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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83화 (8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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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천맹이라고요?”

심마백의 안색이 굳었다. 번천맹이라는 세 글자에 담긴 뜻을 모를 리가 없다.

하늘을 뒤엎는다는 게 무슨 말이겠는가.

‘모함을 받았다가 진짜 역모를 하는구나.’

심마백이 내심 탄식하였다.

장무강과 심마백은 대대로 군인을 배출한 집안 출신이었다. 그러니 충(忠)이라는 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장 장군가가 역모의 누명을 썼을 때 구명하기 위해 나서는 것과 아예 역모에 가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더구나 장무강 등은 장홍 대장군 휘하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장선백과는 거리가 있다.

심마백은 장무강이 장선백을 장 공자라고 호칭한 데 이유가 있음을 알았다.

장무강 역시 장선백의 뜻에 동조하기 어렵기에 장군이 아니라 공자라고 부른 것이다.

장군이라면 장홍 대장군 휘하 장수의 서열에 따라 부른 것이지만 공자라면 장씨 집안의 아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을 뿐이니까.

“이제 복건으로 가자. 오면서 보니 세상이 너무나 시끄럽더군.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야.”

장무강은 장홍 대장군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모든 미련을 접었다.

청련지에서 복건까지는 꽤나 거리가 있다.

일행은 심마백이 완치되기를 기다렸다가 청련지를 떠났다.

***

어두운 관도 양편으로 무사들이 줄지어 섰다. 도를 든 무사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강소군을 지켜보았다.

무사들이 열어 둔 길은 한 장원으로 이어진다.

그 길로 오라는 뜻이다.

강소군은 천천히 길을 따라 장원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들어서 가벽을 돌아가니 널따란 연무장이다. 커다란 청동화로가 사방에 놓였는데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좌우 양편으로 백여 명가량의 무사들이 도열하였다. 화톳불에 일렁이는 무사들의 그림자가 벽에 아른거렸다.

멀리 대전에 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활짝 열린 대전 문 상석에 커다란 태사의가 놓여 있었다

구연강은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중검을 짚고 강소군을 내려다보는 그에게서 그는 천신(天神) 같은 위엄이 흘러나왔다.

강소군은 천천히 걸어서 연무장을 지났다.

대전 상석 아래 그를 내려다보는 문사가 있었다. 문사가 손을 들려 하는데 구연강이 한마디 하였다.

“오라 해라.”

신기수사 조개량이 손을 내렸다. 원래 그가 수신호를 하면 네 명의 고수가 나타나 강소군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강소군은 흑검 등과 교전하며 부상을 입었다. 그런 상태에서 조개량이 준비한 네 명의 고수와 싸우면 분명 중상을 입을 것이다.

그때 구연강이 나서서 강소군의 목을 치는 게 조개량의 뜻이었다.

그런데 구연강은 무슨 일인지 조개량을 막았다.

강소군이 연무장 끝에 서서 대전 안의 구연강을 바라보았다.

구연강이 굽어보다 물었다.

“올라올 자신이 있느냐?”

강소군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 대전으로 들어갔다.

강소군을 내려다보는 구연강의 눈에서 광망이 번뜩였다.

“과연 대담하군. 강휘!”

강소군의 본명이 구연강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강소군은 물론이고 신기수사 조개량도 놀랐다.

조개량은 사람을 풀어 강소군이 강부의 주인임을 알고 있었다. 다만 구연강에게는 남경에서 강소군의 종적이 사라져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그런데 구연강이 이미 강소군의 본명을 알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선이 있다는 뜻이로군.’

구연강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시비들이 종종걸음으로 술상을 가져 나왔다.

“모두 나가고 대전 문을 닫아라!”

구연강이 지시하자 조개량도 대전 안에 있을 수 없었다.

구연강이 태사의에서 일어나더니 천천히 상석을 내려왔다.

“앉지.”

구연강이 먼저 술상 앞에 앉았다. 주인이 먼저 청하니 강소군도 등에 맨 창을 풀고 술상 앞에 앉았다.

“내 아들을 죽인 놈과 술을 마실 줄은 몰랐군. 술을 따르지는 못하겠다. 알아서 마셔라.”

구연강이 자신의 잔에 술을 채우더니 훌쩍 비웠다.

강소군이 자신이 잔에 술을 따르고 마셨다.

“알고 있었느냐?”

구연강이 뜬금없이 물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소.”

강소군은 천무방의 무력대와 고수들로부터 계속 추적을 받았다. 그때마다 모두 죽여서 돌려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방에서 다시 대놓고 자신을 토끼몰이하자 구연강의 뜻을 짐작했다.

얼굴을 보자는 뜻이었다.

“네가 도주했다면 끝까지 추적하여 죽였을 것이다.”

구연강이 다시 술을 따라 벌컥 마셨다.

“장원에 들어섰을 때 주춤거렸으면 역시 곧바로 죽여 버렸을 것이다.”

구연강은 다시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강소군도 잔을 비우고는 술을 따랐다.

구연강이 자신의 잔을 보다가 문득 물었다.

“고통스럽게 죽었나?”

“자신이 죽는지도 몰랐을 것이오.”

“그렇군. 무인이 실력이 부족하면 죽는 건 당연하지. 고통스럽게 죽지 않았다면 복이라고 할 수 있다.”

구연강이 묵묵히 술잔을 비웠다.

“아들이 셋인데 그중에 막내 제일 마음에 들었지. 첫째 놈은 왠지 내 길을 잇지 않을 것 같고 둘째 놈은 생각이 많아.”

구연강이 탄식을 하였다.

사실 구양운이 실력은 후기지수로 부족하지는 않았다. 다만 상대를 모르고 날뛰다 화를 입은 것이다. 그건 그의 운이었다.

“셋째 그놈이 경솔하기는 하지만 강단이 있었지. 조금 더 살아서 연륜이 쌓이면 내 뒤를 이을 놈 같았거든.”

구연강의 눈에서 광망이 쏟아졌다.

“그런데 어느 날 죽었다고 하더군. 이름도 없는 낭인에게.”

강소군은 구양운을 죽이던 날이 떠올랐다.

굳이 살수를 쓰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가장 빠른 시간에 적을 죽여야 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연화심이 떠올랐다.

잠시 강소군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는데 돌연 구연강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졌다.

구연강은 십대고수다. 그가 살기를 드러내니 살을 벨 듯 예리한 기파가 몰려왔다.

-툭!

구연강의 살기를 이기지 못하고 강소군의 옷깃 여기저기가 터졌다.

강소군의 체내에서 금룡기가 서서히 일어났다.

강소군은 묵묵히 술잔을 들어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한 잔을 따랐다.

구연강의 눈빛이 차분해지더니 살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천무방의 직계가 이름 없는 낭인에게 죽을 수는 없었지. 하지만 이제 보니 철권호와 맞붙을 만한 고수였더군.”

구연강이 탄식을 하였다.

“상대가 자신보다 뛰어난 자라면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곳이 강호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녀석의 죽음도 그리 원한을 가질 일은 못 되겠지.”

강소군이 구연강을 바라보았다. 그가 회상을 하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천무방주를 맡았을 때가 꼭 그놈 나이였지. 혈기왕성하여 날뛰었거든. 당시 천무방은 호북 북쪽에 있는 아주 작은 방파였지. 방파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구연강의 부친은 인근 문파에 의해 죽었다.

스무 살이 갓 넘은 구연강이 천무방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절치부심하여 삼 년 만에 그 문파를 몰살시켰다.

“그때부터였을 거야. 자꾸 앞에 쓰러뜨려야 할 놈이 나타나는 거지.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군.”

구연강은 감회가 새로운 듯 가만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

“천하사패? 천하 십대고수? 그런 걸 원한 게 아니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있더군. 그러다 보니 무림 일통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네.”

강소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구연강은 무림일통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구연강의 눈에서 광망이 번뜩였다.

구연강이 술잔을 들더니 벌컥 마시고는 잔을 깼다.

“이만큼 마셨으면 됐다. 아들의 실력이 부족하여 죽었으니 핏값을 받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보기 드문 고수를 만났으니 겨뤄는 봐야지. 삼 초를 나눠 보자꾸나.”

구연강의 제안은 뜻밖이었다. 생사결이 아니라 삼 초식을 겨뤄 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일 초에도 생사가 갈리는 게 고수들의 싸움이다.

강소군이 내력을 끌어 상세를 점검해 보았다. 구연강은 그의 몸이 정상이라 해도 버거운 상대다.

구연강이 강소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재차 나온 그의 말 또한 놀라웠다.

“아랫사람들이 괜한 짓을 했어. 흑검과의 싸움에 부상을 입었다지? 일단 상세를 회복하고 다시 와라. 보름이면 되겠나?”

강소군이 구연강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기에 구연강은 무공과 심계 모두를 갖춘 효웅이었다.

그의 속셈을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가 진정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는지도 헛갈렸다.

가벽 뒤에 있었던 조개량이 대전으로 들어왔다. 구연강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찌 그를 그냥 돌려보내시는 겁니까? 그가 다시 오겠습니까?”

“다시 올 것이다. 그는 이 악연을 끝내고 싶어 한다.”

조개량은 구연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흑검 등을 보내 부상을 입힌 후 구연강이 직접 처단하게 하는 것이 조개량의 속셈이었다.

그런데 구연강이 그대로 놔주었다. 구연강은 말없이 자신의 거처로 들어갔다.

조개량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분명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조개량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구연강은 자신에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고 있다.

방금도 강소군이 강부의 후계자 강휘라는 사실을 직접 밝히지 않았던가.

어쩌면 조개량이 일부러 강소군의 종적을 알리지 않은 것이라 의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좋지 않아.’

***

“어찌하여 그를 그냥 보낸 것입니까?”

천무방 대공자 구양조도 아버지의 판단이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를 죽이면 어찌 되겠느냐?”

구양조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가 황실의 일원으로 밝혀진 이상 아무래도 조정과 껄끄러워지겠지요.”

“조개량은 내게 공과 과를 하나씩 줄 생각이다.”

“공은 무엇이고 과는 무엇입니까?”

“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거라. 한왕을 잡아 오면 공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저놈을 죽이면 황실의 인척을 해쳤으니 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저놈이 먼저 셋째를 해쳤습니다.”

“태자가 황제가 되어 권력을 쥐면 그걸 따질까?”

천무방 직계라고 하나 황실에서 보기에는 평민이다. 죽음의 값이 다르다.

“그럼….”

“황실과 천무방이 부딪치게 되는 거지. 천무방이 무림을 일통한다 하더라도 백만 군사를 당할 수는 없지 않느냐?”

“그럼 공만 세우실 생각이군요.”

구연강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아니다.”

“예?”

“한왕은 천하장사로 이름나고 그의 군대는 용맹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런 한왕을 잡아다 바치면 황실은 우리 힘을 두려워할 것이다. 또한.”

구연강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큰아들 구양조는 무공이 뛰어나긴 한데 우직한 면이 있다. 좋게 보면 인품이 광명정대하다고 할 수 있으나 암계가 횡행하는 무림에는 어울리지가 않았다.

“관무불침! 조정의 일에 깊숙이 개입한 천무방을 강호에서 어찌 보겠느냐? 천무방이 무림을 일통한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따르겠느냐?”

“그렇군요. 그러면 천무방은 이번 일에서 빠지는 겁니까?”

“한왕은 저놈이 잡을 것이다. 우리는 도룡회와 대정무각을 제거한다.”

“강소군이 한왕을 잡는다고요?”

구양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연강이 냉혹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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