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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26화 (2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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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이 생각에 잠기자 노이칠은 혼자서 술을 마셨다.

안주를 들며 자작을 즐기는 듯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한 사람에 의해 천무방의 응천대와 흑마대가 궤멸 수준으로 당했다!

그가 속한 파는 작지 않다.

천하에 이목(耳目)을 깔아두고 있는데 천무방과 삼도문 간에 싸움이 벌어지자 인원을 더 투입하여 세세하게 정황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노이칠은 아침에 나가 어제 일에 대한 보고를 듣고 왔다.

삼도문은 멸문당했지만 천무방도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고 했다.

응천대주 우원송이 죽고 응천대와 흑마대가 풍비박산 났다고 했다.

믿기지 않는 건 그게 한 사람을 상대하다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노이칠은 보고를 하는 이목에게 묻고 또 물었지만 확실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한 자루 창을 귀신같이 쓰는 자였는데 돌연 기수를 돌려 이곳 신양으로 향했다고 했다.

이목은 천무방이 워낙 들쑤시고 다녀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고 새벽에야 산을 넘어왔다고 말했다.

남아서 삼도문을 지켰던 이목에게서는 연성결을 비롯한 삼도문의 세 형제가 천무방주 구연강과 일전을 벌여 모두 죽었다는 전서구가 왔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무한 외곽의 작은 문파의 멸문은 어찌 보면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문파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은 강호에서 흔한 일이다.

그럼에도 노이칠은 왠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대혈전의 서막이 오른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요천루주의 죽음은 무림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요천루와 함께 천하사패로 힘의 균형을 구축해왔던 천무방, 대정무각, 도룡회는 각기 바삐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노이칠은 삼도문의 멸망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의 등장에 더욱 관심이 쓰였다.

천하사패 천무방을 안중에 두지 않는 고수. 그런 자가 있다는 사실은 들어 보지 못했다.

‘응천대와 흑마대를 단신으로 궤멸시킨 고수가 정말 있을 수 있을까?’

아마도 십대고수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자는 십대고수가 아니다.

자신의 직감을 믿는 노이칠이었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다시금 강소군을 유심히 살폈다.

창백한 안색, 짙은 금창약 냄새에서 격전을 치렀음을 알 수 있다.

‘정말 이자란 말일까?’

문득 강소군이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천천히 마셨다.

그러더니 자신을 살피는 노이칠에게 말했다.

“당신은 평범한 상인은 아니군.”

자연스러운 하대.

노이칠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었다.

말 한마디에서 그가 극히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다는 걸 알아챘다.

노이칠이 너스레를 떨었다.

“떠돌이 상인이니 당연히 평범할 수가 없지 않소. 어서 한자리 꿰차고 앉아야 하는데….”

노이칠은 술병을 들며 강소군의 시선을 피했다.

“삼도문에 다른 생존자는 없나?”

노이칠은 잠시 당황했다.

연이은 하대에 자기도 모르게 울컥, 한 것이다.

그의 진정한 신분은 결코 아무에게나 하대 받을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 자존심을 눌렀다.

“몇 사람이 빠져나갔다고 들었소. 장강으로 향했다더군.”

노이칠의 말도 자연스레 퉁명스럽게 나왔다.

‘몇 사람?’

강소군은 연화심을 떠올렸다.

그가 본 삼도문주 연성결은 자신의 목숨보다 딸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천무방의 혼인첩을 거부하였던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딸을 살렸군.’

강소군의 머릿속에 지도가 떠올랐다.

일반 사람들은 평생 구경도 못 하고 사는 지도가 그의 머릿속에는 세세하게 들어 있다.

‘장강으로 갔다면 배를 탔겠지?’

어디쯤 갔을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남경으로 가는 그의 행로와도 겹친다.

생각을 끝낸 강소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강소군이 말 한 마디 없이 사라졌다.

너무나 무례했다.

하지만 노이칠은 개의치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런….’

노이칠은 등줄기에 한 줄기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긴장했던 모양이다.

강소군의 기세에 은연중 몸이 알아서 반응하였던 것이다.

‘이자가 맞다.’

노이칠은 자신의 직감을 믿기로 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노이칠은 탁자에 엎어진 장웅을 보다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겨울은 해가 짧았다.

어둠이 내릴 무렵 강소군이 자신의 방에서 나왔다. 길을 떠날 차림이다.

손에 창까지 들고 있다.

피를 머금은 창대가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보였다.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장 노대가 강소군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몸으로….”

어디를 가려고 그러느냐 하려다 입을 닫았다. 주제넘은 물음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저녁이나 드시고 가시우.”

장 노대가 고기와 야채를 넣어 볶은 밥을 접시에 담았다.

장웅은 낮에 술 마시던 탁자에 엎어져 코까지 골고 자고 있었다.

노이칠의 점혈수법은 고명하였기에 장웅은 한밤중이나 되어야 깨어날 것이다.

강소군이 창을 탁자 옆에 세워 두고 밥을 먹었다.

“에구. 말도 먹여야 하겠구나. 밤길 가려면 사람이나 말이나 든든히 먹어야지….”

장 노대가 마구간으로 갔다.

작은 등 하나만 켜져 있는 반점은 조용했다.

원래는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이 서너 명은 됐는데 오늘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신양 곳곳을 천무방 무인들이 살벌한 기세로 들쑤시고 다니니 모두 자기 집에 처박혀 몸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끼이익.

객방 문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젊은 낭인이 나왔는데 그도 길을 떠날 차림이다.

낭인은 반점으로 들어오더니 강소군에게 흘깃 시선을 한 번 주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장 노대가 볶아 놓은 밥을 직접 접시에 담았다.

볶은 밥을 접시에 담아온 낭인은 강소군 맞은편 탁자에 앉아 먹었다.

낭인의 눈은 강소군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니, 강소군에게서 풍기는 피냄새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강소군은 말없이 볶은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장 노대가 들어왔다. 장 노대는 젊은 낭인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도 가려는가? 허, 거 참.”

남들은 객잔에 드는 시각에 손님들이 하나둘 떠나니 장 노대는 참 별일도 다 있다 싶었다.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전낭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장 노대에게 주었다.

“이런 잔돈을 돌려주어야 할 텐데.”

강소군이 손을 젓고는 밖으로 나갔다.

잔돈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

장 노대가 은자를 황급히 품에 넣고 강소군의 뒤를 따라 나갔다.

강소군은 직접 마구간으로 가서 말을 풀고는 올라탔다.

말 등에 오르자 허벅지 상처에 압박이 가해지며 찌르는 듯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졌다.

억지로 내기를 끌어올렸다.

‘만날 수 있을까?’

강소군은 연화심 일행을 찾을 생각이었다.

강소군은 자신도 모르게 연화심에 대해 일종의 부채감을 느꼈다.

삼도문의 멸문에 대해 듣는 순간 자신이 구양운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그러자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장영영의 흔적을 삼도문에서 얻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강소군은 연화심의 안위를 확인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따각, 따각.

돌이 깔린 좁은 골목길에 징을 박은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 노대는 화양객잔 문 앞에 서서 강소군이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핏빛 장창을 말 엉덩이에 비껴 꽂고 가는 강소군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처절함이 느껴졌다.

강소군은 골목 끝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장 노대는 자신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길에 대해 문득, 생각해봤다.

그 역시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에 신양을 떠날 생각을 했다.

군에 투신하여 변방에서 이름을 떨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장 노대가 화양객잔 낡은 현판을 쳐다보았다.

한쪽 구석에 거미줄이 섰다.

“크으흠.”

장 노대가 크게 헛기침을 하며 갑갑한 목을 뚫고는 문간에 세워 둔 빗자루로 거미줄을 걷어냈다.

지난 수십 년간 수없이 걷어낸 거미줄이다.

잠깐 한눈팔면 다시 생기니 볼 때마다 걷어내는 수밖에 없다.

“벌써 다 먹었는가?”

젊은 낭인은 장 노대의 말에 고개만 꾸벅거리고는 은자 한 냥을 건넸다.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지. 잔돈이 부족한데.”

젊은 낭인도 손을 젓고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젊은 낭인은 강소군이 간 쪽으로 걸어갔다.

그도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장 노대는 빗자루를 들고 골목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대로로 접어들었는데 길은 어둡고 지나는 사람은 없다.

등이 군데군데 걸려 있지만 어둠을 몰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로 양쪽 건물의 창은 굳게 닫혀 있었다.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집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야옹.

노점 수레 밑에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아났다.

투투둑.

겨울비가 내렸다.

성문 쪽 거리는 그나마 불빛이 어른거렸다. 객잔과 주점, 반점이 몰려 있는 곳이다.

주점이나 반점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집집마다 걸린 등만 겨울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분이다.

성문에는 횃불이 밝혀져 있었다. 한쪽에 커다란 화로에서 장작이 타고 있었다.

성문을 지키는 관병들 가운데 고참으로 보이는 이들은 화로 주위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

성문 반은 닫혀 있었고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따가닥. 따가닥.

강소군의 말이 나타나자 관병 몇몇이 쳐다봤다.

말 등에 꽂힌 창을 본 관병들은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

백성들이 장창과 같은 병기를 소지하는 건 국법으로 금하고 있다.

하지만 고관들이나 무림인들은 거리낌 없이 무기를 소지하고 다녔고 관병들은 모른 척 눈감아주었다.

국법을 집행하려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아예 간여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처럼 분위기가 수상한 날에는 더욱 그렇다.

화로 주위에 모인 관병들이 수군거리며 강소군과 성 밖을 번갈아 보았다.

한자 두께의 성문은 한쪽은 닫혀 있고 다른 한쪽도 반만 열려 있었다.

관병 중에 한 사람이 다가와 강소군에게 물었다.

“이 밤에 어디를 가려는가?”

“갈 길이 멀어 밤길을 가려고 하오.”

강소군이 순순히 대답했다.

의례적인 질문을 마치자 관병이 길을 비켜 주었다.

-끼이익.

강소군이 나가자 성문이 닫혔다.

전시도 아닌데 해시가 되지 않았음에도 문이 닫히는 건 드문 일이다.

강소군은 개의치 않았다.

성밖 대로는 달빛을 받아 빛났다. 거리에는 등도 없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대로 양편 골목과 어두운 처마 밑에서 살기가 일어났다.

달빛을 받아 언뜻언뜻 비치는 광채는 검이나 도에서 반사되는 빛이 분명했다.

강소군의 생각대로 천무방은 신양성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나 많이 매복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기세로 보아 족히 수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천무방은 관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성문 밖이기는 하지만 대로 상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살기를 드러냈다.

“타앗!”

강소군은 말 잔등을 쳤다.

말이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는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러자 사방 어둠 속에서 검은 무복차림의 인영들이 튀어나와 뒤를 따랐다.

동시에 호각 소리가 울려 퍼지고 폭죽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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