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65화 (6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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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원하는 건 내 목입니다. 물론 내줄 수가 없지요.”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겠습니까?”

“도움을 주러 온 사람도 수작을 부려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들입니다.”

정관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미타불. 아무래도 오해가 깊은 것 같구려.”

강소군의 입꼬리에 담담한 미소가 걸렸다.

“이렇게 오신 것은 방연소의 부탁이겠지요? 무슨 말로 대사를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점은 나를 잡아 방부로 데려오라는 것일 겁니다.”

정관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떠올랐다.

방연소는 아들 방일옥이 흉수에게 크게 당해 깊은 내상을 입었다는 소식과 함께 소림의 단약을 청했다.

그간 소림에 막대한 시주를 해 왔던 그의 면을 보아 방장이 영약을 정관 편에 보내면서 경위를 알아보라 했다.

방연소는 자신도 자세한 경위를 모른다며 정관에게 강소군과 중재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정관은 그 말을 강소군을 잡아 오라는 뜻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중재를 하려면 양측이 대면하여 옳고 그름을 따져 봐야 하니 결국 강소군을 데려가야 할 것이다.

“시주를 방부로 모셔갈 생각이긴 합니다. 가서 전후 사정을 따져 봐야지요.”

강소군이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찻잔을 들었다. 천천히 차를 음미하고는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보다시피 강부는 쇠락하였습니다. 게다가 소림의 무학이 드높으니 대사께서 나서기만 하면 저는 꼼짝없이 방부로 끌려가겠군요.”

“아미타불. 잘못 아셨습니다. 소림은 함부로 사람을 억압하지 않습니다. 빈승은 지금 시주께 청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정관은 진심으로 강소군을 설득하려 들었다.

“시주께서 안위를 걱정한다면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다만 하신 일에 대한 책임은 지셔야지요. 어찌하여 방일옥을 해하셨는지 해명하셔야 할 겁니다.”

강소군이 길게 탄식하였다.

“세속의 일은 산중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서 머리를 숙인다면 결국 강부가 방부에 무릎을 꿇는 게 되겠지요.”

강소군이 자신과 정관의 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소림의 무승이 권력 주위 세도가 간의 암투와 자존심에 대해 알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알아서 먼저 수그리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멸문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무릎을 꿇을 수 없다.

지금 쇠락한 강부가 방연소에게 고개를 숙인다면 다른 세도가에서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이다. 어쩌면 아예 폐부를 시킬지도 모른다.

역시 정관은 두 눈만 끔벅일 뿐 이해하지 못했다.

강소군이 내심 탄식을 하였다. 아무래도 말로 이해시킬 수 없으니 힘을 보여 줘야 할 듯했다.

“게다가 저는 지금 갈 수가 없습니다.”

“빈승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방일옥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느닷없는 말에 정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방일옥이 강부를 모욕하여 경고를 하였는데 알고 보니 더 큰 죄가 있어 목숨을 거둬야 할 것 같습니다.”

강소군이 말을 마치고 찻잔을 들어 마셨다.

“아미타불.”

정관은 눈앞의 기품 있는 젊은 공자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헛갈렸다.

사람 목숨 거두는 일을 이렇게 담담하게 내뱉는 이는 처음 봤다. 마치 정원에 있는 나무의 가지를 치는 일처럼 말하지 않는가.

상대가 차를 마시며 너무나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니 무력을 쓰기도 난감하였다.

정관 대사가 불쾌한 낯빛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무슨 험한 말이오? 방일옥이 죽을죄라도 지었다는 말이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관아에서 따져야지 어찌 사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해하려 한다는 말이오?”

강소군의 두 눈에 날카로운 빛이 번뜩였다. 그 예리함에 정관이 흠칫, 하였다.

“방연소는 세 분 스님을 보내 제 실력을 가늠해 볼 생각이었겠지요. 싸움이 나면 칼에는 정이 없다고 제가 죽거나 아니면 세 분이 죽겠지요.”

“시주! 말씀이 지나치시오!”

정관의 눈꼬리가 올라갔으나 강소군은 정면으로 바라볼 뿐이다. 눈빛이 깊고 깊어 끝을 알 수가 없었다.

정관은 불심이 깊고 마음이 담대하였으나 문득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강소군의 의중을 알 수가 없으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아미타불.’

속으로 불호를 외우며 정관이 정신을 차렸다.

‘그래 봐야 아직 젊은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정관, 네가 이리 수양이 부족하단 말이냐?’

부동심이 흔들린 정관은 자기도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강소군은 미동도 않는데 몇 마디와 풍기는 기도가 남달라 오랜 수행을 해 온 자신이 흔들린 것이다.

정관은 뭔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강하게 치고 나갔어야 했다.

강소군이 정중하게 나오니 그 역시 방심하였다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말았다.

“방연소로서는 나쁠 게 없지요. 제가 죽으면 소림에서 사람을 죽인 게 되고, 반대로 세 분 스님이 죽으면 저는 소림과 척을 지겠지요.”

“아미타불. 빈승은 좋은 말로 청했는데 무력을 쓰겠다는 뜻이오?”

“스님.”

강소군이 정색을 하였다.

“무림의 일이 말로 끝나는 걸 본 적이 있습니까?”

정관은 기가 막혔다. 소림의 무승으로 강호에서 항상 존중을 받아 왔다.

대갓집 공자가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미니 어이가 없었다.

‘이자가 방일옥을 제압했다고 기고만장하는구나.’

방일옥이 소림의 무공을 제법 익혔으나 속가제자일 따름이다.

소림의 진산절학은 역시 숭산에 있다.

“그 말은 결국 무력을 쓰겠다는 뜻이오? 강 공자가 소림을 너무 가볍게 보는 듯하구려.”

강소군이 자신의 옷자락을 털며 일어났다.

“강부에도 연무장이 있습니다.”

강소군이 딱 잘라 말하고 빈청을 걸어나갔다.

정관은 어이가 없었으나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주도권은 이미 강소군이 쥐고 있었다.

강소군이 소림의 승려들을 데리고 간 곳은 자신의 연무장이었다.

정관이 젊은 무승에게 일렀다.

“법오, 네가 강 공자에게 가르침을 청하라.”

정관은 소림 나한당의 당주였다. 그가 직접 손을 쓸 생각이 없었다.

법오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소림 백팔나한승 가운데 한 명이다.

법오가 반장을 하고는 바로 기수식을 취했다. 법오는 자신의 스승 정관이 강소군과의 언쟁에서 선수를 빼앗겨 몰리는 걸 보고 은근히 분노하던 참이었다.

법오는 입만 번드르한 건방진 대갓집 공자를 단번에 제압해 소림 무학의 드높음을 보여 주고자 하였다.

강소군이 그 앞에 섰다. 허허로운 모습이었다.

“병장기는 없소?”

강소군이 고개를 저었다.

“병장기야말로 위험한 것이지요. 한 번 휘두르면 사람이 상하니, 그러면 방연소의 뜻대로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스님이 맨주먹으로 싸우겠다니 저 역시 두 손으로 상대하는 게 서로 좋을 듯하군요.”

“흥!”

법오가 코웃음을 쳤다. 소림의 권은 도검을 능가한다. 맨손으로 소림권을 상대한다는 건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이다.

“선수를 양보하겠소.”

법오가 마지막으로 예를 차렸다.

“그럴 것 없소.”

강소군이 짤막하게 답하고 한 손을 들었다. 마치 들어오라는 듯한 손짓이었다.

“조심하시오!”

법오가 소리치더니 순식간에 다가가 일권을 내질렀다.

몸놀림의 빠르기가 바람 같고 권에 담긴 기세는 바위를 깨뜨릴 것만 같았다.

소림 나한권은 연달아 적을 타격하는 권법이다. 강소군이 이 일권을 막는다 해도 뒤따라 들이닥치는 연권(連拳)에 기어이 당할 것이다.

정관은 법오의 권에 살기가 담긴 걸 보고 크게 당황하였다.

“법오! 손에 사정을 둬라!”

정관이 산중에서 불도를 닦는 중이기는 하나 세속 물정을 아주 모르지는 않았다.

남경 강부가 어떤 곳인지 정관도 알고 있다. 황제의 조카를 때려죽이면 소림사에 어떤 후환이 올지도 안다.

그러기에 이제껏 강소군의 현란한 말을 참지 않았던가. 그런데 제자 법오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아 제지하려 하였다.

그런데.

법오의 일권이 튕겨 나갔다. 재차 들어간 이권 역시 비껴 났다. 그다음 이어진 주먹을 강소군의 손이 감았다.

“태극권!”

정관이 자기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장삼봉이 태극권을 창안하여 무당파를 개파한 지 백여 년.

인생으로는 삼대가 바뀔 세월이지만 문파로서는 결코 길지 않은, 아니 오히려 짧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이다.

그 사이 무당은 소림과 함께 무림의 양대 조종으로 우뚝 섰다.

무당 태극권은 소림권의 천적과도 같았다. 강맹한 소림권도 태극권의 고수를 만나면 제힘을 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당 개파조사 장삼봉이 소림권의 달인이었고 이를 뛰어넘어 깨달은 극의가 태극권이었기 때문이다.

“조심해라!”

정관이 소리쳤으나 이미 상황은 끝났다.

우두둑!

법오의 왼팔이 꺾이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팔이 너덜거리는 것이 못 쓰게 된 게 분명했다.

“독하구나!”

정관이 분노에 차 고함을 질렀다.

강소군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감히 강부의 대문을 넘을 때는 죽을 각오를 했어야 함을 몰랐다는 말인가?”

“이얏!”

사형이 당하자 젊은 무승 법열이 폭풍처럼 몸을 회전하며 발차기를 시전하였다.

“법열! 안 된다!”

정관은 강소군의 무위가 대단함을 알았다. 법열이 상대할 자가 아니었다.

-쾅!

경기가 부딪히며 폭음이 일었다. 법열의 쇠기둥 같은 다리가 강소군의 발목을 가격하였으나 마치 돌기둥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안 돼!”

정관이 소리쳤으나 법열의 다리가 그대로 꺾이고 말았다.

정관의 두 눈이 획, 돌아갔다. 법오와 법열은 그가 아끼는 제자였다. 어려서부터 키워 온 제자들이 한순간 불구가 되자 정관은 참을 수가 없었다.

“마군이로구나!”

정관이 크게 소리치고 일권을 내질렀다.

권이 이르기도 전에 권기가 먼저 강소군을 덮쳤다. 권기 사이에 어른거리는 것은 은은한 강기였다.

정관의 분노가 극에 달해 전력을 다한 게 틀림없었다.

정관은 강소군의 전신에서 금빛 서기와 붉은 핏빛이 일어나 소용돌이치는 걸 봤다.

정관의 권세 사이로 강소군의 손이 쑥 들어왔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낭창낭창한 강소군의 손이 정관의 팔뚝을 휘감았다.

정관은 자신의 권세가 순식간에 흩어지자 크게 놀라 몸을 돌리며 발을 쓸었다. 허나 발에 걸리는 게 없었다.

강소군은 단지 한 발을 들어 정관의 무영각을 피하더니 손바닥으로 정관을 밀쳤다.

-퍼엉!

부드러운 동작이었으나 실린 경기는 간단치 않았다. 강소군의 손에 실린 경기와 정관의 내기가 부딪치며 폭음이 일었다.

“크윽!”

정관이 피를 뿜고 나가떨어졌다.

놀랍게도 정관의 강맹한 내기가 강소군의 경기에 말려 거꾸로 스스로를 친 것이다.

“사부님!”

법오와 법열이 동시에 소리치며 정관에게 달려들었다.

강소군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정관은 입에서 연신 핏덩이를 뿜어냈다. 내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법오가 멀쩡한 팔로 정관을 부축하며 강소군을 노려봤다.

“이 악적! 좋은 말로 중재하러 온 이에게 이런 독수를 쓰다니!”

강소군은 말이 없었다. 다만 손짓을 하자 총관 모상이 허옇게 질려 다가왔다.

“마차를 불러 저 스님들을 방부로 보내게.”

강소군은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모상은 전전긍긍하였다. 소림사가 어떤 곳인지 모상 역시 잘 안다. 당장이라도 백팔나한이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어쩌다 싸움을 벌이셨습니까? 에구, 이런! 많이 상하셨군요. 가만 계세요. 의원에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모상이 위로한다고 하는 말이 정관 등에게는 조롱하는 말로 들렸다.

“크윽!”

정관은 자신의 부주의로 소림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음을 알았다.

“필요 없소!”

정관이 모상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강 공자에게 전하시오. 이 일을 소림은 잊지 않겠다고!”

정관과 두 제자가 서로를 부축하며 강부를 나섰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강소군 뒤에 초씨 남매가 서 있었다. 초하경이 강소군에게 말했다.

“이제 방부에서 직접 손을 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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