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80화 (8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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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각주께서는 신중하신 분이었지요. 분명 불의의 사고에 대비를 해두셨을 겁니다. 혹 짚이는 바가 없습니까?”

“방금 전까지 선친께서 대정무각의 일원인 줄도 몰랐습니다. 남기신 유고에도 비각의 명단 같은 건 없던 것으로 압니다.”

강소군의 말에 모상이 대신 변명하였다.

“공자께서는 당시 태후전에 계셨습니다. 국공께서 워낙 황망히 타계하셔서 유언조차 듣지 못했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으음.”

상관청유가 난감해하였다. 모상이 말을 이었다.

“국공께서 갑작스레 변을 당하셔서 미처 남기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모상의 말에 상관청유가 흠칫, 놀랐다.

“변이라니요?”

강일부의 죽음은 대외적으로 갑작스런 병으로 급사하였다고 알려졌다.

강소군의 어머니 영안공주가 철저히 단속하였기에 세상 모두가 그리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정무각에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습니다.”

모상이 오히려 상관청유에게 도움을 청했다.

“화혈고라는 충독을 쓰는 자객이 있는지 알아봐 주실 수 있는지요. 또 지난 십여 년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난 남경부의 권력자들에 대한 조사도 부탁하고자 합니다.”

상관청유도 모상의 요청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비각주가 병이 아니라 암살당했다면 대정무각으로서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십각주와 상의하여 결과를 알려드리겠소.”

상관청유가 모상에게 대답하곤 강소군에게 말했다.

“이번 국장에 참석하시지요? 대형께서 북경에서 공자를 뵙고 싶다고 전하라 하셨소.”

대형이라면 대정무각 일각주 백정무다.

“대정무각은 사실상 대형과 비각주께서 조직하신 것이오. 분명 하실 말씀이 있으실 거요.”

“기회가 된다면 뵙지요.”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청유가 돌아가자 모상이 겸연쩍은 얼굴로 말했다.

“공자님 죄송합니다. 비각의 일은 극비이기에 국공께서 공자님께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모르는 일이 또 있습니까?”

“진 포두도 사실은 비각의 일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국공의 명을 받아 수행만 할 뿐 비각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알지 못했지요.”

진정한 비각의 일원이라기보다는 강일부의 심부름꾼이었다는 뜻이다.

“비각의 명단이 진 포두에게 있었을 가능성도 있소?”

“그랬다면 벌써 제게 말했을 겁니다.”

모상이 고개를 저었다.

강소군은 갑작스레 알게 된 사실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황제의 말 상대를 하며 조언 정도를 해 왔다고 여겼던 아버지는 생각보다 조정에 깊숙이 개입한 듯했다.

‘대정무각 비각이라니.’

강소군은 문득 장 장군부 폐족에 아버지도 관련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 장군부는 태조 이래 군부의 중추였다. 노장군 장연보를 따르는 군문의 장수들이 영락제에 충성하는 이보다 많았다.

장연보에 이어 장홍 역시 문무를 겸비한 데다 출중한 능력을 보여 여러 장군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영락제는 장 장군부의 세력이 나날이 강성해지는 걸 부담스러워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누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장 장군부를 폐했을 수도 있다.

대정무각이 황실 세력이라면 이에 일조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강소군은 부인하고 싶었다.

‘그럴 리가 없다. 아버지는 장홍 대장군과 벗이었다. 벗을 내치고 그 아버지를 죽게 할 분이 아니다.’

강소군이 고개를 저었다.

복잡한 강소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상은 사실을 밝히고 나니 후련한 듯했다.

“오각주가 제게 그러더군요. 공자께서 비각을 이어 주실 의향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요.”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공자께서는 강부를 지키셔야지요.”

“강부를 옮길 생각입니다.”

느닷없는 말에 모상이 크게 놀랐다.

“강부를 옮기다니요? 아, 경성으로 가신다는 말씀이군요?”

“아니, 남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모상이 펄쩍 뛰었다.

“나중의 일입니다. 지금은 진 포두를 죽인 흉수부터 잡아야지요.”

강소군은 일부러 주고수를 자극하고 남경의 권문세가들을 흔들었다.

타초경사.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할 생각이었는데 자신을 노리는 자객은 오지 않았다.

강소군은 진운초의 죽음이 동창과 금의위의 행적을 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굳혔다.

‘남경이 아니라면 경성의 권문세가에서 보냈을 것이다.’

강소군은 진운초를 비롯한 부모의 죽음을 밝히는 일을 대정무각에게만 맡겨 둘 수 없었다.

“그래도 국장에는 참석하셔야죠.”

“아직 시일이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강소군은 초씨 남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씨 남매와 황오는 장영영을 찾으러 갔는데 소식이 없다. 강소군은 초씨 남매 편에 홍옥비도를 보냈다.

그러면서 홍옥비도를 잃어버린 경위에 대해 알아보라 했다.

***

강소군은 한쪽에서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이얏.”

목소리는 연무장에서 들려 왔다.

진연이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초씨 남매가 없는 동안 혼자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강소군은 한쪽에 서서 진연이 목검을 휘두르는 걸 보았다.

진연은 강소군을 의식했는지 더욱 열심히 목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어린아이인지라 체력은 금방 바닥이 났다.

진연이 목검을 든 채 힘이 다해 철퍼덕, 주저앉았다.

강소군이 다가가 진연의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주공! 저는 괜찮아요.”

“주공? 내가 네 주공이란 말이냐?”

“그리 부르라고 했어요.”

진연의 똘망똘망한 눈을 보며 강소군이 웃었다.

“아니다. 그냥 형이라 불러라.”

“형이요? 아저씨인데요?”

“나는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으니 형이라 불러도 된다.”

“그런 거예요? 그럼 나도 형이 생긴 거네요?”

진연이 좋아하였다.

“신기해요. 형이 주무르니 다리가 하나도 안 아파요.”

“그래? 내가 알려 준 대로 하면 주물러 주지 않아도 다리가 아프지 않을 텐데.”

“정말이에요?”

“그런데 쉽지는 않단다. 우선 내가 말한 걸 외워야 할 거야.”

“외울게요.”

강소군은 대연의결을 진연에게 일러주었다.

“너무 길어요.”

진연이 얼굴을 찌푸렸으나 서너 번 들려 주니 외웠다. 진연은 무척 영민하였다.

강소군이 다시 호흡을 가르쳤다.

“이렇게 호흡을 하면서 외울 수 있겠니?”

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함께 수련을 하고 있는데 모상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초하경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모상이 손에 든 쪽지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전서구 서신이죠.”

“강부에 전서구도 있었습니까?”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국공께서 훈련을 시키셨지요. 그동안 쓸 데도 없는데 번식만 해서 밥값이 꽤 들었습니다.”

모상은 초씨 남매가 떠날 때 전서구를 들려 보냈던 모양이다.

「경성. 석 달」

서로 간의 암어가 없으니 단어만 써서 보냈다.

“경성으로 간답니다. 석 달 정도 걸리는 모양입니다.”

모상이 보고 나름 해석해 주었다.

‘장영영이 경성으로 갔다는 건가?’

강소군은 도룡회가 주첨기를 습격한 일을 들은 바 있다. 장영영이 도룡회 일원으로 태자를 암살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장영영에게 황족은 원수나 마찬가지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강소군이 말했다.

“경성으로 가야겠습니다.”

“그러실 줄 알고 이미 준비를 다 해놨습니다.

다음 날.

강소군은 대문 앞에 선 마차와 하인, 호위하는 사병들을 보고 놀랐다. 사병들은 스무 명이나 되었다.

“이게 다 뭡니까?”

모상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강부의 권위를 보일 수 있지요.”

“필요 없습니다. 모두 돌려보내세요.”

“무슨 소리입니까? 예전에 국공께서 입궐하실 때는 백 명이 넘는 호위가 따랐습니다.”

“나는 국공이 아닙니다.”

강소군이 말하고는 말 위에 올랐다.

모상이 난리를 쳤으나 강소군은 올 때처럼 홀로 남경을 떠났다.

***

황제가 죽었으나 백성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삶은 지방 관리나 호족에게 달려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세간의 관심은 오히려 십대고수의 서열 다툼에 쏠렸다.

천마도 우문극과 천중일검 백정무의 대결 이후 십대고수 간의 서열 다툼이 벌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지금도 그랬다.

사람들로 붐비는 객잔에서 유독 시끄러운 자리가 있었다. 한 떼의 무림인들이 모여 떠들고 있었다.

“이번에 창천무룡 남궁악이 봉황수에게 도전을 하였다는군.”

“정말인가?”

“당연히 그렇겠지. 요천루주가 죽은 자리에 난데없이 봉황수가 끼어들었잖은가.”

“봉황수가 대체 누구야?”

봉황수는 요천루주 풍가채가 죽은 뒤 느닷없이 십대고수가 된 인물이다. 그것도 요천루주의 서열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러나 봉황수는 출신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말이 많았다.

“그게 수상한 일이란 말이지. 나는 작금의 십대고수 논쟁이 꼭 누군가 의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네. 마치 싸움을 부추기는 것만 같단 말이지.”

유건을 쓴 중년 문사가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어느 순간 갑자기 십대고수들이 거론되었지. 그 이전에 그런 서열을 매긴 예가 있었던가? 사실 강호의 많은 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열 명을 고르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그야 그들의 무공을 본 사람들의 판단을 비교하여 정한 것이 아닌가?”

“좋아, 그건 그렇다고 쳐. 그런데 이번에 듣도 보도 못한 자가 십대고수라니. 그 순위를 믿을 수가 없네. 자네, 봉황수라는 별호를 들어 본 적이 있나? 이건 누군가의 의도가 들어 있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중년 문사의 주장은 십대고수에 대해 비판적인 강호인들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자 곧바로 반박이 날아왔다.

“흥! 십대고수에 들지 못한 고수가 서열을 인정할 수 없다면 도전하여 그 자리를 차지하면 되지 않은가?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지. 이는 암묵적으로 인정한다는 뜻 아닌가?”

“그건 자네가 강호를 모르니까 하는 소리네. 진정한 고수는 강호의 명성에 연연하지 않네. 철권호만 하더라도 십대고수와 견주어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오히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걸 꺼려 하지.”

한바탕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결론이 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헉, 남궁세가?”

누군가가 숨을 들이켜며 한마디 하였고 객잔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언제 들어왔는지 청의를 입은 무사 네 명이 서 있었다. 푸른 용이 그려진 무복에서 남궁세가의 무사임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방금 전까지 남궁옥과 봉화수 간의 결전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궁세가의 무사가 나타나니 모두 짠 듯이 입을 닫았다.

점소이가 다가갔다. 무사가 둘러보며 물었다.

“조용한 자리가 있느냐?”

“보다시피 오늘따라 손님이 많습니다. 남은 자리는 저기뿐입니다.”

점소이가 구석진 자리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무사는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남궁세가에서 오신 모양이군요. 우리가 양보하겠습니다.”

이제까지 떠들던 무림인들이었다. 그들은 창가 자리에 있었는데 무리 중 중년 문사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고맙소.”

남궁세가의 무사가 포권을 하고는 객잔을 나갔다.

열린 객잔문으로 마차 한 대가 보였다.

무사가 다가가 고하자 남궁가의 깃발이 꽂힌 마차에서 한 쌍의 남녀가 내렸다.

푸른 옥패를 찬 남자는 영준하기 그지없었고 여인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미모를 갖췄다.

여인은 객잔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차라리 좀 더 가는 게 어때요?”

“곧 해가 저문다. 아랫사람들도 쉬어야 할 게 아니냐.”

남자가 여인의 말을 일축하고는 객잔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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