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01화 (10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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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이 정원 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중랑이 다가와 머뭇거리다 마주 앉았다.

강소군이 고개를 들어 중랑을 보다 차를 따라 주었다.

중랑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화심을 들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강소군이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녀가 필요하기 때문이네.”

강소군이 자연스레 하대하였으나 중랑은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는 강소군의 의도를 알고 싶었다.

“….”

중랑은 말없이 강소군을 주시하였다.

“어떤 세력이 조정과 무림, 상계에 걸쳐 퍼져 있네. 그렇다면 천무방 또한 무관하지 않을 것이지.”

“….”

“천하사패 가운데 요천루는 이미 몰락하여 사분오열로 나뉘고 상당수는 천무방 휘하로 들어갔지.”

강소군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듯 차분하게 말했다.

“대정무각과 도룡회는 원래부터 목적을 가지고 결성한 조직이었네. 천무방이야말로 유일한 강호 방파라고 할 수 있지.”

“천무방이 그 세력과 결탁하였다고 보는 겁니까?”

“그걸 알고자 하네.”

“화심이 미끼로군요.”

중랑이 말했다.

“….”

이번에는 강소군이 침묵을 지켰다.

“그녀를... 위험에 빠뜨린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중랑의 시선이 강소군을 찌를 듯했다.

***

천무방주 구연강은 강소군과의 삼초지약 이후 연공실에 처박혀 두문불출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기어검이 깨진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이기어검의 경지에 오른 후 십대고수의 수좌를 노렸다. 그런데 십대고수도 아닌 강소군에 의해 깨졌다.

‘그놈을 죽일 수 있었을까?’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비무가 계속되었더라면 결과가 어찌 됐을까?

천무방은 곧 천하의 패자가 될 것이다.

구연강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또한 천하제일인의 위에 오르고자 하였다.

구연강은 문득 허공을 향해 물었다.

“천살, 그와 비무를 계속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

천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모른다는 뜻이다. 천살은 있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한다.

구연강이 패한다고 생각했으면 그대로 말했을 것이다.

“승패를 점칠 수가 없다는 뜻인가?”

구연강이 재차 물렸다. 그제야 허공에서 대답이 들렸다.

“삼 초만으로는 그의 무공 수위가 어느 경지에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고 말씀드리는 게 정확하겠소.”

구연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직접 겨룬 구연강조차도 강소군의 무공 수위를 알 수 없었다.

‘영악한 놈!’

강소군은 최소의 공력으로 구연강의 초식을 와해시켰을 뿐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게 구연강을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때 바깥에서 호위가 보고하였다.

“주모께서 오셨습니다.”

구연강이 미간을 찌푸렸다.

“알았다. 내전에서 보자고 해라.”

허나 마씨 부인은 기다리지 않고 구연강의 연공실로 찾아왔다.

“무슨 일이오?”

마씨 부인의 얼굴에는 분기가 가득 어려 있었다.

“당신의 아들이 내 아들의 복수를 훼방놓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라?”

“구양수 그놈이 연화심 그년을 고의로 놓아주었습니다. 어쩌면 그놈이 양운을 죽이라고 사주하였을지도 모르죠.”

구연강은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마씨 부인을 보았다.

“진정하게. 그게 말이 되는가? 양수 그놈이 그럴 만한 배짱이 있는 놈이 아니라는 건 자네도 알지 않는가.”

“무슨 소리! 증인이 있단 말이에요! 진마대주가 직접 연화심을 만났는데 구양수가 빼돌렸다더군요. 아! 진마대주를 갈아치워요. 그자는 눈앞에서 연화심을 보고도 몰랐으니 자격이 없어요!”

“진정하고 차분하게 말하시오! 함부로 대주를 갈아치라 마라 하다니!”

“흥! 마가보의 도움이 없었으면 오늘의 천무방이 있었겠어요? 이제 와서 이렇듯 괄시하다니.”

마씨 부인은 더욱 격앙되어 소리쳤다.

아들 구양운이 죽은 후 마씨 부인은 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구연강이 한숨을 푹 쉬었다. 마씨 부인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긴 했다.

천무방이 초창기에 세를 넓힐 때 마가보의 도움이 컸다.

구연강이 달래듯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잖소.”

마씨 부인이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히고서야 구연강은 정황을 들을 수 있었다.

“양수, 그놈은 어딨소?”

“모르지요? 그놈이 어디서 뭘 하는지.”

마씨 부인이 쏘아붙였다.

구연강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구양운을 후계자로 점찍은 것은 자신을 닮은 면도 있지만 마가보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구양운이 죽었으니 마가보는 완전히 외부세력이 됐다.

막내의 죽음 이후 구연강은 내심 후계자로 구양조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마가보의 세력을 끊어내야 했다.

‘아직은 아니다.’

대정무각과 도룡회 간의 다툼이 일단락되는 결과를 보고 처리해야 할 일이다.

구연강이 바깥 호위에게 말했다.

“구양수에게 연락해서 당장 오라고 해라.”

구연강이 마씨 부인에게 말했다.

“일의 경위를 알아보고 단단히 혼을 낼 것이오. 그보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오?”

“그년이 경성으로 왔어요.”

구연강은 연성결을 죽인 후 그 딸까지 죽일 생각이 점차 사라졌다.

연성결과 그 형제들이 마지막 보여 준 모습에 그의 분이 어느 정도 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씨 부인이 원한을 갚는 걸 막을 생각도 없었다.

“잘됐군. 모든 게 이 경성에서 결판이 나겠구려.”

구연강이 말했다.

황권 다툼도 대정무각과 도룡회 세력을 척결하는 것도 조만간 결판이 날 것이다.

“참룡대를 붙여 주겠소.”

“흥! 당신 도움은 필요 없어요. 마가보의 고수들로 그년을 죽이고 말 거니까.”

마씨 부인이 톡, 쏘아붙이고 나갔다.

마씨 부인이 찾아온 뒤 구연강은 강소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다.

오랜만에 집무실로 들어온 구연강이 조개량을 찾았다.

“조개량을 오라고 해라.”

잠시 후 신기수사 조개량이 들어왔다.

“최근 상황에 대해 보고하라.”

조개량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구연강이 자신을 의심하는 걸 아니 말 한마디조차 생각해서 해야 했다.

“황제와 한왕의 대치가 길어지고 있습니다만 이제 정점에 달한 듯합니다. 곧 결판이 날 겁니다.”

“대정무각과 도룡회는?”

“도룡회는 내분에 쌓여 있습니다. 회주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게다가 교화도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회주와 교화가 사라졌다고?”

“두 사람이 동반잠적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염기창과 장영영이 눈이 맞아 도주하였다는 소문은 임승백이 퍼뜨린 것이었으나 이들이 알 리 없었다.

“우문극이 제자를 잘못 키웠나 보군.”

“아무튼 그로 인해 대정무각과 도룡회의 싸움이 우리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될 것 같습니다.”

원래는 두 세력이 맞붙어 양패구상하면 그 뒤를 천무방이 정리하는 수순을 밟으려 했다.

그런데 도룡회가 내분으로 힘이 약화되면 대정무각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그렇더라도 대정무각을 무림에서 몰아낼 수는 있을 겁니다. 이미 대정무각이 황실을 비호하는 세력이라는 사실이 무림에 퍼지고 있으니까요.”

조정의 권력이 강호에 개입하는 걸 꺼리는 무림세력이 대정무각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십이지대는 잘 감춰 뒀겠지?”

십이지대는 천무방이 십여 년간 키워 온 비장의 무력대다.

구연강은 그들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무림일통의 꿈이 완성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상단과 표국 등으로 위장하여 포진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바로 행동 개시할 겁니다.”

조개량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러나 구연강에 마음 한구석에 깃든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건 눈앞에 있는 군사 조개량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조개량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강소군과 연화심을 쫓으며 천무방의 전력이 크게 깨지고 난 뒤 신뢰에 금이 갔다.

신뢰할 수 없는 군사.

그처럼 위험한 존재가 없다.

“수고했네. 가 보게.”

구연강의 목소리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조개량이 예를 취하고 집무실을 나갔다.

‘양조, 이놈은 대체 알아보고 있는 거야 뭐야.’

구연강은 대공자 구양조에게 조개량의 뒷조사를 시켰으나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다.

‘양운, 그놈이라면 벌써 뭔가를 가져왔을 텐데.’

오늘따라 죽은 자식 생각이 났다.

***

“허허, 어서 오시오. 천하 십대고수 중 한 분을 만나다니. 영광이구려.”

주고후가 크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앞에 칠 척 거한이 서 있었다.

주고후 역시 기골이 장대하였는데 거한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었다.

“왕야의 신력에 대해 평소 흠모해 왔습니다. 미천한 백성을 이렇게 환대하여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일권삼각 봉무량이 예를 취했다.

“남권과 북퇴, 두 수법을 한 몸에 익힌 고수라고 들었소. 이렇게 봉 형을 얻으니 천하를 얻은 것 같구려.”

주고후는 봉무량을 극진하게 대했다.

봉무량은 천하를 떠돌며 남권과 북퇴 두 계보를 모두 섭렵한 무공광이다.

주고후는 진심으로 흡족하여 봉무량에게 최고의 예우를 갖춰 대했다.

옆에 섰던 군사 증화보가 분위기를 보고는 호위 하나에게 일렀다.

“어서 가져오게.”

호위가 널따란 목함을 가져오더니 봉무량 앞에서 열었다.

열 냥짜리 금자가 나란히 담겨 있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는데 약소하지만 받아 주시오.”

봉무량이 목함을 받고 허리를 숙였다.

“왕야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분골쇄신하여 보좌할 것입니다.”

“하하하. 오늘 영웅을 만났으니 크게 한잔해야겠다.”

주고후가 수하들에게 일렀다.

봉무량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외람되나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렇소?”

“술은 근육을 풀어 버리고 정신을 갉아먹습니다. 권사에게는 그야말로 천적이지요.”

“하하하. 과연!”

주고후가 감탄하였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하하. 성격이 급하시군.”

주고후가 주위 수하들을 물렸다.

“실은 한 사람을 처리해 주었으면 하네.”

“그게 누굽니까?”

“강호에서는 혈마라고 하더군.”

주고후가 강소군에 대해 일러주었다.

봉무량도 혈마에 들은 바가 있었다.

“창을 쓰는 고수라고 들었습니다.”

권각을 쓰는 봉무량에게 장창을 쓰는 이는 껄끄러운 상대임에 틀림없다.

서로 간의 실력 차가 크다면 상관없지만 엇비슷할 때는 곤란할 수도 있다.

“그의 손에 창이 없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문제없을 겁니다.”

“내가 연회를 열어 그를 초대할 걸세. 숙부가 조카를 부르는데 병장기를 가지고 오지는 못하지.”

봉무량이 나간 뒤 증화보가 말했다.

“강 공자는 왕야의 앞길에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일단 거사를 한 후 천천히 처리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그놈은 손에 박힌 가시 같은 존재다. 자네가 그놈 애비를 몰라서 그래. 미리 제거를 해야 후환이 없을 것이야.”

주고후가 딱 잘라 말하니 증화보로서도 더 설득할 수가 없었다.

***

“한왕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장오가 배첩을 들고 왔다.

강소군이 열어 보고는 피식, 웃었다.

강하가 물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한왕이 나를 죽이고 싶은 모양이다. 나를 위해 연회를 열 것이니 오라고 하는군.”

강소군이 말했다.

“가서 거절한다는 말을 하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장오가 말하고 나가려 하자 강소군이 붙잡았다.

강소군이 배첩을 다시 읽고는 말했다.

“간다고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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