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86화 (8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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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이 향초를 파는 좌판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갔다. 한동안 좌판 사이를 돌아다니던 강소군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강소군이 집어 든 향초에는 일월신(日月新)이라 쓰여 있었다.

“일월신광(日月新光)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향초는 없소?”

“아, 마침 하나 남았는데 드릴까요?”

향초를 파는 사람이 좌대 아래서 일월신광이라 쓰인 향초를 꺼냈다.

강소군이 향초를 사서는 팔상보탑 동쪽 향로에 올렸다.

“강 공자, 무슨 소원을 빈 거죠?”

남궁령이 다가와 물었다.

“소원을 빌어야 하오?”

“말했잖아요. 팔상보탑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강소군이 팔상보탑 주위에서 합장을 하고 연신 허리를 숙이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는 소원이 없는데 남궁 낭자가 있으면 비시오.”

“예? 아니, 남의 향초에 소원을 비는 사람이 어딨다고….”

강소군은 남궁령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팔상보탑을 나왔다. 길 아래쪽에 노상찻집이 보였다.

강소군이 찻집으로 향했다.

‘저 사람은 동행인의 의사는 아예 생각지도 않는군.’

남궁우도 한마디 묻지도 않고 찻집으로 간 강소군을 향해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남궁령을 잡아끌고 따라갔다.

기왕에 동행하였으니 조금이라도 더 말을 섞어 볼 참이다. 그런데 강소군은 차를 시켜 놓고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강소군은 사실 남궁 남매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곤란해하고 있었다.

길 안내를 해 줬으니 고맙다고 하고 헤어지고자 했는데 계속 따라온다.

상관청유가 일러준 대로 팔상보탑에 일월신광 향초를 피웠으니 곧 대정무각에서 올 것이다.

남궁 남매를 빨리 보내야 하는데 눈치 없이 계속 붙는다.

남궁령은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잠시 동행하며 강소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본능적으로 위험한 사람이 아니란 걸 느낀 것이다.

그러자 평소 성격이 나왔다.

“흥! 차를 즐기는 고아한 대마두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지 뭐야? 화주 한 동이 시켜 놓고 벌컥, 벌컥!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남궁우가 차를 마시다 그대로 뿜을 뻔했다.

-켁, 켁!

사레가 들린 남궁우가 연신 기침을 하였다.

남궁령이 주인에게 소리쳤다.

“주인장, 여기 화주 한 동이!”

머리에 두건을 쓴 중년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아가씨. 여기는 찻집입니다. 술은 팔지 않습니다.”

“앵? 술이 없다고?”

남궁령이 가게를 둘러보다 인상을 썼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소녀티를 벗은 여인이 호기롭게 화주 한 동이를 외치니 놀랐던 것이다.

하지만 옆에 찬 검을 보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 여인들 중에는 드물게 말술도 있었으니 그러려니 한 것이다.

“너, 너! 가자! 일어나라!”

남궁우가 말괄량이 여동생을 잡아끌며 강소군에게 포권을 했다.

“우리는 이만 가야겠습니다.”

강소군이 기다렸다는 듯 눈을 뜨고는 일어서서 예를 취했다.

“안녕히 가시오.”

“뭐예요? 기껏 길을 알려 줬는데….”

남궁령이 사람을 이렇게 무시하는 거냐고 말을 하려는데 강소군이 주인에게 말했다.

“이분들 찻값은 내가 치르겠소.”

그러더니 됐냐는 눈빛으로 쳐다보고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남궁우가 씩씩거리는 남궁령을 억지로 잡아끌고 찻집을 나왔다.

남궁령이 노상찻집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흥! 고수면 다야. 남궁가를 무시하다니! 내가 길잡이냐고.”

“누가 남궁가를 무시했다고 그래? 애초에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한 건 너잖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 고맙소, 나중에 술이라도 한잔합시다, 이래야 하는 게 강호의 도의 아니냐고. 아!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구나!”

“쉿! 쉿! 길에서 떠들지 마라. 도무지 창피해서 같이 다닐 수가 없구나!”

남궁우가 남궁령을 잡아끌면서도 노상찻집에 앉아 있는 강소군 쪽을 흘깃 살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거로군. 그 향초가 신호였어.’

남궁우는 찻집에 앉아 있다가 뒤늦게 강소군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라면 더 일찍 깨달았을 텐데 그 역시 강소군의 일거수일투족에 정신이 팔려 나중에야 안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빠져 주었다.

‘대체 누구를 만나는 걸까?’

남궁령에게 호기심이 화를 부른다고 타박한 남궁우다. 아는 것과 행하는 건 다르고 남궁우는 아직 아는 걸 행할 만큼 연륜이 깊지 못했다. 그 역시 강소군의 행적이 궁금하였다.

남궁우가 한쪽을 향해 손짓을 하였다. 그들 뒤를 은밀히 따라오던 남궁가의 무사 중 한 사람이 왔다.

“멀리서 저 사람이 누구를 만나는지 알아보게. 절대로 가까이 가면 안 되네. 그는 엄청난 고수라 바로 알아챌 거니까.”

무사가 고개를 꾸벅하고 사라졌다.

***

“잠깐 서 봐.”

고갯길이 돌아가는데 다섯 사람이 서 있었다.

앞서가던 장무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긴 산적이 나올 만한 곳이 아닌데?”

“어쨌거나 나왔잖소. 후딱 해치우고 가던 길 갑시다.”

심마백이 말 옆구리에 매단 창을 뽑으려 하자 장무강이 말렸다.

“아니다. 일단 위장한 그대로 넘겨 보자.”

산동삼호는 봇짐장수로 위장한 채였다. 말 세 필에 짐이 잔뜩 실려 있다.

중랑과 연화심은 낭인 무사 옷을 입고 호위 역할을 맡았다. 두 사람은 죽립을 쓰고 면사를 썼다.

표국에 의뢰할 돈이 없는 상인들은 이렇게 낭인을 호위로 고용하여 상행을 다니곤 한다.

물론 이런 상인을 털어 봐야 나올 게 없으니 산적들도 적당한 통행료를 받고 보내 준다.

“어서 오지 않고 뭐 해?”

연화심 일행이 고갯길에 멈춰 서서 다가오지 않자 앞에 있는 거한이 커다란 대도를 흔들며 불렀다.

장무강이 마지못해 앞으로 가며 말했다.

“여기에 산채가 있다는 소식을 미처 못 들었습니다. 어느 산채 형제들이신지요?”

“새로 산채를 열었다. 됐냐? 말이 많은 놈이군.”

대도를 어깨에 걸친 채 거들먹거리며 다가오는 거한은 지저분한 수염이나 행동거지가 딱 산적이 천직인 것처럼 보였다.

“아, 그랬군요. 몰랐습니다. 산채를 새로 여셨다니 통행세를 두둑이 드려야겠군요.”

장무강이 품에서 이럴 때 쓰려고 마련해 둔 작은 전낭을 꺼냈다.

“크하하, 말이 통하는 놈이군.”

그사이 다른 놈들도 다가오고 있었다.

-양쪽에 매복이 있습니다.

중랑의 전음이 장무강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중랑의 무공이 무척 늘었군.’

장무강도 양쪽 기슭에 매복이 있음을 알고 통행세를 내고 넘어가려 한 것이다.

산적들이야 몇십 명이 달려든다 해도 산전수전 겪은 장무강 일행 다섯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괜한 살생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장무강이 일 장 거리에 서서 전낭을 던졌다.

거한이 전낭을 낚아채고 열어 보더니 혀를 찼다.

“쯧쯧, 이게 뭐냐.”

산적의 말에 장무강이 인상을 찌푸렸다. 전낭에 든 돈은 어지간한 녹림산채는 통과할 만한 금액이다.

이름 없는 산적에게는 과한데 지금 더 내놓으라는 뜻이다.

거한은 전낭을 품에 넣으며 연화심을 보았다.

“돈도 돈이지만… 너 면사 좀 벗어 봐라.”

뒤에 있던 산적들이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이분은 호위무인이오. 괜한 싸움은 벌이고 싶지 않소.”

“흐흐. 우리가 증산쌍협이다. 강호의 협객들끼리 얼굴 보고 통성명 좀 하자는 거지.”

장무강이 인상을 썼다.

증산쌍협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낭인 호위 정도는 눈에 차지 않는 실력은 되는 모양이다. 아니면 수를 믿고 나오는 건지도 몰랐다.

‘이거 참, 골치 아프게 됐군.’

장무강이 입맛을 다셨다.

“자식들, 머리 나쁜 놈들이 꼭 죽을 길로 간다니까. 그냥 돈 받고 꺼졌으면 됐지.”

심마백이 투덜거렸다. 내상에서 회복한 그는 몸이 근질거렸다.

“형님, 거 보쇼. 딱 보기에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이잖소.”

안 그래도 한바탕 드잡이질을 하고 싶었는데 산적들이 나와서 나를 잡아 달라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이 새끼들이 미쳤나?‘

증산쌍협은 양쪽에 매복시켜 놓은 수하들을 믿었다.

중과부적.

떼로 싸우는 데는 장사 없다. 물론 그건 그들이 살아왔던 녹림산채에서나 통하던 말이다.

장무강이나 중랑 등에게는 통하지 않는데 그들은 이를 알아볼 안목이 없었다.

“앞에 다섯은 내가 맡겠소. 형님하고 응환이가 왼쪽, 중랑 동생과 연 낭자가 오른쪽을 맡으시오.”

“기다려 봐라.”

장무강이 한 번 더 설득하려고 앞으로 나섰다.

“욕심이….”

장무강이 입을 열려는데 고갯길 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두두두두.

세 사람이 말을 달려왔다. 거대한 준마는 화살처럼 빨랐다.

앞에 탄 사람은 화려한 옷을 입은 귀공자였다.

귀공자는 순식간에 산적과 장무강 일행 앞에 당도하더니 말을 멈췄다.

“너희는 뭐냐?”

귀공자가 물었다. 산적들의 시선이 귀공자 옆에 있는 무인들의 가슴팍에 꽂혔다.

“헉! 천무방?”

아무리 촌골 산적들이지만 천무방이 어떤 곳인지는 안다. 증산쌍협이 화들짝 놀랐다.

장무강 일행도 내심 놀라 시선을 피했다.

“이것들, 산적이잖아?”

귀공자가 내심 같잖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옆에 있는 무인에게 말했다.

“추 대주, 다 죽여 버리게.”

“알겠습니다. 이공자.”

귀공자의 말에 산적들이 일제히 도를 세웠다.

“걱정할 것 없다. 제대로 된 놈은 둘뿐이다. 모두 저놈들부터 죽여라!”

거한이 대도로 천무방 무인들을 가리켰다.

“와아!”

양쪽에서 함성과 함께 수십 명의 산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얼씨구? 가지가지 하네.”

귀공자는 기도 안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추 대주라 불린 이와 옆에 있던 무인이 마상에서 그대로 몸을 날렸다.

-촤라락!

추 대주는 몸을 날려 다가가며 도를 뽑아 횡으로 그었다. 엄청난 도기가 뿜어져 나오며 반원형 기파를 형성하였다.

“크악!”

앞에 있던 산적 중 세 명이 막지 못하고 한칼에 죽었다.

“크합!”

증산쌍협이라는 두 사람만 어지러이 도를 휘둘러 추 대주의 도기를 해소하였다. 그래도 한 수는 있었던 것이다.

매복을 향해 날아가던 무인은 검을 썼는데 허공에서 사방팔방으로 검을 휘둘렀다.

-파파팍!

예리한 검기가 비산하며 몰려나오던 산적들을 관통하였다.

이제 산채를 열었다더니 정말 오합지졸들이었다.

“감히 천무방에 대적해! 너희는 오늘 뼈를 묻을 줄 알아라!”

천무방 이공자 구양수가 마상에서 소리쳤다.

양쪽 매복을 하고 있던 산적들은 천무방이라는 소리에 경악을 하였다. 그들은 적이 누군지도 몰랐던 것이다.

“천무방이다!”

“도망쳐라!”

죄다 무기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추 대주와 또 한 사람의 무인은 적을 쫓지 않았다.

“추 대주, 뭐 하는 거요?”

구양수가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오는 추 대주에게 물었다.

“산적이라고 할 만한 놈들도 아닙니다.”

“어허, 그래서 추 대주가 무르다는 소리를 듣는 거요.”

구양수의 눈빛에 광망이 스치더니 두 자루 비도가 날았다.

-쉬이익!

비도는 십여 장이나 날아가 막 숲으로 들어가려던 증산쌍협의 등판에 나란히 박혔다.

“커흑!”

“큭!”

증산쌍협이 그대로 엎어졌다.

위응환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암기를 전문으로 쓰는 위응환은 구양수의 수법이 놀라웠다.

구양수는 체구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왜소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비도를 십여 장이나 날려 적을 즉사시키다니.

놀라운 비도술이었다.

“최소한 두목은 죽여야 하지 않겠소?”

“도주하는 적은 쫓지 않습니다.”

“어이구. 답답한 양반이네.”

구양수가 혀를 찼다.

“저 두목 놈들이 돌아가면 또 오합지졸이라도 모아 산적질을 할 것이고 그러면 이렇게 피해를 보는 분들이 생겨날 거요.”

구양수가 장무강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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