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68화 (68/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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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노이칠은 고통에 못 이겨 신음성을 내뱉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노이칠이 자신의 복부를 살펴보았다. 예리한 도에 길게 쓸려 나간 상처가 깊었다.

도룡회 십일도 도객 둘과 격전을 벌이다 입은 상처였다. 다행히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피륙의 상처건만 이렇게 당한 기억이 오래이니 고통이 새삼스러웠다.

“이칠아. 네가 그동안 편했던 모양이구나.”

노이칠은 스스로에게 말하고는 금창약을 뿌리고 상처를 꿰맸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노이칠은 주위를 살폈다. 멀리 모닥불을 끼고 앉아 있는 주첨기는 다행히 다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불 무더기 옆에 누워 있는 상관청유는 팔 하나를 잃었다.

염가가 자신의 혈판 알을 모두 던져 우문극을 막지 않았다면 주첨기와 상관청유는 죽었을 것이다.

‘도룡회! 결국은 뒤통수를 치는구나!’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느닷없는 기습이었다. 도룡회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합비 지부 육일청의 사병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우문극이 직접 오다니.’

노이칠은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중턱 어디쯤에선가 염가와 육각의 살수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그 아래 도룡회의 고수들이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노이칠은 자신의 상세를 돌보고 상관청유에게 다가갔다. 상관청유는 모닥불가에 누워 있었다.

“형님, 괜찮소?”

상관청유가 눈을 뜨더니 피식, 웃었다.

“팔 한 짝이 무슨 대수라고 그리 죽을상이냐? 셈은 머리로 따지는 것이다.”

“그래, 셈을 따져 보니 어떻소? 우리가 이 포위망을 벗어날 것 같소?”

“흥! 우문극이 직접 올 줄은 몰랐지. 하지만 여기가 그의 묫자리가 될 것이다.”

“우문극은 정말 대단한 자였소. 일도로 형님의 팔을 끊어내다니. 그놈을 죽이려면 아무래도 대형께서 오셔야 할 것 같소.”

상관청유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밤하늘의 별들이 빛났다.

“동이 트기 전에 도착하실 게다.”

그들이 말하는 대형은 대정무각의 일각주 천중일검 백정무였다.

백정무는 천하 십대고수로 서열 칠 위로 꼽히는 고수다.

도룡회 회주 천마도 우문극이 십대고수 서열 육 위라고 하지만 상관청유나 노이칠은 세간의 순위를 믿지 않았다.

십대고수들이 서로 겨뤄 본 적이 없으니 그 순위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대형 백정무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 있으니 당연히 우문극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니, 믿어야 했다.

노이칠이 클클, 웃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구려. 나는 이 황량한 산중에서 죽고 싶지는 않소.”

“그럴 일은 없을 게다.”

상관청유가 중얼거리며 한쪽을 쳐다봤다.

낙척서생 유문광과 칠묘 반여월이 바위에 나란히 앉아 운기조식하고 있었다.

“칠제와 팔매가 전력을 다한다면 우문극도 잡을 수 있다고 본다. 두 사람은 정이 깊어 마치 한 사람과 같으니 협공한다면 우문극의 목도 칠 수 있겠지.”

상관청유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다만 적의 책사가 누군지 모르니 걱정이구나. 우리의 수를 읽고 이리 강력한 매복을 치다니.”

“뒤에 숨어서 머리 쓰는 놈이 두려울 게 뭐요. 그저 베어 버리면 그만인걸.”

“네가 나를 놀리는구나?”

대정무각의 책사 노릇을 하는 상관청유가 발끈하였다. 평소 노이칠은 책사를 경시하였다.

하지만 이번 적의 기습은 상관청유조차 놀랄 정도였다.

누군지 모를 그자는 육일청의 사병으로 하여금 북경으로 향하는 대정무각의 무사들을 쫓도록 하였다.

이는 상관청유의 계책에 넘어가는 듯 보이는 수였다. 상관청유는 적의 이목을 돌렸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산마을을 벗어나 주첨기를 호위하며 남경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룡회의 고수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비수처럼 찔렀다.

도룡회 회주 우문극이 이끄는 고수들이 암습한 것이다. 이는 상관청유의 계책을 훤히 읽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군사의 싸움과 고수 간의 싸움은 달랐다. 적은 철저히 고수들을 앞에 내세워 공격하였다.

상관청유가 만일을 대비하여 준비한 화총대(火銃隊)가 뒤따라오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서 모두 죽을 뻔했다.

“아무튼 어떤 놈인지 몰라도 그놈은 내가 반드시 찾아 죽이겠소.”

노이칠이 산 아래를 보며 말했다.

***

강소군은 마을에 내려가 자신이 어디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남경 북쪽 회안 부근이었다. 혈룡기의 폭주로 수백 리를 날아온 것이다.

강소군은 신법을 펼쳐 남경으로 향했다. 자신이 폭주하기 직전 모상이 혈룡기를 못 이기고 내상을 입은 것이 기억났다.

게다가 누군지 모를 적이 진운초를 해쳤다면 강부 역시 암습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한바탕 통곡으로 오랜 미망(迷妄)에서 벗어난 강소군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조정의 암류, 방연소, 장씨 일가의 몰락…. 서로 무관하지 않다!’

강소군은 태자 주첨기가 쫓기는 것 또한 조정의 암류와도 관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어떤 세력인지 몰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었다.

‘한왕은 이런 일을 꾸밀 자가 못 된다.’

강소군은 한왕 주고후를 본 적이 있다. 힘이 장사인 그는 거칠고 난폭했다.

모반을 하면 완력으로 승패를 결정짓지 이렇듯 수년에 걸쳐 은밀하게 뭔가를 꾸밀 성정이 아니었다.

강소군은 조정의 권력가 면면을 떠올리며 신법을 펼쳤다. 강부로 가서 어머니의 기록과 진운초의 보고서를 병합하면 암중의 적이 누군지 알 것이다.

강소군의 신형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

산 아래 임시로 만든 초막에 우문극이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삼십 대 초반과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도객이 서 있었다.

대제자 염기창과 둘째 제자 석병도였다.

“운룡이 그놈의 행방은 아직도 못 찾았느냐?”

염기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합비에 나타났다는 것까지는 확인됐는데 이후 행방이 묘연합니다. 다만 남경으로 가지 않았을까 추정됩니다.”

“그놈 참! 대사를 앞두고 천방지축 싸돌아다니다니.”

“운룡이가 그래도 도룡회의 위신은 제법 세웠습니다. 천무방 귀영대를 쓸어버렸더군요.”

“천무십객 중 하나인 탁탑천왕도 해치웠다던데요. 듣기로 혈마라는 자와 함께 다닌다고 합니다.”

염기창과 석병도가 조운룡의 근황을 전했다.

“하하하. 그놈이 그래도 이 사부 망신은 시키지 않는구나.”

“솔직히 그 녀석의 성취는 저보다 낫습니다.”

염기창이 조운룡을 치켜세웠다. 도룡회 사부와 사제들은 우의가 깊었다.

우문극이 흡족해하였다.

“혈마의 정체에 대해서 들어온 소식은 없느냐?”

“조만간 밝혀질 겁니다. 그 전에 운룡이가 돌아오면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요.”

우문극이 술을 들이켰다.

“대정무각 각주들이 제법이더군. 특히 염가라는 놈의 주판알과 낙척서생의 검은 강호의 일절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너희도 그들을 만나면 조심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두 사람이 들어섰다.

앞서 들어온 이는 단아한 얼굴에 후덕해 보이는 중년 여인이었고 뒤따르는 이는 보기 드문 미모의 젊은 여인이었다.

우문극이 제자들을 시켜 자리를 내주었다.

“불모(佛母), 어서 오시오. 보다시피 초막이라 불편할 것이오.”

“우리가 언제 편안한 거처에서 쉰 적이 있었나요. 이 정도면 감지덕지죠.”

불모라 불린 중년 여인이 자리에 앉고 뒤에 젊은 여인이 섰다.

우문극이 젊은 여인을 향해 말했다.

“교화(敎花)의 말대로 그들은 남경으로 왔소. 적당히 응대하다 산으로 몰아넣고 지키고 있는 중이오. 이제 어찌할 생각이오?”

젊은 여인은 교화로 불렸다. 이번 작전을 꾸민 자가 교화였다.

불모가 대신 나서서 대답했다.

“태자의 목숨은 언제든 거둘 수 있지요. 이번에 황실을 비호하는 대정무각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불모가 잠시 말을 끊고 우문극과 제자들을 살펴본 뒤 말을 이었다.

“대정무각의 각주들이 태자와 함께 산에 갇혔으니 일각주 천중일검이 직접 올 것입니다. 그를 상대할 자신은 있으신지요?”

“그와 나는 나란히 십대고수라 불리지요. 누가 누구를 이길 수 있다고 단언키는 어렵지만, 최소한 볼썽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오.”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대정무각을 지우면 황실의 힘은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우문극이 교화를 바라보았다.

불모가 교화를 돌아보고 말했다.

“네가 정세를 설명해드려야겠구나.”

교화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청아한 목소리가 혈기왕성한 석병도는 물론이고 염기창의 마음까지 흔들었다.

염기창은 혼인을 하였으나 석병도는 아직 미혼이다. 교화의 마음에 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황제는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불모께서 천기를 따져 보니 올여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교화의 말에 우문극 등이 크게 놀랐다.

황제가 즉위한 것이 지난해 여름이다. 일 년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문극과 제자들이 보자 불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모는 신통한 능력이 있어 천기를 읽고 병자를 고칠 수 있었다.

교화가 말을 이었다.

“천자의 명을 받았음에도 백성을 핍박하고 충신을 수없이 죽였으니 황조의 대가 끊기는 건 천명이라 할 것입니다.”

교화의 눈에 원독의 빛이 스쳤다.

“여기서 태자를 잡는다 해도 황실에서는 또 다른 황제를 내세울 겁니다. 암중에서 황실을 비호하는 대정무각의 힘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문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년에 주원장, 그 도적이 무림의 도움으로 황제의 위에 올랐지. 겉으로는 관무불침을 내세우고 뒤로 수많은 무림인을 도륙한 건 반드시 징치해야 하지. 천중일검이 이를 막는다면 반드시 내 손에 죽을 것이야.”

교화가 담담하게 말했다.

“명의 운을 끊으려면 반드시 대정무각을 궤멸시켜야 합니다.”

“도룡회 혈도대와 참룡대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타나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혈도대의 대주이기도 한 염기창이 나서서 말했다.

“반드시 태자의 목을 치겠습니다!”

참룡대주 석병도도 맹세했다.

***

달빛 밝은 밤길이다.

강소군은 달리고 있었다. 남의 눈이 없는 밤이 신법을 펼치기 좋았다.

“멈춰라!”

강소군 앞에 몇 사람이 나타났다.

달빛에 번뜩이는 도광이 싸늘했다.

도를 든 이들은 하나같이 검은 무복을 입었다. 가슴팍에 도룡이라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다.

‘도룡회?’

강소군은 남경이 머지않은 이곳에 도룡회가 나타난 것이 의아했다.

매복을 하고 있던 도룡회의 도객들은 나는 듯 신법을 펼쳐 다가오는 고수를 보고 긴장하였다.

한 사람이 본대에 소식을 알리고 달려가고 나머지가 가로막았다.

“어느 파의 고수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이 산은 봉쇄되었소. 돌아가시기 바라오.”

도객이 칼을 거꾸로 쥐고 강소군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강소군이 도룡회 도객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산을 넘으면 곧장 남경이 나온다. 돌아가자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급한 일이 있어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소. 그저 지나는 사람이니 길을 열어 주시오.”

강소군이 정중하게 말했다.

“여기는 싸움터요. 함부로 들어와 싸움에 휘말렸다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소. 차라리 돌아가는 게 나을 것이오.”

도객 역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듯 재차 권유하였다.

강소군은 이제 원래의 냉철한 이성을 차린 상태였다. 대번 도룡회와 대정무각이 겨루고 있음을 깨달았다.

“대정무각과 싸우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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