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97화 (9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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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은 거침이 없었다.

천하사패와 강호의 대파, 그리고 각지에 할거하는 세가와 지역 패권을 쥔 문파까지 줄줄이 나왔다.

그녀로서는 대단할 것도 없는 정보였다.

문파와 세가에 대한 이야기는 강호에서 몇 년만 구르면 알 수 있는, 알려진 것들이다.

그럼에도 초연은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듣고 있는 강소군이 무척이나 진지했기 때문이다.

초연은 강소군이 무림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하사패와 소림, 무당 정도만 아는 눈치였다. 이는 무림인이 아니라 저잣거리 장삼이사도 아는 세력이다.

‘무림을 뒤흔든 혈마가 정작 무림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니.’

초연도 모르는 게 있었다.

강소군은 조정의 권력과 각 지역 토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여기에 무림 문파를 더하니 천하의 세력이 대강 그려지고 있었다.

초연이 무림 문파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마치자 강소군은 상단에 대해서 물었다.

이 또한 초연에게 어려울 게 없었다.

“산서와 휘주, 사해상단의 세력이 가장 크지요….”

초연이 상단의 세력과 분포에 대해 설명하였다.

마치 학당에서 강론을 펼치듯 이어지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강소군이 십대고수에 대해 물었다.

초연이 한숨을 쉬었다.

“정말 많은 것을 물으시는군요. 십대고수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바가 많지 않습니다. 봉황수 같은 사람은 출신이 어딘지, 어떤 사람인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십대고수라고 하는 건가?”

“십대고수라는 건… 어쩌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허상일 수도 있습니다.”

초연은 천하의 대강을 이야기하다 자기도 모르게 상기되어 있었다.

평소 그녀라면 하지 않았을 추측까지 털어놓았다.

“허상이라니?”

“천하에 얼마나 많은 고수가 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당장….”

당신만 해도 충분히 십대고수의 일인으로 불릴 만하지 않느냐고 말하려다 초연은 말을 돌렸다.

“소림이나 무당의 고인들만 해도 전설에 가까운 무위를 지녔다 합니다. 그들이 세상에 나오면 과연 십대고수가 명성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퍼뜨렸다면 무엇을 노렸다는 거지?”

“알 수 없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 십대고수 간에 비무가 벌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대결을 조장한다는 건가?”

“호사가들의 관심이겠지요.”

새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새벽이다.

강소군은 일어나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혹 천황성이라는 문파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초연이 고개를 저었다.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어디 있는 문파입니까?”

강소군이 대답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오문의 정보는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더군. 오늘 내가 들은 건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

초연이 미소를 지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는 웃음이었다.

“제가 드린 말씀은 이미 강호에 알려진 사실들입니다. 정보랄 것도 없습니다.”

초연이 술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룻밤 난향정을 이용한 대금만 지불하시면 됩니다.”

“그런가?”

하지만 하룻밤 대금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강소군은 총관을 찾아 대금을 지불하고 사라졌다.

초연은 강소군을 배웅하고 후원 전각으로 들어갔다.

“그는 갔는가?”

청수한 중년인이 기다리고 있다가 초연이 들어오는 걸 보고 물었다.

초연이 고개를 숙였다.

“뭘 원하던가.”

“무림과 상단에 대해 알고자 하더군요.”

“무림?”

청수한 중년인, 낙서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무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낙서생이 곰곰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는 어이가 없다는 미소가 걸렸다.

“그렇군. 그는 원래 강호인이 아니었으니까. 그걸 생각 못 하다니.”

실소를 금치 못하던 낙서생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상단에까지 관심을 가지다니. 의외로군.”

초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가 마지막에 천황성이란 문파에 대해 물었습니다.”

“천황성?”

“저도 처음 들었기에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낙서생도 처음 듣는 문파였다.

“그가 직접 거론했다면 뭔가 있을 게다. 어떤 문파인지 알아보거라.”

***

달빛 내리는 야트막한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전각이 있다. 아래로 작은 강이 흐른다.

작은 암자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손바닥만 한 암자 마당에 작은 석탑이 달빛을 받고 서 있을 뿐이다.

암자 마당에 한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도를 든 남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윽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가녀린 신형으로 보아 여자임이 분명했다.

도룡회 젊은 회주 염기창의 얼굴이 달빛에 드러났다.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기대와 의혹이 어려 있었다.

‘교화가 무슨 일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하는 걸까.’

마음속에 품은 여인이나 그는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잠시 후 장영영이 올라왔다. 면사로 얼굴을 가렸으나 그 안에 숨은 얼굴은 보지 않아도 선명히 그릴 수 있다.

염기창을 본 장영영이 고개를 숙였다.

“회주께서 무슨 일로 여기까지 부르셨는지요?”

장영영의 말에 염기창은 대뜸 일이 잘못됐다는 걸 알아챘다.

장영영에게 황급히 다가가서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당신이 부른 게 아니었소?”

장영영은 염기창의 표정을 보고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염기창의 서신을 받고 온 것이다.

“대체 누가?”

그때 음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서로 마음에 두고 있는 사이가 맞았군. 이렇게 쉽게 걸려들다니.”

암자 뒤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임 장로? 대체 무슨 짓이오.”

“염 회주, 보기보다 세심하더군. 그간 밤손님을 몇 차례나 보냈는데 모두 실패하는 바람에 결국 내가 나서게 됐지 뭔가?”

임승백은 살수를 샀으나 염기창은 틈을 내주지 않았다.

염기창을 지지하는 고죽문 등 중소문파의 수장들은 강호의 음험함에 이력이 난 노강호들이다.

살수들은 그들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다만 염기창이나 노강호들은 대정무각이 보낸 살수로 여겼다.

“사내는 결국 여인 때문에 죽는다더니.”

염기창이 장영영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당신이 보낸 살수였군. 집안에 적이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결국 이렇게 마수를 드러내는군.”

“닥쳐라! 심약한 놈 같으니. 네가 한왕의 명을 거역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룡회를 화살받이로 쓰려는데 누가 알면서도 불구덩이에 들어가겠는가?”

“애초에 너희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게 누구 덕분인지도 모르는군. 긴말할 것 없다.”

임승백의 신형이 달빛 그늘로 사라졌다.

-쉬시식!

쇠뇌에서 쏘아진 화살이 염기창과 장영영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염기창은 화룡문의 대제자다. 조운룡에게 문주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 또한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녔다.

대뜸 칼을 뽑아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다.

“역시, 화룡문의 전인이라는 건가?”

임승백의 말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몇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의를 입은 자객들이었다. 그들의 전신에 흐르는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염기창은 도를 세우는 동시에 절벽 아래를 봤다.

어중간한 높이였다. 하지만 아래 물이 있으니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후후. 뛰어내리려고? 스스로 자진한다면 그것도 좋지.”

임승백의 목소리가 들렸다.

“함정일 거예요.”

장영영이 절벽 아래를 보며 말했다.

“나를 믿소?”

“네?”

장영영이 놀라 되묻는데 염기창이 그대로 장영영의 허리를 감싸 안고 뛰어내렸다.

“크크크, 역시 심약한 놈이로군. 혈로를 뚫을 용기도 없는 놈이었어.”

임승백이 중얼거리며 나왔다.

“하지만 거기가 바로 네 무덤이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염기창은 절벽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아래쪽에서 수십 가닥의 빛이 번뜩이는 걸 보았다.

빽빽하게 선 것은 창날이었다.

염기창은 허공에서 뒤척이더니 절벽을 박차며 장영영을 멀리 집어 던졌다.

장영영을 함정 밖으로 던진 염기창은 허공에서 여러 차례 몸을 뒤척였다.

마치 한 마리의 용이 허공에서 꿈틀임을 하는 것 같았다.

절벽 위에서 지켜보던 이가 흠칫, 놀라 소리쳤다.

“운룡대팔식?”

화룡문은 곤륜에서 갈라져 나온 문파다. 곤륜의 절기 운룡대팔식이 완전하지는 않으나마 염기창에게서 펼쳐졌다.

임승백은 염기창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쥐새끼 같은 놈!”

이를 부득 갈고 소리쳤다.

“저 두 년놈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임승백은 오늘 밤 반드시 염기창을 죽일 생각으로 고수와 삼백의 군사를 끌고 왔다.

염기창이 첫 일수는 피했으나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라 자신하였다.

염기창은 아슬아슬하게 창이 밀집된 함정 밖에 내려섰다.

동시에 허리를 숙이고 도를 휘둘렀다.

-차차창!

서로 간에 말이 없었다. 달빛 속에서 번뜩이는 창과 도가 부딪치는 소리만 들려 왔다.

“저년이?”

장영영은 염기창에 의해 던져져 강물로 떨어졌다.

차디찬 물에 정신이 든 장영영은 곧바로 강가로 나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군사의 창을 빼앗았다.

장영영은 창을 휘두르며 염기창 쪽으로 나아갔다.

이는 임승백이 미처 계산하지 못한 변수였다.

임승백은 백련교의 교화가 무공을 익혔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신창이 따로 없다.

장영영은 장 장군부의 후손으로 무공을 익혔다.

염기창에 의해 간신히 목숨을 구한 후 복수를 위해 살아왔다. 낮에는 교화로 살았지만 밤이면 검과 창을 수련하였다.

임승백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뭐하는가? 어서 가서 해치우지 않고.”

임승백이 소리치자 자객들이 절벽에서 날아올랐다. 이 정도 높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허공을 구른 자객들이 염기창의 주위에 내려섰다.

-쉬쉭!

-챙!

순식간에 염기창과 자객 네 명이 어우러져 난전을 벌였다.

장영영은 가까이 다가가려 했으나 밀려드는 군사들이 너무 많았다.

“교화, 먼저 가시오!”

염기창이 소리쳤으나 장영영 또한 몸을 빼기가 어려웠다.

어둠 속에서 상대하는 삼백의 군사는 마치 삼천 병력처럼 느껴졌다.

“천하사패의 도룡회주가 고작 이 정도인가?”

자객 하나가 비웃었다.

염기창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 그의 자질은 조운룡에 비해 떨어졌으나 대신 침착하고 성실하였다. 그의 도에서 붉은 기가 번뜩였다.

군사들은 염기창과 자객들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창을 겨눴다.

자객들의 실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임승백이 단단히 벼르고 고른 자객들이다.

“천마도의 대제자라더니 한 수가 있었군.”

어느새 절벽을 내려온 임승백이 대검을 들고 다가왔다.

아무래도 빠져나가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염기창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 순간 염기창이 도를 크게 휘둘러 자객을 물리더니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군사들의 창이 허공에 뜬 염기창을 찔렀다.

염기창은 자신을 찔러 오는 창을 후려치고 그 힘을 받아 장영영에게 다가갔다.

절묘한 몸놀림이었다.

염기창은 내려서자마자 장영영을포위한 군사들의 후미를 향해 도를 휘둘렀다.

-파악!

염기창의 전력을 다한 도에 군사들이 흩어지며 길이 뚫렸다.

염기창은 그대로 장영영을 지나치며 소리쳤다.

“길을 열겠소.”

염기창은 강 쪽에 있는 군사들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가장 포위망이 얇았다.

“이런 비켜라!”

임승백이 자신의 앞에서 거치적거리는 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둠 속에서 많은 수가 몰려다니니 오히려 고수들에게 방해가 되었다.

임승백과 자객들이 황급히 뒤를 쫓아갔으나 염기창과 장영영은 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강은 그리 깊지 않아 한복판도 허리 정도에 불과했다.

임승백과 자객들이 앞장서 뒤따라왔다.

강가로 올라가자 다시 한 무리의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만일을 대비하여 임승백이 숨겨 둔 병력이었다.

“이리로!”

염기창은 장영영의 손을 잡고 강을 따라 질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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