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36화 (3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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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칠이 눈을 부릅뜨고 앞을 노려봤다.

길이 야트막한 구릉을 넘는데 양쪽이 숲이다.

정찰을 위해 앞서갔던 무사 두 사람이 길에 떨어져 있고 주인을 잃은 말 두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무사의 등에 화살이 꽂혀 있다.

노이칠의 주위로 무사 몇이 모이고 다른 몇몇이 말을 달려 앞으로 나갔다.

“멈춰라!”

노이칠이 앞으로 나간 무사들을 되돌렸다.

노이칠의 속이 쓰렸다.

자신이 며칠 전 천성대 무사들을 기습한 그대로 당했다.

아마도 저 양쪽 숲에 적이 매복하고 있을 것이다.

‘강소군 일행은 보내고 우리를 막는다는 건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노이칠이 무사들을 돌아봤다. 평범한 무복을 입었으니 대정무각임을 알아볼 수는 없다.

‘조개량, 과연 대단하군.’

노이칠은 구연강의 친정에 천무방의 군사 조개량이 동행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조개량은 정황만으로 자신들이 대정무각임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게 분명했다.

“시신을 거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푸른 무복을 입은 서른 가량의 무인이 다가와 말했다.

서른 명의 대정무각 무사들은 십각의 정예 비영대였다.

일조와 삼조, 오조가 노이칠을 암중에 따랐는데 일조장 경천승이 총지휘를 맡았다.

“물론, 하지만 매복부터 해결해야지.”

“제게 맡겨 주십시오.”

경천승은 비영대주 경천광의 아우로 일류를 넘어 절정으로 치닫는 고수였다.

경천승은 자신이 직접 일조를 끌고 우측 숲을 치기로 하고 삼조에게 좌측을 맡겼다.

그 사이 오조가 시신을 수습하며 매복을 돌파한다는 계획이었다.

경천승은 말에서 내려 열 명을 끌고 관도를 따라 달려갔다.

“너희 다섯이 먼저 가라. 엄호하겠다.”

먼저 다섯 명을 보냈다.

-파파팍!

역시 화살이 날아왔다.

기습이라면 모를까 화살이 날아올 것을 대비하고 있었기에 비영대 무인들은 가볍게 쳐내고 숲으로 몸을 날렸다.

대정무각의 무인들 역시 쇠뇌를 차고 있었다.

화살이 날아온 곳을 일제히 쇠뇌를 겨눴다.

-피융, 피융!

화살이 숲으로 쏟아지고 나머지 다섯 명의 무인들도 숲으로 들어갔다.

-쨍! 째쟁!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서둘러라!”

노이칠은 남은 오조 열 명을 독려하여 죽은 정찰대원의 시신을 거두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슈슉!

화살이 날아왔으나 비영대원들이 쳐냈다.

그러나 노이칠은 구릉을 넘는 순간 말을 멈춰야 했다.

검은 무복을 입은 열 명의 무사들이 관도에 버티고 서 있었다.

경천승이 달려왔다.

“매복은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 우리 발목을 잡고 시간을 끌겠다는 속셈이었어.”

노이칠이 앞에 선 검은 무복의 무사들을 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는 앞에 간 강소군의 일행이 더없이 위험하다는 뜻이다.

***

“저럴 수가!”

심마백이 혀를 내둘렀다.

강소군은 달려 나가는 말을 박차고 날아오르더니 창을 땅바닥에 대고 긁듯이 날아갔다.

바닥에 깔린 쇠줄이 창에 걸리며 우두둑, 뽑혀 올라왔다.

쇠줄을 긁어낸 강소군이 땅에 내려선 뒤 창으로 크게 원을 그렸다.

가시가 달린 쇠줄이 채찍처럼 크게 원을 그리다 저 멀리 날아갔다.

뒤이어 달려온 말에 다시 강소군이 올라탔다.

눈 깜짝할 사이, 아니 말이 달리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심마백은 군 출신이다.

무수한 기마전을 봤지만 덫을 저렇게 단박에 제거하는 건 처음 봤다.

‘저게 절대고수의 무위라는 건가?’

호승심이 누구보다 강한 심마백이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소군 덕분에 일행은 말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적도 당황했던 모양이다.

암기가 두서없이 날아왔으나 이미 늦었다.

-삐익!

호각 소리와 함께 양쪽에 매복했던 적들이 부랴부랴 말을 타고 쫓아왔다.

얼핏 보니 열 명가량이다.

“마백아!”

장무강이 소리쳤다.

원래는 중랑과 함께 뒤를 막으려 했으나 말을 강소군에게 내주는 바람에 심마백이 대신하기로 했다.

적들은 고도로 훈련된 살수들이었다. 말을 달리면서도 쇠뇌를 다룰 줄 알았다.

“제기랄. 응환이가 있어야 했네.”

심마백이 투덜거리면서도 장무강과 함께 나란히 말을 달리며 뒤를 경계하였다.

-슈슉!

“화살이다!”

장무강이 경고를 하고 마상에서 크게 몸을 돌려 두 자루의 식도를 휘둘렀다.

심마백은 말 옆으로 눕다시피 하며 장창을 휘둘렀다.

-쨍! 째챙!

화살이 튕겨 나가고 몇 발은 그대로 날아갔다. 장무강이 기겁하여 큰소리로 경고하였다.

“연 낭자! 위험하오!”

-따당.

중랑의 뒤에 탄 연화심이 장무강의 경고에 뒤를 돌아보더니 검을 휘둘러 화살을 튕겨냈다.

“연 낭자도 제법이구나!”

장무강이 크게 칭찬하고는 한시름 놓은 듯 돌연 말을 돌렸다.

그러자 심마백 또한 말을 돌리더니 쫓아오는 적을 향해 마주 달렸다.

적들은 도주하던 장무강과 심마백이 돌연 기수를 돌려 달려오자 좌우로 갈라지며 맞부딪혀 왔다.

-땅!

-따다당!

“크윽!”

한 차례 격돌에서 서너 명이 신음성을 흘리며 나가떨어졌다.

적들이 몰랐던 사실이 있다.

산동삼호는 원래 군 출신으로 일반 무사와 달리 기마전에 능했다.

적들의 기마술도 뛰어났지만 전장을 누비고 다녔던 장무강과 심마백에게는 부족함이 있었다.

특히 심마백은 말 등과 옆구리, 심지어 배 밑까지 오가며 장창을 자유자재로 찔렀다.

몸놀림이 얼마나 신묘한 지 말의 몸에서 창이 솟아나오는 것만 같았다.

“돌려라!”

장무강의 말에 심마백이 바로 말고삐를 채어 뒤로 돌았다.

두 사람은 다시 말을 달렸다.

이제는 강소군과 위응환, 중랑과 연화심이 앞을 달리고 그 뒤를 흑의인들이 쫓고 다시 그 뒤를 장무강과 심마백이 쫓은 형국이 됐다.

장무강은 그 와중에 주인 잃은 말을 하나 낚아챘다.

-두두두두.

질주가 이어지는데 장무강이 크게 소리쳤다.

“응환아!”

앞서가던 위응환이 상황을 돌아보고 달려가는 속도를 늦춰 뒤로 빠졌다.

변방 전장에서 수없이 격전을 치렀던 세 사람은 이름만 불러도 무슨 뜻인지 서로 알 수가 있었다.

위응환이 말 등에서 빙그르르 돌더니 거의 눕다시피 하며 쇠뇌를 겨눠 쏘았다.

-슈슉!

-슉!

다섯 발의 화살이 쫓아오는 적을 향해 날았다.

“피하라!”

적들이 화살을 피해 좌우로 벌어졌다.

순간 위응환이 쇠뇌를 말 옆구리에 걸며 동시에 자신의 피풍의를 벗어 휘둘렀다.

-파파!

-휘리릭!

피풍의 안에는 갖은 암기가 숨겨져 있었다.

수리검과 쇠질려, 금모각 등 여러 가지 암기가 무더기로 날았다.

좌우로 벌어진 적들은 다급히 암기를 쳐내며 더 벌어져야 했다.

그 사이 장무강과 심마백이 질주하며 위응환과 합류하였다.

“말 한 마리 얻어 왔다.”

장무강이 껄껄 웃으며 자신의 옆에서 달리는 말고삐를 툭툭 채더니 위응환에게 건넸다.

“순순히 내주던가요?”

위응환이 씩 웃으며 말고삐를 받아들고 자신의 말 엉덩이를 후려쳤다.

“이랴!”

위응환이 빼앗은 말을 끌고 질주하였다.

“중랑! 자네 말을 받게.”

위응환이 중랑 옆으로 달려가며 장무강이 빼앗아온 말을 건넸다.

중랑이 반색하였다.

아무래도 연화심과 함께 타고 가니 속도가 더뎠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중랑이 연화심에게 말고삐를 넘겨주고는 달리는 말에서 튀어 올라 공중제비를 돌았다.

“오라버니!”

연화심이 놀라 소리쳤는데 중랑은 위응환이 준 말 등에 사뿐 내려앉았다.

“오호. 기마술도 제법인데?”

위응환이 감탄하였다.

“낭인생활을 하며 배운 잔재주입니다.”

“겸손도 지나치면 밉상이라는 거 아나?”

위응환이 씨익, 웃고는 말채찍을 휘둘러 강소군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중랑과 연화심이 각기 말을 타자 일행은 속도가 붙었다.

-두두두두.

중랑과 심마백이 위치를 바꿨다. 심마백은 아직 완쾌되지 않아 무리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장무강과 중랑이 뒤를 맡았다.

여섯 필의 말은 안경성을 향해 폭풍처럼 질주하였다.

***

“크윽!”

다섯 번째 흑의 복면인이 화룡도를 맞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조운룡은 재빨리 도를 거꾸로 세워 몸을 보호하였다.

“…!”

관전만 하고 있던 흑의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조운룡이 쓰러진 흑의인의 수를 세었다.

다섯이다.

‘다섯이 공격하고 하나가 지켜봤는데.’

지켜보던 자가 기척도 없이 사라졌다.

어떻게 사라졌는지 눈치 채지도 못했다. 적어도 이 자들보다는 윗줄이라는 뜻이다.

‘이놈들도 만만치 않았는데.’

조운룡은 등이 아렸다.

흑의인들은 집요하였다.

무엇보다 흔한 무사들이 아니었다.

개개인의 무공도 뛰어났지만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합공은 오로지 고수를 잡기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조운룡의 등에도 길게 도흔이 났다.

종아리에도 가로로 칼이 스쳤는데 긴장이 풀리니 무척이나 아렸다.

‘이런 제기랄.’

강호에 나온 후 처음으로 당하는 부상이었다.

‘대체 이놈들 정체가 뭐야?“

천무방 무사들임이 분명했는데 생각보다 무공이 뛰어났다.

‘혈도대와 붙어도 승패를 가리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놈들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 바닥을 뒹구는 이름 모를 천무방의 무인 개개인이 혈도대 무인과 맞먹는다는 게 놀라웠다.

천무방은 이런 무인들을 고작 한 사람을 쫓기 위해 내보냈다.

게다가 방금 정황으로 봐서는 자신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쓴 게 분명했다.

‘이런 자들이 버리는 패라고?’

조운룡의 가슴이 무거웠다.

천하사패는 서로 부딪힌 적이 없다. 다만 서로의 전력을 탐색하며 물밑에서 치열하게 암투를 벌여 왔을 뿐이다.

조운룡은 도룡회가 천무방과 정면대결을 하면 쉽게 무너뜨릴 것이라고 자신해 왔는데 아무래도 그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조운룡이 침중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고 역시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몸을 날렸다.

역시 일 장을 쭉 미끄러져 나가는 기이한 신법이었다.

***

“컥!”

마지막 남은 흑의인이 쓰러졌다.

“지독한 놈들!”

적은 숲속에 매복한 놈들까지 해서 모두 열다섯이었다.

수적으로 불리함에도 모두 끝까지 싸워 죽음을 택했다.

노이칠이 직접 가세하여 격전을 벌였는데도 비영대원들도 열둘이나 희생됐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개개의 무공이 비영대원들보다 반수 위였다.

노이칠은 허탈했다.

비영대원 하나하나가 자신이 직접 선발하여 키운 무사들이다.

이렇게 황량한 들판에서 이름도 없는 놈들에게 죽어선 안 되는 거였다.

‘살귀대라고? 대체 어떤 훈련을 받았기에 이런 놈들이 나온 거지?’

노이칠이 옆에 나뒹구는 흑의인의 복면을 벗겼다. 서른 남짓한 자였는데 이마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

칠십구(七十九)

노이칠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이런 놈들로 일대(一隊)를 편성했다는 말인가?’

천하사패는 대개 백 명으로 일대를 구성했다.

중소문파로서는 재정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만한 인원으로 일대를 꾸리기 어렵다.

삼도문의 화천대 역시 서른 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것도 중소문파에서는 큰 규모라고 할 수 있었다.

천하사패의 일대는 말이 백 명이지 개개인이 일류 무사들이다.

대(隊)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소속 방파의 명예를 짊어지기 때문에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대에 속하지 못한 무사들은 경비나 서거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때 머릿수 채우는 용도로 쓰인다.

노이칠은 정보를 다루기에 천무방에 대해 아는 바가 적지 않았다.

무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여겼다. 그런데 오늘 그 실체를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냐. 이놈들이 특별한 놈들일 것이다. 천무방주의 친정이다. 방주의 아들을 죽인 자를 잡는 만큼 최정예를 쏟아 부은 게 분명해.’

노이칠은 적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쓰린 속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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