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54화 (5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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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이 천무방에 대한 서류를 보며 말했다.

“여기 적힌 정보에 의하면 그는 정말 대단한 책사인 것 같소. 하지만 최근 접한 천무방의 행보나 용병술은 어딘가 어설펐소.”

“어설프다니?”

“삼도문 연성결은 무한 일대에서 덕망이 높았소. 무인이지만 상재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니 내가 구연강이었다면 연성결을 포용했을 것이오.”

“그래서 혼인동맹을 맺자고 한 게 아닌가.”

강소군이 고개를 저었다.

“연성결에 대해 조금만 조사를 했다면 혼인동맹보다는 이익을 나누는 경제동맹으로 접근하는 게 훨씬 낫다는 걸 알았을 것이오. 그럼에도 연성결을 막다른 길로 몰아붙인 건 다른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고 봐야 하오.”

노이칠이 생각에 잠겼다.

겉보기에는 어수룩한 상인 같지만 그는 천하의 정보를 다루는 대정무각 십각주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다.

그런 그도 강소군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보기엔 강소군이 상황을 너무 비약하여 해석하는 것 같았다.

‘강 협이 황실의 일원이라더니 사안을 너무 복잡하게 보는 것 같군.’

황실과 조정은 복마전이다. 앞에서 웃는 자가 뒤에서 비수를 찌르는 곳이다.

권력을 쥐기 위해 온갖 음모와 모략이 횡행하는 곳이기에 말 한 마디, 행동거지 하나에도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 한다.

자신만 조심한다고 해서 안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주위 상황과 인물의 의도를 읽어야 목숨과 권력, 재산을 지킬 수 있는 곳이 황실이다.

노이칠은 강소군의 출신을 생각하고 더 깊이 생각지 않았다.

“다른 의도가 있다? 너무 복잡하게 보는 게 아닌가? 구연강은 천하 십대고수의 일인이네. 삼도문 정도는 안중에 두지도 않았을 것이네.”

‘구연강은 그럴지 몰라도 군사인 조개량이라면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강소군은 여전히 미심쩍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노이칠이 화제를 돌렸다.

“연 낭자의 상세는 어떤가.”

“괜찮을 것이오.”

“정말 면목이 없군. 자네에게 연 낭자의 안위를 장담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노이칠이 거듭 사과를 하였다.

강소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한쪽에 있는 다실로 노이칠을 안내하였다.

두 사람이 다탁에 마주 앉았다.

강소군이 부젓가락으로 화로를 쑤시고 숯을 넣고는 찻주전자를 올려놓았다.

그런 강소군을 가만 지켜보다 노이칠이 입을 열었다.

“이번 일로 천무방과 대정무각의 일전은 피할 수 없게 됐네. 천무십객이라면 몰라도 귀영대가 정하무관의 제자를 해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지.”

형운천은 당장이라도 대정무각의 모든 세력을 끌고 가 천무방을 응징해야 한다고 펄펄 뛰고 있다.

강소군은 강호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타부타 말없이 찻물을 끓여 차를 우리고 노이칠의 잔에 따랐다.

노이칠이 차를 마시고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으음.”

노이칠은 차를 사고파는 상인으로 위장하고 다닌다. 그렇기에 많은 차를 마셔 봤다. 같은 차도 내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신양모첨이 이런 맛이라는 걸 처음 알았네.”

노이칠이 거듭 감탄하고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불쑥 물었다.

“길을 돌려 온 것이 오로지 연 낭자 때문인가?”

강소군은 묵묵히 차를 마실 뿐이다.

노이칠이 가볍게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어찌하여 태자를 피하는가.”

정하무관으로 들어온 주첨기는 강소군부터 찾았다. 강소군은 연화심의 치료를 핑계로 만남을 미루고 있다.

“이미 끝난 인연이오.”

강소군이 짤막하게 답했다. 노이칠이 속으로 탄식을 하였다.

‘인연이라는 게 그리 쉽게 끊어진다면 세상일이 이렇게 복잡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노이칠이 보기에 주첨기가 강소군을 놔줄 것 같지 않았다.

주첨기와 강소군 사이에서 곤란한 건 상관청유와 노이칠이다.

노이칠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대정무각은 태자를 지지한다네.”

강소군이 묵묵히 차를 마셨다.

조정과 무림은 서로 불가침이라는 말이 있으나 실은 여러 문파가 조정과 닿아 있다.

대정무각이 태자와 연계한다고 해서 놀랄 만한 사실은 아니다.

“한왕이 산동 낙안에 웅크리고 황권을 노리고 있다네. 조왕 또한 하남 팽덕에서 잠잠히 있지만 그 역시 지닌 바 야망이 있는 인물이지.”

노이칠은 천하를 돌아다니며 태자의 정적 동향을 파악해 왔다.

“당금 황제께서 덕치를 베풀어 민심을 얻고 있으나 병약하다는 게 조정의 근심이네.”

강소군은 숙부 주고치가 떠올랐다. 인품이 온화하고 덕망이 높았으나 몸이 약해 태자 시절부터 이복동생 한왕과 조왕에게 눌려 지냈다.

“강 국공께서는 당금 황제를 오랫동안 지지하셨네. 그분이 살아 계셨더라면 황실의 안위가 이렇듯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네.”

강 국공이라면 세상을 떠난 강소군의 부친이다.

노이칠이 강소군의 부친을 거론한 것은 주첨기를 위해 한 팔 거들어 달라는 뜻이다.

강소군은 가만 차를 마실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언제까지 태자를 피할 수 없다는 건 자네도 알지 않는가.”

강소군이 그제야 찻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조만간 찾아뵐 것이라 전하시오.”

***

천무방 천무전 깊숙한 구연강의 집무실.

천무방주 구연강 앞에 두 아들이 앉아 있었다.

장남 구양조가 읽고 있던 보고서를 동생 구양수에게 넘겼다. 구양수가 보고서를 읽었다. 보고서는 삼도문과 관련한 원정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구양수가 보고서를 다 읽고 구연강 앞의 서탁에 올려놓았다.

구연강이 아들들에게 물었다.

“어찌 생각하느냐?”

“생각보다 큰 피해를 입었군요.”

구양조가 먼저 답했다.

“처음 당한 응천대와 흑마대는 어쩔 수 없었다 해도 그 뒤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구연강은 말없이 구양수를 쳐다봤다. 구양수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천무십객 중 일곱이 당하다니 정말 대단한 놈이네요.”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드냐?”

구연강이 다시 물었다.

구연강은 단순한 무부(武夫)가 아니다. 그랬다면 호북 북쪽 작은 문파를 천하사패로까지 끌어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한 놈 때문에 이런 피해를 입었다?’

강소군이라는 놈이 고수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천무방의 무력대가 줄줄이 깨지고 천무십객 중 일곱이나 죽었다. 그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피해다.

‘그만한 무력이면 운용하기에 따라 비천신검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십대고수의 수좌이자 천하제일인 비천신검 상관무영.

구연강이 마음속으로 꼽고 있는 그의 유일한 적이다.

상관무영은 세력이 없이 독존(獨存)하지만 강호에서는 그 어느 문파보다 비중이 크다.

구연강은 천하제일인이자 천하제일의 패자가 되고자 했다. 그러려면 언젠가는 상관무영을 꺾어야 한다.

그가 끊임없이 무공 수련에 매진하는 이유다.

구양조는 구연강이 무엇 때문에 자신들을 불러 묻는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구연강은 조개량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구연강은 조개량을 책사로 앉혀 놓고 많은 권한을 주었지만 내심으로는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조 군사도 그자가 그리 뛰어난 고수라는 건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무창쌍과를 일 창에 그어 죽일 실력이라면 십대고수에 버금간다고 봐야겠지요.”

구양조가 조개량을 두둔하였다.

구연강은 장남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양수에게 물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구양수가 움찔, 하고는 말했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구연강은 두 아들을 노려보았다.

‘한심한 놈들.’

장남 구양조는 무공은 뛰어나지만 무른 구석이 있다. 사람들은 원만한 성품이라고 칭찬하지만, 천하를 쟁패할 방파의 우두머리는 독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구연강에게는 부족하게 보인다.

차남 구양수는 기방을 드나들거나 한량 같은 놈들과 어울려 노는 게 일상이다.

구연강은 내심 한탄하였다. 죽은 셋째는 아직 어리긴 했지만 젊은 날 자신을 닮아 독한 구석이 있었다. 잘 키웠다면 뒤를 이을 후계자로 삼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쉬워한다고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올 것도 아니다. 구연강이 미련을 떨치고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로부터 책사라는 자들의 말만 믿었다가 망한 나라나 방파가 한둘이 아니다.”

구연강이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둑이 무너지는 건 작은 틈에서부터 비롯된다. 방파의 수장이라면 항시 아랫사람을 살펴야 할 것이다.”

구양조와 구양수는 고개를 숙였다.

“가 봐라.”

아들들이 나가자 구연강이 일어나 집무실을 거닐다 문득 물었다.

“천살!”

허공에서 누군가 답했다.

“말씀하시오.”

“조개량의 출신을 다시 한 번 살펴봐야겠소. 추적에 능한 자를 보내 주시오.”

천무방을 찾아온 조개량은 몰락한 문인 집안의 출신이라고 했다. 구연강이 이를 확인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

조사한 이에 따르면 조개량의 말대로 낙양에서 대대로 내려온 조씨 가문이 있었고 손이 귀해 당대에 조개량 홀로 남기에 이르렀다.

구연강은 주변 이야기만 취합한 보고가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이참에 좀 더 내밀히 알아볼 참이다.

‘조정에 곧 변고가 닥칠 것이고 강호 또한 요동칠 것이다. 살얼음판 같은 시기에 그 많은 무력을 잃다니.’

구연강은 자신의 직감을 믿는 자였다. 본능적으로 이번 일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무력대의 손실 때문만은 아니다. 강호의 이목을 가리고 은밀히 키운 천무방의 무력은 손실을 덮고도 남는다.

이번에 들어온 암중의 보고는 그런 찜찜한 마음에 더욱 불을 질렀다.

천무육객 손조 등은 분명 살아서 귀환하였다. 그런데 조개량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다. 조개량이 직접 손을 썼으니 이 사실을 아는 이가 없을 것이다.

혹시나 하여 붙여 둔 이목이 아니었다면 구연강도 모르고 지나쳤을 상황이었다.

‘조개량, 네놈이 나를 한낱 무부로 여긴다면 큰코다칠 것이다.’

구연강이 눈빛이 음험하게 빛났다.

***

“강 장군께서 드셨습니다.”

주첨기의 호위무장이 고했다.

아담한 빈청 창가에 주첨기가 서 있었다. 강소군은 천천히 다가가 말없이 예를 취했다. 창밖을 보고 있던 주첨기가 천천히 돌아섰다.

체구가 제법 큰 주첨기에게서 당당한 태자의 위엄이 풍겨 나왔다. 눈빛에서는 광망이 흘러나왔다.

주첨기와 강소군은 선황제가 총애한 두 손자였다. 주첨기가 한 살 위로 형이었으나 어려서는 함께 놀며 자랐다.

주첨기가 정색을 하였다.

“네가 국법을 너무나 무시하는구나. 아무리 선황께서 총애한다고 네 맘대로 군을 이탈하여 잠적해!”

강소군은 예를 취한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황실의 법도까지 무시할 셈이냐? 내가 명색이 태자다! 그런 내가 부르는 데도 안 오다니!”

주첨기는 아무래도 자신의 위엄을 보일 생각이었던지 정색을 하고 꾸짖었다.

강소군은 묵묵부답이었다. 돌벽에 대고 소리 지르는 것만 같다.

완강한 강소군의 태도에 주첨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휘야,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강소군이 허리를 폈다. 주첨기를 바라보는 눈이 무심하다.

“강휘란 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오래전 북방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주첨기가 눈을 부릅떴다.

“네가 끝내….”

주첨기가 말을 하다 말고 멈추더니 빈청을 오락가락하였다.

한참 침묵이 흐르고 주첨기가 멈춰 서더니 강소군을 주시하였다.

“장홍 대장군 일가 때문에 이러는 것이냐?”

강소군의 미간이 꿈틀하였으나 답을 하지 않았다.

주첨기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장홍 대장군을 내친 일은 선황께서도 곧바로 후회하셨다. 워낙 그럴듯한 모함이었기에 곁에 있던 나도 미처 정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강소군의 얼굴에 분노가 차올랐다.

“선황과 형님은 모함에 넘어갔을 뿐이지만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습니다.”

강소군이 주첨기를 응시하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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