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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31화 (3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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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칠도 더 이상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삼도문과 천무방 사이의 싸움에 절세고수가 끼어들었다는 이야기는 무한과 신양 일대에 파다하오.”

“대정무각에서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군.”

강소군이 말을 받고는 조운룡을 바라보았다.

너는 무슨 의도로 따라왔느냐 하는 뜻이다.

조운룡은 호승심에서 따라왔다.

원래 삼도문을 찾아 연성결의 회천십이도와 겨뤄 볼 생각이었다.

비록 작은 문파이지만 회천십이도는 결코 이름 없는 무공이 아니었다.

삼도문이 천무방과 대치하고 있다는 말에 신양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뜻밖에 삼도문의 멸문 소식을 들었다.

그와 함께 들려온 고수의 소문.

천무방 무력대를 홀로 박살냈다는 믿기지 않은 소문을 따라온 것이다.

“그 도를 한번 견식하고 싶소!”

조운룡이 솔직하게 말했다.

“도? 창을 쓴다고 들었는데?”

노이칠이 강소군의 창을 보다 옆에 있는 도를 봤다.

“물론 지금 당신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소. 기다릴 수 있소.”

조운룡은 노이칠을 아예 무시하기로 했는지 강소군에게만 시선을 주었다.

노이칠이 흥미롭다는 듯 강소군의 대답을 기다렸다.

강소군은 한참 후에야 한마디 하였다.

“나의 도는 비무를 위한 도가 아니다.”

적을 죽이기 위한 도라는 뜻으로 비무를 거절한 것이다.

“나의 도 역시 그렇소.”

조운룡은 당연하다는 듯 동조하였다.

“오호. 단순한 비무가 아니라 생사결? 그것참 볼만하겠군.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내가 두 사람의 비무 증인이 되겠네.”

노이칠이 냉큼 한자리를 차지하였다.

강소군과 조운룡을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멋쩍어진 노이칠이 산 아래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저놈들은 춥지도 않나? 밤새 저럴 모양인가?”

강소군은 말없이 운기에 들어갔다.

금단진공의 기운이 서서히 단전에 모였다.

낯선 이를 곁에 두고 운기를 한다는 건 목숨을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강소군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배짱 좋군.’

노이칠이 강소군이 운기하는 걸 보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자신도 눈을 감았다.

운기가 아니라 사방을 경계하려는 것이었다.

크르르.

계속해서 사람들이 나타나자 범은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생각도 없는 듯 그 자리에 웅크리고 기다렸다.

사냥은 기다림이다.

어둠 속의 살귀들 역시 기다리는 데는 익숙한 자들이었다.

***

천무방주 구연강은 삼도문의 대청에 연성결이 쓰던 것보다 배는 큰 거대한 태사의를 들여놓았다.

대청은 사방에 커다란 동촉을 밝혀 대낮처럼 환했다.

그 넓은 대청에 구연강과 조개량 단둘이었다.

구연강은 천성대주가 죽었다는 조개량의 보고를 듣고는 들고 있던 찻잔을 던졌다. 찻잔은 조개량을 빗나가 대청 벽에 박혔다.

응천대와 흑마대에 이어 천성대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

원래 목적이었던 삼도문은 수월하게 접수하였으나 엉뚱한 놈에게 무력대를 셋이나 잃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풀어준 모양이군. 한 놈을 못 당하고 줄줄이 무너지다니. 그따위 놈들이 천무방의 무대(武隊)라고 자처해 왔다니 죽어도 싸다.”

“살귀를 풀었습니다. 그놈은 중원 천지 어느 곳에도 숨을 곳이 없을 겁니다.”

조개량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마저 보고를 하였다.

“확실치는 않지만 대정무각이 놈의 도주를 도왔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구연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눈에서 뇌전과도 같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대정무각?”

“예상했던 일입니다. 방주님께서 친정을 하신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니 당연히 주시하고 있었겠지요.”

“도주를 도왔다면 단순한 정보 수집 차원이 아니란 말이잖나?”

“그놈을 쫓는 천성대를 공격했는데 인원이나 수법으로 봐서 급조된 듯합니다. 제대로 된 지원군이 아니란 뜻이지요.”

“그래도 그놈을 도왔다지 않은가?”

구연강의 목소리는 나직했으나 태산과도 같은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 한마디로 대정무각이 그놈과 한패라는 게 기정사실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했습니다.”

“증거? 군사가 그리 생각했다면 그게 가장 확실한 증거다!”

구연강의 말에 조개량은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신무와 참룡을 불러라.”

“그들마저 방을 비우면…?”

신무대와 참룡대는 도룡회나 대정무각과의 일전을 대비하여 비축한 최강 전력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나오면 본 방의 방비가 약화된다.

“늙은이들이 있잖아. 밥만 축내라고 자리 내준 게 아니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양조에게 서두르라고 해.”

천무방의 대공자 구양조는 지금 요천루가 장악한 중원 남서부 지역을 정벌하고 있는 중이다.

요천루가 장악한 남서부 지역은 지리적으로 천무방과 가까웠다.

따라서 도룡회나 대정무각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요천루주의 돌연한 죽음은 천무방에게는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그동안 천무방이 동진(東進)을 원하면서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요천루 때문이었는데 그 고민이 절로 해결된 것이다.

‘하늘이 천무방에게 기회를 준 것이야.’

조개량은 천무방이 무림천하를 일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새벽빛이 퍼질 때쯤 모닥불도 사그라들었다.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등에 매고 도를 챙겼다.

노이칠이 선잠에서 깨어 강소군을 지켜봤다.

부상이 가볍지 않은데 하룻밤 운기했다고 저렇게 멀쩡히 움직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강소군이 길을 나서자 조운룡이 뒤따라 나섰다.

“하룻밤 노숙도 인연인데 같이 가자는 말도 없이 떠나나?”

노이칠이 투덜거리며 짐을 챙겨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움직이자 아래쪽에 숨어 있던 살귀들도 움직였다.

“저놈들을 달고 갈 건가?”

노이칠이 살귀들 쪽을 흘깃 보며 말했다.

“당신이 막던가.”

조운룡이 한마디하고는 바삐 강소군의 뒤를 쫓아갔다.

“요즘 젊은 것들은 도무지 위아래가 없단 말이야. 에이.”

노이칠이 혀를 차고는 뒤를 따랐다.

산 정상부근은 눈이 얼어붙어 길이 미끄러웠다.

강소군은 정상 능선에 오른 뒤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곧장 내려갔다.

길이 아니라 직선으로 그냥 내려가는 무식한 하산이었다.

내력을 아끼기 위해 경신술을 펼치지 않으려다 보니 비탈을 그냥 내려가야 했다.

“좋은 길 놔두고 이게 무슨 짓이람.”

노이칠은 아무래도 자신이 잘못 따라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아래쪽에서 기다리는 게 나았을 성싶었다.

‘저자는 그렇다치고 조운룡 저놈은 대체 왜 저러고 있는 거지?’

도룡회 삼 공자의 신분은 결코 낮지 않다.

도룡회의 수뇌부에 대한 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대정무각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

다만 회주에게 세 명의 제자가 있는데 모두 고수라는 것 정도만 알아냈을 뿐이다.

젊은 낭인이 조운룡이라는 사실도 어제 알았다.

노이칠은 강소군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 빠른 수하 둘을 붙여 두었다.

수하들은 강소군이 천성대와 부딪힌 뒤 산으로 올랐다고 보고해 왔다.

그 보고에는 뒤를 따르는 젊은 낭인에 대한 것도 들어있었다.

젊은 낭인이 천무방 무사 셋을 베는 데 도를 휘두를 때마다 붉은빛이 번뜩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혹시나 하여 넘겨짚었는데 놀랍게도 도룡회 삼공자 조운룡이 맞았다.

“헉!”

비탈이 끊긴 자리에 삼십여 장은 되어 보이는 절벽이 나왔다.

강소군은 아래를 물끄러미 보더니 그대로 몸을 날렸다.

“미친 거 아냐?”

노이칠이 황급히 따라가 절벽 아래를 봤다.

강소군은 팔을 활짝 벌린 채 그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래쪽에 다다르자 도를 휘둘러 나뭇가지를 쳐내고 그 반탄력으로 착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 저런 수도 있나?”

조운룡도 기가 막힌다는 듯 잠시 내려다보더니 어금니를 깨물고는 몸을 날렸다.

강소군이 하면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노이칠이 혀를 찼다.

“미친놈들. 아서라, 나는 그렇게 못한다.”

노이칠은 절벽 위까지 올라온 덩굴줄기를 하나 끌어 가까운 나무 밑둥에 묶었다. 그러고는 덩굴줄기를 타고 내려가는데 원숭이처럼 빨랐다.

절벽 아래 내려갔는데 강소군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노이칠이 황급히 남쪽을 향해 내려가니 앞에 절뚝거리고 가는 조운룡이 보였다.

강소군을 따라 하다 발을 접질린 게 분명했다.

“크흐흐. 그러게 남이 한다고 함부로 따라 하다 다치지.”

조운룡이 노이칠을 돌아보는데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지금은 죽이고 싶지 않으니 주둥이를 조심하지?”

“어른이 말씀하면 들어야지. 우문극이 그렇게 가르치던?”

우문극은 도룡회주의 이름이다.

-쉬익!

조운룡의 손이 허리춤으로 가는가 싶더니 붉은빛이 어른거렸다.

노이칠이 깜짝 놀라 황급히 물러나며 몸을 회전하였다.

노이칠은 손이 등에 진 봇짐에 닿았는가 싶더니 검이 쑥 뽑혀 나왔다.

노이칠의 검이 조운룡의 도를 막았다.

-챙!

-파파팍!

세 갈래 붉은 도기가 정면과 좌우측에서 날아왔다.

노이칠이 뒤로 물러나며 검을 횡으로 뿌렸다.

싸늘한 검광이 조운룡의 상체를 향해 쏟아졌다.

“흥!”

조운룡이 도를 거두어 그대로 하늘을 베듯 그었다.

-까강!

검과 도가 다시 부딪혔다.

노이칠이 공중에서 두 번 제비를 돌고는 멀찌감치 내려섰다.

“크, 그놈 성질하고는.”

조운룡은 노이칠이 만만치 않은 고수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겨뤄 보고 내심 놀라고 있었다.

자신은 있는 대로 힘을 썼지만 노이칠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런데도 검과 도가 부딪히는 순간 받은 묵직한 경력에 하마터면 도를 떨어뜨릴 뻔했다.

조운룡은 도의 궁극을 추구하는 무인이었다.

노이칠을 대정무각의 세작으로 여기고 멸시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부딪쳐 보고 무공이 예상외로 높은 걸 알자 단순한 세작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자연 경시하던 마음을 버리고 예의를 갖춰 물었다.

“대정무각은 십각으로 이뤄져 있다고 들었소. 각각의 각주 모두가 고수라는데 당신이 십각주 중 한 사람인 것 같소.”

조운룡은 자신의 도를 받을 사람이 세상에 많지 않다고 자부해 왔다.

그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노이칠이 십각주의 한 사람이어야 했다.

노이칠은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검을 살펴보며 말했다.

“하마터면 검이 상할 뻔했군. 과연 화룡도를 절세의 보도라 부를 만하군.”

조운룡은 대답을 듣지 않으면 한 걸음도 못 뗄 줄 알라는 듯 길을 막고 서 있었다.

그 기세를 보고 노이칠이 한숨을 쉬었다.

“우문극의 이름을 부를 만한 자격은 있다고 해두지.”

대정무각 십각주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는 뜻이다.

조운룡이 서서히 화룡도를 치켜세웠다.

“발목도 부실한 놈이 무슨 싸움을 하겠다고. 나중에 상대해 주지. 일단 저자를 따라가자. 이러다 놓치겠다.”

노이칠이 타협안을 제시하였다.

조운룡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대신 당신도 반드시 나와 생사결을 해야 할 것이요.”

“허, 거 참.”

노이칠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먼저 몸을 날렸다.

뒤이어 조운룡이 예의 그 특이한 경신법을 발휘하였다.

접질린 발목이 불편한지 가끔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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