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38화 (38/250)

38

‘헉!’

흑의 복면인의 눈이 순간 크게 벌어졌다.

손으로 전해오는 감촉이 이상했다.

마치 갑옷을 내리친 느낌이었다.

-파악!

강소군의 등에 핏줄기가 터졌다.

강소군의 등을 벤 흑의 복면인은 곧바로 도세를 돌려 강소군의 등을 찌르려 하였다.

순간 강소군이 빙글 몸을 돌렸는데 오른발이 솟아 올라왔다.

-쉬이익!

강소군의 발이 반원을 그리며 흑의 복면인의 머리통에 작렬하였다. 강소군의 등을 찌르려던 도는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퍼럭!

복면 속의 머리통이 터지며 흑의 복면인은 그대로 쓰러졌다.

강소군은 자신의 도를 움켜쥐고 죽은 흑의 복면인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 역시 숱한 전장을 겪었지만 이렇듯 악착같은 자들은 처음이었다.

“큭!”

연화심 일행 쪽에서 신음성이 터졌다.

강소군이 재빨리 도를 빼며 돌아봤다.

위응환의 가슴이 도에 베여 붉게 물드는 게 보였다.

적들은 세 사람 중 가장 강한 위응환부터 집중 공격을 하였다.

중랑 앞에는 셋, 연화심 앞에는 하나, 그리고 위응환에게 여섯이 달라붙었다.

중랑이 간간이 도움을 주긴 했으나 지난번 응천대와의 혈전에서 중상을 입은 뒤 완쾌되지 않은 위응환은 마음과 달리 몸이 따르지 않았다.

기어이 가슴에 도를 맞았는데 다행이라면 마지막 순간 기지를 발휘하여 비껴 맞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살점이 한 움큼이나 떨어져 나갔다.

강소군이 바닥에 구르는 도를 발로 찼다.

도가 직선으로 날아가며 막 연화심의 허리를 후려치려던 흑의 복면인의 옆을 노렸다.

흑의 복면인이 날아오는 도를 무시 못 하고 몸을 빼며 후려쳤다.

-쨍!

도가 떨어지는 순간 연화심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검을 찔렀다.

-푹!

연화심은 난생처음 느끼는 이질적인 감촉에 그만 검자루를 놓칠 뻔했다.

흑의 복면인이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는데 갈비뼈가 갈리는 느낌이 전해왔다.

-서거거걱!

사람의 뼈가 갈리는 기이한 감각에 연화심은 팔에 힘이 쭉 빠졌다. 그 사이를 노리고 옆에 있던 자가 연화심의 목을 후려쳤다.

“정신 차려!”

중랑의 검이 연화심의 목을 노리는 도를 쳐냈다.

“큭!”

검을 빼는 바람에 앞에 있던 자의 도가 중랑의 어깨를 찍었다.

중랑이 어깨를 비틀며 스치긴 했으나 핏줄기가 길게 났다.

“오라버니!”

연화심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발을 들어 앞에 있는 흑의 복면인의 배를 걷어차며 가슴에 박힌 검을 뽑는 동시에 횡으로 그어 재차 중랑을 노리는 흑의 복면인의 목을 찔렀다.

흑의 복면인이 재빨리 몸을 비틀며 공격은 빗나갔으나 목에 혈흔이 그어졌다.

“천성회천!”

중랑의 외침에 연화심은 본능적으로 손에서 검을 회전시키며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크억!”

흑의 복면인의 목이 반쯤 떨어지며 피분수를 뿜었다. 연화심과 중랑은 그 피를 뒤집어썼다.

중랑은 그 사이 연화심과 자신을 노리는 자들의 하반신을 휩쓸어 적을 물렸다.

동시에 비틀거리는 위응환의 등을 노리는 자의 허리를 그었다.

-서걱!

절정에 이른 중랑의 검은 유성처럼 흘러 적의 옆구리에 박혔다.

연화심은 이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기력은 다하고 뒤집어쓴 핏물이 눈에 흘러들어 제대로 앞을 볼 수도 없었다.

그때.

화심아!

연화심의 귀에 문득 아버지 연성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연화심은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아버지의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자 아련한 슬픔과 함께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끼아아앗.”

연화심의 입에서 괴성이 터지고 검이 빨라졌다. 그러나 검로를 따르지 않고 마구 휘두르는 검은 적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화심아! 천성관월!”

천성관월은 허공을 향해 고요히 겨누는 천성검법의 기수식이다.

연화심은 무의식적으로 중랑의 말에 따라 천성관월의 초식을 펼쳤다. 이어 천성검법의 검로를 따라 검을 휘둘렀다.

정직하게 검로를 따르는 검법 역시 적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았으나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과는 달리 허점이 노출되지 않았다.

천성검법은 공격 속에 방어가 있고 방어 속에 공격이 있는 상승검법이었기 때문이다.

강소군이 도를 발로 찬 이후 짧은 순간 이어진 흐름이었다.

그 사이 강소군이 합류하였다.

“컥!”

강소군의 도는 거침이 없었다. 강소군이 가세하며 적의 기세가 무너지자 중랑과 위응환의 공세도 살아났다.

장무강과 심마백의 싸움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컥!”

장무강의 식도가 흑의 복면인의 목을 찍었다.

마지막 한 명이 뒤로 삼 장이나 물러났다. 장무강은 그의 무공이 특히 강했음을 알고 있다.

‘저놈이 우두머리다.’

온통 복면을 쓰고 말없이 공세를 취하니 우두머리를 알 수가 없었다.

흑의 복면인들은 공격을 하면서도 말이 없었다. 죽어 가면서도 짧은 신음성만 뱉을 뿐이었다.

장무강이 물러나는 우두머리를 쫓으려다 말고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돌아봤다.

심마백은 그 사이 한 놈을 쓰러뜨리고 두 명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심마백은 창으로 앞의 적을 찌르며 옆에서 날아오는 도를 피하려다 견갑골을 크게 베이고 말았다.

‘저놈이 또!’

심마백은 툭하면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장무강은 우두머리를 쫓는 걸 포기하고 식도를 날렸다.

식도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심마백의 등짝을 재차 내리치려는 흑의인의 이마에 꽂혔다.

그 사이 심마백도 앞에 있는 적의 목을 창으로 꿰었다.

-휘익!

우두머리가 휘파람을 불자 연화심 일행을 공격하던 네 명의 흑의 복면인들이 각자 몸을 날려 사라졌다.

“큭!”

위응환이 털썩 주저앉았다.

“아우야!”

“위 대협!”

장무강과 심마백이 달려가고 그보다 먼저 연화심이 위응환을 부축하였다.

“하하. 괜찮소. 가슴팍이 좀 쓰리긴 하지만 거뜬하오. 오랜만에 제대로 몸을 풀었소.”

위응환이 말하고는 정신을 잃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이다.

심마백이 금창약을 꺼내 위응환의 가슴에 뿌리고 보따리에서 옷을 꺼내 위응환의 상반신을 칭칭 감았다.

“이리 와. 너도 만만치 않다.”

심마백의 어깻죽지도 피범벅이다. 장무강이 옷을 쭉 찢어 일단 감아 지혈하였다.

“괜찮으냐?”

중랑은 옆구리의 상처가 깊었다. 상처를 천으로 묶고 연화심에게 다가와 물었다.

연화심은 온몸이 쓰렸다.

적의 도기에 스친 곳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크게 상한 곳은 없었다.

위응환과 중랑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보호하였기 때문이다.

연화심은 자신이 이들의 짐이라는 사실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차라리 적에게 투항할까 하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강소군은 일행과 떨어져 멀리 지나온 길을 보며 서 있었다.

적에게 길게 베인 등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다행히 피륙의 상처다.

심각한 것은 고질적인 내상이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지만 그 역시 재발한 내상을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강기를 연달아 쏟아냈으니 무리한 셈이다. 울컥 솟은 피를 꿀꺽 삼키고 멀리 들판을 살폈다.

스물여섯이 와서 다섯이 살아갔다. 이대로 추격이 끝은 아닐 것이다.

-두두두두.

관도 저편에서 흙먼지와 함께 달려오는 한 떼의 기마가 있었다.

지축을 흔들리는 소리에 아우들의 상태를 돌보던 장무강은 내심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여기서 다시 적을 맞는다면 꼼짝없이 죽을 판이다.

강소군이 천천히 앞으로 나가 관도를 막았다.

연화심은 피가 흐르는 그의 등이 무척이나 고독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랑이 연화심에게 일렀다.

“화심, 말에 올라라.”

위응환의 말이 죽었으나 흑의 복면인들이 타고 온 말이 있어 모두가 탈 수 있었다.

“어쩌려고요?”

“어서!”

중랑의 목소리가 단호하였다. 이어 장무강을 향해 말했다.

“장 대협, 아우분들과 함께 먼저 가시지요.”

중랑이 검을 고쳐 잡고 앞으로 나갔다.

강소군을 향해 가는 중랑의 등은 왠지 듬직했다.

“우리가 늦었군!”

앞장서 달려온 이는 노이칠이었다.

노이칠은 사방에 널린 흑의 복면인의 시신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흑의 복면인 열다섯을 해치운 대가로 비영대원 열둘을 잃었다.

그런데 여기 널린 시신은 스물이 넘었다. 그럼에도 여섯 사람은 멀쩡하다. 아니, 완전히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죽지는 않았다.

“전쟁이라도 치른 건가?”

노이칠이 강소군을 향해 말하고는 경천승에게 일렀다.

“안양성에서 가깝다. 관군이 올 수도 있으니 빨리 시신을 수습해라.”

경천승과 비영대원들이 흑의 복면인들의 시신을 숲으로 옮겼다.

“어서 성으로 갑시다.”

노이칠이 강소군 일행을 살펴보곤 말했다. 죽을 것 같진 않지만 부상들이 꽤 심각해 보였다.

“안경성에 본각의 안가가 있소. 그리로 갑시다!”

***

-쾅!

반자 두께의 두꺼운 나무탁자가 박살이 났다.

“뭐라고? 살귀대가 당했다고!”

조개량의 보고에 구연강이 분노하였다. 전신에서 살기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고작 몇 놈에게?”

조개량이 고개를 조아렸다. 구연강이 분노할 때는 소나기 지나가기를 기다리듯 기다려야 한다.

구연강이 이렇듯 분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살귀대는 구연강이 천하제패를 위해 기른 비장의 무력 중 하나다.

살귀대 백 명을 기르는 데 십 년의 세월과 엄청난 자금이 들었다. 그 절반을 잃었으니 이리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조개량은 변명을 하지 않았다.

“그놈! 반드시 잡아라! 내가 친히 목을 칠 것이다!”

“존명!”

조개량이 두 손을 모아 명을 받았다.

그제야 구연강의 분노가 풀렸다.

“말하라! 살귀대 열 명이면 절정고수를 잡는다! 그런데 고작 여섯 놈에게 오십 명이 당했다. 대체 어떻게 운용한 것인가?”

“변수가 둘 있었습니다.”

조개량이 침착하게 말했다.

“대정무각이 서른 명의 무사를 동원했습니다. 게다가 의외의 인물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의외의 인물?”

“도룡회의 삼공자 화룡도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도룡회? 그놈들이 왜 여기에 나타나?”

도룡회는 하남의 북쪽이 영역이다.

“도룡회의 움직임은 별다른 게 없습니다. 화룡도 혼자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으흠.”

구연강이 생각에 잠겼다.

아들의 복수를 하고 삼도문을 접수하러 왔다. 상황을 봐서 하남 남쪽으로 진출할 생각은 있었다.

그러자면 대정무각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도룡회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방주님의 친정에 강호의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도룡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요. 다만 삼공자란 놈이 직접 나왔다는 게 의외입니다.”

“어린놈이잖아. 신경 쓸 게 있나?”

구연강은 지금은 도룡회와는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무시하라는 뜻이다.

“도룡회는 회주 우문극의 힘이 막강합니다. 제자들이 가진 힘도 적잖습니다.”

“그래서?”

“화룡도를 잡으면 도룡회를 상대하는 데 수월할 겁니다.”

“으음.”

구연강이 생각에 잠겼다.

천하사패가 지금껏 유지되어 왔던 이유가 서로의 힘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요천루주가 죽었으니 한 축이 무너졌다. 하지만 솥은 세 발로도 설 수 있다. 이는 천하삼패라고 해도 사패와 마찬가지로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구연강은 대정무각과 도룡회를 동시에 상대하는 그림을 그려 봤다. 역시 쉽지 않았다.

‘이놈이 대체 뭘 그리는 거야?’

조개량은 머리가 좋은 놈이고 야망도 있다. 하지만 무인들을 장기판의 말로 여긴다.

살귀대의 절반을 희생시킨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자식은 무인 하나 키우는 데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지 알까?’

구연강은 조개량의 머리가 필요하여 쓰고 있지만 가끔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지금처럼 막 나갈 때이다.

구연강이 곰곰 생각하다 물었다.

“대정무각과 도룡회를 동시에 상대하자는 건가?”

조개량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구연강이 제아무리 머리를 쓴다 해도 결국은 무인이다. 자신의 심모원려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럴 리가요? 저는 그 둘을 싸움 붙일 생각입니다.”

“둘을 싸움 붙인다고?”

“그 전에 싸움의 양상을 바꿔야겠습니다. 무력대는 뒤로 빠지고 고수들을 투입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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