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70화 (7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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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련지에 거하는 이십여 젊은 남녀들은 연화심과 중랑이 오자 은근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대개 십여 세부터 청련지에서 수련을 해 왔기에 바깥세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우중려는 연화심에게 호감을 가진 듯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을 걸었다.

“연 낭자께서 청련지를 둘러보시고 싶다 하여 나왔습니다.”

청매가 대신 대답하였다.

“하하. 늘 똑같은 곳인데 새삼 볼 게 뭐 있겠습니까? 연 낭자와 중 형은 강호 경험이 풍부하시니 답답하시겠지요?”

우중려는 험한 일을 겪어 보지 않은 그야말로 귀공자였다. 눈에는 앞날에 대한 희망이 가득했다.

연화심은 그가 일 년 전 자신과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그때 자신은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럴 리가요. 청련지는 선계와 같은 곳이라 볼수록 놀랍답니다.”

연화심은 우중려가 호의로 다가오는 걸 알고 있으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은근히 경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약해 다가오는 사람을 대놓고 내치지 못한다.

우중려가 다가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좋은 곳이지요. 하지만 평생 이곳에 있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생이겠습니까? 저는 장주님처럼 평생의 짝을 만나 강호를 주유하고자 합니다.”

이곳 젊은이들은 유문광을 장주라 불렀다.

유문광은 이들의 무공을 지도하였으나 사제관계는 맺지 않았다.

“우 공자께서 진정 원하신다면 그런 날이 오겠지요.”

우중려가 연화심의 말에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겁니다.”

“저는 오라버니를 뵈러 가야겠어요.”

연화심이 인사를 하자 우중려는 아쉬워하면서도 돌아서 갔다.

연화심은 중랑의 거처로 향했다. 중랑은 서찰을 읽고 있었다.

“마침 잘 왔다. 그렇지 않아도 부르려 했다. 화천대가 산 아랫마을에 당도했다는 연락이 왔다.”

“아. 드디어 왔군요.”

중랑은 노이칠에게 부탁해서 화천대를 수소문한 바 있다.

중랑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천무방의 추격이 끈질겼던 모양이다. 돌아온 이는 화천대주를 포함하여 일곱 명이라는구나.”

“…?”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중랑은 연화심이 또 심적 부담을 느낄까 봐 노파심에서 말했다.

연화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화천대를 만나러 가려는 것이다.

중랑이 따라 나왔다.

청련지에서 산 아랫마을까지는 걸어서 반나절 정도 걸린다.

중랑은 묵묵히 연화심을 따라가다 문득 물었다.

“며칠 전 보니 검의 변화가 더욱 다양해졌더구나.”

연화심이 고개를 돌렸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중랑의 의도를 알았는지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대연의결은 정말 놀라워요. 어쩌면 천성검법 고유의 심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연화심은 요즘 대연의결에 푹 빠져 심득을 헤아리는 중이다.

중랑 또한 유문광의 검을 본 뒤 다시 한 번 깨달음을 얻어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 대연의결은 천성육십사식의 변화를 완전하게 펼칠 수 있는 심법이다.”

중랑은 대연의결을 익힌 뒤 천성육십사식 초식에 담겨 있는 검의(劍意)를 완전하게 깨달았다. 그런 상태에서 유문광의 검을 보는 순간 초식을 버리는 경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중랑은 이제 절정을 넘어 초절정으로 가고 있다. 지금 무창쌍과를 만난다면 결과는 알 수 없다.

연화심의 무공 또한 일취월장하였다.

무창쌍과의 독수에 생사를 넘나든 것은 기연이었다.

연화심은 죽음을 경험한 뒤 무인으로서 지니는 근본적인 공포를 떨칠 수 있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연화심의 검을 자유롭게 하였다.

다만 연화심은 검초의 진수보다는 변화의 묘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두 사람이 산 아랫마을 화천대가 머무는 곳으로 갔다.

“아가씨!”

화천대주 초지항이 연화심을 보고 감격하여 달려왔다.

초지항은 적들이 추격을 멈추는 걸 보고 연화심을 쫓는다고 판단하였다.

끝내 따라붙는 귀영대 추격조를 유인하여 섬멸하였다. 이후 연화심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노이칠이 보낸 자의 전갈을 받고 긴가민가하며 달려왔다.

연화심이 무사한 걸 보자 그간의 노고가 씻은 듯 사라짐을 느꼈다.

“초 대주님!”

연화심은 말을 잇지 못했다. 초지항이야말로 아버지의 제자나 마찬가지다.

초지항과 화천대는 연성결로부터 직접 회천십이도의 진수를 이어받았다.

“문주님 소식은 들었습니다.”

초지항의 눈에 분노의 빛이 일렁거렸다.

“아가씨마저 당하셨다면 우리는 천무방으로 쳐들어갈 작정이었지요.”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죠. 아버지 말씀을 잊으셨나요?”

연화심은 더 이상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다. 복수는 오로지 자신의 몫이었다.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중랑과 연화심, 그리고 초지항을 비롯한 화천대 모두가 둘러앉았다. 모두 아홉 명이었다.

“아가씨, 복건으로 갑시다! 부족함이 있더라도 복건은 아가씨 장원입니다. 남의 집보다는 나을 겁니다.”

초지항이 말했다. 연화심이 고개를 저었다.

“조만간 가야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심 대협께서 저를 구하려다 중상을 입었습니다. 장 대협께서 약을 구하러 가셨는데 시일이 좀 걸릴 겁니다. 그동안은 이곳에 머물며 간병을 해야 합니다.”

“그렇군요.”

초지항이 무슨 뜻인지 알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초 대주께서 먼저 복건으로 가셔서 그곳 상황을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초지항과 화천대는 며칠 후 복건으로 떠났다.

연화심과 중랑은 청련지에서 무공을 수련하며 심마백을 돌봤다.

***

강소군은 부모의 묘에 술을 올렸다.

“공자님께서는 무사합니다. 두 분 편히 쉬시지요.”

곁에 선 모상이 한마디 하였다.

강소군은 오래도록 부모의 묘 앞에 앉아 있었다.

‘왔느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에게 한다는 말이 그것뿐이에요.’

어머니가 따지는 목소리도 생생하게 들려 왔다.

언젠가 실제로 있었던 대화 같기도 했다.

강소군은 어렸을 때 그를 귀여워한 태후가 불러 황궁에서 지낸 날이 많았다.

황궁에서 지내다 한두 달 만에 돌아온 그를 보고도 아버지는 왔느냐, 한마디 하고 말았다.

아버지 강일부는 말수가 적었고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래서 무척 냉담한 사람이라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강소군은 아버지가 누구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정이 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건 말이 아니라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법이다.

오히려 어머니 영안공주가 강단이 있었다.

어머니는 선황제가 조카를 몰아내고 황위를 찬탈하는 정변 속에서 자랐기에 냉정한 면도 있었다.

‘그런 어머니가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믿다니.’

강소군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이제 가시죠.”

모상의 재촉에 강소군이 일어났다.

강부 선산 옆으로 돌아오자 다시 두 기의 봉분이 보였다.

하나의 봉분 앞에 초씨 남매가 서 있었고 새로 올린 봉분에는 소복을 입은 미부가 어린아이 둘과 제상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보내드리고 가세.”

모상이 다가가더니 지전 뭉치를 들어 불을 붙였다.

-화라락!

불붙은 지전이 허공을 날았다.

이제 두어 살 되어 보이는 아이가 불붙은 지전이 신기한 듯 쫓아다녔다. 여섯 살 된 아이는 봉분 앞에 선 어머니 곁을 묵묵히 지켰다.

강소군이 소복 미부에게 다가갔다.

소복 미부는 진운초의 미망인 예씨였다.

강소군은 진운초의 묘에 술을 올리고 예를 취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미망인 예씨에게 다가가더니 허리를 숙였다.

“진 대장께서 강부를 위해 하신 일은 그 무엇으로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예씨도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강부에서 할 도리를 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옆에선 모상이 거들었다.

“강부로 들어오시지요. 진연과 진강 두 형제는 강부에서 책임지고 키울 것입니다.”

초씨 남매가 다가왔다. 그들은 당분간 강부에 머물기로 하였다.

강소군이 초씨 남매와 진운초의 가족을 돌아보았다.

이제 그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었다.

***

“호 대장이 왔습니다.”

방연소가 보고 있던 서책을 덮었다.

남경부 관병을 지휘하는 호극검이 들어와 머리를 숙였다.

“대학사님을 뵙습니다.”

호극검이 극진하게 예를 취했다.

방연소와 같이 높은 자가 불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호 대장, 바쁜 줄 알지만 중요한 일이라 이리 청했네.”

“청하시다뇨. 말씀만 하시면 달려와얍지요.”

방연소가 정중하게 예를 취하자 호극검이 당황하여 허리를 깊숙이 굽혔다. 남경부에서 방연소의 위세는 황제나 마찬가지다.

“실은, 아들 일이라 사적인 일일 수도 있으니 묻기가 그렇긴 한데….”

“아! 방 공자를 습격한 놈들 말씀이시군요. 부상을 입은 둘은 어디 숨었는지 행방이 묘연합니다. 한 놈이 사방을 휘젓고 다니는데 아무래도 이목을 끌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깟 놈이 별수 있겠습니까. 조만간 잡힐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슨 말인지 알아챈 호극검이 장담을 하였다.

방연소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이런 놈이 관병 대장을 하고 있다니 한심스러웠다.

방연소가 내심을 감추고 말했다.

“호 대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곰곰 생각하다 짚이는 바가 있어 이리 청했네.”

“짚이는 바라니요?”

“일옥을 암습할 때는 네 명이었네. 그중에 한 놈이 그 자리서 죽고 둘이 부상을 입었지.”

“공자님의 무공이 대단하다더군요. 그놈들을 혼자서 다 해치우셨다지요?”

호극검이 눈치 없이 방일옥을 치켜세웠다.

방연소가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옥이 제법 재주가 있긴 하네. 하지만 관병 수십 명을 단숨에 물리칠 실력은 아니지.”

“…?”

호극검은 방연소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대답을 못 했다.

“일옥이 네 명 중 하나를 죽이고 둘에게 부상을 입혔네. 일옥의 몇 수도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친 놈이 느닷없이 나타나 관병 수십을 단숨에 제압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관병들이란 게 창만 들었지 일반인이나 다를 바가 없지요.

호극검이 개탄스럽다는 듯 내뱉었다.

방연소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마터면 호극검을 쳐 죽일 뻔했다.

‘이런 한심스러운 놈을 봤나?’

호극검은 무공은 높으나 머리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순전히 형부시랑의 조카라는 것 때문이었다.

방연소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호 대장. 생각해 보라고. 일옥을 못 이기고 도주한 놈들이네. 그런데 그중에 한 놈이 관병 수십 명을 단숨에 제압하고 날뛰다 사라졌다는 건 이상치 않은가? 게다가 자네가 직접 추적을 하는데 번번이 눈앞에서 놓치고?”

“아하!”

그제야 호극검이 무언가를 깨달았다.

“같은 놈이 아니로군요. 이제까지 엉뚱한 놈을 쫓았군요!”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군.”

호극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도주하는 놈이 자객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 어디 덧나나?’

호극검이 우둔하기는 하나 자존심마저 없는 이는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 방연소는 너무 머리를 쓴다.

방연소는 호극검의 머릿속을 볼 수 없으니 당연히 그런 불만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아둔한 그를 탓하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성벽에 걸어둔 자객의 머리가 사라졌잖나. 초병들이 밤새 오가는데 머리를 가져갔다는 건 무척 뛰어난 자라는 뜻 아닌가?”

“….”

호극검은 듣기만 하였다. 괜히 대답했다가 무시당하기 싫었다.

방연소가 속으로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내 생각에는 배후가 남경부에 있는 것 같네. 그것도 대단한 고수가 아닐까 싶네.”

“….”

“최근에 남경부에 나타난 고수가 누군지 아는가?”

“그거야 조사해 보면 금방 나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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