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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91화 (9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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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치우기도 귀찮다. 꺼져라”

심마백이 창대로 우두머리 머리통을 쳤다.

패거리들은 절뚝거리며 사라졌다.

“그만두시오!”

장무강이 구양수를 노려보며 눈을 부릅떴다.

구양수의 손이 소매로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비도를 꺼내 던질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역시 산동삼호는 의협이시군. 뭐, 죽일 생각은 아니었어. 내 비도가 어디까지 가나 볼 참이었지.”

자연스레 다시 장무강 일행과 구양수가 대치하는 형국이 됐다.

심마백이 창을 겨누었다.

“아무리 귀찮아도 이놈 시체 하나 정도는 묻을 수 있지.”

“아니, 저자는 제가 상대하겠어요.”

연화심이 검을 뽑아 나섰다. 구양수가 손을 내저었다.

“에헤이. 나는 싸우자고 온 게 아닌데 왜 자꾸 이리 험악하게 나오시는 걸까?”

“분명히 말했다. 천무방과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고. 삼도문 삼백 식솔의 원한을 갚겠다.”

구양수가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연 낭자, 나는 그 일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 왜 자꾸 나를 죽이겠다는 거야? 그건 우리 아버지가 한 일이라고. 아비가 한 일로 아들까지 잡아 죽이면 천하에 사람이 남아나겠어?”

연화심은 말문이 막혔다.

당사자가 없으면 가족에게서라도 그 혈채를 받아내는 건 강호에서 흔한 일이다.

그런데 구양수는 자기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게다가 말이지. 삼도문 삼백 식솔이라고 했나? 천무방 방도는 연 낭자 때문에 그보다 훨씬 많이 죽었다고.”

“그건 네놈들이 나를 쫓다가….”

“그리고! 천무방도가 일만이 넘는데 그들을 다 죽이겠다는 거야? 연 낭자는 혹시 고금제일의 여마두가 되고 싶은 건가?”

구양수는 진지하게 대꾸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연화심이 자꾸 말려들어 갔다.

“여마두가 되든 나찰이 되든 상관없다. 어서 말에서 내려와라!”

연화심이 검을 겨눴다.

“연 낭자, 잠깐만!”

장무강이 연화심을 제지하고 나섰다.

“천무방 이공자가 궤변이 심하군. 오늘은 굳이 피를 보고 싶지 않소. 여기서 헤어집시다.”

구양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참. 살길을 알려 주러 왔는데 너무 박대하는 거 아냐?”

“네놈 헛소리 듣기도 짜증난다. 형님, 그냥 묻어 버립시다!”

구양수가 계속 흰소리를 하자 심마백이 화를 벌컥 내며 창을 겨눴다.

당장이라도 찌를 것 같자 구양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어허, 나를 바보천치로 아나. 내가 아무 방비도 없이 따라왔다고 생각하다니. 너무하군.”

그의 손에 작은 대나무통이 하나 들려 있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대나무 통은 반자가 조금 안 되어 보였다.

그러나 이를 본 위응환이 황급히 놀라 소리쳤다.

“탈혼백침! 마백 형, 물러나요!”

탈혼백침이라는 소리에 심마백이 훌쩍 뒤로 물러났다.

“흐음. 탈혼백침을 알아보다니. 대단한데?”

구양수가 위응환을 보았다.

사실이다. 탈혼백침의 명성은 자자한데 실제로 본 이는 많지 않다.

워낙 살상력이 커서 당가에서도 쓰지 않고 또한 유출도 엄히 단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나무 한 마디를 보고 탈혼백침을 연상할 사람은 많지 않다.

구양수가 탈혼백침을 겨누고 죽통 뒤에 있는 줄을 잡았다.

“이게 말야. 이렇게 겨누고, 이거 잡아당기면….”

“모두 물러나!”

위응환이 소리치자 모두 삼 장 밖으로 물러났다.

“에헤이. 누가 당긴다고 했나? 이렇게 쓴다는 거지.”

구양수는 놀리는 게 재밌다는 듯 낄낄, 거렸다.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중랑이 한 발 앞으로 나가더니 말했다.

“그만하고 우리를 따라온 용건이나 말하시오.”

“오호, 이제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왔군. 말했잖아. 살길을 일러주러 왔다고.”

“살길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복건으로 가면 죽어. 거기 화천대 몇 놈 보내 놨지? 열심히 장원 가꾸고 있다는군. 그니까 그대로 열심히 살게 놔두라고. 당신들 가면 곧바로 무시무시한 놈들이 들이닥쳐 싹 죽일 거야.”

구양수의 입에서 복건 장원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안색이 굳었다.

구양수가 빈정거리듯 말했지만 거짓 같지는 않았다.

아니, 천무방에서 복건 장원을 안다는 것 자체가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실을 알려 주는 이유가 뭐요?”

“연 낭자에게 신세 진 게 있어서 그래. 골칫덩이를 치워 줬거든.”

애초에 구양운을 충동질하여 연화심에게 가도록 한 게 구양수다. 혹시나 했더니 가서 죽었다.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연화심 등은 구양수의 말이 흰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연화심이 발끈하였다.

“흥! 끝까지 헛소리를 하다니. 내가 너를 이번에 처음 봤는데 무슨….”

“아! 됐고.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라고. 아무튼 이대로 가면 복건까지 가지도 못해. 천무방 이목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이미 장강 일대에 쫙 깔렸을걸?”

“흥! 천무방이 여기에서도 통할 줄 아느냐?”

“크크큭. 여기가 아직 대정무각 영역이라 생각하나 본데 아까 하는 말 못 들었어? 장하방 쥐어팼다고. 대정무각은 지금 죄다 경성에 가 있어. 천무방은 여기서 빈집털이하는 중이라고.”

모두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구양수가 말머리를 돌리다 말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더했다.

“알려 줘서 고맙지? 그러니까 혹, 내 의붓어머니 만나더라도 나 만났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 줘. 아들 죽인 연 낭자 잡겠다고 미쳐 있는데 이 사실을 알면 나를 죽일지도 몰라. 우리 서로 지킬 건 지키자고.”

“…?”

“에헤. 모르는 척 말라고. 구양운의 친모 말야. 엄청 독한 분이거든. 마가보라고 알아?”

마가보는 섬서의 패자다.

“그분이 마가보 출신인데 이번에 친정에 달려가 울며불며 난리 쳐서 고수를 무더기로 끌고 왔더라고. 청련지로 갔다던데 못 찾으면 따라오겠지. 도착할 때가 된 것도 같고….”

구양수는 말끝을 흐리더니 그대로 말을 몰아 달려갔다.

연화심 일행이 크게 놀랐다.

구양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 셈이다.

연화심은 남은 사람들이 걱정됐다.

‘청매는 무사할까?’

청련지와 아랫마을은 텅텅 빈 상태다. 시비들과 일하는 몇몇만 남았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놈 말을 믿소?”

심마백이 구양수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왠지 사실일 것 같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일단, 변장을 바꾸고 장강을 살펴보자꾸나. 후미진 포구라면 작은 배라도 하나 얻을 수 있겠지.”

“하지만 복건도 이미 감시를 하고 있다잖소.”

“….”

진퇴양난이었다. 쫓기고 있는데 목적지에도 적이 있다니.

***

남궁령이 안내한 곳은 객잔 건너편에 있는 객잔 반점이었다.

굳이 길 하나 건너온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집이 음식이 더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다음에 경성에 오면 이 집으로 오세요.”

술과 음식이 나왔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고수가 되면 다 그렇게 말이 없어지나요?”

무슨 소린가 싶어 쳐다보았다.

남궁령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한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 집에도 절대고수가 하나 있는 거 알죠? 정말 가관이에요. 세상 고민은 다 짊어진 척, 인상 팍팍 쓰고 연무장에 틀어박혀 살아요.”

남궁악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중에 놀러 오세요. 소개시켜 드릴게요. 두 사람이 만나면 절간 같겠군요.”

강소군은 십대고수를 벌써 두 사람 봤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고갯길 초가에서 커다란 도기를 날린 이가 우문극이었다.

백정무와는 겨루지 않았지만 풍기는 기도가 마치 산을 대하는 것 같았다.

남궁악이 젊은 나이로 우문극이나 백정무와 같은 십대고수에 거론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근데 강 공자는 우리 오빠보다 십 년은 젊어 보이는데 어떻게 절대고수의 반열에 올랐어요?”

남궁세가의 딸이라면 남의 무공을 캐묻는 건 금기라는 것 정도는 알 텐데 태연하게 물었다.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자기가 묻고 자기가 답한다.

“아, 무공을 캐묻는 건 강호의 금기로군요. 저도 알 만큼 아는데. 헛헛, 술 한 잔에 취기가 오르다 보니 실례를 했네요. 벌주를 한 잔 마시죠.”

그러고는 술을 쭉 들이켰다.

“커흑! 이 술 왜 이리 독하지?”

자기가 시켜 놓고도 무슨 술인지 몰랐나 보다.

‘이제 보니 강호출도 놀이를 하는 모양이군.’

강소군은 내심 실소를 흘리고는 술을 들이켰다.

그때 남궁가의 무사가 황급히 들어오더니 남궁령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누군가 다쳐서 들어온 모양이다.

강소군은 남의 말을 엿듣는 것 같아 모르는 척 술을 마셨다.

그런데 남궁령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강소군을 쳐다보았다.

“강 공자, 가 보셔야겠는데요? 강 공자 손님이 다쳤대요.”

“내 손님?”

“일전에 찾아왔던 분들 있잖아요?”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강소군을 찾아온 사람은 초씨 남매와 황오뿐이다.

강소군이 남궁령을 따라 머물던 객잔으로 들어왔다.

남궁우가 남궁령을 보더니 화를 벌컥, 냈다.

“아프다더니 어디 갔었던 게냐?”

“아하하. 강 공자께서 답례로 한 잔 사시겠다고 해서. 마침 감기도 나았지 뭐야.”

이제 보니 오라비 눈에 뜨일까 봐 다른 객잔으로 간 모양이다.

남궁우가 강소군에게 말했다.

“본가의 무인들이 성 밖에 나갔다가 세 분이 복면인들에게 쫓기는 걸 보고 모셔왔습니다.”

초씨 남매와 황오는 별원의 한 객방에 있었다.

여기저기 자상을 입었는데 다행히 크게 다친 데는 없었다.

초하경이 강소군을 보자 고개를 푹 숙였다.

강소군이 남궁우에게 포권을 하고 말했다.

“강 모가 남궁세가에 신세를 졌습니다.”

남궁우가 답례를 하려는데 남궁령이 불쑥 끼어들어 먼저 포권을 하였다.

“아닙니다. 강호 동도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죠. 어서 부상자를 돌보셔야죠. 의원을 모셔오겠습니다.”

강소군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궁 낭자, 의원을 부를 것까지는 없을 것 같군요.”

강소군은 초씨 남매와 황오를 자신의 거처로 옮겼다.

금창약을 발라 주고 내상약을 복용시킨 다음 물었다.

“어찌 된 일인가?”

초하경이 침통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가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

초씨 남매와 황오는 도룡회가 은신하고 있는 곳을 찾아냈다.

몰래 잠입하여 장영영을 찾으려다 발각되어 끌려갔다고 한다.

다행히 장영영이 그곳에 있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정체 모를 복면인들의 습격을 받아 부상을 입고 쫓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만나 요행히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

초하경이 망설이다 말했다.

“장 아가씨는… 역도의 무리와 함께 있습니다.”

“역도의 무리? 도룡회?”

“도룡회와 불모가 함께 있었는데 아마도 불모의 제자가 된 것 같습니다.”

“불모?”

“몇 년 전 산동에서 농민들이 난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몇 개월 만에 진압되고 반란군을 이끌던 불모(佛母)라는 수장도 잡혔지요. 그런데 감옥에 있던 불모가 홀연히 사라져 조정에서 백방으로 쫓았으나 잡지 못했습니다. 그 불모가 도룡회에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품에서 홍옥비도를 꺼내 내밀었다.

“….”

초하경은 차마 장영영이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한 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

“이 비도로 목숨의 위기를 한 번 넘겼다고 했습니다. 그걸로 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강소군은 말없이 홍옥비도를 바라보다 받아서 품에 넣었다.

청홍비도가 한자리에 모였으나 사람은 이제 함께 있을 수가 없었다.

강소군은 별다른 내색을 안 하고 초하란과 황오를 돌아보고는 물었다.

“이제 세 사람은 어찌할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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