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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상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강소군의 살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공자님!”
-쿨럭.
모상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다시 한 번 피를 토했다. 살기에 노출된 것만으로 내상을 입은 것이다.
모상의 다급한 외침에 강소군의 무의식이 금단진공을 운용하였다. 금단진공이 깨어났으나 혈룡기의 폭주는 거셌다.
분노를 먹고 자라는 혈룡기다. 강소군의 분노에 거대해진 혈룡기는 마음껏 기세를 드러냈다.
-쾅!
강소군이 금단진공으로 깨어난 한 가닥 의식을 추슬러 창문을 깨고 날아갔다.
그날 밤 남경성 하늘에 붉은 혈룡이 나타나 사라지는 걸 많은 사람이 보았다.
***
-쿨럭, 쿨럭!
서늘한 강부의 지하실에서 모상은 연신 기침을 하였다. 의원이 진운초의 시신을 검안하는 중이었다.
“총관께서는 들어가 쉬시지요.”
“아닐세.”
모상은 강부의 일을 하다 끝내 목숨을 잃은 진운초와의 의리 때문에라도 자리를 피할 수 없었다.
“독이 아닌 듯하군요.”
진운초의 폐를 열어 본 의원이 중얼거렸다.
“독이 아니라고?”
“독이라면 이렇게 망가지지 않지요. 여길 보면 마치 무언가 살점을 뜯어 먹은 것 같지 않습니까?”
의원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모상이 보니 진운초의 폐는 무언가가 갉아 먹다 남은 고깃덩어리 같았다.
“죽기까지 무척 괴로웠을 겁니다. 폐가 이리 망가지다니.”
의원이 혀를 내둘렀다.
모상이 침통한 얼굴로 진운초를 바라보았다. 그 고통을 감당하고 죽기 전에 크게 웃은 진운초가 새삼 대단했다.
강 국공과 영안공주를 감히 해부할 수는 없었다. 진운초는 죽기 전에 자신의 시신을 검안하라고 했다.
모상은 진운초의 시신을 향해 두 번 절을 하였다.
“진 대장, 뒷일은 걱정 마시오. 강부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오.”
모상은 진운초의 가족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진운초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이제 걸음마를 뗐다.
미망인은 아직 진운초의 죽음을 모를 것이다.
-쿨럭!
모상이 다시 기침을 하는데 피가 나왔다.
“총관의 내상도 깊으니 어서 갑시다.”
의원이 모상을 잡아끌고 지하실을 나왔다.
“독이 아니라면 대체 뭐요?”
“아무래도 충(蟲)인 듯합니다.”
“벌레라고?”
“이런 벌레는 중원에 없습니다. 대체 어쩌다 몸에 들어갔을까요?”
의원이 오히려 모상에게 물었다. 모상이 정색을 하였다.
“오늘 일은 절대 함구하게. 아니면 자네 목숨도 부지 못 할 수 있네.”
“저도 눈치는 있습니다. 어서 이리와 진맥을 받으시지요.”
의원은 모상을 진맥하더니 약방문을 지어 주고 갔다.
모상은 자신의 부서진 창문을 수리하는 하인들을 보았다.
‘대체 어디로 가신 걸까?’
강소군은 그날 밤 사라진 뒤 사흘째 나타나지 않았다.
***
-쾅!
절벽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위가 비처럼 쏟아졌다.
강소군은 무너져 내리는 바위를 미친 듯이 쳐냈다. 바위들이 부서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제야 강소군은 간신히 진정하였다.
두 눈에 가득했던 붉은 기가 금단진공에 의해 점차 사라졌다.
‘여기가 어디지?’
산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얼마나 폭주했는지 여기가 어딘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다만 붉은 혈룡의 기운을 따라 미친 듯이 질주하였다.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가 가장 컸다.
“으허허허.”
갑자기 강소군이 엎드려 통곡을 하였다.
자신이 너무나 하잘것없고 어리석었다는 자책에 휩싸였다. 그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었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사실 무총에서 일어난 일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를 이겨내고 빠져나왔을 때 강소군의 의식은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강소군은 당시 반쯤은 혼이 나간 상태였다. 그렇게 강부에 와서 어머니의 죽음과 친우, 정혼녀의 소식을 듣고 다시 충격을 받았다.
도저히 냉철한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그는 미친 사람처럼 뭔가에 홀린 듯 강부를 나갔다.
머릿속에서는 오로지 친우와 정혼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강소군은 부유하는 혼처럼 서북변방을 떠돌았다.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여겼으나 실제로는 머릿속을 맴도는 미망(迷妄)에 따라 행동할 뿐이었다.
가로막는 자는 죽였고 거치적거리는 건 부쉈다. 그렇게 친우의 종적을 좇아 동정호 백륭사에까지 이르렀다.
그날.
새외삼흉이 찾아와 죽던 날.
연화심의 맑은 눈빛이 그의 영혼에 일침을 가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중천(重天)을 떠도는 혼처럼 세상을 부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연화심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 어린 순수한 눈빛이 그의 영혼에 한 가닥 빛을 심었다. 일 년 뒤 연화심이 다시 찾아왔을 때 그는 서서히 깨어났다.
그리고도 이제야 강소군은 인간으로 돌아와 울었다. 아니, 충격적인 사실 앞에 짐승처럼 울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적이라 말할 수 있었다.
얼마나 통곡하였을까.
그의 눈에서 핏물이 흘렀다. 혈룡기는 그의 슬픔 앞에 수그러들었다. 마치 강소군의 슬픔을 알기라도 하는 듯 서서히 잦아들었다.
사실 혈룡기는 강소군의 생각일 따름이었다. 기운의 강맹함과 느낌이 한 마리 붉은 용과 같다고 느껴 그 스스로 혈룡기라 생각했을 뿐이다.
혈룡기의 정체를 누가 알 것인가. 무총에서 덧없이 죽어 간 이들은 마기로 여겼다.
혈룡기가 잦아들자 금단진공의 기운이 강소군을 감쌌다. 마치 위로라도 하듯 전신으로 퍼졌다.
원(怨)도 한(恨)도 슬픔도 끝이 있다.
강소군이 어느 순간 통곡을 멈추고 일어났다. 미망이 걷힌 눈빛이 맑았다.
다만 너무나 차가워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끼치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강소군은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고는 천천히 산을 걸어 내려갔다.
***
상단으로 위장한 행렬이 고갯마루로 올라갈 때였다.
선두에 선 노이칠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고개 위에 열한 명이 서 있었다. 대도를 옆에 찬 그들의 기세가 마치 성벽과도 같았다.
노이칠은 그들의 기세에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십일도(十一刀)! 도룡회?’
노이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십일도는 도룡회의 고수들이다.
‘이런, 큰일났구나.’
노이칠이 뒤를 돌아봤다. 마차에 탄 이는 주첨기였다. 그 뒤로 상관청유와 낙척서생 유문광, 칠요 반여월이 따랐다.
상단 무사로 위장한 대정무각의 무사들이 십여 명 쫓을 뿐이고 염가와 육각의 살수들은 암중에 따르고 있었다.
그가 파악한 바로는 십일도는 하나같이 절정을 넘어선 고수들이다. 게다가 숨은 적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좋지 않다!’
노이칠의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렸다.
‘다 와서 일을 그르칠 수도 있겠구나.’
남경이 머지않은데 강적과 마주친 것이다.
노이칠이 말을 돌려 마차의 뒤를 따르는 상관청유에게 갔다.
“형님, 저들은 도룡회 십일도 같습니다.”
상관청유도 이미 고갯마루에 서 있는 이들을 보았다.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도룡회라니. 역시 그들이 한왕의 수족이었던가?”
“아이고. 형님은 정말 한가하시오. 적이 코앞에 서 있는데.”
노이칠이 다시 말을 달려 앞으로 갔다.
“길을 막고 있는 분들은 어디서 온 뉘시오?”
십일도는 말이 없었다.
대신 천지를 진동시키는 목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하하하. 도룡회의 진정한 뜻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 것인가?”
노이칠의 안색이 급변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화경에 접어든 고수임을 알아본 것이다.
‘설마?’
마차 뒤를 따르던 상관청유와 유문광, 반여월의 안색도 침중하게 굳었다.
“오늘 어린 용을 쳐서 도룡회의 뜻을 천하에 알릴 것이다!”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마차 문이 열리고 주첨기가 나왔다.
“누가 감히 나를 잡겠다는 것이냐?”
주첨기의 안색 또한 침중하였다. 상대가 보기 드문 고수라는 것을 그 역시 알았다.
“감히 황조를 능멸하다니. 백만대군이 두렵지 않은 것이냐?”
주첨기가 위엄을 갖추고 소리쳤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다시 크게 웃었다.
“하하하. 황조? 언제부터 이 강산이 주씨의 것이었더냐?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주씨는 마땅히 사라져야 할 악이다!”
“역적이로구나!”
주첨기가 분을 참지 못하고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어서 나와라. 내가 친히 목을 치겠다.”
“하하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오늘 저녁에 어린 용의 심장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실 것이다!”
하늘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는 원한이 가득했다.
“십일도! 쳐라!”
고개 위에 선 십일도에게서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너희는 뒤로 물러나 경계를 하라!”
노이칠이 십여 명의 무사들에게 외쳤다.
절정고수들 간의 싸움에 무사들은 거치적거리는 존재일 뿐이었다.
십일도가 몸을 날려 왔다. 일제히 도를 휘두르자 번뜩이는 백광이 날아왔다. 놀랍게도 유형화한 도기가 도의 형태 그대로 덮쳤다.
“제법이구나!”
유문광이 크게 소리치고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허공에서 몸을 뒤척이며 검을 뽑아 휘둘렀다.
검기가 쏟아져 나왔다. 수십 자루의 비검이 날아오는 유형의 도기를 맞받아쳐 갔다.
반여월도 채대를 펼쳐 날아오는 백광을 휘감아 갔고 상관청유가 대나무 지팡이에서 삐죽한 검을 뽑아 찔렀다.
노이칠 역시 검을 휘두르며 십일도를 맞이하였다.
-콰콰쾅!
도기와 검기 등이 부딪치며 엄청난 폭음이 일었다. 주위 나무들이 경기에 휘말려 뽑히고 바위들이 깨져 나갔다.
“크아악!”
마차가 오르는 고갯길 양편에서도 도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졌다.
육각의 살수들이 도룡회 무사들과 싸우는 게 분명했다.
“하하하! 너는 내가 친히 목을 거둬 주마!”
하늘을 울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숲에서 솟구치더니 주첨기를 향해 쏘아져 왔다.
마치 매가 사냥감을 덮치듯 흉맹한 기세였다. 사람이 오기도 전에 한 자루 도가 날아왔다.
“흥! 역적이 대담하구나!”
주첨기가 자신의 보검을 들어 날아오는 도를 쳐내려 했다.
“태자! 안 되오!”
마침 곁에서 십일도 도객 둘과 싸우던 상관청유가 놀라 몸을 날렸다.
상관청유가 주첨기를 향해 날아가는 도를 막고 뾰족한 검을 찔렀다. 그런데 도가 마치 살아 있는 듯 회전을 하더니 상관청유의 검을 타고 들어와 팔을 끊었다.
“크윽!”
상관청유의 오른팔이 팔꿈치에서부터 잘려 나갔다.
주첨기는 그제야 날아온 도에 감춰진 흉험함을 알고 안색이 크게 변했다.
“상관 대협!”
주첨기가 재빨리 상관청유의 옆에 서서 검을 쳐들었다.
도는 마치 끈이라도 달린 듯 날아오는 사람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이번에는 피하지 못할 것이다!”
날아오는 사람이 도를 그대로 그어 내렸다.
커다란 백광이 도의 형태를 갖추고 주첨기와 상관청유를 향해 떨어졌다.
“도강!”
유문광과 반여월 등은 두 사람이 위험에 처한 것을 봤으나 십일도의 집요한 공격에 묶여 발을 뺄 수가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쉬쉬식!
검은 주판알이 무리 지어 날아와 백광의 도강을 파고들었다.
-따다당!
백광의 도강이 간신히 주첨기를 비켜나 떨어졌다.
-쾅!
도강이 떨어진 여파에 주첨기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크하하! 운이 좋군. 나 우문극의 도강을 피하다니!”
나타난 이는 십대고수 서열 육 위 도룡회주 우문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