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57화 (5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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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두 사람의 상관이 누군지 알았으면 합니다.”

진운초가 호패와 군패를 받아 들고 살폈다. 호패는 동창 신이기란 자였고 군패는 금의위 막부심이었다.

지난날 산동삼호를 추격하다 연성결에 의해 죽은 이들이었다.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동창 신이기가 홍옥비도를 가지고 있었으니 장영영의 행방도 알아낼 단서가 있을 것이다.

진운초는 호패와 군패를 소매에 담았다.

“예민한 시기입니다. 부쩍 보는 눈이 많아졌습니다.”

황태자가 남경으로 오다가 실종되었다는 소문이 나돌며 동창과 금의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진운초가 속삭이듯 말했다.

“남경 세력가 사이에서는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 모를 정도로 어지러운 정국이라는 말이 나돕니다. 부디 조심하셔야 합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시고 소속과 상관만 알면 됩니다.”

강소군이 진운초의 안위를 염려하여 덧붙였다.

그때 바깥 거리에서 비명과 함께 일대 소란이 일었다.

강소군이 내다보니 몇 사람이 두 대의 사인교를 공격하고 있었다. 각각의 사인교에는 남녀가 타고 있었는데 젊은 부부였다.

공격하는 사람들은 복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호위를 거꾸러뜨리고 사인교로 다가갔다.

남편으로 보이는 이가 아내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몸을 날렸다. 벽을 등지고 정면만을 방어하려는 것이었다.

호위는 모두 넷이었는데 자객의 기습으로 한 사람이 쓰러지고 세 사람이 복면자객들을 막고 있었다.

사인교를 메고 있던 하인들도 제각기 주인 앞을 막아선 것이 명문가 사람들로 보였다.

지나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달아나기 바빴다. 그 와중에 호기심 많은 이들이 구석에서 지켜보았다.

강소군의 눈에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양채완?’

강소군은 젊은 미부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동시에 가슴 한복판이 칼로 찔린 듯한 아픔을 느꼈다.

‘하하하. 이분은 양 소저야. 나중에는 형수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야.’

장선백의 말이 귓가를 울리는 듯했다.

장선백의 정인 양채완이었다. 돌아온 후 처음으로 장씨 일가와 관련된 이를 만난 것이다.

양채완은 자신을 주시하는 눈길을 느낀 듯 강소군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그러자 남자가 양채완의 시선을 따라 강소군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등불 빛에 젊은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제법 준수한 용모를 지닌 남자는 귀티가 흘렀다.

진운초가 슬며시 몸을 돌려 남자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방일옥이로군요.”

“방일옥?”

“남경부 문가입니다. 아버지가 조정의 문신이지요. 방씨 집안의 위세가 남경에서는 대단하지요.”

진운초는 포두임에도 자객을 잡을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다분히 빈정대는 어조였다.

바깥에서 방일옥의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대담한 놈들이구나? 대로에서 사람을 해하려 하다니!”

“간적을 처단하는 데 대로만큼 좋은 곳이 있다더냐!”

놀랍게도 복면자객 중 하나는 여인이었다.

여인은 복면을 하고 있어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챙! 챙!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첫수에 방일옥을 죽이지 못했으니 자객들은 실패하겠군요.”

진운초도 창밖 상황을 살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강소군이 보니 호위들이 연신 몰리고 있는데 방일옥은 태연했다.

복면자객 중 하나가 호위를 처치하고 방일옥 부부에게 기어이 다가갔다.

-쉭!

자객의 검이 찔러 오자 방일옥이 권을 휘둘렀다. 강맹한 권풍이 일더니 자객의 검이 비껴 나갔다.

방일옥의 권이 그대로 자객의 가슴에 적중하였다.

“크윽!”

복면이 붉게 물든 것이 일권에 내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소림권법?’

강소군이 방일옥의 일권을 알아보았다. 분명 제대로 된 소림권법이었다.

“문가의 후손이나 방일옥은 소림권법의 대가입니다. 무림 일류고수를 능가한다더군요.”

진운초는 방일옥의 무위를 알기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곧 관병이 올 겁니다. 자객들은 모두 잡히겠군요.”

진운초는 자신의 책무라도 되듯 하나하나 일러주었다.

과연 멀리서 호각 소리와 함께 관병들이 몰려왔다.

자객은 모두 네 명이었는데 동료가 부상당하고 관병이 몰려오자 도주하려 하였다.

복면자객 둘이 방일옥에 의해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하고 몸을 날렸다.

마지막 한 사람이 뒤를 경계하다 몸을 날리려는데 방일옥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한 놈은 놓고 가야 하지 않겠나?”

방일옥이 몸을 날리며 뒤를 경계하던 자객을 향해 권을 질렀다. 자객이 황급히 검을 내리쳐 막았으나 권에 실린 기세는 막강하였다.

-쾅!

벽력과 같은 폭음과 함께 자객이 끈 떨어진 연처럼 나뒹굴었다.

동료를 부축하고 담장을 넘던 복면자객 중 여인이 이를 보고 다시 넘어오려는데 쓰러진 복면자객이 검으로 스스로의 목을 그었다.

“아버지!”

복면자객 여인이 짤막한 비명을 질렀다. 옆에 있던 동료가 복면자객 여인을 끌고 달아나려 했다.

“흥!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방일옥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더니 양손을 펼쳤다.

-쉬쉬식!

작은 염주 알이 날아가더니 도주하는 복면인들의 뒤를 덮쳤다.

복면자객들이 염주 알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따다당!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염주 알이 튕겨 나갔다. 복면자객들의 솜씨도 만만치 않은 것이 단순한 자객은 아니었다.

“어서 가!”

복면자객 여인이 부상당한 동료와 그를 부축하는 동료를 먼저 보내고 뒤를 막아섰다.

“이 악적!”

여인의 외침에 방일옥이 능글맞게 웃었다.

“대체 왜 나를 악적이라고 하는지 모르겠군.”

“네놈의 죄는 하늘이 알고 내가 알고 땅이 알고 있다. 만천하에 그 죄상이 밝혀지는 날이 올 것이다!”

복면자객 여인의 시선이 한쪽에 있는 양채완에게 향했다. 눈에서 독랄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그날이 되면 저 음탕한 년과 함께 너희 둘은 사지가 찢기고 성밖에 목이 내걸릴 것이다!”

실로 극악스러운 저주였다.

양채완이 그 말을 듣자 휘청거리더니 주저앉았다.

방일옥은 아내가 쓰러지자 고함을 질렀다.

“뭣들 하느냐? 마님을 모시지 않고.”

하인과 호위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양채완을 사인교에 싣고 사라졌다.

방일옥이 복면자객 여인을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네년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복면자객 여인은 잠시의 시간을 벌어 동료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도주하려는 것이다.

“내 손에서 빠져나갈 성싶으냐.”

복면자객 여인이 몸을 날리자 방일옥이 따라붙으며 권을 내질렀다.

복면자객 여인의 신법은 날렵하여 권을 피하며 한층 거리를 벌렸다.

방일옥이 다시 손을 젓자 염주 알이 날아갔다.

복면자객 여인이 검을 내질러 염주 알을 쳐냈으나 한 알이 허벅지를 격타하였다.

“큭!”

복면자객 여인의 입에서 짧은 신음성이 터졌다.

방일옥이 다가가자 복면자객 여인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던졌다.

-펑!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방일옥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저건 남방 왜구들이 쓰는 은신탄인데 저 여인이 어찌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진운초가 여전히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였다.

검은 연기는 이내 걷혔으나 복면자객 여인의 종적도 사라졌다.

방일옥이 마침 몰려온 관병들에게 호통을 쳤다.

“대로에서 자객이 날뛰다니! 대체 경비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 어서 자객들을 쫓아라!”

방일옥의 위세는 대단하여 관병들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바탕 난전이 벌어진 대로에 다시 사람들이 오가더니 잠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북적거렸다.

강소군과 진운초가 다시 술잔을 기울이는데 객잔 일 층이 잠시 조용해졌다.

곧이어 방일옥이 계단으로 걸어 올라왔다.

방일옥이 나타나자 이 층 또한 조용해졌다. 이 층에 있는 자들은 방금 일전을 모두 봤다. 그 당사자가 나타났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방일옥은 이 층을 둘러보더니 강소군과 진운초를 향해 걸어왔다.

“진 포두가 재밌는 구경을 하셨겠군.”

방일옥의 말투는 다분히 시비조였다.

방일옥은 싸움이 제대로 벌어지기 전 아내 양채완이 객잔 쪽에 시선을 주고 잠시 놀랐던 것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있어 아내가 놀랐는지 확인하고자 온 것인데 진운초가 있는 걸 보고 다가왔다.

‘무척 용의주도한 자로군.’

강소군은 다가오는 방일옥을 일별하고는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굳이 자신을 나타내고 싶지 않았다. 지금 강소군의 행색은 강호 야인처럼 보인다. 과거 그를 알고 있던 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방일옥은 방금 싸움으로 무척 격앙된 상태였다.

“남경부 포두께서 양민이 화를 당하는데 지켜만 보셨군. 그러고도 나라의 녹을 먹다니. 이래서야 관을 믿고 살 수 있겠나.”

강소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방일옥은 작정하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방 공자께서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술을 한잔하던 참입니다.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몰아붙이니 황당하군요.”

진운초 역시 방일옥이 마뜩잖은지 가는 말이 곱지 않았다.

“그러셨나? 이분은 누구신가? 얼마나 반갑고 대단한 분이기에 대로상에서 자객이 날뛰는데 포두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신 건가?”

진운초의 낯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무슨 일을 당하고 이러는지 모르겠군요. 방 공자의 무위가 저보다 윗줄인데 설령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일개 포두가 어찌 끼어들 수나 있었겠소.”

“흥! 네가 책임을 방기했다는 것을 인정하는군. 너를 잡아 남경부에 가서 오늘 일을 따지겠다.”

진운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 층 손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 대체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었소? 여러분은 아시오?”

사람들이 진운초의 눈길을 피했다. 방일옥도 두렵지만 남경부 포두의 원한을 사는 일도 피해야 한다.

“어, 술이 떨어졌군. 이제 일어나세.”

사람들이 수런거리며 일어나 일 층으로 몰려 내려갔다.

이제 이 층에는 강소군과 진운초, 방일옥만 남았다.

“진운초, 네가 내 뒤를 쑤시고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다. 오늘 자객이 너와 연관이 되었다 해도 나는 믿을 판이다. 아무래도 오늘 끝을 봐야 할 것 같구나.”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는군. 방 공자 가문의 위세가 대단하여 일개 포두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음은 알았지만 이리 모함까지 할 줄은 몰랐군.”

두 사람 사이는 아무래도 다른 악연이 있는 듯했다.

방일옥이 음산하게 웃었다.

“진운초, 네가 강부의 개로 살다가 뒤늦게 남경부로 들어와 포두 노릇을 하더니 세상이 모두 아래로 보이는가 보구나.”

방일옥의 말에 다른 곳에서 대꾸가 나왔다.

“강부의 개?”

이제까지 시선을 피했던 강소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방일옥을 바라봤다.

방일옥이 기가 차다는 듯 강소군을 내려다보며 비아냥거렸다.

“네놈도 강부의 개였냐?”

-퍽!

“크아악!”

방일옥이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뒤로 물러났다. 뒤에 있던 호위들이 재빨리 나서서 칼을 겨눴다.

진운초가 기겁하여 보니 방일옥의 볼에 젓가락이 꽂혀 있었다.

강소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말한 강부가 동경로의 강부를 말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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