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도룡회는 산동을 근거로 활동을 한다. 여기 남경 부근까지 내려왔다면 대정무각과의 싸움일 가능성이 높았다.
도룡회 도객들이 칼을 겨눴다.
“대정무각과 한편이냐?”
강소군은 자신을 겨눈 칼에 시선을 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밤중에 관도를 버리고 길을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다만 조운룡을 생각하니 도룡회와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강소군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워낙 순식간이라 도객들은 따라잡을 생각을 못 하고 쳐다만 봤다.
강소군이 멀어지고서야 신호를 울렸다.
강소군이 신법을 극성으로 펼쳐 고갯마루를 지나는데 어둠 속에서 불빛이 흘러나오는 초막이 하나 보였다.
“누구냐?”
초막에서 두 줄기 인영이 튀어나오더니 도광을 날렸다. 어둠을 가르며 날아온 도광에 은은한 붉은빛이 감돈다.
‘화룡도?’
강소군이 다가오는 인영을 봤는데 조운룡이 아니다. 다만 같은 기운이 담겨 있어 조운룡의 동문임을 알 수 있었다. 나이들이 좀 더 많아 보였다.
‘조운룡의 사형들이로군.’
강소군은 무기가 없었다. 허공에서 양손을 펼쳐 휘젓자 기류가 형성되며 날아오는 도광을 흐트러뜨렸다.
염기창과 석병도는 내심 놀랐다. 칠성 공력을 기울여 펼친 화룡도법을 맨손으로 무력화시키는 이가 있을 줄 몰랐다.
-퍼펑!
태극권에 쓸려 비켜나간 도기가 땅바닥을 치며 폭음이 일었다.
“와아!”
사방에서 도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강소군은 그대로 돌파하기가 어렵자 멈추고 돌아봤다. 어림잡아도 백여 명의 도객들이다.
‘이만한 무력대를 동원했다면 작은 싸움이 아니로군.’
강소군의 머릿속이 바삐 회전하였다.
‘대정무각은 주첨기를 호위하고 있다. 도룡회가 여기를 막고 있다는 건 주첨기를 잡으려는 것이다.’
강소군은 의아했다. 도룡회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으나 조정과 연계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강호의 한 방파로 여겼는데 대정무각을 막고 있다니 의외였다.
염기창이 나섰다.
“무슨 일로 도룡회를 찾은 것인가?”
염기창은 강소군이 도룡회 수뇌부가 있는 초막으로 난입한 것으로 오해했다.
“지나가던 사람일 뿐이오.”
“지나가던 사람? 이 산이 봉쇄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나?”
“천하의 길은 천하 모든 이가 낸 것. 누가 길을 막는단 말인가?”
강소군이 담담히 대꾸하자 염기창이 내심 감탄했다.
백여 명의 도객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당당한 강소군의 태도가 놀라웠다.
달빛이 모두를 비췄다. 염기창이 달빛에 드러난 강소군을 살피며 물었다.
“귀하의 성명과 사문을 물어봐도 되겠는가?”
염기창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강호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오.”
강소군은 자신을 강호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하하. 내가 본 그 어느 고수보다 대단한 분이 강호와 상관없다? 이 말을 누가 믿겠나?”
염기창은 지나가던 사람이라는 강소군의 말을 믿었다. 다만 그의 정체를 모르고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대정무각과 큰 싸움을 두고 있다. 작은 틈 하나에 거사가 무산될 수도 있다.
강소군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백여 명에게 둘러싸인 자라고는 여길 수 없을 만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쉭!
강소군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헉!”
옆에 있던 도객이 숨을 들이켰다. 팔에 찌르르 울리고 도를 놓쳤다. 그 도는 어느새 강소군의 손에 들어갔다.
강소군은 도를 잡자마자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며 내리쳤다. 무려 일 장 가까운 도기가 쑥 뿜어져 나와 도객들 쪽으로 향했다.
“피해라!”
염기창이 도를 휘둘러 맞받아쳐 가며 외쳐다. 도기에 실린 경력이 대단하다는 걸 알고 전력을 다했다.
-쾅!
사방으로 도기가 흩어지며 염기창이 튕겨 나갔다.
강소군의 도에 실린 경력은 무지막지하였다. 염기창과 부딪치는 순간 공력을 발산하여 사방으로 도기를 퍼뜨렸다.
“크윽!”
거센 도기에 도객들이 주춤 물러났다.
그 사이 강소군이 몸을 날렸다.
“어딜 감히!”
사형이 당하자 석병도가 몸을 날려 가로막았다.
-쉬이익!
강소군이 도를 횡으로 긋자 석병도가 몸을 회전하며 도를 세웠다.
-쾅!
“크윽!”
석병도 역시 강소군의 경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그 사이 강소군은 몸을 빼어 신법을 펼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염기창과 석병도가 주춤거리며 도를 세웠으나 강소군은 이미 이십여 장 밖을 질주하고 있었다.
“어린놈이 대단하구나!”
초막에서 다시 한 줄기 도광이 어둠을 가르며 날아왔다. 붉은 기운을 띤 눈부신 도광에 마치 사방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도광은 실체를 지니고 있었는데 날아올수록 커지더니 강소군에게 이를 때는 삼 장에 달했다.
어마어마한 도기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강소군도 경시하지 못하고 허공에서 몸을 회전하며 도를 휘둘러 도광을 비켜 쳐냈다.
강소군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다시 몸을 솟구쳐 삼 장을 물러나더니 고갯마루를 넘어가 버렸다.
우문극이 초막에서 나왔다. 극히 침중한 안색이었다.
‘내 칠성 공력을 담은 도를 막다니. 저놈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초막에 있던 우문극도 바깥에서의 대화를 들었다.
대정무각과 상관없는 이라는 걸 알았으나 혹시 몰라 붙잡아 두려 했는데 상대는 자신의 도기를 흘리고 사라졌다.
게다가 그 상대가 자신의 제자보다 젊은 청년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모라는 중년 여인이 우문극 옆에 섰다.
“대정무각과는 상관이 없는 자 같군요. 대사를 앞두고 있으니 보내 주시지요.”
두 사람이 멀어져 가는 강소군의 뒷모습을 지켜보는데 뒤에서 탄성이 들렸다.
“아!”
불모가 돌아보니 교화가 강소군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는 자인 것이냐?”
교화는 뒤늦게 나와 멀리 달빛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강소군의 뒷모습만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왠지 낯익은 사람 같았다.
“제가 아는 사람은 죽었습니다. 제가 잘못 본 모양입니다.”
교화의 얼굴이 다시 평소처럼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우문극이 침중한 얼굴로 염기창 등에게 일렀다.
“곧 새벽이다. 대정무각의 지원군이 올 것이니 준비하라.”
대적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않았다면 그가 직접 쫓아 누군지 확인을 했을 것이다.
그 역시 무인으로 자신의 도기를 쳐낸 자가 궁금했으나 천중일검 백정무를 상대하는 게 더 급했다.
***
‘정말 대단한 자였다. 그가 작정하고 나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도강을 뿌렸을 것이다.’
삼 장 크기의 실체를 지닌 도기를 뿌릴 수 있다면 도강 역시 구사할 수 있는 고수라는 뜻이다.
천하에 도강을 구사할 수 있는 자는 손으로 꼽을 것이다. 검강보다 더 어려운 것이 도강이다.
화룡도 조운룡이 명성을 얻고 있으나 그 역시 도 끝에 간신히 형상을 맺을 뿐이다. 제대로 된 도강은 가르지 못하는 것이 없다.
강소군 역시 도강을 구사할 수 있다. 심지어 창강을 뿌리기도 한다.
하지만 강기에도 크기와 수준이 있다.
삼 장 정도에 이르는 도광을 뿌리는 자라면 적어도 반 장 정도의 도강을 구사할 것이다.
‘도룡회주!’
강소군의 머릿속에 자연 도룡회주라는 별호가 스쳤다.
도기를 쳐낸 팔이 아직도 얼얼한 걸 보면 도룡회주임이 분명했다.
‘십대고수의 일인이라더니. 과연 그럴만하구나.’
강소군의 금단진공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정상적으로 강소군의 성취에 이르려면 자질이 뛰어난 자가 한평생을 고련해야 할 것이다.
양의심공을 바탕으로 한 금단진공은 일반 내공 공부보다 훨씬 더디었다.
금단진공은 양의심공처럼 또 하나의 의식으로 운공을 하는 공부다. 하지만 일상에서 끊임없이 의식을 나눠 가며 금단진공을 연공할 이는 없을 것이다.
강소군은 무총에서 혈룡기가 들어온 뒤 이를 제압하느라 끊임없이 금단진공을 운용해야 했다.
심지어 자면서도 금단진공을 운용해야 혈룡기의 폭주를 막을 수 있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금단진공에 대한 강소군의 공부는 무척 깊어 어쩌면 창안한 현치자 이상일 수도 있었다.
게다가 강소군에게는 스스로 혈룡기라 부르는 혈기가 있다. 무총에서 스며든 혈룡기는 금단진공에 의해 눌려 온몸에 퍼졌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며 혈룡기 역시 서서히 강소군의 몸과 금단진공의 영향을 받아 가고 있다.
혈룡기는 의식을 지닌 존재처럼 강소군의 몸을 흘러 다닌다.
다행히 지금은 무총에서처럼 무작정 폭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소군의 몸을 자신의 집처럼 여기며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강소군은 어제 폭주한 뒤로 혈룡기와 자신이 한층 융화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의 죽음을 듣고 분노했을 때 혈룡기는 폭풍우를 헤치며 뇌우가 번쩍이는 하늘로 치솟는 한 마리 혈룡처럼 날뛰었다.
그 뒤 깊은 한을 토해내며 통곡을 하는 과정에서 혈룡기는 강소군의 심중을 알기라도 하듯 잠잠해졌다.
통곡을 할 때는 몰랐는데 깨어나 생각하니 혈룡기가 마치 그를 위로하듯 전신을 어루만졌던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혈룡기가 순순히 자신을 따르고 있다.
평소 금단진공을 운용할 때보다 훨씬 적은 의식으로도 혈룡기를 제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강소군이 쓸 수 있는 금단진공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강소군은 강호에 나온 뒤 금단진공과 혈룡기 덕분에 상대가 그 누구든 어렵지 않게 제압했다.
그럼에도 방금 날아온 도기는 감당하기가 벅찼다.
‘내공이나 도법만 보자면 요천루주 이상이었다.’
사술에 능한 요천루주 역시 무척 까다로운 상대였으나 방금 도기를 날린 자는 그 이상의 상대일 것이다.
‘그가 도룡회주였다면 천무방주 구연강 역시 그에 못지않은 고수일 것이다.’
강소군은 처음으로 강호의 고수에 대해 생각하였다.
천무방주 천수무흔 구연강은 십대고수 서열 오 위로 화룡진인 우문극보다 한 수 위로 꼽힌다.
십대고수 간의 서열이 무의미하다 하나 분명 이유가 있으니 그리 나누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질주하다 보니 어느새 남경이다.
새벽 옅은 어둠에서 깨어나는 남경을 보는 강소군의 표정이 싸늘하였다.
***
“정말 기이한 곳이구나. 아직 초봄인데 이리 온화하다니.”
연화심이 연잎이 푸른 호숫가를 거닐며 중얼거렸다.
청련지는 확실히 특이한 곳이었다. 산중에 이렇듯 넓은 분지가 있고 그 안에 맑은 호수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마치 세상과 떨어진 별세계와 같았다. 기후조차 밖과는 달라 온화하였다.
“이곳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답니다.”
청매라는 시비가 연화심의 말을 받았다. 연화심이 청련지를 돌아보고 싶다고 하자 안내를 자처했다.
“두 분 선배님께서는 이곳에서 신선처럼 거하시는군요.”
청매는 대답하지 않았다. 주인에 대해서는 일체 말을 하지 않는 무척 충직한 시비였다.
연화심은 청련지에 와서야 이곳이 대정무각의 고수를 키우는 곳임을 알았다.
청련지가 있는 산아래 마을이 있었다. 계곡 깊숙한 곳에 있는 이백여 호가 넘는 큰 마을은 여느 산촌이 아니었다.
대정무각 각처에서 선발된 고수들이 머물며 수련을 하고 있었다.
청련지는 마을에서 한창 거슬러 올라야 나오는 분지에 있어 마을에서는 존재 여부를 알 수가 없었다.
유문광의 서신 덕분에 연화심과 중랑은 산마을이 아니라 청련지에 머물렀다.
연꽃 가득한 호숫가에 선 그림 같은 장원이 유문광의 거처였다. 청련지 장원에는 유문광이 특별히 선발한 후기지수들이 묵으며 수련을 하였다.
연화심이 호숫가 대나무 숲을 지나 나오는데 검을 든 무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연 낭자. 어디를 다녀오시는지요?”
눈빛이 맑고 낯빛이 흰 젊은 남자는 무척 준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