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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칠이 나오자 십각의 무인 하나가 다가와 보고하였다.
“연 낭자 일행이 도성으로 들어왔습니다. 약방거리로 갔습니다.”
‘중상자가 있다고 했지?’
노이칠이 안가로 다시 들어가더니 후원에 있는 전각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뭐냐? 이 아침에.”
동약사 중유선이 불쾌한 얼굴로 나왔다.
“아침 산책가자고요.”
“뭐?”
***
-쿨럭.
염기창의 입에서 시꺼멓게 죽은 피가 흘러나왔다.
장영영이 면사로 피를 닦았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피가 검붉다는 건 좋지 않은 징조다.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장영영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보다못해 중랑이 나섰다.
“화살을 뽑고 봅시다.”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저 화살을 뽑으면 바로 죽을 겁니다.”
그때 바깥에서 노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심한 놈. 이놈의 돌팔이들은 사람 죽는 이유만 번지르르하게 떠들지.”
중랑의 손이 허리에 찬 검으로 가려다 멈췄다.
그가 아는 목소리였다.
-삐걱.
문이 열리고 노이칠과 동약사 중유선이 들어섰다.
“노 각주님?”
“중 신의?”
중랑과 연화심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대체 이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노이칠이 웃으며 말했다.
“연 낭자! 오면 온다고 말했어야지. 중랑도 오랜만이군.”
노이칠은 연화심과 중랑을 보다 침상으로 시선이 향했다.
젊은 남자가 누워 있고 여인이 옆에서 간호하고 있다.
의원이 망연한 얼굴로 있는 걸로 보아 환자의 상황이 좋지 않은 듯했다.
-쿨럭!
염기창이 다시 피를 토했다.
그 통에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이 사람은?”
노이칠이 물었다.
“길에서 만난 분입니다. 한왕의 군사에게 쫓기고 있어 함께 왔습니다.”
중랑이 대답했다.
노이칠이 중유선에게 말했다.
“뭐 하고 있소? 사람이 죽어 가잖소?”
“요즘 죽는 사람이 한둘이냐?”
중유선이 투덜거리면서도 침상으로 다가갔다.
“저놈이 웬일로 산책을 가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아침부터 피 냄새를 맡는구나.”
장영영은 중유선이 구시렁거리며 다가오자 염기창의 옆에 서서 잔뜩 경계를 하였다.
“멈추세요?”
손에 염기창의 도가 들려 있었다.
그녀로서는 중랑과 연화심의 정체도 모르는데 새로이 사람들이 나타나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이칠은 이런 일에 익숙하였다.
장영영을 향해 씨익,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말했다.
“아가씨, 우선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지.”
노이칠의 말에 장영영이 한쪽으로 비켜섰다.
“아이고. 이런….”
중유선이 염기창의 상세를 보고 혀를 찼다.
염기창의 상세는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살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화살이 심장을 스쳤네.”
신의라고 불리는 그가 한숨을 쉬었다.
“의원 말이 맞네. 아직 살아 있는 게 용하군.”
그 말에 장영영이 풀썩 주저앉았다.
노이칠이 그 모습을 보다 중얼거렸다.
“아니, 나는 본 적이 있어. 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지.”
모두가 노이칠을 쳐다봤다.
“기다려 보라고.”
***
-쾅! 쾅! 쾅!
아침 댓바람에 누군가 요란하게 대문을 두드렸다.
장오가 인상을 쓰며 대문을 열자 웬 중년 상인이 서 있었다.
“누구시오?”
“여기 주인 만나러 왔소. 한시가 급하오.”
장오가 노이칠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찾아온 것이오? 여기는….”
“강소군, 강 공자가 주인 아니오? 노이칠이란 친구가 찾아왔다고 전하시오.”
장오가 들어간 뒤 잠시 후 강소군이 나타났다.
노이칠이 반가워하며 다가갔다.
“강 협, 오랜만이네.”
“어찌 알고….”
강소군이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상대가 대정무각 십각주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자네가 도성에 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 그동안 일이 바빠 찾아오지 못했네.”
일이 바쁜 게 아니라 일각주 백정무의 명이 있었다. 무슨 일인지 강소군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잘 오셨습니다. 안으로 드시죠.”
강소군이 안을 가리키는데 노이칠이 팔을 잡아끌었다.
“아닐세. 사람이 죽어 가네. 어서 가세.”
강소군은 노이칠의 다급한 표정에 가타부타 토를 달지 않고 따라나섰다.
“자네가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노이칠이 득의만면하여 말했다.
“반가운 사람이 있을 거야.”
강소군이 노이칠을 봤다.
“가 보면 알아.”
강소군은 노이칠을 따라 약방거리로 들어갔다.
“여길세. 화살에 맞은 청년인데 부위가 좋지 않네.”
노이칠을 따라 의방으로 들어선 강소군은 연화심과 중랑을 보고는 잠시 멈칫, 하였다.
그가 알기에 복건으로 가 있어야 할 사람들이 도성에 있는 것이다.
연화심과 중랑이 인사를 하였다.
“강 공자님, 오랜만에 뵙네요.”
강소군이 마주 예를 취하다 그대로 굳었다.
강소군의 시선은 장영영에게 꽂혔다.
면사를 쓰고 있지만 누군지 대번 알 수 있었다.
장영영 또한 석상이라도 된 듯 굳은 채 강소군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살폈다.
‘아는 사이였나?’
노이칠의 눈이 두 사람을 오가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이 사람인가?”
침묵을 깬 사람은 중유선이었다.
노이칠이 먼저 정신을 차렸다.
“강 협, 이 사람이 화살을 맞았는데 부위가 좋지 않네. 자네가 손을 쓸 수 있겠나?”
노이칠이 염기창을 가리켰다.
사실 노이칠은 염기창을 모른다. 하지만 이를 구실로 강소군을 만나고자 한 것이다.
‘사람을 살리려고 그런 거니 대형도 뭐라 할 수 없겠지.’
중유선은 강소군을 처음 봤다.
‘이놈이 무슨 신의라도 된다는 말인가?’
자신도 포기한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노이칠이 데려왔으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화살이 심장을 스친 것 같네. 지혈은 했으나 화살을 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네.”
중유선은 환자의 상세부터 설명했다.
강소군의 시선이 장영영에게서 염기창으로 향했다.
창백한 남자는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강소군은 장영영의 표정에서 염기창과의 관계를 읽을 수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찌르는 듯한 아픔이 스쳤다.
‘살아 있으니 됐어요.’
‘우리 둘 인연도 끝났어요.’
호숫가에서 그녀가 남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살아 있으니 다시 만나는구나.’
강소군은 눈빛으로 말했다.
‘지난 인연은 끝났으니 새로운 인연이겠죠.’
장영영이 눈빛으로 답했다.
그녀의 눈빛은 끊임없이 흔들렸다.
염기창의 상세가 걱정됐던 것이다.
강소군이 염기창에게 다가갔다.
노이칠이 말했다.
“자네가 연 낭자를 치료하지 않았나? 그건 정말 신의도 못 따라가는 솜씨였지.”
노이칠은 무창쌍과의 과에 연화심이 중상을 입었을 때 강소군이 살려 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동약사 중유선이 불쾌한 얼굴로 노이칠을 노려봤다.
‘이 자식이 신의니 뭐니 떠받들 때는 언제고. 뭐? 신의도 못 따라가?’
강소군이 주위를 둘러봤다.
노이칠이 눈치채고 모두에게 손짓을 했다.
“모두 나가자고. 치료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노이칠은 장영영과 중유선까지 나가라고 재촉했다.
강소군이 의원에게 상처를 꿰매는 바늘을 부탁하고는 연화심에게 말했다.
“연 낭자, 나를 도와줄 수 있겠소?”
의원이나 중유선이 아니라 연화심에게 도움을 청하니 모두 살짝, 놀랐다.
강소군으로서는 지금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연화심에게 도움을 청했다.
연화심을 지나치다 흘깃 살피는 장영영의 눈빛에 이채가 흘렀다.
모두 나오자 중랑이 문 앞을 지켰다.
강소군이 연화심에게 말했다.
“내가 신호를 하면 화살을 뽑으시오. 바로 지혈을 하고 금창약을 뿌려 주시오.”
강소군이 화살이 등에 박혀 옆으로 누워 있는 염기창을 앉혔다.
한 손을 심장에 있는 부위에 대고 다른 한 손은 명문혈에 대었다.
금단진공을 운용하자 단전에서 일어난 금룡기가 염기창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혈룡기에서 비롯된 금룡기는 전신 장부와 세맥으로 스며들어 잠력을 깨우는 효과가 있었다.
강소군은 이제 금룡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지에 이르렀다.
염기창의 체내로 들어간 금룡기가 심장과 주위를 감쌌다.
강소군이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연화심이 화살을 뽑았다.
-주르륵.
피가 흘러나오자 연화심이 주위 혈도를 눌러 지혈을 하고 금창약을 뿌렸다.
염기창의 심장이 경련을 일으키며 경직하려 들었다. 강소군은 금룡기로 심장의 잠력을 깨웠다.
요동치던 심장이 다시 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강소군은 염기창을 옆으로 누이고 금창약을 뿌리면서 안쪽부터 꿰매 나갔다.
연화심은 강소군이 익숙한 솜씨로 상처를 꿰매는 걸 흥미로운 눈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강소군이 염기창을 바로 누이고 일어섰다.
“수고했소.”
강소군이 연화심에게 말했다.
연화심의 눈이 강소군과 마주쳤다.
‘이 사람, 달라졌다.’
연화심은 강소군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더 이상 슬픈 눈이 아니야.’
동정호 호숫가에서 마주쳤던 눈빛을 연화심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강소군의 눈빛은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었다.
세상 모든 허무와 슬픔을 간직한 눈빛이었을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강소군의 눈빛은 모든 것을 초월한 담담함 그 자체였다.
마치 높은 산 정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주친 느낌이었다.
“도움이 돼서… 기뻐요.”
연화심은 진심이었다.
그를 만난 뒤 처음으로 자신이라는 존재를 필요로 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도성에는 어찌 온 것이오.”
“천무방이 장강을 장악했어요.”
“아무튼 반갑소.”
강소군이 말을 마치고 방문을 열었다.
“이제 진짜 신의가 필요합니다.”
문 앞에서 방 안의 동정을 살피던 중유선이 퍼뜩, 놀라 강소군을 쳐다봤다.
정말 염기창을 살려 낼 줄 몰랐던 것이다.
중유선이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자 의방의 주인인 의원도 뒤따라 들어갔다.
“정말이네? 이 청년 살았어?”
중유선의 놀란 음성이 방 밖까지 흘러나왔다.
“나는 당연히 살려 낼 줄 알았지.”
노이칠이 어깨를 으쓱하며 장영영을 쳐다봤다.
“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시겠소?”
노이칠에게 공짜가 없다.
한왕에게 쫓겼다면 분명 사연이 있을 것이다.
작은 정보 하나도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게 노이칠의 지론이다.
염기창과 장영영의 신분이 아무래도 범상치 않으니 그냥 지나칠 턱이 없다.
장영영이 방으로 들어가 염기창의 상태를 보고 나왔다.
장영영이 중랑과 연화심에게 먼저 정중하게 예를 취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 강소군에게 말없이 예를 표했다.
강소군은 담담한 얼굴로 마주 예를 취했다.
장영영은 노이칠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제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도 대정무각 분이실 겁니다.”
노이칠이 흠칫, 놀랐다.
그나 동약사 중유선이나 대정무각의 변복을 하고 있기에 신분을 알아차릴 단서가 없다.
그런데 장영영이 대번 대정무각을 지목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영영이 잠시 생각하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저분은 당대 도룡회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