음까지 인간의 범주를 넘어 선은 아니다.

두 사람은 갑작스레 권력을 쥔 관리나 절세 보검을 얻은 검객과 다를 바 없었다.

절대지경에 처음 든 이들이 겪는 과정이다. 여기에 이른 이조차 드무니 세인들은 몰랐지만 청무진인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저 둘은 자신들이 얻은 힘을 양껏 휘둘러보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힘이 어디까지 통용될 것인지 가늠하고자 하는 욕망이 두 사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무당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위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상황이 어렵더라도 최소한 빠져나갈 수는 있으리라고 여기고 있다.

설령 무당 중흥조사 장삼봉이 있더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유유히 빠져나갈 것이라 자신하였다.

그러니 거칠 것이 없었다.

“장문인을 거꾸러뜨리면 그다음에 누가 나올지 궁금하군.”

구레나룻 사냥꾼이 음침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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