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98화 (98/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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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쉭!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파팍!

염기창이 대뜸 뒤로 돌아가 도를 휘둘렀다.

-퍽!

화살이 하나 염기창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계속된 격전에 염기창의 내력이 떨어지니 모두 쳐내지 못한 것이다.

“회주!”

장영영도 창으로 화살을 쳐내다 염기창의 신음성을 듣고 다가왔다.

“괜찮소. 어서 갑시다.”

두 사람은 강가를 달리다 길로 들어섰다.

-다각다각.

달빛이 내린 길 저편에서 두 사람이 말을 몰아오고 있었다.

염기창이 본능적으로 도를 세웠다. 다가오던 이들이 멈췄다.

‘적이 아니로구나!’

놀란 표정에서 밤길을 가던 행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말 위에 있는 이들은 젊은 남녀였다. 등 뒤에 맨 검으로 보아 무인 같았다.

두 사람 다 챙이 넓은 죽립을 쓰고 여인은 면사까지 드리웠다.

달빛 아래 말을 몰고 오는 두 사람의 모습은 신비로운 감마저 감돌았다.

‘아차!’

잠시 멈칫하는 사이 적들이 쫓아왔다.

임승백은 길에 낯선 남녀가 있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 일에 목격자가 있어서는 곤란했다.

임승백이 한 발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회주, 그만 포기하는 게 어떤가?”

임승백은 군사들이 포위망을 구축할 시간을 벌고자 하였다.

염기창도 그의 의도를 알았다. 장영영을 끌고 길옆 야산으로 오르려 했다.

“저들을 죽여라!”

임승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기창은 잠시 멈칫했다. 자신들 때문에 엄한 사람들이 죽게 생겼다.

염기창이 돌아서서 외쳤다.

“임승백! 무고한 사람까지 해칠 셈이냐?”

“다 네 탓이다. 그 자리에서 곱게 죽어 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임승백이 음험한 웃음을 흘렸다.

그때.

“크윽!”

말 위의 남녀를 향해 창을 내지르던 군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임승백이 내심 한숨을 쉬었다.

간단히 해치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염기창과 장영영의 무위가 뛰어나 애를 먹는 중이다.

그런데 또 무림인이 나타나다니.

일이 자꾸 꼬여 간다.

임승백이 자객들에게 말했다.

“네 분은 회주를 해치우시오. 반드시 끝내야 하오.”

복면을 한 자객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승백이 말을 탄 남녀에게로 다가갔다.

“너희의 신분을 밝혀라.”

중랑은 느닷없이 벌어진 상황이 난감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밤길을 가던 중인데 남녀 한 쌍이 수백 명에게 쫓기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게다가 보자마자 살수를 펼쳐 왔다.

임승백이 신분을 밝히라고 했지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중랑이 말이 없자 임승백이 을러댔다.

“우리는 한왕의 군사다. 조용히 지나간다면 길을 열어 주겠다.”

중랑이 피식, 웃었다.

“웃어?”

“방금 전까지 살인멸구를 하라고 하던 사람이 살길을 열어 준다니. 당신 같으면 그 말을 믿겠소?”

“흐음. 그래서 죽겠다는 것이로군.”

임승백은 잠시 시간을 벌려 했으나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해치워라!”

도를 든 군사들이 우르르 앞으로 나서고 그 뒤를 창을 든 자들이 받쳤다.

염기창은 자신들 때문에 위험에 빠진 이들을 그대로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장영영과 눈을 마주친 뒤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이 중랑과 연화심 앞에 내려섰다.

“흐흐. 되지도 않는 의기라니. 다 함께 죽자는 건가?”

임승백이 여유를 부렸다. 시간은 그의 편이다.

절벽 암자에서는 염기창이 느닷없이 몸을 날려 난전을 벌이는 바람에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이제 삼백의 군사들이 차곡차곡 포위망을 구축하였으니 염기창은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

임승백이 자세히 보니 죽립 아래 비치는 중랑은 이제 스물 조금 넘은 젊은이다. 옆에 있는 여인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것이 더 어려 보였다.

‘안됐군.’

임승백은 두 사람의 절정고수를 눈앞에 두고도 몰라봤다.

중랑과 연화심은 지난 일 년 생사가 오가는 격전을 수없이 치렀다.

한 번 죽음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얻는 심득은 남달랐다. 게다가 강소군으로부터 대연의결을 얻고 유문광에게 지도를 받은 뒤 절정에 이르렀다.

중랑은 절정을 넘어 초절정의 경지를 밟는 중이다. 두 사람에게 삼백의 군사들은 장애물이라고 할 수 없다.

“쳐라!”

임승백은 포위망이 구축되자 군사들부터 풀었다.

한왕의 군사들은 정예병이다. 염기창과 장영영이 뛰어나서 고전을 했을 뿐이다.

도를 든 군사들이 염기창과 장영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창을 든 자들은 마상에 있는 중랑과 연화심을 노렸다.

“앗!”

군사들은 방금 전까지 말 위에 있던 중랑과 연화심이 사라지자 크게 놀랐다.

-파라락!

두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달빛을 받아 마치 천신이 하강하는 것 같았다.

중랑의 검이 허공에서 번뜩이자 유성같은 검광이 떨어져 내렸다.

연화심 또한 검을 휘두르자 마치 꽃잎 같은 검광이 우수수 피어났다.

‘고수로구나!’

임승백은 대뜸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저 두 사람은 군사들로 감당할 자들이 아니다.

염기창이나 장영영 또한 뛰어난 고수였으나 중랑과 연화심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염기창은 보호하려던 사람이 자신보다 뛰어난 고수라는 사실을 알자 살아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어깨에 박힌 화살을 끊고 도를 세웠다.

-챙!

다시 난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다수가 소수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이상한 싸움이었다.

복면 자객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자 서로를 보며 눈짓을 하였다.

잠시 갈등을 하는 듯했다.

임승백이 눈치채고 말했다.

“풍현사우(風賢四友)! 이제 와서 빠질 생각은 아니겠지?”

복면자객들이 당황하였다.

풍현사우라면 정파에서 제법 이름 있는 자들이었다.

적어도 복면을 뒤집어쓰고 자객 노릇을 할 자는 아니었다.

“임 장로. 우리를 사지로 모는 건가?”

“이미 한배를 탔는데 다른 길을 쳐다보면 곤란하지.”

풍현사우는 이를 갈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신분이 노출됐으니 입을 막아야 했다.

풍현사우가 염기창과 장영영을 향해 뛰어들었다.

-카캉!

풍현사우도 이제 다급했다. 한시라도 빨리 염기창을 해치우고 이 자리를 벗어날 생각뿐이었다.

검에서 살기가 줄줄 흘렀다.

임승백이 손을 들었다. 이십여 명의 궁수들이 도열을 하였다.

“쏴라!”

궁수들이 일제히 쇠뇌를 겨누고 화살을 쏘았다.

적도 아군도 가리지 않았다.

“크윽!”

군사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엇!”

장영영이 느닷없이 날아온 화살을 팔을 들어 막았다.

-퍽!

장영영의 왼팔에 화살이 꽂혔다.

“영영!”

이를 본 염기창이 황급히 다가가려는데 풍현사우 중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배를 찔러 갔다.

염기창이 도를 세워 쳐내고 장영영에게 다가갔다.

-쉬쉭!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다급한 나머지 염기창은 장영영을 쓸어안고 등으로 화살을 받았다.

-퍽!

염기창의 등에 화살이 꽂혔다.

“큭!”

염기창의 신음에 놀란 장영영이 창대를 휘저어 계속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오라버니!”

장영영이 주저앉으려는 염기창을 부축하였다.

풍현사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때,

-쉬이익!

싸늘한 예기와 함께 무수한 검광이 유성처럼 떨어졌다.

-따다당!

풍현사우는 연달아 날아드는 검광을 감당하지 못하고 일제히 물러났다.

중랑이 염기창과 장영영 앞에 섰다.

곧이어 연화심이 뒤에 내려섰다.

두 사람은 염기창과 장영영이 위험에 빠지자 몸을 빼어 날아온 것이다.

-쿨럭!

염기창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장영영이 화들짝 놀라 염기창의 등을 살폈다.

화살 하나가 등판에 박혀 있는데 심장 부근이었다.

장영영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화심아!”

중랑이 연화심에게 외쳤다.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도 통했다.

연화심이 갑자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화려한 검광이 피어오르더니 사방으로 회오리쳤다. 군사들이 감히 마주치지 못하고 주춤 물러서는 사이 연화심이 말을 끌고 왔다.

-쉬식!

다시 화살이 날아오자 중랑이 검으로 원을 그렸다.

허공에 무수한 검광이 솟아나고 화살은 가로막혀 그 자리에 떨어졌다.

-파앗!

어느 순간 중랑의 검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어렸다.

풍현사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검기!’

풍현사우는 상대가 검기를 발현하는 고수라는 걸 깨닫자 미련 없이 뒤로 물러섰다.

검기에도 단계가 있다. 검에 기운이 어리는 단계에서 마치 검이 늘어난 것처럼 검기가 뻗어 나오는 단계, 그리고 마지막에는 검기를 쏘아내는 단계까지.

풍현사우는 중랑이 검기를 쏘아내는 경지라는 걸 알아본 것이다.

검기는 막을 수 없으니 한 번 쏘아지면 그걸로 죽음이다.

“이리 올라타세요.”

연화심이 염기창을 말에 태우고 장영영을 뒤에 타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남은 말에 올라탔다.

“오라버니!”

연화심이 소리치자 중랑이 한 발 내딛더니 사선으로 검을 후려쳤다.

-파앗!

예리한 기파와 함께 검광이 퍼져 나가는데 검기가 실려 있었다.

“피해.”

풍현사우도 고수 소리를 들었으나 검기를 막는 모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크윽!”

검기에 휩쓸린 군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나뒹굴었다.

중랑은 마지막 검을 임승백을 향해 쏘았다.

푸른 검기가 쭈욱 뻗어 나갔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완연한 형태를 갖춘 검기였다.

“헉!”

임승백이 자신의 대검을 양손으로 받치고 검기를 받아냈다.

-쾅!

대검이 산산조각이 나고 임승백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장군님!”

임승백의 심복이 황급히 부축하였다.

임승백의 얼굴은 검의 파편이 박혀 피투성이였다. 그중 하나는 눈에 박혔다.

“저, 저놈들을 쫓아. 절대 놓치면 안 돼….”

임승백이 질주하는 중랑 일행을 가리키다 정신을 잃었다.

“저들을 쫓아라!”

임승백의 심복이 외쳤다.

군사들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을 알고도 중랑 일행을 쫓았다.

풍현사우만 슬그머니 뒤로 빠져 사라졌다.

***

경성 외곽에서 한밤중에 벌어진 격전이었지만 대정무각 십각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대정무각은 한왕과 도룡회의 기습에 대비해 경성 주위 백 리에 이목을 깔아두었다.

노이칠은 새벽 단잠을 깨운 보고에 눈살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었다.

사소한 것까지 바로 보고를 하라고 한 건 자신이다. 게다가 비영대주 경천광이 직접 왔다.

“그러니까 한왕의 군사들이 웬 사람들을 쫓고 있다고?”

“네 명인데 삼도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경천광이 대답했다.

노이칠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삼도문? 연 낭자 말인가?”

“그렇습니다. 연 낭자와 중랑이라는 청년입니다.”

“산동삼호는?”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두 사람은 누구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젊은 남녀인데 그중 남자가 중상을 입은 것 같습니다. 연 낭자와 중랑이 그들을 호위하는 중입니다.”

“그들이 무사히 도성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 주게.”

도성은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어 아무나 오가지 못한다.

“알겠습니다.”

경천광이 대답을 하고 나갔다.

노이칠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하였다.

직접 나가볼 참이다.

“제기랄, 이놈의 싸움은 언제 끝나는 거야.”

노이칠이 투덜거리며 검을 챙기고 나가는데 상관청유와 마주쳤다.

상관청유의 안색 또한 허옇게 떴다. 밤새 잠을 못 잔 게 틀림없다.

“간밤에….”

노이칠이 손을 저었다.

“나중에 봅시다.”

보나 마나 누가 죽고 누구를 죽였는가 하는 말일 것이다.

노이칠은 밤마다 이어지는 살육에 진저리를 쳤다.

대정무각과 도룡회, 금의위와 한왕부 그 외 알 수 없는 세력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밤이 이어지고 있다.

“대체 권력이 뭔지….”

노이칠이 투덜거리며 안가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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