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00화 (100/250)

100

하얀 피부가 매끄러웠다. 화살은 호신구를 관통하고 살까지 파고들었다.

흰 팔뚝에 살이 찢어진 자욱이 흉하다.

연화심이 상처 주위를 닦고 금창약을 뿌린 후 새로 천을 감아 주었다.

연화심이 상처를 돌봐주는 동안 장영영은 말이 없었다.

연화심이 천을 다 감고 나자 그때서야 머리를 숙여 감사함을 표했다.

“고마워요.”

연화심은 강소군이 들어섰을 때 장영영을 보던 표정을 보았다.

‘홍옥비도의 주인이다.’

그 이상했던 표정에서 연화심은 장영영이 홍옥비도의 주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어찌 된 걸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장영영이 물었다.

“휘 오라버니를 어떻게 아시지요?”

휘 오라버니라는 말이 친숙하게 들렸다.

“목숨을 구해 주셨지요.”

“그렇군요.”

장영영은 더 묻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회주님도 제 목숨을 구해 주셨지요.”

장영영이 말했다.

그녀가 동창에 쫓길 때 죽음을 무릅쓰고 구해 준 이가 염기창이다.

“깨어나실 거예요. 걱정 마세요.”

연화심이 위로하였다.

“그래야지요. 그에게는 고향에서 기다리는 아내가 있어요.”

장영영의 말에 연화심이 내심 놀랐다.

두 사람이 연인인 줄 알았던 것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염기창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연화심은 직접 봤다.

염기창이 장영영을 감싸고 대신 화살을 맞은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장영영은 말없이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방을 나갔다.

옆방에는 노이칠과 소식을 듣고 달려온 상관청유가 장영영의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영영과 연화심이 나오자 기다리던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영영이 노이칠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구명지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사람을 구한 건 내가 아니오. 여기 연 낭자와 강 협이 없었으면 회주를 살릴 수 없었을 것이오.”

노이칠이 손사래를 쳤으나 장영영이 정중히 예를 올렸다.

장영영이 상관청유를 보았다.

상관청유도 예를 취했다. 장영영이 어리긴 하지만 백련교의 교화라는 걸 감안한 것이다.

“대정무각에서 오각을 맡고 있는 상관청유라고 하오.”

“….”

장영영이 다시 마주 예를 취하고 자리에 앉았다.

“묻고 싶은 게 많을 줄 압니다. 하지만 제가 들려드릴 수 있는 말이 별로 없군요.”

노이칠과 상관청유가 서로를 보았다.

대정무각과 도룡회, 한왕부와의 일전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룡회주와 교화가 나타났으니 뭐라도 알아내야 한다.

“도룡회주가 우리 손에 있소. 서로 간에 불필요한 싸움은 그치는 게 좋지 않겠소?”

“회주께서 깨어나면 말씀하시지요.”

“상세가 깊어 의식을 찾으려면 며칠 걸릴 것이오.”

상관청유가 정색을 하였다.

“도룡회는 회주를 찾으러 올 것이오. 결국 충돌이 불가피할 터. 서로 간의 오해를 씻는다면 그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겠소.”

장영영이 탄식을 하였다.

“도룡회의 사정은 보기보다 복잡합니다. 저 역시 모두 알지 못합니다. 잘못된 사실을 말씀드리면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것입니다.”

“판단은 우리가 하겠소.”

상관청유는 물러나지 않았다.

장영영 또한 입을 닫았다.

연화심이 중재에 나섰다.

“장 낭자의 상세도 가볍지 않습니다. 일단 정양을 취한 뒤 다시 말씀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노이칠이 상관청유에게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당장 교전이 벌어질 것도 아니잖습니까?”

상관청유가 못마땅한 얼굴로 방을 나갔다.

노이칠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많은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다보니 무례를 범하게 됐소. 우선 쉬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노이칠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연화심도 따라 나왔다.

열린 문 앞에 강소군이 서 있었다.

“가자.”

강소군이 장영영에게 말했다.

***

주고후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대전에 부복한 임승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쪽 눈까지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임승백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애송이 하나 처지 못했단 말이냐?”

평소라면 벌써 벼루가 날아왔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끼어든 놈이 강호인이었습니다. 무척 무공이 뛰어난 자였습니다.”

“으음….”

주고후가 침음성을 흘렸다.

군사를 동원해 경성을 압박하는 사이 도룡회와 천무방을 이용해 젊은 황제를 척살하려던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젊은 황제를 따르는 무리의 세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힘으로 뒤집어엎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주고후의 말에 옆에 있던 책사 증화보가 나섰다.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증화보의 말에 주고후가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의 말대로 해서 이제까지 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잘되다니.”

애초에 거병하여 모두 쓸어버리려던 주고후다.

증화보가 그럴 경우 황제의 위는 차지해도 민심을 얻을 수 없다며 도룡회와 천무방을 내세우자고 했다.

“도룡회주가 대정무각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아직 내막을 모르는 도룡회가 회주를 구하기 위해 나서면 자연 대정무각과 일전이 벌어집니다. 그때 거병하셔서 젊은 황제를 끌어내고 구 방주의 힘을 빌어 제거하는 겁니다.”

맞은편에 섰던 번참이 반박했다.

“왕야, 맹룡이 아니면 강을 건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힘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교묘한 계책에 의지하여 언제 보위에 오르시겠습니까?”

번참은 주고후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장수다.

“제게 일만의 군사를 주시면 경성을 함락시키고 젊은 황제를 왕야 앞에 무릎 꿇리겠습니다.”

번참은 본격적인 거병을 반대하는 증화보에게 불만이 많았다.

“황제의 금군은 이미 도성을 두 겹 세 겹 방어하고 있습니다. 쉽게 깨뜨리기 어렵고 전쟁하는 와중에 백성들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겁니다. 왕야께서 황제의 위에 오르신 뒤 따르는 이가 없으면 그거야말로 사상누각이 될 것입니다.”

증화보가 다시 반박하였다.

주고후는 부친을 따라 전장을 누빈 장수다. 그의 성품대로 한다면 번참의 말을 듣는 게 맞았다.

그가 망설이는 건 죽은 부친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고후는 힘이 있으나 덕과 지혜가 모자라다. 고치가 병약하나 지혜가 있으니 내 자리를 잇기에 적당하다.’

그 말은 가슴 깊이 박힌 화살과도 같았다.

부친의 정변에 앞장서서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보위는 결국 힘없는 의붓형에게 돌아갔다.

주고후는 조정의 권신에게 자신도 지략이 있는 인물로 보이고자 했다.

“화보의 말대로 하라.”

주고후가 잘라 말하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증화보를 보았다.

“강휘, 그놈은 언제 잡아올 것이냐?”

증화보가 허리를 숙였다.

“일권삼각 봉무량을 포섭했습니다. 오늘내일 중으로 당도할 것입니다.”

“십대고수라는 봉무량 말인가?”

주고후가 반색하였다.

“그자라면 충분할 겁니다.”

어렵게 봉무량을 초빙한 증화보는 자신만만하였다.

“혹시 모르니 번참, 자네가 왕부의 고수 몇을 붙이게.”

“알겠습니다.”

번참이 대답했으나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강소군은 장영영과 염기창을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왔다.

강하, 강란 남매는 장영영을 보는 마음이 복잡했다.

강소군이 자신의 서재에 앉아 있는데 강하가 찾아왔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뭔가?”

“저번에 아가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자객들의 기습을 받았습니다.”

강하, 강란 남매는 정체모를 복면인들에게 쫓기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만나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당시 자객은 도룡회 무리 같았습니다. 그들이 아니고는 제 행적을 알 수 없었으니까요.”

“….”

“장 아가씨는 도룡회에서 중요한 존재인 듯합니다. 그러니 저희 남매를 척결하여 과거의 연을 끊으려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강소군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염두에 두셨으면 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강하는 세심한 구석이 있었다.

“알겠다.”

강하가 나간 뒤 잠시 후 연화심과 중랑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노이칠을 따라 대정무각의 본거지로 들어갔다.

강소군이 담담하게 말했다.

“경성으로 올 줄은 몰랐소.”

“천무방과의 악연을 끊지 않고는 천하에 머물 곳이 없더군요.”

연화심의 말에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연강은 절대 포기할 자가 아니오.”

강소군은 구연강과 삼 초를 겨루고 난 뒤 깨달았다.

그는 마지막에 치명적인 살초를 썼다. 그 일검에는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구연강은 절대 아들의 복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름 간직한 속셈이 있어 잠시 대범한 척하는 것뿐이다.

중랑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강 대협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대연의결을 전한 것에 대한 감사였다.

“가야 할 사람에 간 것뿐이오.”

강소군은 천성육십사식이나 대연의결이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을 말하였으나 중랑은 알지 못했다.

말없이 예를 표할 뿐이었다.

중랑은 강소군을 대하는 게 불편했다.

번번이 그로부터 도움을 얻고 무공까지 얻었다. 하지만 연화심과 강소군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이 그를 불편하게 했다.

‘이 두 사람은 대체 무슨 인연이 있기에 이렇듯 이어지는 걸까.’

중랑은 두 사람 사이에 무형의 끈 같은 게 느껴졌다.

정작 두 사람은 그걸 모르는 듯했지만 계속하여 운명처럼 조우하는 걸 보고 중랑은 확신했다.

다만 그 인연의 끈에 연화심이 다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중랑은 강소군이 백척간두에 서서 천하를 보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옆에 선다는 건 그 모든 위험을 함께한다는 뜻이다.

중랑은 그 옆에 연화심이 서기를 원치 않았다. 그런데도 자꾸만 부딪히고 엮인다.

“산동삼호는 항주로 가셨습니다. 저희 남매는 당분간 대정무각과 함께할 겁니다.”

연화심이 말했다.

강소군이 가만 연화심과 중랑을 보다 말했다.

“경성의 상황은 녹녹치 않소. 황군과 한왕군이 대치하고 있고 무림세력 또한 대정무각과 도룡회, 천무방이 대치하고 있소.”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대정무각과 함께 천무방에 대적하고자 합니다.”

“대정무각의 진정한 적은 도룡회나 천무방이 아니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대정무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과도 싸우고 있소.”

연화심과 중랑은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 세력의 주인이 누군지, 얼마나 큰지는 대정무각도 모르고 있소. 다만 고수들이 꽤 많다는 것이오.”

“대정무각 각주들은 모두 절정고수입니다.”

“그들을 능가하는 고수가 저들에게 있소.”

“그게 누구입니까?”

강소군이 고개를 저었다. 천황성의 사자에 대해서는 그도 말만 들었을 뿐이다.

“모르오. 대정무각에서도 모르고 있으니 문제요. 그래서 대정무각이 도룡회나 천무방을 선뜻 먼저 치지 못하고 있소.”

“대체 얼마나 뛰어난 자가 있기에 그렇습니까?”

“일각주보다 한 수 위라고 들었소.”

연화심과 중랑은 내심 놀라 말문이 막혔다.

대정무각 일각주 백정무는 십대고수의 일인이다.

도룡회주를 꺾은 그보다 한 수 위인 자가 적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나의 적이기도 하오.”

강소군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대정무각으로 가는 대신 이 저택에 머물며 나를 도와주는 건 어떻겠소? 내게는 그들이 모르는 고수가 필요하오.”

중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연화심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 대협께서 원하신다면 당연히 따라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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