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04화 (104/250)

104

강소군의 박투술은 군사들이 쓰는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업어치고 조르고 휘감는 기술은 그대로였다.

다만 수법이 더 교묘하고 빨랐으며 금단진공의 기운이 실려 있었다.

그럼에도 봉무량과 같은 권각의 대가가 당한 것은 실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봉무량은 강소군을 창의 달인으로 여겼다. 도법이나 권법이 자신에게 못 미친다고 여겨 잠시 마음을 놓은 게 실수였다.

강소군의 수법이 갑작스레 변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당하고 말았다.

“크윽!”

몸이 뒤로 들렸는데 그대로 청석에 뒷머리를 내리쳤으니 제아무리 고수라고 하더라도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떨어진 게 아니다. 강소군이 금단진공의 기운을 실어 내리찍었으니 보통 사람이면 머리통이 터졌을 것이다.

봉무량 역시 일대 고수였기에 내공으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어 머리통이 박살나는 건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무사하지 못했다. 뼈가 부러지는 불길한 소리는 분명 머리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봉무량이 재빨리 뒤로 굴러 일어났으나 사물이 흔들려 보였다.

“우욱!”

봉무량이 구토를 하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침묵하였다.

한왕부 장수나 군사들도 십대고수의 무명을 안다. 그중 일인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것도 박투술의 일격에 의해 어이없이 무너졌다.

강소군이 한 발 내디뎠다. 그대로 한 번 더 손을 쓰면 봉무량의 목숨은 끝이다.

“아버지!”

갑자기 대청 옆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며 여자아이 하나가 달려 나왔다.

이제 열 살이나 되었을까. 여자아이가 미친 듯이 달려와 봉무량을 얼싸안았다.

가냘픈 여자아이가 기골이 장대한 봉무량을 부축하려 드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봉무량이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봉무량이 한왕에게 말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소. 하지만 이 아이에게 약속한 대가를 지급하고 고향으로 보내 줄 수 있다고 약속해 주시오.”

봉무량은 죽음을 각오하였다. 십대고수의 명성이 깨졌으니 그에게 남은 것은 세상의 조롱뿐이다.

“아버지, 그냥 나랑 같이 가요.”

봉무량의 어린 딸이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한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지고 저 아이를 고향으로 보내 주겠다.”

봉무량이 딸을 밀쳤다.

“가 있거라. 아버지가 끝내야 할 일이 있다.”

딸은 아버지가 멀쩡히 말하는 걸 보고 불안해하면서도 한쪽으로 물러났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천하제일인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진다는 건 생각지 않았다가 무릎을 꿇는 걸 보고 기겁하여 달려 나온 것이다.

강소군이 봉무량을 가만 쳐다보다 말했다.

“당신은 두개골이 깨져 뇌수에 손상을 입었을 것이오. 그런데도 계속하겠다는 말이오?”

봉무량이 강소군을 노려보았다. 그는 승복할 수 없었다. 무림에서 박투술을 쓰는 이는 극히 드물다.

상대가 박투술을 쓴다는 걸 아는 경우 거리를 두기에 거의 효용이 없기 때문이다.

봉무량으로서는 그야말로 뼈아픈 실책이었고 그로 인해 목숨을 내놔야 했다.

하지만 그는 권각으로 십대고수에 이른 인물이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권각으로는….”

봉무량이 한 발 내디뎠다.

“내가 천하제일인이다!”

봉무량의 권이 무겁게 나아갔다.

이제까지 섬전과도 같았던 빠르기와는 정반대로 극히 느린 움직임이었다.

거대한 봉무량의 전신에 기파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권에 내공을 모두 담은 게 분명했다.

강소군은 내심 갈등하였다. 저 일권을 피하면 봉무량은 재차 권을 날릴 힘이 없을 것이다.

그가 어찌하여 돈에 자신의 무공을 팔았는지 몰라도 마지막 보여 준 투혼은 아무나 보여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물러나기보다는 이 자리에서 죽음을 택한 것이다.

정면으로 그 기개에 응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소군으로서도 가볍게 응대할 수가 없었다.

봉무량의 권에는 그가 평생에 쌓아 올린 내공이 담겨 있다. 정면으로 부딪쳤다간 동귀어진할 게 틀림없었다.

강소군이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그가 태극권에 대해 익히 알면서 중권을 마지막 수로 택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한왕에게 최선을 다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강소군의 양손이 서서히 원을 그렸다. 부드럽게 그린 원 한가운데로 봉무량의 권이 들어왔다.

강소군의 양손이 그의 권을 감아 뿌리치는 순간 벼락같이 발차기가 날아왔다.

‘헉!’

강소군도 섬찟, 놀랐다.

상중하 삼단으로 들어오는 발차기는 피할 구석이 없었다.

‘진정한 일권삼각이로구나!’

강소군의 양손은 봉무량의 권에 실린 경력을 아직 해소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일권삼각의 마지막 수는 동귀어진으로는 최적이었다.

그런데.

강소군이 권을 뿌리치고 크게 한 발 내디디며 그대로 봉무량에게 달려들었다.

강소군은 어깨로 봉무량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역시 전장에서 흔히 쓰는 박투술의 일종이었다.

다만.

-콰앙!

사람의 몸끼리 부딪쳤는데 폭음성이 터졌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크흑!”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터진 강렬한 기파에 두어 걸음 물러섰다.

두 사람의 경력이 서로 부딪치며 터진 기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컥!”

봉무량의 신형이 강소군의 어깨에 받힌 채 그대로 멈췄다.

“이, 이런 수가 있었군. 큭큭큭.”

봉무량이 어이없다는 듯 뇌까렸다.

그의 시선이 어린 딸에게로 향했다.

“향아….”

봉무량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린 여자아이가 석상처럼 굳었다. 천신 같았던 아버지가 쓰러지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강소군이 탄식을 하고는 봉무량에게 다가가 몇 군데 혈도를 짚었다.

봉무량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

그제야 어린아이가 한 발 두 발 떼어 걸어왔다.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어린아이는 봉무량 옆에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몸을 수그려 엎어진 봉무량의 귀에 속삭였다.

“아, 아버지?”

의외의 상황에 장수와 군사들은 물론 한왕도 눈살을 찌푸렸다.

전장에서 수없이 적을 죽인 장수들이었지만 혈육의 생사가 갈리는 참혹한 순간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니 남달리 다가왔다.

엄청난 고수들의 격전.

그리고 죽음과 이별.

칼 한 자루에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군인들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이런! 좋지 않다!’

증화보가 정신을 차렸다.

출정을 앞두고 엉뚱한 일로 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를 치워라!”

군사들 몇이 나섰다.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흔들며 말했다.

“안 돼요! 아버지 일어나요!”

강소군이 군사들에게 말했다.

“죽지는 않았다. 데려가 치료를 해 줘라.”

군사들이 봉무량을 들어 대전 뒤로 돌아갔다.

여자아이가 가다 말고 강소군을 노려봤다.

“…!”

그 작은 눈에는 뜻밖에도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강소군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수많은 이들을 죽인 손이다. 혈무의 독에서 벗어난 뒤 잊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이 손으로 무총, 그리고 천무방과의 격전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였다.

강소군이 터덜터덜 장원의 문을 향해 걸었다.

더 이상 살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왕은 그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강휘! 머리는 놓고 가거라!”

장수와 군사들이 강소군을 에워쌌다.

자신을 향한 도와 검, 창을 보는 강소군의 시선이 허허로웠다.

강소군이 문득 시선을 돌려 한왕을 보았다.

권력욕에 불타는 한왕의 눈과 마주친 순간 알 수 없는 분노가 강소군을 사로잡았다.

강소군이 일권을 내질렀다.

권에 경력을 담는 수법은 무궁무진하다.

소림의 백보신권이나 철권호, 봉무량의 권이 다른 것은 그 안에 담긴 내공의 운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지른 강소군의 일권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내지른 일권이었다.

그러나 분노에 차 내지른 일권에 본인도 모르게 금룡기가 쭉 뻗어 나와 실렸다.

-두웅!

허공이 뚫리는 듯한 기파와 함께 엄청난 권풍이 몰아쳤다.

“크악.”

권세의 가운데 있던 군사들이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한왕이 놀라 황급히 몸을 솟구쳤다.

-콰앙!

한왕이 섰던 화강석 석대가 박살이 나는 걸로 부족하여 뒤에 있던 대전 문이 쪼개지고 아름드리 기둥이 두 개나 부서져 나갔다.

대전의 지붕이 우지직, 하며 주저앉고 기와장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 이런 일이….”

한왕은 혼비백산하였다.

육신의 힘으로 따지자면 천하에 자신 위에 있는 이가 없다고 자신해 왔던 한왕이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인간이 어떻게 이런 힘을 발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강소군이 문을 향해 걸어가자 군사들이 황급히 물러섰다.

강소군은 문을 넘어 사라졌다.

***

장원 앞길 양쪽으로 횃불이 줄지어 타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군사들이 도열하여 강소군을 주시하였다. 그들은 안에서 벌어진 상황을 알지 못했다.

강소군이 걸어 나오자 도와 검 그리고 창을 움켜쥐었다.

“….”

강소군은 터덜터덜 걸었다. 마치 혼을 잃은 허깨비처럼 걸었다.

한왕부의 군사들은 감히 그를 막지 못했다. 명이 떨어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강소군은 한왕부의 군사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그가 사람을 죽였던 순간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목이 잘리고 심장이 찔리고 심지어 몸이 반쪽이 나서 나가떨어졌던 육신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군가의 아들이고 또 누군가의 아비였다.

그들은 무슨 이유로인가 그 앞에 나타났고 그를 죽이려 하였다.

강소군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을 죽였다.

창을 휘두를 때는 그저 창끝에 걸리는 존재였을 뿐이다. 그런데 방금 전 그 존재들도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봤다.

강소군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바라보던 어린 여자아이의 두렵고도 슬픈 눈이 생생했다.

“죽어라.”

어느 순간 나이 어린 군사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장창을 찔러왔다.

강소군이 그를 보았다.

횃불 속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에서 문득 떠오른 이가 있었다.

적이라면 죽여야 한다는 눈빛.

패기가 가득한 그 눈은 누군가와 닮았다.

‘운산!’

강소군이 찔러 오는 장창을 한 손으로 잡았다.

“헉!”

이제 열일곱이나 여덟이나 되었을까?

아직 앳된 구석이 남아 있는 군졸이었다.

젊은 군졸은 자신의 창이 너무나 쉽게 막히자 눈을 부릅뜨고 창을 빼려 하였다.

강소군이 창을 휙 잡아당겼다.

젊은 군졸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딸려 왔다. 강소군의 다른 손이 군졸의 목을 잡았다.

“컥!”

울대가 잡힌 젊은 군졸이 밭은 숨을 내뱉었다.

강소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끄윽.”

군졸의 얼굴이 시뻘게지며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죽여! 늘 그랬잖아!’

강소군의 뇌리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젊은 군졸의 눈에는 절망의 빛이 스쳤다. 방금 전까지 투지에 불타 이글거리던 눈이 생기를 잃고 스러져 갔다.

-털썩!

강소군은 젊은 군졸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놔주었다.

“켁, 켁! 크악!”

젊은 군졸이 엎드려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강소군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누구도 감히 다시 덤비지 못했다.

강소군은 자신의 손에 들린 창을 보았다. 방금 젊은 군인에게 뺏은 창이다.

-푹!

강소군이 창을 내리꽂았다.

창은 젊은 군인의 얼굴을 스치고 땅속 깊이 박혔다.

강소군이 다시 걸어갔다.

이번에는 아무도 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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