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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81화 (8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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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옥패의 남자는 스물서넛은 되어 보였다. 전신에 흐르는 기품이 예사롭지 않았다.

뒤따르는 여인은 아직 앳된 소녀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점소이가 재빨리 무림인들의 음식을 구석진 자리로 옮겼다.

자리를 양보한 무림인들이 푸른 옥패의 남자들을 흘깃거리며 우르르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푸른 옥패의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먼저 무사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저분들께서 자리를 양보하셨습니다.”

무사의 말에 남자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자리가 구석이면 어떻다고 사람을 번거롭게 하였습니까.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세요.”

푸른 옥패의 남자가 구석 자리로 간 무림인들에게 다가가더니 포권을 하였다.

“남궁가 남궁우라고 합니다. 여러 대협께서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남궁세가의 이공자(二公子)셨군요. 혹 자리가 불편하다 하여 그대로 발걸음을 돌리실까 봐 저희가 양보를 한 것입니다. 남궁세가 분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그리한 것이니 양해하여 주십시오.”

중년 문사가 무림인들을 대표하여 응대하였다. 번지르르한 그의 말솜씨에 남궁우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길을 나서는데 가친께서 그러시더군요. 사해가 동도이니 예를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그렇군요. 기왕에 마음을 내어 주셨으니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남궁우도 예의를 다하였다.

‘남궁세가의 직계인데도 이리 겸손하다니. 남궁세가가 강남에서 명망을 얻은 것이 당연한 일이구나.’

무림인들이 탄복하였다.

남궁우는 십대고수 남궁옥의 동생이다.

천하의 기재라는 남궁옥에 가려 있으나 남궁우의 명성 또한 후기지수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남궁우는 여동생 남궁령과 자리에 앉았다. 그를 따라온 이십여 명의 무사들은 자리가 없어 바깥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객잔 바깥의 요소요소에 앉았다. 마치 객잔을 수비하는 형세였다.

이 하나만으로도 남궁세가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남궁우는 음식을 시키며 객잔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이 상인들이고 무림인들은 중년 문사와 함께 있는 무리뿐이었다.

중년 문사 무리는 여섯 명이었는데 그가 주의를 기울일 만한 자는 없어 보였다.

“왜 그리 인상을 쓰느냐?”

“먹을 만한 게 없어요.”

남궁령이 식탁에 깔린 음식을 보고 불평하였다. 그녀는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이다. 어려서부터 부족함이 없이 자랐다.

“생선요리도 없고.”

“타지에 오면 부족함이 있더라도 참아야지.”

음식 투정을 하는 남궁령을 달래는 남궁우의 시선이 구석 자리로 꽂혔다.

남궁령이 그 시선을 따라 돌아봤다.

조용히 자작을 하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헝겊으로 돌돌 말아 옆에 세워 놓은 건 창인 듯하였다.

“저 사람이 왜요? 아는 사람이에요?”

남궁령이 소곤거렸다.

남궁령은 강호행이 처음이다. 이번에 남궁우가 남궁세가를 대표하여 국상에 참석하는 데 따라왔다.

보는 것마다 신기하였다. 무엇보다 뭔가 일이 터지기를 고대하였다.

‘그래야 내 솜씨를 보여 줄 게 아냐? 그러면 강호도 남궁가에서 여고수가 나타났음을 알 텐데.’

남궁령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묻자 남궁우가 자신의 실책을 알아채고 헛기침을 하였다. 엉뚱한 막내가 자칫 사고라도 치면 골치 아파질 게 분명했다.

“그럴 리가 있냐? 네가 하도 음식 타박을 하니 다른 사람들은 어떤 걸 먹나 본 것뿐이다.”

눈치 빠른 남궁령은 넘어가지 않았다. 대놓고 강소군을 쳐다보았다.

“저건 창이겠죠? 창으로 이름난 고수가 있던가요? 아, 요즘 혈마라는 고수가 창을 쓴다던데.”

생각나는 대로 남궁령이 지껄이니 남궁우가 황급히 말을 막았다.

“쓸데없는 소리 마라. 자꾸 시끄럽게 하면 집으로 돌려보내 버릴 테다.”

“흥! 아버지가 허락한 건데 작은 오빠가 무슨 권한으로 내 강호행을 막아요.”

남궁령은 들은 척도 않았다. 다만 관심을 돌리는 데는 성공했다.

사실 그가 성공한 게 아니라 남궁령이 관심을 끊은 것이다. 남궁령은 강소군의 복장을 보고 명문가임을 짐작하여 혈마일 거라는 생각을 버렸다.

혈마는 피에 젖은 옷을 입고 광폭하게 날뛴다고 하였다. 차분한 강소군과 도무지 연결 지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내게 전권을 주셨음을 잊지 말라고.”

남궁우가 으름장을 놓았다.

남궁우는 강호 경험이 적잖은 편이다. 형 남궁옥이 소장주이기는 하나 무학에 몰두하여 은둔하다시피 하였다.

결국 남궁우가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이런저런 가내의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러니 황제의 국상에도 남궁우가 가는 것이다.

‘무림이 요동치고 있는데 이 골칫덩어리를 왜 딸려 보내신 걸까?’

남궁우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버지 남궁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란 걸 알지만 너무 신경이 쓰였다.

무림은 그의 말대로 요동치고 있는 중이다.

한동안 천하사패의 각축전으로 무림의 형세가 흘러왔는데 최근 들어 양상이 바뀌고 있다.

요천루의 주인이 갑작스레 죽고 천무방은 혈마에 의해 무력의 절반이 날아갔다.

게다가 대정무각과 도룡회가 한판하여 양패구상하였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각 지역을 장악해 왔던 천하사패가 흔들리자 숨죽이고 지냈던 문파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남궁우의 으름장에 남궁령이 샐쭉하여 젓가락만 놀렸다.

그때 객잔문이 열리며 흑의를 입은 한 사람이 들어왔다. 서른가량 되어 보이는 흑의인의 손에 붉은 배첩이 들려 있었다.

흑의인은 반점을 둘러보고는 조심스레 강소군에게 다가갔다. 일 장 거리에서 멈춘 그가 손에 든 배첩을 꺼내 던졌다.

흑의인의 행동거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저 사람은?”

“천무방 사람 아닌가?”

무림인들이 소곤거렸다.

흑의인은 뒷걸음질로 몇 발짝 물러난 다음 조용히 객잔을 나갔다. 강소군을 무척 두려워하는 듯했다.

강소군이 탁자에 놓인 배첩을 보았다.

천무방은 대정무각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남경까지 들어오지는 못했다.

대신 수완이 좋은 자를 보내 강소군의 행방을 추적하였으나 강부의 귀공자와 연결을 시키지 못해 남경 외곽을 감시하였다.

강소군이 다시 강호에 나서자 천무방은 뒤를 밟는 한편 본방에 연락을 보내 고수를 불러온 것이다.

강소군이 배첩을 보고는 기댄 창을 들고 나섰다.

“저건 생사결을 벌일 때 보내는 거잖아?”

“어쩐지 조용하더라니 천무방에게 쫓기고 있었군.”

무림인들이 수군거리는데 중년 문사가 일어났다.

“낙서생(落書生), 어디를 가려는가?”

“이런 좋은 볼거리를 놓치면 되겠는가.”

“괜한 일에 끼어들었다가 명 재촉하지 말고 술이나 받게.”

“자네들은 기다리고 있게.”

낙서생이 객잔을 빠져나갔다. 낙서생이라는 말에 남궁우가 놀라 그의 뒤를 쳐다보았다.

“오라버니, 우리도 가 봐요.”

남궁령은 고수들이 싸운다니 호기심이 동했다.

“저 사람 말을 듣지 못했어?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면 화를 당하기 십상이야.”

“낙서생이란 사람도 갔잖아.”

“그 사람은 신법이 무척 빠르기로 소문난 자야.”

“그도 강호의 고수였어?”

남궁령이 눈빛을 번뜩였다.

세가를 나와 내내 마차를 타고 왔다. 이십여 명이 호위하는 남궁세가의 마차를 보고 감히 도발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흔하다는 산적조차 만나지 못했는데 드디어 고수들이 싸우는 걸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남궁우도 강소군의 정체가 궁금하긴 하였다.

‘혹 혈마가 아닐까?’

혈마와 천무방의 싸움이 강호에 진동하고 있다.

“정 그렇다면 멀리서 조용히 지켜만 봐야 한다.”

남궁 남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나오자 무사들이 다가왔다.

남궁우가 무사들에게 객잔에 머물라고 하고 누이동생과 단둘이 마을 밖으로 나갔다.

마을 밖 다 쓰러져가는 토지묘에 네 사람이 서 있었다.

강소군을 마주하고 세 사람이 품자형으로 섰는데 그중 한 사람이 합비에서 본 적이 있는 죽장을 든 백발 노인이었다.

가운데 있는 사람은 검은빛이 도는 검을 들고 있었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무척 가느다란 도를 들고 있었다.

‘대단한 고수들이다.’

남궁우는 가까이 가려는 남궁령을 제지하고 멀리서 지켜보았다.

강소군이 헝겊을 풀자 피처럼 붉은 창이 나왔다.

연성결이 주었을 때는 창대가 흰 백창이었으나 숱한 혈전을 거치며 피가 배어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강소군은 창을 들자 도를 든 자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은신술이 뛰어난 자 같았다.

이어 검을 든 자가 벼락같이 다가가 검을 내리쳤다. 백발 노인은 강소군의 뒤로 돌아 퇴로를 차단하였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싸우네?”

남궁령이 소곤거렸다.

“생사결이다. 어느 한쪽이 반드시 죽을 텐데 말을 해 무엇하겠냐?”

남궁우가 목소리를 낮춰 대답하고 주위를 살폈다.

십여 장 거리 나뭇가지 위에 낙서생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쉬쉭!

무기들은 서로 부딪치지 않았다. 하지만 공기를 가르는 격렬한 소리가 들려 왔다.

밤인 데다 거리가 멀어 무슨 수법을 쓰는지 알 수는 없었다. 신형들이 워낙 빨라 그저 싸우고 있다는 것만 알뿐이었다.

어느 순간 무기들이 부딪쳤다.

-쾅!

벼락이 땅바닥에 꽂힌 듯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졌다.

남궁우는 삼십여 장이 떨어진 이곳까지 기파가 몰려오자 크게 놀랐다.

‘저들의 무공이 형님에 비해 손색이 없는 것 같구나.’

그러다 옆에 남궁령이 없는 걸 깨닫고 화들짝 주위를 살폈다.

남궁령은 거리가 너무 멀어 제대로 볼 수가 없자 십여 장 앞으로 나갔다.

남궁우가 신법을 펼쳐 남궁령의 뒤로 갔다.

-미쳤느냐? 이 거리면 저들이 손 한 번 쓰면 닿을 수도 있어.

남궁우가 전음을 하고 남궁령의 소매를 당기는데 다시 한 번 벼락 치는 소리가 터졌다.

-쾅!

이어서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팔 하나를 잘린 사람이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백발 노인이었다. 그는 팔만 잘린 게 아니었다.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머리가 떨어졌다.

“헉!”

참혹한 결과에 남궁령이 숨을 들이켰다.

다시 신형들이 엉켰다.

“크윽!”

신음성이 터지고 이번에는 도를 든 자의 가슴이 창에 뚫렸다. 그러나 강소군 역시 손해를 봤다. 흑검이 그의 배에 꽂혔다.

-펑!

강소군이 장을 내밀어 흑검을 든 자를 쳐냈다.

강소군의 배에서 핏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보이는 듯했다.

도를 든 자가 동귀어진이라도 할 기세로 강소군에게 돌진하였다. 그 순간 다시 흑검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강소군을 향해 쏘아졌다.

강소군의 창이 위아래로 흔들리자 도를 든 자가 두 쪽이 났다. 하지만 그사이 흑검이 다시 강소군의 왼쪽 어깨를 찍었다.

강소군의 신형이 그대로 돌며 흑검을 든 자를 걷어찼다. 흑검을 든 자가 왼손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쾅!

경력이 부딪히며 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

“컥!”

흑검을 든 자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흑검을 든 자의 목에 한 자루 비도가 박혀 있었다.

푸른색 옥이 박힌 비도는 강소군의 청옥비도였다.

흑검을 든 자는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보였으나 끝내 아무 말도 못 하고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강소군은 청옥비도를 회수하고 창을 챙겨 헝겊으로 말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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