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44화 (4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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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나찰 역시 자신의 애병 나찰검을 뽑아 들었다.

혈적산판 염가.

대정무각 육각의 주인이자 강호 최고의 살수!

혈적산판의 명부첩은 염왕의 그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말이 있다.

대정무각 각주라는 직위보다 살수로 더 이름난 존재.

그런 이가 합비 외곽 허름한 객잔의 주인으로 위장하고 있을 줄이야.

조운룡마저 놀라 자신의 도를 움켜쥔 뒤 벽에 등을 대고 염가를 경계하였다.

염가가 붉은 주판을 흔들거리며 말했다.

“네놈들을 죽이고 싶지만 그러면 언 땅을 파야 하니 귀찮다. 특별히 용서해 주겠으니 음식값을 치르고 꺼져라.”

극히 모욕적인 언사였으나 누구도 반발하지 못했다.

그의 명부첩에 오르는 순간 대정무각의 육각 살수들 표적이 되고, 그건 이 세상 다 살았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대체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손조 등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강소군을 쫓는데 화룡도가 끼어들고 이제는 대정무각의 육각주가 나타났다.

손조의 시선이 강소군에게 향했다.

‘저놈이 대체 뭐라고?’

천무사패가 각축을 벌이느냐는 말이다.

“객잔 주인이 눈보라 치는 밤에 축객령을 내리다니. 상도의라는 것도 없군.”

손조가 말했다.

염가가 축객령을 내렸으나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었다.

염가의 명성이 쟁쟁하기는 하지만 그들 또한 천무십객.

이대로 순순히 물러난다면 강호에서 얼굴을 들고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싸움을 벌일 수도 없었다.

대정무각 육각의 주인이 나타난 이상 그 휘하 살수들이 있는 건 당연하다.

손조는 등골이 서늘하였다. 별생각 없이 들어온 객잔이 용담호혈이었던 것이다.

한편, 강소군은 반점에서 벌어지는 일이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무총, 그 어둠 속에서 죽어 가던 마운산의 모습만 떠올랐다.

자신의 검에 찔려 죽어 가면서도 웃고 있던 마운산.

‘형님은 살아 나가!’

마운산은 피를 게워내면서도 염불처럼 외웠다.

마운산은 둘이 있을 때는 장군이라는 칭호가 싫다며 제멋대로 형이라 불렀다.

무총.

봉인했던 기억이 풀렸다.

강소군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무수히 죽였다.

적도 아군도 무총에서는 죽여야 할 상대였다.

강소군의 몸이 떨렸다.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순간.

우두둑!

강소군의 손아귀에 잡힌 탁자 모서리가 부서져 나갔다.

탁자가 부서지는 소리에 모두가 강소군을 바라봤다.

강소군의 전신에 불길한 기운이 어렸다. 언뜻 핏빛 혈기가 감돈다.

손조의 머리에 좋은 생각이 스쳤다.

“마기다!”

손조가 염가를 향해 겨누고 있던 검을 강소군에게 돌렸다.

기련마검.

그의 검에 강호인들이 붙여 준 별호다.

그 검으로 천하를 주유하였으나 그가 마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마인은 흑백 양도, 정사지간과는 다른 존재다.

그야말로 인세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악이다.

주화입마에 들어 미친 무인을 마인이라고 한다.

끝없이 피를 탐하는 존재,

결국은 흑백 양도의 공적이 되어 죽기 마련이다.

강소군의 전신에서 붉은 혈기가 흘러나왔다.

손조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마인은 강호의 공적이다! 당장 저자를 죽여야 할 것이다!”

손조는 염가와 조운룡을 향해 말했다.

조운룡과 염가도 놀라며 강소군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강소군의 머릿속은 무총의 기억으로 가득했다.

그가 스스로 지운 기억이다.

봉인한 기억이 풀리는 걸 막으려 했으나 그럴수록 생생하게 살아났다.

***

죽여야 했다.

무총에 들어온 이들은 마기에 휩싸여 미쳐 버렸다.

적도 아군도 없었다. 피를 갈구하는 마인이 되어 무총의 끝없는 미로를 헤맸다.

생지옥이었다.

방금 전까지 멀쩡했던 자의 눈이 돌아가 사람을 물어뜯으려 하였다.

자신을 믿고 따랐던 수하들.

충직했던 그들이 미쳐 날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죽여야 했다.

“날 죽여. 미친 악귀가 되느니 형님 손에 죽는 게 나아.”

붉게 타들어 가는 눈으로 마운산이 말했다.

이성을 잃기 직전 마운산은 강소군의 검을 잡아당겨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그러곤 돌아서서 질주하였다.

마기에 휩싸여 광란의 몸부림을 치는 무리를 향해 스스로를 던져 강소군의 길을 열어 주었다.

“크하하. 나, 마운산이다! 다 덤벼라! 형! 내 몫까지 살아 줘!”

***

내 몫까지 살아 줘!

마운산의 마지막 말이 떠오르는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퍼뜩 들었다.

자기 몫까지 살라니.

어떻게?

강소군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단전에서 화끈거리는 기운을 느꼈다.

‘혈룡기(血龍氣)’

무총에서 얻은 마기의 이름이다.

거대한 무덤 무총에서 나오기 위해 혈룡기를 익혀야 했다.

누가 들으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내공이 있는데 그걸 버리고 새로운 내공을 쌓는다는 건 미친 짓이다.

아니,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두 기운이 상충하여 제대로 연성하기 어렵고 자칫 주화입마에 빠져 폐인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강소군은 금단진공을 운용하여 혈룡의 기운을 눌렀다.

잠에서 깨어나려던 혈룡의 기운이 다시금 전신 세맥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러자 강소군의 전신에 어렸던 혈기가 사라졌다.

그제야 강소군의 눈에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모두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

‘위험했다.’

강소군은 내심 안도하여다.

혈룡기가 완전히 깨어났으면 아마도 객잔은 피바다가 됐을 터였다.

강소군이 익힌 금단진공은 무당의 전대 고인 현치자가 황실에게 전한 것이다.

현치자는 황제들이 국사에 쫓겨 내공을 연마할 시간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여 양의심공의 원리를 바탕으로 금단진공을 고안하였다.

무당의 양의심공은 내공이라기보다는 수행 심법에 가까웠다.

이를 내공심법으로 바꾼 것이 금단진공인데 무당의 기재 무치라 불린 현치자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치자는 금단진공에 대한 사실을 사문에도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금단진공의 오의가 너무 난해하여 당시 황제는 익히려 들지 않았고 결국 황실 서고에 처박혔다.

강소군이 황실 서고에서 발견하여 금단진공에 빠져든 건 순전히 장선백과의 비무에서 이기기 위한 오기 때문이었다.

금단진공을 익힌 뒤, 걷거나 심지어 말을 하면서도 운기를 할 수 있었다.

강소군이 이상스레 회복력이 뛰어난 것도 금단진공 덕분이다.

무엇보다 혈룡기를 얻어 무총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금단진공의 이 같은 특성 덕분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혈룡기가 기존의 내공과 충돌하여 바로 주화입마에 들고 마인이 되었을 것이다.

강소군은 금단진공으로 혈룡기를 제어하여 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무총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다.

다만, 혈룡기는 또 다른 문제가 되었다. 혈룡기는 무척이나 난폭하고 쓰면 쓸수록 이성을 잠식하려 들었다.

그러기에 금단진공으로 봉인해 두었는데, 그가 무총에서의 기억에 동요하자 자연스레 풀려 나왔던 것이다.

강소군의 혈기가 사라졌음에도 손조는 검을 거두지 않았다.

조운룡 또한 강소군을 경계하였다.

마공에 빠진 자는 피아를 가리지 않고 살생을 한다.

기이할 정도로 고강한 강소군의 무력은 마공이라 의심을 하기에 충분했다.

강소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혈룡기가 깨어났다가 전신 세맥으로 흩어져 들어가자 내상으로 굳어 가던 오장육부에 활력이 도는 느낌이었다.

그건 강소군도 예상치 못한 작용이었다.

‘혈룡기로 내상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강소군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쳤으나 당장은 눈앞에 있는 적들부터 상대해야 했다.

“당신은 누군가?”

강소군이 손조에게 물었다.

“그는 기련마검 손조요. 천무십객 중 서열 육 위지.”

조운룡이 대신 대답했다.

강소군이 손조와 옥면미랑, 홍나찰 등을 일별하고는 다시 손조에게 물었다.

“이 자리에서 손을 쓸 셈인가?”

담담한 목소리.

손조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피를 갈구하는 목소리로 들렸다.

실제로 강소군은 혈룡기를 내리눌러 되돌렸음에도 살인에 대한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손조는 내심 피어나는 불안을 누르고 허세를 부렸다.

“마공을 익혔느냐?”

강소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혈룡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혈관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조운룡이 끼어들었다.

“후후. 상대하지 못할 것 같으니 마인으로 모는 건가? 역시 비열하군.”

“너도 보지 않았느냐? 붉은 혈기는 분명 마공이었다.”

“흥! 그렇다면 나의 화룡도법도 마공인가?”

조운룡은 마공을 익힌 자를 만나 본 적이 없었으나 이제까지 동행하면서 본 강소군이 마인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모두 꺼져라.”

손조가 다시 반박하려는데 염가가 끼어들었다.

다시 한 번 모두에게 축객령을 내린 것이다.

강소군이 염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정무각과는 이상스레 자주 얽힌다. 노이칠을 생각하니 염가와 시비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알겠소. 바로 떠나겠소.”

염가가 손조 일행 등을 보고 턱짓을 하였다.

“저 떨거지들도 다 끌고 가라.”

강소군이 손조 일행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나의 동료가 아니요.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오.”

“네 적이니 네가 가면 가겠지. 안 가겠다면 저세상으로 보내 주면 되고.”

염가가 경멸 어린 눈으로 손조 일행을 쳐다봤다.

염가는 손조 일행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손조 등은 모욕감을 느꼈으나 굳이 토 달지 않았다.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속성을 지닌 자들이다.

‘두고 보자. 후회할 것이다.’

손조는 속으로 이를 갈았을 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염가를 향해 포권을 하였다.

“위명이 쟁쟁한 대정무각의 육각주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소. 오늘은 인연이 아닌 듯하니 이만 물러가겠소.”

손조가 먼저 움직이자 옥면미랑과 홍나찰이 따라 움직였다.

그때 강소군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팔 하나씩 두고 가라.”

손조 등의 얼굴색이 홱, 변했다.

“뭐라고?”

강소군이 손조를 향해 다가갔다.

조운룡은 강소군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인에게 팔 한 짝을 내놓으라는 건 목숨을 거두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기련마검 같은 자가 불구가 됐다는 소식이 퍼지면 원한을 지닌 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결국 목숨을 걸고 싸우자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하하하. 참으로 광오하구나!”

손조가 크게 웃더니 싸늘한 시선으로 강소군을 노려봤다.

“순순히 물러가겠다는데 굳이 생사결을 벌이겠다?”

손조가 염가를 보고 말했다.

“분명히 봤을 것이요. 저자가 먼저 도발하였소.”

염가에게 끼어들지 말라는 뜻이다.

“누가 누구를 죽이든 나는 상관 않는다. 다만 나가서 싸워라.”

염가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손조의 시선이 조운룡에게 향했다.

조운룡이 나서려는데 강소군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러고는 앞장서서 객잔을 나갔다.

탁탑천왕이 뿌렸던 피는 이미 눈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눈은 그쳤으나 바람은 더 거세게 불었다.

손조와 옥면미랑, 홍나찰이 품자형으로 서서 강소군을 노려보았다.

누구 하나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합공을 해야 하고 또 전력을 다해야 함을 알았다.

홍나찰이 옥면미랑을 보고는 눈짓을 하였다.

주의를 끌라는 뜻이다.

옥면미랑은 내키지 않았으나 선공을 하였다.

-파라라락!

눈밭임에도 발자국이 거의 남지 않는 뛰어난 경공이 펼쳐지고 검이 수십 가닥으로 쪼개지며 눈보라를 갈랐다.

순간, 손조의 검이 옥면미랑의 반대쪽으로 짓쳐 들었다.

강소군의 손에는 어느새 홍옥비도가 들려 있었다.

따라 나와 지켜보는 조운룡이 미간을 찌푸렸다.

비도는 기련마검 등 천무십객 중 세 사람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무기다.

-따다당.

그럼에도 강소군은 옥면미랑과 기련마검의 검을 모두 쳐냈다.

순간 홍나찰의 손이 펼쳐졌다.

붉은 가루가 손에서 흘러나왔다.

조운룡이 미간을 좁혔다.

“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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