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71화 (7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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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부.

봄꽃 향기가 가득한 정원.

화려한 옷을 입은 중년인이 꽃가지를 다듬고 있었다. 귀티가 나는 얼굴에서 신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조왕 주고수가 꽃가지를 만지작거리며 흘리듯 물었다.

“흐음. 강휘가 돌아왔다고?”

옆에 선 이가 대답했다.

“방연소가 군문을 무단이탈했다는 죄를 황제께 고한 모양입니다.”

“황제가 강휘를 벌할 정신이 있을지 모르겠군.”

주고수가 가위를 내밀어 가지 하나를 잘라냈다.

“제멋대로 자란 가지는 쳐내야 나무가 보기 좋지. 하지만 황제는 그렇게 강단 있는 위인이 아니지.”

“방연소가 내관을 통해 동창에도 선을 댄 모양입니다. 황제의 명이 내려오기 전까지 등청도 하지 않는다 전달했더군요.”

“방 대학사는 대체 왜 그리 강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

“방연소와 과거 강 국공 사이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사사건건 부딪쳤던 두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자식까지 원수로 여기면 곤란하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지금 황제의 목숨이 간당간당하단 말이지. 황태자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이런 판국에 남경의 대학사가 지난 원한에 집착하다니. 의외로군.”

“아들이 강 공자에게 맞아 크게 다치고 얼굴이 망가졌다는군요.”

“흐음. 어쨌든 남직례성을 관할하는 대학사가 저리 엉뚱한 데 정신 팔려 있으니 걱정이야.”

말은 그렇긴 하지만 주고수는 전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다.

그때 조왕부의 총관이 배첩을 들고 왔다.

“무슨 일인가?”

“강부 강휘 공자께서 배첩을 보내 왔습니다.”

주고수가 배첩을 열어 보니 방문첩이다.

“흐음. 조 상서, 강휘가 나를 보고자 하는군.”

이제껏 상대하던 자는 남경부 이부상서 조옥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요. 현재 남경에 황실의 어른은 왕야 한 분 아닙니까. 당연히 찾아뵙고 인사를 해야지요.”

조옥의 목소리가 은밀하게 가라앉았다.

“큰 힘을 얻으실 수도 있겠군요.”

“가만있자. 내가 그 녀석을 언제 마지막으로 봤더라. 태후전을 들락거릴 때니 십 년도 넘었군.”

“강 공자가 영민하여 선황의 총애를 받았던 것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제 양친을 여의고 방 학사에게 몰리고 있으니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신세입니다. 왕야께서 품어주시면 기꺼이 안길 것입니다.”

“그리 간단할까? 강일부의 아들이라면 쉽지 않을 거야.”

주고수는 고개를 젓고는 꽃가지만 자를 뿐이다.

***

노란 등이 화려한 객잔 거리다. 열린 창문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차라리 산중에서 자는 게 낫겠군.”

조운룡이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아는 이 없이 홀로 거닐자니 괜히 쓸쓸해진다.

“제기랄. 정말 남경에 온 게 맞나? 그렇게 특이한 인간이라면 사람들 눈에 뜨였을 법도 한데.”

조운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목소리를 들었나 보다. 길 구석에 쓰러져 자던 어린 거지가 눈을 뜨더니 조운룡을 흘깃 훔쳐보았다.

조운룡의 행동은 누가 봐도 사람을 찾는 게 분명해 보였다.

거지가 슬그머니 조운룡에게 다가가더니 바가지를 쑥 내밀었다.

“뭐야?”

조운룡은 난데없이 밀고 들어온 바가지에 움찔, 뒤로 물러났다.

“헤헤. 동전 한 냥이면 됩니다.”

열대엿 정도로 보이는 거지는 무척 영악해 보였다. 거지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하나를 척 들었다.

“뭐가 된다는 거야?”

한 냥은 적은 돈이 아니다.

“찾는 분이 이 거리에 있다면 동전 한 냥만 내시면 찾아드립니다.”

조운룡도 노잣돈이 그리 여유가 없다.

“이 거리에 없다면 못 찾는 거잖아?”

“그럼 두 냥을 더 내시면 됩니다.”

“두 냥을 더?”

“이 거리뿐만 아니라 남경부 남쪽을 소로까지 쫙 훑어 드립니다.”

조운룡은 흥미가 생겼다.

“만일 거기에도 없으면?”

거지가 손가락을 넷을 폈다.

“당연히 네 냥을 더 내셔야죠. 그러면 남경부 성안을 샅샅이 뒤져드립니다.”

조운룡이 계산해 보았다. 모두 동전 일곱 냥.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조운룡으로서는 약간 망설여졌다.

“성안에 없으면 가격이 더 올라가겠군. 여덟 냥으로.”

거지가 고개를 저었다.

“성 밖까지 다 뒤지려면 그때는 열여섯 냥을 내야 합니다.”

“곱절씩 가다 갑자기 왜 네 배가 되는 건데?”

“헤헤. 많은 분들이 그리 말씀하시죠. 하지만!”

거지가 쭈그리고 앉아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성을 그리고 성밖에 같은 크기의 동그라미를 동서남북에 그리니 딱 네 곳이다.

“이해가 가시죠?”

“그렇구나.”

조운룡이 감탄하였다. 거지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주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조운룡이 머릿속으로 따져 보았다. 강소군을 찾는다고 벌써 며칠째 묵으며 낸 방값이 적지 않다. 마음속으로 결정하고 물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믿지? 대충 시간만 보내다 와서 못 찾았다고 할 수도 있지.”

“예리한 질문이십니다. 저희 스스로도 저희를 못 믿는 판에 어떻게 고객에게 믿어 달라 하겠습니까. 그래서!”

거지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지가 품에서 부스럭거리며 때에 찌든 헝겁 조각을 꺼냈다.

“그게 뭐냐?”

거지가 펼쳐 보였다.

「개방 남경분타 소걸아」

아래쪽에 남경분타주라는 서명과 함께 지저분한 수결이 보인다.

“개방?”

소걸아가 자신의 허리춤을 보여 주었다.

“개방 삼결개로군.”

“개방도는 구걸을 할지언정 사기는 치지 않습니다.”

“흥! 수많은 거지 가운데 별의별 놈이 다 있을 텐데 그걸 어떻게 믿나?”

“방규가 그렇다는 겁니다.”

조운룡은 말문이 막혔다. 소걸아는 정말 영악한 거지였다.

‘이런 놈이 왜 동냥질을 하는 거지?’

조운룡이 투덜거리며 동전 한 냥을 주었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찾는 분의 존함과 인상착의가 어찌 되는지요?”

“이름은 강소군. 나이는 이십 대 중반? 긴 창을 가지고 다니지. 얼굴은 대충 생겼어.”

소걸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름은 딱 들어도 가명이로군요. 긴 창을 들고 있지 않다면 남는 건 이십 대 중반에 대충 생긴 남자입니다.”

조운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찾을 수 없다는 거야?”

소걸아가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한 냥을 더 내셔야 합니다.”

“뭐라고?”

“이렇게 부정확한 정보를 주시면 확인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니 어쩔 수 없습니다.”

“으으.”

조운룡이 다시 한 냥을 건넸다.

소걸아가 웃으며 말했다.

“쉬고 계시면 한 시진 내로 찾아가겠습니다.”

“어디 가서 쉬라는 거야?”

“어디든 가 계시죠. 찾아갈 수 있습니다.”

소걸아가 거리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당한 것 같은데?’

소걸아의 뒷모습을 보며 찜찜해하는 조운룡이 갑자기 옆에 있던 주루로 들어갔다.

거리를 순찰하는 관병들이 주루 앞으로 우르르 지나갔다.

주루 구석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조운룡은 아무래도 자신이 속은 것 같아 허탈해하였다.

‘대도시는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더니 정말 그렇군.’

돈이 아까운 건 아니다. 주머니는 가볍지만 고작 두 냥에 연연해할 졸장부는 아니다.

다만 강소군의 행적은 찾지 못하고 관병들에게 쫓기는 상황이 답답했다.

술 한 병이나 비웠을까? 은근 취기가 오르는데 주루로 들어오는 소걸아가 보였다.

‘어? 진짜로 찾았나?’

그런데 소걸아가 자신을 가리키며 뒤따라온 사람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저기 있습니다.”

소걸아를 따라 들어온 두 사람은 조운룡도 아는 이들이었다.

“삼공자! 얼마나 찾았는지 아십니까?”

두 사람은 도룡회의 도객들이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회주께서 크게 다치셨습니다. 어서 가셔야 합니다.”

“뭐라고?”

조운룡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조운룡이 도객들과 급히 주루를 나가는데 소걸아가 뒤에서 소리쳤다.

“조 소협! 이 거리에 그 사람은 없습니다.”

소걸아가 자신의 전낭에 든 은자를 만지작거렸다.

“오늘 밤은 재수가 좋구나. 가만 누워 있는데 돈이 굴러들어오다니.”

소걸아가 길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잠시 후 소걸아는 동문 밖 관제묘에 나타났다. 손에는 마른 음식과 만두가 잔뜩 들려 있다.

어린 거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공평하게 나눠 먹어!”

소걸아가 으름장을 놓고는 관제묘로 들어갔다. 다 쓰러져 가는 버려진 사당이 개방 남경분타였다.

신상 아래 늙은 거지 하나가 죽편을 다듬고 있었다. 늙은 거지는 무려 칠결개였다.

“사부님, 이거 좀 드십시오.”

소걸아가 만두를 내밀었다.

“오늘 재수가 좋았던 모양이구나. 역시 너를 제자로 들이길 잘한 거야.”

오개가 만두를 뜯어 먹으며 흡족해하였다.

“당연한 말씀을 또 하시고. 하지만 자주 들어도 좋네요. 앞으로도 쭉 뿌듯해하실 겁니다.”

소걸아가 옆에서 같이 만두를 뜯었다.

“오늘 큰 건을 하나 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클클, 큰 건?”

“도룡회에서 화룡도를 찾는 걸 바로 해결해 주었죠. 그 덕분에 만두를 먹고 있는 겁니다.”

“크크, 집 나간 화룡도 덕분에 우리가 만두를 먹는구나.”

“그리고 혈마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남경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오개의 눈빛이 호기심이 스쳤다.

“혈마? 강소군 말이냐?”

“사부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내가 모르는 게 있단 말이냐?”

“하기는 그러니 남경분타주시죠.”

“이제는 늙어서 분타주 노릇 하기도 힘들구나.”

“크크.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들은 말입니다.”

-딱!

오개가 소걸아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강소군은 강부의 강휘 공자다.”

“네?”

소걸아가 약간 놀랐다.

“황실의 외척이 혈마라니! 이거 정말 큰 정보인데요? 잘만 하면 한몫 단단히 챙기겠어요.”

소걸아가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오늘 들은 정보도 꽤 재밌을걸요?”

소걸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런 얼굴로 말했다.

“대정무각과 도룡회가 대판 붙는다는 소문이 있었지요? 오늘 들으니 도룡회주가 크게 다쳤나 봐요.”

늙은 거지의 눈에 한 줄기 광망이 스쳤다.

“흐음. 결국 십대 고수 둘이 한판 붙었구나.”

“이런 정보는 돈은 안 되겠죠? 순식간에 퍼져서 천하에 모든 사람이 알게 될 테니까.”

“하지만 뭘 해야 할지는 알 수 있겠지.”

“하다니요?”

“요천루주가 죽고 천무방이 혈마에 의해 반절이나 상하고 도룡회와 대정무각이 붙어 양패구상을 한다? 이게 무슨 의미로 들리느냐?”

“….”

“천하사패의 세상이 끝나 간다는 것이다.”

말이 남경분타주이지 사실상 은거 중인 개방의 태상장로 오개가 어린 제자에게 말했다.

“이는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지.”

“새로운 세상이요?”

소걸아의 눈빛이 반짝였다.

***

강부의 주인이 돌아오고 대문이 열렸다. 그 사실은 남경 조정과 세도가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수년 사이 몰락했다고 하나 지난날 강 국공과 영안공주의 위상을 기억하는 자들은 강부의 행보를 주시하였다.

강소군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모상이 전전긍긍하며 말했다.

“조왕은 왕년에 역모의 의심을 받은 자입니다.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모상이 강소군을 만류하였다.

“걱정 마십시오. 그저 황실의 어른을 찾아뵙는 겁니다.”

강소군이 담담히 말했다.

“정말이지요? 그래도 걱정입니다. 예전에 국공께서는 조왕은 정말 음흉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속에 구렁이가 아홉 마리는 들었을 거라고 했지요.”

‘그러니 역모의 죄도 피할 수 있었겠지.’

주고수는 선황 시절 역모를 꾀했다는 의심을 받았으나 심복이 죄를 뒤집어쓰고 죽었다.

이후 하남 팽덕에 유폐되어 은거해 왔는데 현 황제가 등극한 이후 남경 조왕부로 옮겨 와 머물고 있다.

모상은 황실과 세도가의 권모술수가 얼마나 음험한지 안다.

강소군이 젊은 혈기에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들어갈까 걱정이다.

강소군이 담담하게 웃었다.

“구렁이 아홉 마리요? 정말 그런지 직접 만나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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