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11화 (111/250)

111

강소군이 나간 뒤 얼마 되지 않아 장오가 강하를 찾았다.

“염 회주가 우장(雨裝)을 달라는데 어찌할까요?”

“거동도 불편한 환자가 이 빗속을 뚫고 간다는 말입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강하가 염기창을 찾아갔다.

염기창의 부상은 장영영과 달리 중상이다. 내상도 아니고 화살이 심장을 스쳤기에 살아난 게 기적이나 다를 바 없다.

염기창은 이미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안색이 창백한 것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하였다.

“아직 거동을 하면 안 됩니다.”

“가야만 합니다. 가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염기창은 가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갈 생각이다.

그 눈에 어린 결기를 본 강하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마차를 준비하지요.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강하는 마차를 준비하였다.

“제가 호위를 하겠습니다.”

강하는 염기창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도룡회로 가려는 것이다.

장영영도 도룡회로 갔다. 당장이라도 가서 안전을 확인하고 싶은데 강소군이 나서는 바람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신분을 바꿨으나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장 대장군가에 대한 충심이 남아 있었다.

장영영이 죽기라도 하면 마음의 빚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갈 궁리를 하고 있는데 염기창이 나서니 잘됐다 싶었다.

“저도 갈래요.”

강란도 마차에 훌쩍 올라탔다.

“제대로 된 마부가 필요하겠지요?”

장오가 마부를 밀치고 그 자리에 앉았다.

마차가 빗속으로 떠났다.

***

대정무각의 무사는 성 밖 십 리 정도 나왔을 때 멈췄다.

“저는 여기까지밖에 모시지 못합니다. 조심히 가시지요.”

장영영이 가볍게 묵례를 하고 말을 몰았다.

도룡회는 한왕군과 함께 있을 것이다.

도룡회는 황제가 황궁에 있는 경우와 직접 출정을 하는 경우, 두 가지 상황에 맞추어 전략을 세웠다.

황제가 출정을 하였으니 한왕군 후군 진영에서 대기하다 기회를 노려 황제를 칠 것이다.

퍼붓는 비로 길은 흙탕물이다. 장영영은 말을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길목을 목책으로 막고 경계를 서는 황군의 군사들을 만났다.

“누구냐, 멈춰라!”

젊은 장수는 폭우 속을 뚫고 젊은 여인이 나타나니 의아해하였다.

장영영이 상관청유에게 받는 패를 보여 주었다.

젊은 장수가 영패를 확인하고 말했다.

“대정무각 분이셨군요. 그런데 어찌 이 길을 가십니까. 이대로 가면 한왕군의 진영입니다.”

“기밀 사안입니다.”

장영영의 말에 젊은 장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정무각은 황군의 지원세력이지만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젊은 장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장영영을 보았다.

죽립 아래 얼굴은 붉은 면사로 가리고 있어 알 수 없지만 드러난 눈매로 보아 미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젊은 장수들은 무림에 대한 선망 같은 것이 있다.

한 자루 검을 들고 천하를 종횡하는 호걸의 이야기와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이 빼어난 미모의 여고수다.

젊은 장수는 선의를 드러냈다.

“호위를 붙여드릴까요?”

“아닙니다. 번거로움을 끼칠 수는 없지요.”

젊은 장수가 아쉬워하며 군사들에게 말했다.

“길을 열어라.”

장영영이 가고 난 이후 약 반 시진 뒤,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왔다.

“멈춰라!”

비가리개를 눌러쓰고 우의를 둘러 누군지 알 수 없으니 일단 경계부터 하였다.

“신분을 밝히시오. 이 길은 봉쇄됐소.”

강소군이 젊은 장수를 보다 품에서 황제가 준 금패를 꺼내 보였다.

“헉!”

아홉 마리의 금패를 본 젊은 장수는 그 자리에 엎드렸다.

말로만 듣던 구룡패를 직접 본 것이 영광이라는 듯 말했다.

“명을 내리십시오.”

“지나게만 해 주면 되오.”

젊은 장수는 직접 달려가 목책을 치웠다.

강소군이 지나려다 말고 문득 물었다.

“이 길로 한 여인이 지나갔을 텐데 얼마나 됐소?”

젊은 장수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했다.

“반 시진 정도 됐습니다.”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달려 폭우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또 반 시진 뒤, 이번에는 한 대의 마차가 달려왔다.

무려 네 마리의 말이 끌고 있는데도 비로 인해 흙탕물에 바퀴가 빠지니 더디기만 했다.

다만 말을 모는 마부가 기술이 뛰어난지 교묘히 진창을 피해 달려오는 중이다.

‘전쟁터에 왜 이리 사람들이 지나가는 건데?’

젊은 장수가 투덜거리며 마차를 막아 세웠다.

“멈추시오!”

지난 두 차례의 경험으로 보아 저 마차에도 신분이 대단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마부석에 우의를 입고 있는 두 사람은 검을 차고 있었다.

자연 말투가 공손해졌다.

“이 길은 봉쇄됐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장오와 함께 마부석에 있던 강하가 또 패를 내밀었다.

대정무각에 부탁해 받은 패였다.

‘또 대정무각?’

젊은 장수는 이쯤 되면 상부에 바로 보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원래대로라면 임무를 교대한 후 특이사항을 보고하면 됐지만 세 차례나 사람들이 적진으로 가니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상부에 보고를 해야겠습니다.”

강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필요한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다.

강하 일행은 반 시진이나 기다린 이후에야 길을 지날 수 있었다.

***

장영영은 이번에는 한왕군의 군사들과 마주쳤다.

적진에서 오는 젊은 여인을 본 한왕군은 도검부터 세웠다.

“누구냐?”

장영영이 순순히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도룡회 교화입니다. 회로 가는 중이니 길을 열어 주시겠어요?”

원래는 백련교의 교화이나 도룡회 주변에서는 도룡회의 교화로 더 알려져 있다.

한왕군의 장수는 도룡회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교화의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순순히 통과시킬 수가 없었다.

“전령을 보낼 테니 기다리시오.”

잠시 후 전령이 도룡회 무인을 데려왔다.

“교화! 살아 계셨습니까?”

젊은 무인은 장영영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농민군 출신으로 고죽문에 든 무인이다. 농민군 출신은 대부분 백련교도로 교화를 신성시 여겼다.

“모두 어디 계시나요?”

“폭우로 인해 교전이 불가능해 후군에 머물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장영영의 본심이 자기도 모르게 나왔다. 그녀는 도룡회의 무인들이 전쟁에 휘말려 죽는 걸 원치 않았다.

“예?”

“아니에요. 이리 쉽게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뜻이었어요.”

“어서 가시지요. 갑작스레 실종되셔서 모두 걱정을 했습니다.”

젊은 무인이 앞장서 가며 말했다.

“참룡대 전원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명만 떨어지면 바로 황제의 목을 벨 수 있을 텐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군요.”

젊은 무인은 참룡대 일원인 모양이다.

도룡회는 화룡문이 주축이 된 혈도대와 기타 문파가 주축이 된 참룡대가 주력이다.

두 무력대는 황제를 척살하기 위해 길러진 만큼 정예 중의 정예라고 할 수 있다.

“교화께서 오셨으니 하늘의 뜻을 밝혀 주시면 모두 속 시원해할 것입니다.”

젊은 무인은 교화가 천신과 소통하고 있어 모든 걸 꿰뚫고 있다고 여겼다.

어려서부터 불모는 천신의 현화라고 믿어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교화는 불모의 제자다.

젊은 무인은 큰 임무를 수행하기라도 하는 듯 의기양양하여 경신법을 펼쳐 달렸다.

그 뒤를 따라 말을 타고 가는 장영영의 심사는 복잡했다.

이 길은 원수를 죽이고 자신 또한 아버지와 오라비를 따라가는 길이다.

이 순간을 위해 지난 몇 년을 살아왔건만 막상 가고자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

염기창은 마음이 급했다. 황군의 검문소를 지나는 데 꽤 시간을 잡아먹었다.

게다가 폭우로 인해 자꾸만 마차 바퀴가 빠져 가는 길이 더디기만 하다.

‘영영. 꼭 그래야만 하오?’

염기창이 깨어났을 때 장영영은 이미 가고 없었다.

단정히 놓인 한 통의 서찰.

「받은 후의는 내생에서 갚겠습니다.

영영.」

교화라는 신분 대신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고 간 의미를 염기창은 안다.

장영영이 교화가 되기 전. 두 사람이 만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염기창의 마음은 복잡하였다.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한 순간부터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려서 혼인을 한 아내가 있다.

사부를 따라 목숨을 건 대업에 뛰어들자 홀어머니는 집안의 대가 끊겨서는 안 된다며 막무가내로 혼인을 시켰다.

얼마 후 그는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아내가 고향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그가 금의환향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사제 석병도가 장영영을 연모하고 있다.

그러니 말없이 곁에서 지켜만 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장영영이 집안의 원수를 죽이는 걸 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걸 안타까이 여겼다.

그녀에게 정혼자가 있다는 사실은 최근에 알았다.

‘강휘.’

농민의 자식인 자신과는 달리 황제의 외척 집안의 귀공자.

게다가 그는 무척이나 무공이 뛰어나 강호에서 혈마라는 별호로 불리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정혼녀가 죽을 생각이라는 걸 알까?’

염기창이 눈을 감고 복잡한 심사를 가라앉히는데 바깥에서 소리가 들렸다.

“저건 주군의 말 같은데?”

장오가 길가에 버려진 말을 보았다.

“말을 버리고 가신 모양이군요. 한왕군의 검문소가 있는 모양입니다.”

강하가 말을 잡아 마차 뒤에 달았다.

강하의 예측대로 앞에 한왕군의 검문소가 나왔다.

“멈춰라!”

마차가 다가오자 한왕군의 군사들이 장창을 겨눴다.

-삐걱.

마차의 문이 열렸다. 검문소를 지키는 장수가 잔뜩 경계를 하며 지켜봤다.

염기창은 내리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장수에게 말했다.

“도룡회주 염기창이라 하오. 회로 복귀하는 중이오.”

장수가 도를 거꾸로 잡고 예를 취했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염기창이 자신의 패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장수는 이제 진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룡회에 알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장수는 파리한 안색의 염기창을 보고 속으로 의아해하였다.

‘도룡회주라면 하늘을 난다는 고수인데 이렇게 젊다니. 게다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지 않은가?’

그의 의문은 도룡회의 장로 고죽문주가 직접 나타나며 풀렸다.

“회주! 이게 무슨 일이오.”

“암습을 받았습니다.”

염기창이 담담히 말했다. 고죽문주는 경험이 많은 자였다. 한왕군 앞에서 여러 말 하는 게 좋지 않으니 더 묻지 않았다.

“어서 본진으로 가십시다.”

고죽문주가 앞장섰다.

***

거센 빗속을 뚫고 가는 이는 또 있었다.

거대한 준마를 타고 가는 이는 비가리개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쏟아붓는 폭우 속에서도 그의 전신은 젖지 않았다.

빗방울이 몸에 부딪히기 전에 비산하였다.

내공을 이용해 비를 밀어내는 경지.

흔히 절대라고 부르는 경지의 고수다.

그럼에도 꽤나 젊은 축에 속했다. 마흔 중반이나 되었을까?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거한이었다. 게다가 양팔은 유난히 굵어, 보기만 해도 신력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거한은 대정무각의 진영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검문을 하는 이가 가로막았다.

대정무각의 무인들이었다.

“이쪽은 길이 아니오. 돌아가시오.”

거한이 피식, 웃었다.

“누가 그러던가?”

무인들이 경계를 하였다.

첫마디가 시비조였다. 거대한 체구와 팔뚝을 보고도 이 사람이 무인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빗방울을 튕겨내는 고수라니.

대정무각의 무인들이 잔뜩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가면 그게 길이다.”

거한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마상에서 가볍게 일권을 내질렀다.

-펑!

폭우를 가르며 엄청난 경기가 몰아쳐 왔다.

정면에 있던 무인들은 손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경기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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