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66화 (6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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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이 고개를 저었다.

“방연소는 소림에게 짐을 떠맡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 생각하게 둬야지.”

강소군은 한마디 하고 자신의 거처로 들어갔다.

뒤에 남은 초씨 남매는 멀어져 가는 소림승을 보며 방금 싸움을 되새겼다.

초하란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강 공자에게 저런 면이 있으셨군요.”

강소군은 표정 하나 변치 않고 소림승들의 팔다리를 꺾었다.

소림승을 가볍게 제압한 무위도 놀라웠지만 잔인함은 전장을 겪은 초씨 남매도 질리게 만들었다.

싸우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또 달랐다. 압도적인 무공 차이이니 굳이 상하게 할 필요가 없음에도 상대를 불구로 만들어 버렸다.

태연한 얼굴로 나뭇가지 꺾듯 사람의 팔다리를 못 쓰게 만든 것이다.

초하경도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구나. 소림승을 불구로 만들었으니 간단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인데.”

거처로 돌아온 강소군은 곰곰 생각에 잠겼다.

주첨기에 이어 초씨 남매를 만난 뒤 그는 장씨 일가의 무고함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이전까지 장선백과 영영을 찾아다닐 때는 마음 한구석에 장홍 대장군이 진짜 모반을 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도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진정 역모를 꾸몄고 이에 선황제가 징치한 것이라면 그것은 순리대로 흘러간 일이다.

스스로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니 그가 마음의 빚을 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강소군이 장홍 대장군의 인품을 믿었듯이 모함받은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는 피의 복수만 남아 있을 뿐이다. 강소군의 눈에 붉은 광망이 스쳤다.

***

천장에서 미세한 검은 가루가 내려왔다. 한 가닥 줄기를 이루며 내려온 검은 가루가 진운초의 코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

“컥!”

진운초는 갑자기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에 피를 토하며 일어났다.

-쿨럭!

진운초는 기침과 함께 핏덩이를 토했다.

“이럴 수가!”

진운초는 급히 침상에 좌정하고 운기를 하였다.

단전의 내력을 뽑아 폐부를 감쌌으나 침투한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내기로도 몰아낼 수가 없었다.

진운초는 자신이 생사기로에 처했음을 깨달았다.

이를 안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 요혈을 짚어 폐부의 기혈을 막았다. 곧이어 품에서 약낭을 꺼내 몇 알의 환약을 먹었다.

진운초가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자신의 서재로 달려가더니 벽에 걸린 족자를 뜯어냈다.

벽에 튀어나온 고리를 당기자 비밀금고가 나왔다. 금고에는 전표와 은자 그리고 한 권의 책자가 있었다.

진운초가 책자를 잡으려는데 등 뒤에서 기척이 들렸다. 진운초의 눈에 절망의 빛이 어렸다.

-쿨럭 쿨럭!

진운초가 다시 기침을 하며 가슴이 타들어 가는 통증에 주저앉았다.

등 뒤의 인영은 말없이 다가오더니 비밀금고의 책자를 꺼내 살폈다.

그러더니 쓰러진 진운초에게 시선을 한 번 주고는 곧바로 창밖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진운초가 눈을 떴다.

진운초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비밀금고의 밑바닥을 쳤다. 그러나 바닥이 열리며 또 한 권의 책자가 나타났다.

‘네놈들에게 당하기는 했지만 나도 그냥 죽지는 않을 것이다.’

진운초는 책자를 품에 넣고는 다시 약냥의 환약을 꺼내 통째로 입에 넣고 씹었다.

진운초가 다시 서재 한쪽으로 가더니 바닥의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잠시 후 진운초는 자신의 집과 떨어진 골목을 달렸다. 그가 사력을 다해 간 곳은 강부였다.

진운초는 강부의 뒷담에 있는 문으로 가서 사람을 부르는 끈을 당겼다.

평소라면 담을 뛰어넘고도 남았지만 지금은 정신을 잃지 않고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삐걱.

문이 열리며 강부의 총관 모상이 나타났다.

“진 대장!”

모상이 크게 놀라 소리쳤다.

“그놈이 나타났소. 우리 생각이 맞았소!”

진운초가 헐떡이며 앞으로 쓰러졌다.

모상이 재빨리 진운초를 부축하고 자신의 거처로 갔다.

“정신 차리시오.”

모상이 진운초를 누이며 의식을 잃으려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쿨럭!

진운초가 피를 토하고 한 가닥 의식을 찾았다.

“내 품에 그간 조사한 바가 있소. 마님께서는 지금 내가 당한 독에 당한 게 분명하오. 나를 검시하면 무슨 독인지 알 수 있을 거요.”

진운초가 사력을 다해 말하고는 혼절하였다.

“진 대장! 이, 이런!”

모상이 당황하여 진운초의 목덜미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부풀어 오른 혈관이 빠르게 꿈틀거렸다.

모상이 진운초의 품에서 책자를 찾아냈다.

그때.

“무슨 일이오.”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강소군이었다.

모상과 진운초가 은밀히 행동했지만 워낙에 조용한 강부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소군의 이목을 속일 수는 없었다.

강소군은 소림승이 다녀간 이후 기감을 세우고 있었다. 진운초가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곧바로 알았다.

“공자님! 진 대장이 독에 당했습니다!”

“독?”

강소군이 다가와 진운초를 살폈다. 한눈에 봐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게 분명했다.

강소군이 진운초를 일으켜 좌정시키고 등 뒤 명문혈에 장심을 대었다.

강소군의 전신에 붉은 기가 퍼졌다. 내상을 치유하는 데는 금단진공이 탁월하고 안정적이었으나 독이라면 혈룡기로 태워 버리는 게 나았다.

혈룡기는 위험한 기운이었으나 진운초의 상태가 위급하니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혈룡기가 진운초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가더니 한 곳으로 향했다.

‘폐?’

혈룡기가 진운초의 폐부를 맹렬히 휘저었다.

강소군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이게 무슨 독이란 말인가?’

진운초의 폐는 이미 망가져 있었다. 폐 자체가 터져 기능을 상실했으니 다시 살려낼 방도가 없었다.

강소군이 손을 떼었다. 침중한 얼굴로 모상을 보며 말했다.

“무슨 독인지 몰라도 폐가 망가졌군요. 대체 어쩌다 이리된 것이오?”

“진 대장! 크윽!”

모상은 황망한 얼굴로 비통해할 뿐이었다.

-쿨럭!

강소군이 불어넣은 혈룡기가 일주한 효과가 있었는지 진운초가 정신을 차렸다. 눈빛을 보니 회광반조 현상이었다.

“강 공자!”

진운초가 강소군을 불렀다.

“죄송합니다. 조만간 사실을 밝히려 했는데…. 모 총관! 그 책자와 동일한 책자가 적의 손에 넘어갔소.”

진운초가 쿨럭, 피를 토했다.

“다만 놈이 가져간 책자에는 방씨 일가에 대한 조사가 빠져 있소. 놈들은 내가 얼마나 알아냈는지 몰라 초조할 것이오. 발 뻗고 자지 못하겠지. 크하하.”

진운초가 말을 하다 말고 크게 웃었다.

“나는 멋지게 살았구나!”

진운초가 다시 쿨럭, 피를 토하더니 그대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진 대장!”

모상이 안타까이 불렀으나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모상은 진운초를 자신의 침상에 누이고 눈을 감긴 뒤 이불로 덮어 주었다.

“진 대장. 잘 가시오. 강부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오.”

모상은 처연한 얼굴로 잠시 진운초의 시신을 보다 강소군에게 말했다.

“강 공자! 진실을 밝혀야 할 시간이 왔군요.”

모상은 강소군을 자신의 거실로 안내하였다.

두 사람이 마주 앉자 모상이 침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강 공자. 마님께서는 병환으로 돌아가신 게 아닙니다.”

강소군은 갑자기 머리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모상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신이 실종되자 비통해하다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때는 그렇게밖에 말씀드릴 수 없었습니다. 어둠 속의 적이 공자님까지 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강소군의 멍멍한 머릿속에 한 줄기 생각이 스쳤다.

‘그래, 그랬다. 어머니는 강한 분이셨어. 그렇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었는데. 왜 나는 의심조차 하지 않은 거지?’

강소군의 모친 영안공주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자식이 죽은 것도 아니고 실종되었다고 화병으로 돌아가셨다니. 충분히 의심했어야만 했다.

“일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강 국공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마님께서는 의심을 품으셨지요.”

‘아버지!’

강소군은 이제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다. 그때 강소군은 황궁 태후전에서 머물고 있었다. 외손자를 보고 싶어 한 태후가 품에 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장례에만 참석했었다.

“국공께서는 조정에 암류가 흐르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아무래도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마님께 말씀하셨는데 며칠 뒤 갑자기 돌아가셨지요.”

“….”

강소군은 충격적인 사실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듣기만 하였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독인지, 정말 갑작스런 병이 침입한 것인지 애매했지요.”

모상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마님께서는 국공께서 돌아가시자 은밀히 뒷조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장씨 일가가 역적으로 몰려 죽는 일이 일어났지요. 이 일에 대해서는 따로 진 대장에게 조사를 시키셨습니다.”

뒷부분의 이야기는 강소군도 진운초에게 들은 바 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진 대장의 조사를 중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돌아가셨지요.”

“나 때문이 아니란 말씀이오?”

“공자님이 실종되고 얼마 후 장씨 일가 사건이 났지요. 그리고 그 뒤로도 마님은 강건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피를 토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국공께서도 그리 돌아가셨지요.”

“피를 토하고?”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이나 그리 돌아가시니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진 대장도 같은 증상으로 죽었습니다. 이제 확실해졌지요. 타살이었던 겁니다.”

총관 모상과 호위대장 진운초는 영안공주가 남편과 같은 증세로 죽자 의심을 하였다. 그래서 유품을 꼼꼼히 살폈고 영안공주가 교묘히 숨겨 둔 책자를 발견했다.

그 책자는 강 국공이 죽기 전 한 말과 이에 대해 알아본 바를 적은 기록이었다.

모상이 자신의 비밀 서고에 가서 영안공주의 기록을 가져왔다. 그리고 진운초가 가져온 책자와 함께 강소군에게 내밀었다.

“이게 단초였습니다.”

모상과 진운초는 영안공주의 기록을 보고 흑막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이를 밝히고자 하였다.

모상은 하인을 모두 내보내고 정말 충직한 자들만 남겼다.

진운초는 강부의 호위대장을 그만두고 남경부 포두로 들어갔다. 그리고 은밀히 조정에 대해 조사를 해 왔다.

“왜 그걸 나에게까지 숨겼단 말이오?”

강소군의 목소리가 떨렸다. 갑작스레 알게 된 사실에 비통함도 분노도 일지 않았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송구합니다만 공자님이 돌아오셨을 때 상태가 좋지 않으셨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넋이 나간 듯 보였지요. 게다가 소림승마저 물리치실 수 있는 고수이실 거라고는 짐작도 못 했습니다.”

강소군은 무총을 나오자마자 곧바로 남경으로 왔다. 그때는 무총에서 벌어졌던 일의 영향으로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게다가 금단진공으로 혈룡기를 누르는 데 급급했던 시기였다.

강소군은 모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사리분별을 냉철하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모상이 침통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공자님께서 방일옥을 무릎 꿇리고 소림승을 물리치는 고수임을 알고 진운초와 상의하였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그간의 조사 내용을 말씀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암중의 적이 선수를 칠 줄이야.”

강소군이 말없이 영안공주의 기록을 펼쳤다.

「부군은 갑작스레 피를 토하고 세상을 떴다. 평소 건강에 조심을 한 분이고 역병이 도는 시기도 아니었다. 시신을 검안한 의원은 갑작스런 폐병이 의심된다고 하였으나….」

어머니의 글씨를 보는 순간 강소군의 전신에 붉은 기운이 치솟았다.

모상은 엄청난 살기에 충격을 받고 피를 토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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