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61화 (6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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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초하경이 가벼운 신음성과 함께 눈을 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 보니 따뜻한 방 안이었다.

놀라 몸을 일으키는데 누군가 막았다.

“공자, 아직은 정양을 해야 합니다.”

황오였다.

“황 아저씨, 여기가 어딥니까?”

황오는 어려서부터 초씨 남매를 돌봐 왔다.

장 장군부에서는 열 명의 조원을 거느린 십부장이었지만 초씨 남매에게는 아저씨라는 호칭이 더 익숙했다.

“강 국공의 강부입니다.”

“내가 왜 여기에?”

“강휘 공자께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강휘 공자가?”

초하경이 어리둥절해하였다.

초하경 역시 초하란과 함께 장선백의 전령이었다. 당연히 강소군을 알고 있었다.

그때 강소군이 들어왔다.

초하경은 강소군을 알아보고 일어나려 했다.

“그대로 있게.”

강소군이 초하경의 상세를 살폈다.

강소군에게는 허벅지 뼈가 부러진 초하란보다 내상을 입은 초하경을 치료하는 게 더 손쉬웠다.

금단진공은 내상을 치료하는 데는 탁월하였다.

초하경의 내상은 거의 회복되었다.

황오가 감격하여 강소군에게 포권을 하였다.

“강 공자는 제 목숨도 살렸습니다.”

황오는 초강립에게 구명지은을 입고 수십 년을 따랐다. 초씨 남매가 태어나 자란 걸 곁에서 보고 지켰으니 반쯤은 아비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강소군은 초하란 역시 강부에 머무르고 있고 초강립의 시신은 안장했음을 전했다.

초하경은 부친의 죽음을 듣고 통곡을 하였다. 그리고 초하란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일어섰으나 황오가 말렸다.

“방금 제가 다녀왔습니다. 막 잠이 들었으니 이따 찾아가기로 하지요.”

초하경이 다시 침상에 주저앉았다.

강소군이 문득 물었다.

“방일옥이 선백 일가의 흉사에 연관되어 있는가?”

강소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초하란처럼 자신을 믿지 못하고 말을 돌릴까 염려한 것이다.

초하경은 누이동생보다 강소군과 장선백의 우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강소군이 실종되었을 때 장선백이 얼마나 애통해하였는지도 곁에서 지켜봤다.

“적에게 추격을 당하다 실종되셨다고 들었는데 살아 돌아오셨군요.”

“너무 늦게 돌아왔다.”

강소군이 짤막하게 대답했으나 그 안에 담긴 회한을 초하경은 읽을 수 있었다.

초하경이 고개를 떨궜다.

“저희도 장 장군 일가가 화를 당할 때 곁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장씨 일가가 역적으로 몰리는 순간 초씨 남매는 서북 최전선에 전령으로 군명을 전달하며 다니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역시 최전선을 돌아보고 있던 아버지 초강립 함께 달려왔는데, 그때는 이미 장 장군부 모두가 역적으로 몰려 오히려 쫓기는 신세가 됐다.

“북쪽을 돌아 경성에 잠입하였다가 남경까지 왔습니다. 경성에서 장 장군을 모함한 이가 방연소와 방일옥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초씨 일가는 장 장군부의 정보통이었다. 지닌바 무공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군부의 정보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장홍 대장군이 신임하였다.

강소군은 짐작했던 바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하경이 이를 갈았다.

“어쩌면 이 모든 사달이 방일옥 그놈의 치정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방일옥 그놈 곁에 누가 있는지 아십니까?”

강소군도 안다. 장선백의 정인 양채완이 있었다.

강소군이 그날 객잔에서 방일옥에게 혹독하게 손을 쓴 것이 그가 강부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친우의 정인이 다른 사람과 있는 걸 보고 강소군의 심사가 크게 흔들렸던 것이다.

“그놈은 오래전부터 양채완을 노렸던 겁니다.”

초하경은 방일옥이 양채완을 얻기 위해 장선백 일가의 몰락을 꾸몄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차라리 낫겠군.’

장홍 대장군은 나라의 기둥이었다. 그런 하찮은 인간의 치졸한 모략에 넘어갈 자가 아니다.

하지만 초하경의 주장도 일리는 있었다. 적어도 여러 세력이 연합하여 음모를 꾸몄다면 방씨 일가가 그중 한 축을 담당했을 수 있다.

“우선은 몸을 회복하는 데 전념을 다하게. 누이동생은 저녁이나 되어야 깨어날 걸세.”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오는데 총관 모상이 다급한 얼굴로 달려왔다.

“공자님, 큰일났습니다. 어서 피하셔야겠습니다.”

모상은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금의위에서 공자를 잡으러 왔습니다. 지금 대문 앞에 몰려왔는데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모상은 강소군을 잡아끌고 후원 쪽으로 가려 했다. 바깥으로 나가는 비밀통로가 있는 곳이다.

강소군이 모상을 제지하였다.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이유나 들어 봐야 않겠나.”

***

작은 산마을에 저녁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참으로 평화롭군요.”

언덕에 앉아서 산마을을 내려다보던 연화심이 중얼거렸다.

간밤에 피가 튀고 살이 잘려 나가던 그 지옥 같았던 전장이 꿈인 듯했다.

중랑은 말없이 옆에서 검을 닦고 있었다. 좋은 검이었으나 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여러 군데 이가 빠졌다. 아무래도 오래 쓰지 못할 것 같았다.

중랑이 자신의 검을 검집에 꽂고 연화심의 검을 뽑았다. 역시 여러 군데 이가 빠졌다.

“이가 빠지면 쉬이 부러질 게야. 검부터 바꿔야겠다.”

중랑이 연화심의 검을 살피곤 말했다.

“오라버니도 좀 쉬세요.”

연화심은 중랑이 신기하였다. 중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하였다.

주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병장기와 암기를 챙겼다.

밤에는 수련을 하였다. 도대체 언제 잠을 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삼도문의 호위로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낭인 생활을 하며 익힌 습관이 되살아난 듯했다.

중랑은 연화심의 말에 산촌을 내려다봤다. 자신이 자란 마을과 비슷했다.

중랑은 마음이 착잡했다.

합비에서 꽤 떨어진 야산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주위에는 대정무각의 무사들이 숨어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육일청의 말대로 포위망은 여러 겹이었다. 대정무각은 새벽에야 포위망을 뚫고 합비성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염가가 수하들과 함께 육일청의 군사를 유인하였다. 그리고 몇몇 고수들이 주첨기를 호위하여 이곳 산마을로 숨어들었다.

‘이 일로 인해 저들은 화를 입을 수 있다.’

권력을 좇는 자들의 싸움에 화를 당하는 건 백성들이었다.

중랑의 고향 마을은 일개 현령이 도적 소굴로 몰아 몰살하였다. 권력자들이 난세에 이 작은 마을 하나를 피로 씻는 건 일도 아니었다.

“대정무각이 본격적으로 조정의 일에 간여하였으니 이곳에 머무는 건 극히 위험한 일이다.”

중랑은 대정무각을 떠날 결심을 하였다. 노이칠이 연화심의 안위를 장담했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상황을 돌보기도 바쁠 것이다.

“심 대협의 상세가 깊어 걱정이네요.”

연화심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심마백 때문에 망설였다.

노이칠은 미리 정하무관에서 정양하고 있던 심마백을 이곳 산마을로 옮겨왔다.

이곳은 단순한 산마을이 아니라 대정무각과 연계가 있는 곳임이 분명했다.

연화심과 중랑은 심마백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데리고 가자니 심마백이 여정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피륙의 상처보다 내상이 더욱 위험하다더니 정말 그렇군요. 심 대협 같은 고수가 아직 일어나지 못하다니.”

“혈적의 내공이 기이하여 그렇다더군.”

중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심 대협을 두고 갈 수는 없지. 기회를 봐서 함께 빠져나가자.”

두 사람이 산마을로 내려오는데 계곡 바위에 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사복과 궁장 차림의 중년 남녀는 대정무각의 칠각주 낙척서생 유문광과 팔각주 칠묘 반여월이었다.

두 사람은 사십 대로 보였다. 실제로는 노이칠보다 서너 살 위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중랑과 연화심은 무척이나 놀랐다.

두 사람은 바위에 앉아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속세를 초탈한 선인 같아 보였다.

중랑과 연화심이 언덕에서 내려오자 유문광이 눈을 떴다. 한 줄기 빛이 눈에서 번뜩이다 사라졌다.

유문광이 중랑을 보더니 말을 걸었다.

“그 나이에 공부가 대단하더군. 누구에게 사사 받았는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중랑이 포권을 하였다.

“대정무각 칠각주 유 대협을 뵙습니다. 간밤에는 황망하여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유문광이 손을 저었다.

“나는 그런 허례를 좋아하지 않는다네. 그저 마음이 맞는 벗이 중할 뿐이지. 자네의 검법이라면 내 벗이 되기 충분하지.”

“따로 스승은 없습니다. 검보를 보고 익히다가 고수의 도움에 한 걸음 올라선 것뿐입니다.”

“그래? 스스로 그 경지에 이르렀다니 정말 놀랍군.”

유문광은 중랑과 연화심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저 낭자도 같은 검을 익혔겠지. 하지만 두 사람의 검은 같으면서도 다르더군.”

유문광은 검법의 내력까지 묻지는 못했다. 다른 이의 무공연원을 묻는 건 강호의 금기 중 하나다.

유문광이 화제를 돌렸다.

“자네 둘이 같이 있으니 그야말로 한 쌍의 원앙을 보는 것 같군. 서로 위하는 마음도 깊으니 정말 보기 좋네.”

유문광은 간밤 격전에서 연화심과 중랑이 서로를 거드는 모습을 보았다.

생사가 오가는 격전장에서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남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중랑이 다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약간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의남매 사이입니다.”

유문광이 약간 놀라며 아쉬워하였다.

“그런가, 내가 착각을 하여 큰 실례를 했군. 두 사람이 잘 어울려 보여서 그만….”

“상공이 또 남의 일에 끼어들어 훈수를 두는군요. 남녀의 일에는 끼어드는 법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요.”

약간 떨어진 바위에 앉아 있던 반여월이 눈을 뜨더니 훌쩍 날아오며 말했다.

“미안해요. 이분은 남녀 간의 사랑을 지상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는 사람이라 보는 이들마다 연을 지어 주려는 엉뚱한 짓을 종종 한답니다.”

유문광과 반여월은 부부지간이었다.

중랑이 웃으며 말했다.

“개의치 마십시오. 그리고 남매의 우의가 남녀의 정보다 못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하하. 좋아, 좋아. 정말 보기 드문 한 쌍이로군.”

유문광이 크게 웃었다. 그러자 반여월이 타박하였다.

“대체 무슨 소리를 들으신 거예요. 이들이 의남매지간이라고 이미 밝혔잖아요.”

“의남매가 원앙이 되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인연이란 게 정한 바가 있나?”

“여보!”

반여월이 화를 냈다.

“채신머리없이 젊은이들을 짓궂게 놀리면 오늘 저녁은 없을 거예요.”

“하하, 이거 참. 내가 사과하지.”

유문광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런데 두 사람은 본각의 사람이 아닌 것 같군.”

유문광과 반여월은 난전 중에 들어왔다가 경황없이 피신하여 연화심과 중랑에 대해 듣지 못한 게 분명했다.

중랑이 다시 예를 취하며 말했다.

“무림말학 중랑이 누이 연화심과 함께 고인을 뵙습니다.”

“두 사람이 어쩌다 본각의 일에 말려든 겐가?”

“적에게 쫓기던 중 십각주 노 대협에게 구명지은을 입고 잠시 의탁하고 있는 중입니다.”

“호오? 노이칠의 손님이었군그래.”

유문광은 노이칠만큼이나 호기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자네 정도의 무공이면 감당 못 할 적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 원수가 고수인 모양이로군.”

“그 적이… 실은 한 사람이 아니라 방파입니다.”

“방파라고?”

“천무방입니다.”

중랑의 말에 유문광이 흠칫, 놀라 두 사람을 다시 살펴보았다.

“어찌 천무방과 척을 졌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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