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35화 (3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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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을 나갔던 심마백과 위응환이 돌아오자 장무강은 자신의 객실로 중랑과 연화심까지 불렀다.

“대략 오십여 명이 포위하고 있는데 동쪽 방면만 비었습니다.”

“동쪽만 비었다고?”

장무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중랑이 지도를 펴자 모두 들여다봤다.

동쪽 길은 안경성 북쪽을 지나 합비까지 이어진다.

“그쪽에 매복을 둔 모양이군.”

장무강이 매복을 둘 만한 지형을 살펴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형만 보자면 굳이 동쪽으로 몰아야 할 이유가 없다.

중랑이 육안 쪽에서 선을 그었다.

“적들이 산을 넘어 신양으로 왔다면 육안을 거쳐 이리로 내려오겠지요.”

“고작 우리 몇을 잡겠다고 본진을 끌고 내려온다는 말인가?”

“그가 있잖아요.”

연화심이 끼어들었다. 강소군을 말한 것이다.

“그렇지. 그는 일당백이니까.”

위응환이 동조하였다.

“이렇게 된 이상 안경성으로 가자. 안경은 큰 도시이니 관군의 규모도 제법 될 것이다.”

장무강이 말했다.

무림인들이라도 큰 도시에서는 관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어지간해서 관군이 나서지는 않지만 한 번 나서면 골치 아프게 된다.

“안경은 장강을 접하고 있으니 배를 타고 빠져나가거나 강을 건너 적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적의 수가 많은 만큼 이를 수용할 만한 배는 많지 않다.

작은 배들을 동원한다 해도 한계가 있을 터.

적의 규모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그런데 안경 쪽을 지키는 놈들이 가장 많습니다.”

“으음.”

장무강이 생각에 잠겼다.

심마백과 위응환은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 잠시라면 몰라도 장시간 격전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마백과 앞길을 열고 중랑이 응환과 뒤를 막으면?’

무리한 수이기는 하지만 앉아서 적을 맞을 수는 없었다.

“강 대협은 어떻게 한대요?”

연화심이 장무강에게 물었다.

장무강이 노이칠과 강소군, 조운룡과 함께 있는 걸 봤기에 묻는 것이다.

“저들은 걱정할 필요 없을 것이네. 대정무각과 도룡회의 고수들이자 고위층이니 호위세력이 있을 것이야.”

중랑이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중랑도 생면부지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연화심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체면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장무강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먼저 입을 뗄 수는 없었다.

심마백이 말했다.

“만일 도룡회나 대정무각의 도움을 받는다면 당장은 안전할 수 있지. 하지만 잘못하면 그들의 그늘로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네.”

강호의 은원은 분명하다.

산동삼호처럼 은원을 중시하는 무인들이라면 도움을 받을 경우 그 두 배 세 배를 갚고자 한다.

당장 지금도 연성결과의 인연 때문에 그의 딸을 데리고 만리행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뭘 원할지 모르니 함부로 도움을 청하기가 어렵네.”

연성결과 달리 대정무각이나 도룡회는 강호를 제패하려는 세력이다. 그러니 탐탁지 않은 것이다.

연화심도 그런 사정을 알았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세 분 대협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연화심이 벌떡 일어나더니 산동삼호에게 예를 취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저들이 원하는 건 바로 저 하나입니다. 모두가 희생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저들에게 가겠습니다!”

중랑이 화들짝 놀랐다.

“화심아! 대체 무슨 소리냐?”

“연 낭자! 쓸데없는 생각 말게.”

산동삼호도 동시에 소리쳤다.

“아닙니다. 더 이상 저 때문에 피를 흘리는 걸 원치 않습니다.”

연화심의 표정이 단호하였다.

장무강이 탄식하였다.

“연 문주의 복수를 다짐하였잖소. 이대로 적의 칼에 죽겠다는 말이오?”

“아니, 그냥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연화심이 장무강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강호에 탈혼백침이란 암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구해 주시겠습니까?”

“탈혼백침?”

심마백이 되묻자 암기에 조예가 깊은 위응환이 설명하였다.

“독과 암기로 뛰어난 당가의 무기입니다. 손가락만 한 굵기의 대나무통인데 그 안에 쇠털 같은 우모침이 백 개가 들어 있지요.”

탈혼백침은 길이가 한 뼘 정도 되기에 소매 밑에 감추어 두었다가 쓴다.

한 번 발사하면 백 개의 우모침이 일 장 반경을 덮는다.

가까이서 기습을 당한다면 피할 자가 없다는 암기다.

우모침에 독이라도 바르면 더욱 치명적이다.

왕년에 백수모왕이라는 절세의 고수가 당가와 시비가 붙었는데 탈혼백침에 당해 죽고 말았다. 그 이후로 강호에서 회자되는 암기다.

위응환이 연화심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탈혼백침은 구하기가 쉽지 않은 물건이지요. 워낙 치명적이라 당가에서도 아주 철저히 관리를 한답니다. 차라리 혈로를 뚫는 게 낫습니다.”

연화심은 고개를 저었다.

“천무방은 저를 바로 죽이지 않을 겁니다. 제가 잡혀 있는 동안 탈혼백침을 구해 전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저는 제안을 할 겁니다. 천무방이 삼도문을 차지하였다고 하지만 그 많은 삼도문의 관할 상점과 상권을 모두 얻을 수는 없습니다.”

“…?”

“저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몇 년 전부터 상점과 상권을 관리해 왔기에 잘 알고 있지요.”

“상권을 넘겨주는 대가로 시간을 벌고 있을 때 탈혼백침을 구해 달라는 이야기인가?”

장무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암기를 쓰는 걸 탐탁지 않아 하는 무인이었다.

“공명정대한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 남은 수는 그것뿐입니다.”

“그건 옳은 길이 아니다.”

중랑이 딱 잘라 말했다.

“연 문주님께서 원한 건 복수가 아니라 너의 안위이자 행복이었다. 그랬기에 복건의 장원과 화천대를 맡긴 것이지.”

중랑의 표정은 엄했다.

연화심과 의남매를 맺은 후 톡톡히 오라비 노릇을 하고 있다.

“네가 흉악한 암기로 천무방주를 죽인다고 치자.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도 그 즉시 옆에 있는 고수들에게 격살당할 것이다.

“그게 연 문주께서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마도 저승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는 일이라는 말이다.”

중랑의 신랄한 말에 연화심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장무강이 내심 중랑의 기세에 놀랐다.

‘이 녀석이 보기보다 강단이 있구나. 외유내강의 성품인가 보군.’

장무강은 중랑을 새삼 다시 보곤 연화심을 위로하였다.

“상황이 하도 갑갑하니 낭자가 그런 수까지 생각한 건 이해하오. 하지만 중랑의 말대로 연 문주의 뜻은 확고했소. 우리 삼 형제가 보증하오.”

심마백과 위응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미 돌아가신 연 문주께 목숨을 걸고 낭자를 복건까지 무사히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소. 그러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면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라 여길 것이오.”

장무강의 말에 잠시간의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때 바깥에서 강소군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소?”

중랑이 문을 열었다. 강소군이 들어서더니 선 채로 말했다.

“안경으로 가는 길은 내가 뚫겠소. 다른 분들은 연 소저와 함께 뒤를 따라오시오.”

강소군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삼도문에 있을 때 강소군은 철저히 홀로 지냈다.

심지어 삼도문을 떠날 때도 아무와도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연화심의 도주를 돕겠다니 의외였던 것이다.

“강 소협이 나선다면 큰 힘이 될 것이오.”

위응환이 말했다.

장무강 역시 큰 힘을 얻었다는 생각이다.

강소군이 앞에서 길을 열고 자신과 중랑이 뒤를 막으면 안경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천무방의 본진이 오고 있다고 하오. 서둘러야겠소.”

강소군은 노이칠에게서 천무방 본진이 남하하고 있음을 들었다.

“그럼 바로 준비를 하고 떠나기로 하지요.”

평안객잔의 옆문이 열리고 강소군이 먼저 말을 타고 나왔다.

말 옆에 꽂힌 장창이 유난히 붉게 빛났다.

뒤이어 중랑과 연화심이 말 한 필을 함께 타고 나왔다. 강소군이 탈 말이 없었기에 중랑과 연화심이 함께 타기로 한 것이다. 뒤이어 심마백과 위응환, 장무강의 순으로 달려 나왔다.

바깥채에서 강소군 일행이 나가는 걸 보던 노이칠이 술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커흑. 한바탕 해볼까나.”

노이칠이 입을 씻고 일어서는데 전혀 취한 기색이 없었다.

노이칠이 평안객잔을 나와 길가의 숲으로 들어갔다.

서른 명의 무사들이 말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무사들의 복장은 각양각색이었다. 원래 대정무각은 푸른 무복을 입는다.

노이칠은 아직은 대정무각의 개입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무사들에게 변복을 하라 일렀다.

노이칠이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접전을 지켜보다 저들이 위기에 빠지는 순간 나설 것이다. 그 전까지는 최대한 행적을 감춰야 한다.”

“예! 각주님!”

무사들이 복창하였다.

노이칠이 야산을 이용해 강소군 일행의 뒤를 따르고 있을 때, 조운룡이 객잔을 나섰다.

강소군 일행이 떠나자 사방에 웅크리고 있던 추적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다섯이 조운룡의 앞을 가로막았다.

복면을 한 흑의인들은 기다란 도를 들고 있었다.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 겨우 다섯이라니.”

흑의 복면인들은 말이 없었다. 한 사람이 움직이자 다른 네 사람이 좌우로 갈라져 들어왔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췄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조운룡의 화룡도가 도집에서 뽑혀 나왔다.

붉은 도기가 번뜩이는데 마치 화룡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복면인들은 천성대와 달랐다. 붉은 도기를 흘려보내며 좌우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조운룡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강호 비무행을 나선 후 일부러 찾은 고수 외에 이런 수준의 무사들은 처음이었다.

‘과연 천무방이로군.’

조운룡은 천성 사조장과 대원 둘의 머리를 단번에 날렸다.

당시 천성대는 강소군에 의해 대주의 머리가 떨어진 직후라 당황한 상황이었다.

살귀대는 천성대보다 강하고 오로지 적을 죽이는 것만 목표로 살아온 자들이다.

조운룡의 도가 예사롭지 않으나 흔들림 없이 합공을 하였다.

‘이런 제기랄.’

조운룡은 다섯 명의 합공을 받으면서도 은근히 길가에 서 있는 복면인을 신경 썼다.

언제 나타났는지 복면인 하나가 서 있는데 미동도 않고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운룡은 본능적으로 그자가 가장 큰 위협이라는 걸 직감하였다.

***

길 양쪽 숲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강소군의 창이 말 등에서 뽑히더니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따당!

화살들이 창에 가로막혀 튕겨 나가는데 놀랍게도 몇 개는 창과 부딪히지도 않았다.

기운에 휩쓸려 튕겨 나간 것이다.

바로 뒤를 따르는 중랑은 감탄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뒤에 탄 연화심 역시 검을 늘어뜨리며 뒤를 경계했다.

“헛!”

위응환이 말고삐를 채어 앞으로 달려 나가며 강소군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더니 말 옆구리에 꽂아둔 쇠뇌를 들었다.

-슈슉!

위응환의 쇠뇌에서 무려 다섯 발의 화살이 튀어나갔다.

화살은 화살이 날아온 숲으로 향했다.

-퍼퍼퍽!

위응환의 쇠뇌는 특별히 개량한 것이어서 위력이 보통 쇠뇌보다 배가 강했다.

작은 나무는 그대로 뚫거나 박살냈다.

“컥!”

나직한 비명이 들렸다.

위응환은 왼손으로 다섯 발의 화살을 집어 쇠뇌에 걸었다.

말을 달리며 양손으로 쇠뇌를 다루는데 무척이나 익숙해 보였다.

-쉬쉭!

-슈슉!

양쪽 숲에서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강소군이 화살을 쳐내는 사이 위응환의 쇠뇌에서 화살이 날았다.

“큭!”

“억!”

이번에는 화살이 날아온 곳을 확인하고 겨냥하였기에 적이 입은 타격이 컸다.

강소군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적의 궁수들이 매복한 지역을 바로 통과하였다.

그런데.

-히히힝!

강소군이 돌연 말고삐를 채어 기수를 돌렸다.

관도에 날카로운 가시들이 박힌 쇠줄이 겹겹이 깔려 있었다.

“매복이오! 조심하시오!”

위응환이 소리쳤다.

한 바퀴 말을 돌린 강소군이 다시 말 등을 쳤다.

말이 튕기듯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저런 무모한!”

위응환이 놀라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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