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78화 (78/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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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사람이 일체를 이뤄 나아가는데 마치 한 마리 용이 창천을 향해 질주하는 듯했다.

호일도의 주위로 검광이 무수히 피어오르더니 일제히 강소군을 향해 쏘아져 갔다.

“오!”

비무대 아래서 탄성이 들렸다.

-쉬쉬식!

검광이 쏟아진 자리에 강소군은 없었다. 어느새 옆으로 슬며시 빠져 검의 영역을 벗어났다.

하지만 호일도의 검은 용이 구름을 타고 놀 듯 변화무쌍하여 곧바로 강소군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강소군이 다시 한 발을 뒤로 물러나 피했다.

검이 아슬아슬한 차이로 비켜나갔다.

호일도의 검에는 검기가 어려 있었다. 그러나 강소군의 내력에 부딪혀 몸을 상하게 할 수가 없었다.

호일도는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검기를 몸으로 막을 수 있는 내력이라니?

어느새 강소군은 비무대 끝으로 몰렸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 보였다.

호일도가 이번 수로 끝내겠다는 듯 작심을 하고 검을 곧장 찔렀다.

어느 쪽으로 피하든 그의 검이 따라가 끝장을 볼 것이다.

“잘 봤다.”

강소군이 돌연 한마디 하더니 찔러 오는 검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팅!

강소군이 왼손으로 검면을 튕겨냈다. 호일도는 무지막지한 경력에 자신의 내공이 실린 검이 튕겨 나가는 걸 느꼈다.

‘아차!’

호일도가 허리를 숙이고 검을 회전하려 했는데 강소군이 다시 한 발 내디디며 오른손으로 호일도의 어깻죽지를 내리쳤다.

호일도가 크게 놀라 왼손으로 강소군의 손을 받으며 전신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빠각!

초식이고 뭐고 없었다. 그저 작두로 내려치듯 수도에 호일도의 왼손이 부러지고 어깻죽지가 박살이 났다.

“크악!”

강소군은 내려친 수도 그대로 밀어 손등으로 호일도의 얼굴을 쳤다.

-퍽!

엄청난 충격과 함께 호일도가 비무대 위를 떼굴떼굴 굴러갔다.

침묵이 흘렀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호일도는 방일옥과 함께 남경에서 젊은 고수로 이름났는데 불과 일 초 만에 쓰러지고 말았다.

주첨기만 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는 강소군의 무위에 대해 들은 바가 있으니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

‘저 녀석만 함께한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그가 보기에 강소군은 한 마리 잠룡이었다. 용이라면 황제가 될 그가 당연히 얻어야 한다.

주첨기는 어찌하면 강소군을 품을 수 있을까 궁리를 하였다.

주첨기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강소군은 이미 창천을 노니는 맹룡이었다.

강소군은 장영영과 만남 이후 혼몽에서 깨어났다. 새로이 태어난 듯 그의 정신은 맑기 그지없었다.

연화심의 맑은 눈빛이 미망에 사로잡혀 떠도는 그의 정신에 일침(一針)을 놓았다면 부모의 죽음 뒤에 감춰진 흑막은 그를 깨웠다.

뒤이은 장영영과의 만남으로 그는 현실을 직시하는 냉정함을 되찾았다.

강소군은 단호하였다. 비무대 아래 귀공자들을 보며 말했다.

“모두 올라와라!”

강소군에게 도전하기로 했던 귀공자들은 사색이 되었다. 감히 비무대에 오르는 이가 없었다.

“잔인하구나!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알았을 터인데 끝내 몸을 상하게 하다니!”

호부 사람들이 호일도를 업고 내려오자 호부의 수장이 살펴보고는 강소군에게 소리쳤다.

주첨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무를 하다 보면 왕왕 다치기도 하는 것이다. 호일도는 진검을 썼는데도 당했으니 할 말이 없다.”

실력이 모자라서 졌으니 토를 달지 말라는 뜻이다.

“강휘는 황실의 고수다. 너희 도전자들이 합공하는 것을 허락하겠다.”

비무대 아래 귀공자들은 어떻게든 도전을 취하할 생각이었는데 주첨기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강소군은 내심 헛웃음을 흘렸다. 주첨기의 속셈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둘이 도모하는 뜻이 같으니 잠자코 있었다.

귀공자 네 명이 죽을상을 하고 비무대에 올랐다.

스스로 도전하겠다고 한 이들이다. 가문의 명예가 달린 일이니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네 명이 서로 눈짓을 하였다. 합공으로 끝내자는 뜻이다.

“쳐라!”

누군가 외치자 남은 이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강소군을 포위하였다.

-쉬쉭!

검풍과 검광이 난무하며 강소군을 향해 짓쳐들었다. 나름 호기를 부릴 만한 실력들이었다.

그러나.

-퍼퍽!

-빠각!

비무대 위에서는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지는 소리만 들려왔다.

“커흑!”

비명은 뒤늦게 터져 나왔다. 네 명의 귀공자들은 순식간에 팔다리가 꺾여 비무대 위를 기어 다녔다.

비무대는 삽시간에 신음성으로 뒤덮였다.

“으으으.”

“나 죽을 것 같아.”

강소군이 비무대를 나뒹굴며 죽겠다고 신음을 지르는 귀공자들을 보고 싸늘하게 내뱉었다.

“변방의 군졸들도 너희보다 낫다. 이 정도 고통도 감당 못하면서 남의 위에 서려고 했느냐?”

이어 강소군의 시선이 권문세가 일족이 앉아 있는 자리로 향했다.

모두 허옇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었다.

강소군이 이렇듯 고강한 고수일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보다 치를 떨게 하는 것은 그 잔인함이었다.

강소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생사람의 팔다리를 꺾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담담하게 내려다보니 더욱 두려웠다.

모두가 시선을 피하는데 방연소만 태연하게 강소군을 바라봤다.

장내에는 침묵만 흘렀다.

-짝짝짝!

주고수가 손뼉을 치며 일어났다.

“하하하. 대단하구나!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군. 하지만 너무 쉽게 끝나니 싱겁지 않은가.”

주고수가 자신의 뒤를 돌아봤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큰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두건을 깊게 눌러썼기에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내가 마침 고수 한 분을 초빙하여 견식을 넓히던 중이었다. 강휘의 무공이 뛰어나니 한 번 겨뤄 보는 게 어떨까?”

주고수는 강소군이 주첨기의 휘하에 들어간 것으로 오해하였다.

강소군은 일전에 자신을 협박하고 갔다. 선황의 유지까지 보이며 현 황실을 비호할 뜻을 분명히 하였다.

오늘 이 자리에서 주첨기의 뜻을 받아 남경 귀공자들을 제압하는 걸 보고 강소군이 황실의 편임을 확신하였다.

그러니 강소군을 꺾어 둘 필요성을 느꼈다.

주고수는 황실과 남경의 권문세가가 대등하게 싸우는 걸 원했다.

“이 자리는 강호인이 끼어들기에….”

주첨기가 주고수의 뜻을 알고 반박을 하려는데 두건 쓴 이는 그새 비무대에 올랐다.

주첨기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상대의 기세에서 만만치 않다는 걸 안 것이다.

“어린아이들과 푸닥거리를 하는 게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

장한이 두건을 젖혔다.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강건한 인상을 지닌 사내였다. 낯빛이 무척 검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내가 강소군을 주시하며 말했다.

“나는 철권호(鐵拳豪)라고 한다. 황실의 고수를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었지.”

비무대 아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열 사람을 십대고수라 하나 고수는 그들뿐만이 아니다. 그에 못지않은 고수들도 있다.

철권호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십대고수에 철권호를 넣어야 한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철권호는 두 주먹은 쇠종도 깨뜨린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호협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강호 호협이 주고수의 휘하에 있다는 건 의외였다.

강소군은 그의 기세에서 일전에 주고수를 만날 때 은신했던 고수라는 걸 알았다.

“이런 자리에 올 자는 아니로군.”

“이 자리가 무슨 자리인지는 모르나 실력이 되지 않는 이들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건 보기 좋지 않았다네.”

비무대 아래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호협이로군.”

“말이야 바른 말이지. 실력을 감추고 있다가 상대를 불구로 만들다니. 정말 야비한 짓이지.”

“강부의 공자가 큰코다치겠군.”

강소군의 편을 드는 자는 없었다.

강소군이 쓴웃음을 지었다.

“단지 그 이유인가?”

“사람마다 사정이 있지. 하지만 권을 쓰는 걸 보니 겨뤄 보고도 싶군. 누구처럼 상대를 불구로 만들지는 않을 터이니 안심하게.”

철권호는 무공은 물론 명망도 높았다. 주고수의 한마디에 가볍게 처신할 사람은 아니다.

철권호는 눈앞의 젊은이가 지닌 재능이 아까웠다. 하지만 하수들을 불구로 만드는 독심을 보고는 한 수 꺾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법을 보니 무당의 면장을 익힌 듯하더군. 태극권의 권로도 섞은 듯하고. 게다가 군에서 쓰는 박투술도 보이고.”

철권호는 권법(拳法)의 대가답게 강소군의 수법을 알아보았다.

강소군은 내심 놀랐다. 철권호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할 틈은 없었다. 철권호는 말이 많은 자가 아니었다.

“일단 이 권을 받아 보게.”

-휘익!

철권호가 정면으로 권을 찔렀다. 단순하면서도 빠르기 그지없는 수법이었다.

권에 담긴 경력이 바람을 일으켰다.

가볍게 내지른 일권처럼 보이지만 그에 담긴 경력이 만만치 않자 강소군은 오른손을 펼쳐 원을 그렸다.

철권호가 일직선으로 내지른 권을 원을 그린 강소군의 손이 감았다.

‘…!’

강소군이 권을 감아 누르려 했으나 철권호의 주먹은 꿈쩍도 않고 계속 질러 왔다.

강소군이 황급히 몸을 돌려 주먹을 피하자 재차 권이 날아왔다.

첫 주먹이 가슴을 향했다면 이번에는 반원을 그리며 복부를 노렸다.

철권호는 살짝 앞무릎을 숙이고 뒷다리는 팽팽하게 뻗은 상태였다. 가볍게 올려치는 권이지만 전신의 힘이 실려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첫 번째 권과 두 번째 권이 거의 동시에 펼쳐진 것만 같았다.

-턱!

강소군이 올려치는 권을 받아치는 듯하더니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돌며 철권호의 경력을 해소하였다.

“동작이 크다!”

철권호가 크게 소리를 치더니 재차 권을 내질렀다. 역시 단순하지만 빠르기가 바람 같았다.

‘요천루주의 아래가 아니다!’

요천루주는 사이한 내공과 괴초를 바탕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수법을 썼다.

하지만 철권호는 단순 우직하게 권을 지를 뿐이다. 그럼에도 실린 경력이 마치 태산과도 같아 맞받아치기 어려웠다.

철권호의 두 다리는 쇠기둥같이 단단하였고 움직임은 비호처럼 빨랐다.

일권 일권이 안정된 자세에서 나오니 치명적이었다.

강소군이 허공에서 몸을 옆으로 돌려 내려섰다. 기다렸다는 듯 철권호의 다리가 풍차처럼 돌며 강소군의 다리를 노렸다.

-휘이익.

사람의 다리였건만 마치 쇠기둥을 휘두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강소군은 다시 허공으로 몸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철권호가 벼락같이 한 발을 내디디며 허공에 권을 내질렀다.

권이 허공을 치자 놀랍게도 폭음이 일었다.

-펑!

권에서 쏟아진 기가 허공에 뜬 강소군을 쳤다.

“무형권!”

누군가 알아보고 소리쳤다. 철권호의 절기 무형권이었다.

더 이상 피하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강소군이 양팔을 교차하여 쏘아져 오는 권기를 막았다.

-쾅!

기파가 터지는 폭음과 함께 강소군이 일 장가량 주르륵 밀려났다.

철권호의 권은 산악을 무너뜨릴 기세가 담겨 있었다.

“흥미롭군.”

철권호가 자신의 권을 막은 강소군을 보고 내심 놀랐다.

소림 백보신권과 쌍벽을 이루는 철권호의 무형권이다. 이를 정면으로 막은 자는 십 년 내 처음이다.

상대는 이제 이십 대 초반이다. 자신의 무형권에 실린 경력을 받아내고도 멀쩡한 걸 보니 놀랍기만 했다.

“귀하야말로 남의 밑에 있기 아까운 자요.”

강소군이 슬쩍 주고수를 봤다. 나직한 말이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주고수는 담담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떨렸다.

강소군의 말을 곱씹어 보면 주고수가 철권호를 품을 만한 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세상을 도모하려는 주고수에게는 이보다 모욕적인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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