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33화 (33/250)

33

“도룡회!”

이번에는 심마백과 위응환까지 놀라 나직이 말을 받았다.

안경 외곽 허름한 객잔에서 천하사패 가운데 이패의 고수들을 만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도룡회와 대정무각과는 무슨 관계요?”

장무강이 의아해하며 강소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 관계 없소.”

강소군이 딱 잘라 말했다.

“관계없기는 같은 객잔에 묵었고 오늘은 온종일 같이 산속을 헤맸구만. 이런 인연이 어디 쉬운가.”

노이칠이 너스레를 떨더니 장무강 등을 향해 말했다.

“따라온 개들도 쉬어야 하니 우리도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소?”

바깥채 식청에 모두 모였다.

주인은 오랜만에 든 손님이 간다고 했다가 오히려 세 사람이나 더 들어오니 신이 났다.

식사 때가 지났음에도 노이칠과 조운룡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 내주었다.

노이칠과 조운룡은 각자 따로 앉아서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연화심 일행은 기다란 탁자에 둘러앉았고 강소군도 끝에 앉았다.

연화심과는 마주하는 자리였다. 연화심은 강소군의 옷 곳곳에 밴 핏자국을 보았다.

가슴 한 구석이 쓰리면서도 한편으로 원망하는 마음도 일었다.

‘저 사람이 삼도문을 떠나지만 않았어도.’

그랬다면 어쩌면 아버지 연성결은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또 그 덕분에 그나마 자신과 화천대가 살아서 장원을 빠져나올 수 있기도 했다.

‘내가 어찌 저분을 탓할 수 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그 이전에 강소군을 끌어들인 것이 본인이었다.

연화심은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강소군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니 머뭇거리기만 할 뿐 먼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미안하게 됐소. 내가 적을 끌어들인 셈이 됐군.”

강소군이 불쑥 한마디 내뱉고는 입을 닫았다.

“그게 어찌 자네 잘못인가.”

장무강이 말했다. 다른 이들도 강소군을 탓하지 않았다.

천무방이 강소군을 쫓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여겼다.

장무강은 내심 탄식하였다.

‘적의 추적을 따돌리려다 오히려 드러낸 셈이구나. 이 일을 어쩐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게다가 대정무각과 도룡회는 또 무슨 일이지?’

장무강은 저 두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들은 강소군과 동행이라고 자처하는데 강소군은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대정무각과 도룡회의 움직임이 이렇게 빠를 수가 있을까?’

장무강은 강소군의 무위를 알고 있다. 그가 본 최고의 무인이자 살성이다.

천무방과 척을 지고 쫓기고 있으니 대정무각이나 도룡회에서 영입에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빨랐다.

‘역시 천하의 패자들이라는 건가?’

장무강은 노이칠과 조운룡이 서로 떨어져 밥 먹는 걸 보다 문득 깨달은 바가 있다.

적에게 쫓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뒤를 받치는 무력이 따르고 있겠구나.’

사실 그게 더 말이 된다.

도룡회 삼공자나 대정무각 십각의 주인이 호위 무력도 없이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저들은 걱정이 없다지만 이쪽은 그럴 무력이 없다.

화천대는 미끼가 천무방의 추적대를 끌고 도주하고 있을 것이다.

장무강은 골치가 지끈, 아파 왔다.

싸움이 두려운 게 아니다.

연성결의 마지막 부탁을 지키지 못할까 염려하는 것이다.

“이만 들어가 쉬어야겠소.”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객방으로 갔다.

“하필 이리로 올 게 뭔가. 화를 몰고 다니는 것 같군.”

심마백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

강소군이 잠시 멈칫했다.

“자네는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가?”

장무강이 심마백에게 한마디 하였다.

강소군이 천천히 돌아서더니 한마디 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미안하게 됐소. 내가 끌어들인 적은 내가 맡겠소.”

강소군은 흘리듯 한마디 남기고 자신의 객방으로 들어갔다.

장무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일행을 불렀다.

“내 방으로 가세.”

아무래도 노이칠과 조운룡이 신경이 쓰였다.

모두 장무강의 객방으로 가는데 그 뒷모습을 노이칠이 유심히 보았다.

조운룡은 연화심을 주목했다.

한창 피어나는 꽃과 같은 연화심이다. 지금은 수심과 원독이 가득 찬 얼굴이지만 남자라면 모두 시선을 빼앗길 만한 미모를 가리지는 못했다.

그런 조운룡을 보며 노이칠은 속으로 웃었다.

‘젊은 혈기는 어쩔 수 없구나.’

노이칠은 연화심 일행의 신분을 이미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저 아이가 연 문주의 딸이겠지. 저 세 명이 산동삼호. 저 자가 호위무사겠군.’

정보망을 가진 노이칠과 달리 조운룡은 연화심 일행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노이칠에게 물었다.

“저들이 누군지 아시오?”

“왜? 뭐가 궁금하나?”

“저자와 아는 사이 같은데 서로 대하는 걸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고.”

“크흐흐. 술 한 잔 사면 말해 주마.”

“흥!”

조운룡은 코웃음을 치고 일어났다.

그는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녀석, 성깔하고는.”

노이칠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리고 주인을 불렀다.

“주인장! 여기 술 한 병 가져오게.”

주인이 술과 잔을 가져왔다.

오십 정도 되어 보이는 주인은 뚱뚱한 체구에 얼굴이 피둥피둥하였다.

“헤헤. 손님. 선불을 주셔야 하는데요. 보다시피 밤이 늦어 저도 들어가 자야 하거든요.”

주인은 숙박료도 선불로 받았다.

객잔이 허술하다 보니 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치는 손님들이 있는 모양이다.

노이칠이 품에서 전낭을 꺼내 건넸다.

“…!”

주인의 손에 놓인 건 은자 한 냥과 열 자루의 검이 그려진 작은 목패였다.

주인은 재빨리 손을 쥐어 목패를 가리며 말했다.

“헤헤. 이렇게나 많이 주시다니. 그렇다면 안주를 좀 더 내오도록 하지요.”

잠시 후 주인이 쟁반에 고기볶음을 가져왔다.

“혹 부족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기가 제가 묵는 곳이니 두드리기만 하면 바로 나오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아주 평범한 말이지만 노이칠에게는 다른 의미로 들렸다.

‘이미 준비가 끝났으니 신호만 하면 바로 나타날 것이다!’

“하하, 그럴 생각은 없네만 혹시 또 모르지. 술을 비우기 전에 안주가 모자랄지도.”

노이칠이 술을 따라 한 잔 마시고는 말했다.

“아 참. 같이 온 사람 있잖나. 저녁 식사나 가져다주지 않겠나? 값은 내가 대신 치르지.”

노이칠이 다시 전낭에서 은자를 꺼내 주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주인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네, 네. 그렇게 하지요. 평안객잔에 오신 분이 굶고 주무시면 곤란하지요.”

강소군은 침상에 앉아 운기요상을 하였다.

며칠 계속된 격전과 무리한 이동으로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강소군의 꾹 감은 눈썹이 꿈틀하였다.

-저벅 저벅.

바깥에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똑똑!

강소군이 눈을 떴다.

“저녁을 가져왔습니다.”

강소군은 저녁을 부탁한 적이 없었다.

-삐걱.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주인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손에 쟁반이 들려 있었다.

강소군과 시선이 마주치자 주인이 움찔, 하고는 탁자에 쟁반을 놓았다.

“일행께서 대신 주문하셨습니다. 식사를 통 못 하셨다고….”

강소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이 고개를 숙이며 나직이 말했다.

“필요한 게 있을 거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주인의 시선이 쟁반을 향했다가 다시 강소군의 시선을 똑바로 보았다. 그러고는 바로 나갔다.

강소군이 주인의 시선이 향했던 곳을 보니 음식 그릇 사이에 작은 목합(木盒)이 있었다.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합을 집었다.

목합은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

목합을 열자 청아한 향이 흘러나왔다. 누른빛을 띤 환약이 담겨 있었다.

한눈에 봐도 쉽게 구하기 어려운 영약임에 분명했다.

환약 주위에는 은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독이 없음을 알린 것이다.

강소군은 가만 생각하다 환약을 입에 넣었다.

청아한 향이 입안에 감돌고 환약이 순식간에 녹아 목줄기를 지나 뱃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곧이어 뱃속에서부터 청아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강소군은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금단진공을 운용하였다.

금단진공의 기운이 돌자 약의 기운이 단전에 모였다가 사지백해로 퍼져 나갔다.

강소군은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

조개량의 집무실로 두 명의 전령이 거의 동시에 들어왔다.

“살귀대 전령이냐? 어서 보고하라.”

“놈이 안경 외곽 평안객잔에 묵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행이 있고 그곳에서 기다리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동행은 누구고 기다리는 자들은 또 누구냐?”

“동행은 상인 차림의 중년인과 젊은 낭인이었습니다. 기다리는 자들은 사남일녀였는데 남자들은 이십 초반과 서른 중반과 후반, 사십 초반으로 보였고 여자는 젊은 처녀로 아직 스물이 안 되어 보였습니다.”

조개량이 의자걸이를 탁, 치고 일어났다.

“젊은 처녀라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할 보고는 무엇이냐?”

조개량이 황급히 두 번째 전령에게 물었다. 삼도문도들을 쫓아간 귀영대로부터 온 전령이다.

“대주께서 전하라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화천대는 미끼 같고 삼도문주의 딸은 중도에 빠져나간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분명하구나!”

조개량이 득의에 차 손뼉을 쳤다.

그렇지 않아도 화천대의 행적을 너무 쉽게 쫓고 있다고 여겼다.

‘이런 깜찍한 수를 썼다는 말이지?’

조개량이 귀영대 전령에게 말했다.

“너는 바로 돌아가서 귀영대주에게 전하라. 화천대를 쉽게 칠 수 있으면 잡고 아니면 바로 돌아오라 일러라. 최대한 빨리 합류해야 한다.”

“존명!”

부복하였던 귀영대 전령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조개량이 살귀대 전령에게 말했다.

“살귀 부대주에게 전해라. 이제부터는 추살하라! 옆에 붙은 떨거지들은 모두 죽여라! 단, 그놈과 젊은 처녀는 살려서 합비까지 몰고 가야 한다. 분명히 전해라.”

“존명!”

명을 내리고도 안심이 안 되었는지 다시 한 번 일렀다.

“곧 본진이 뒤를 따를 것이다.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합비까지 몰고 가야 한다!”

“존명!”

살귀대 전령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홀로 남은 조개량이 지도를 보았다. 지도 한복판에 붉은 깃발이 꽂힌 도시가 있었는데 아래쪽에 합비라고 쓰여 있었다.

조개량이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천무방주 구연강에게 보고할 때는 예상되는 질문과 대책까지 있어야 한다.

조개량은 구연강이 물어볼 질문과 답변을 정리한 후 자신의 집무실을 나섰다.

***

객방을 나서는 강소군의 차림이 헌앙하였다.

새벽에 목물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단정하게 빗어 질끈 묶어 뒤로 드리운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닿았다.

“사람이 달라 보이네.”

노이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강소군은 그런 노이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정무각의 각주!’

그가 자신에게 호의를 내민 의도가 짐작이 간다.

생각해 보면 신양의 화양객잔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줄곧 호의를 보였다.

강소군은 강호의 세력 싸움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혼자라면 노이칠의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다. 이유없는 호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연화심의 안전을 지켜야 했다. 자신이 적을 끌어들였으니까.

그래서 일단 영약을 복용했다.

강소군은 목표를 정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것이 무총(武塚), 그 거대한 죽음의 공간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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