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4화 (24/250)

24

“놈이 산을 넘는다고?”

구연강이 직접 전령의 보고를 받았다. 부복하고 있던 전령이 상황을 전했다.

“추적하던 대원 다섯을 해치고 도주한 걸로 보입니다.”

“지도를 가져와라.”

구연강이 이르자 조개량이 지도를 가져와 펼쳤다.

“이 길로 가면 신양입니다.”

그때 다시 새로운 전령이 당도했다.

“놈이 말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산으로 갔다고?”

“네. 천성대주 휘하 오십여 명이 산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조개량이 가만 머리를 굴리다 말했다.

“생각보다 부상이 심한 모양이군요. 아마도 은신하여 상처를 돌볼 생각인 듯합니다.”

조개량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산으로 갔다면 밤에 쫓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일단 이 지역을 봉쇄하고 날이 밝으면 수색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구연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범이 상처 입었다고 경시할 수는 없지. 잡을 수 있을 때 숨통을 끊어야 한다!”

구연강이 조개량에게 말했다.

“밤을 새워서라도 놈의 행적을 찾아라!”

***

강소군은 달리던 도중에 자신이 타고 온 말을 버리고 암습자의 말로 갈아탔다.

간단한 속임수라 적이 넘어갈지 의문이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상처에서 다시 피가 흘렀다.

무엇보다 내상이 다시 도졌다. 기혈이 불규칙하다.

‘그러다 고질이 될 걸세. 몇 달은 요양해야 하네.’

황의채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강소군 스스로도 잘 안다.

요천루주와 싸우다 입은 내상이 계속된 싸움으로 고질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고수를 만난다면 그야말로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

강소군은 밤새 달려 신양에 다다랐다.

***

좁은 골목길 끝 무렵에 있는 화양객잔은 작고 허름했다.

나이든 주인이 쉼 없이 쓸고 닦았지만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회벽 곳곳이 벗겨지고 창문틀은 삭았다.

작은 정원을 가운데 두고 사면에 건물을 배치하였다.

동서로 세 칸짜리 건물이 마주 보고 있는데 각 칸마다 방을 냈다.

북쪽은 주인집이고 남쪽은 객잔 반점이었다.

한 사람이 반점에 앉아 있었다.

스물 정도 된 젊은이는 낭인으로 보였다. 식탁에 도를 올려놓고 소면을 먹고 있다.

옷차림은 수수했지만 깨끗했다. 눈빛이 형형하고 코밑과 각진 턱에 거뭇거뭇 수염이 났다.

젊은 낭인이 소면을 먹고 있는데 내원과 통하는 문에서 한 사람이 반점으로 들어섰다.

마흔 좀 넘어 보이는 남자는 얼굴이 불콰한 것이 간밤 술이 덜 깬 듯 보였다.

남자가 젊은 낭인을 흘깃 보고는 반점을 돌아보았다.

식탁이 네 개뿐인 객잔 반점이라 어디 앉든 지척거리다.

“어지간하면 도는 내려놓지?”

남자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떠돌이 장사치로 보였는데 닳고 닳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젊은 낭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장사치가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장 노대, 먹을 것 좀 줘!”

주방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장사치가 일어나 주방으로 연결된 통창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아무도 없다.

“이 양반이 대체 어디를 간 거야!”

장사치가 옆에 놓인 물병을 집어 들더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원으로 난 문에 사람 그림자가 얼씬거리더니 객잔 주인 장 노대가 들어왔다.

작고 바싹 마른 체형에 염소수염이 난 장 노대는 육십은 되어 보였다.

“일어났는가? 어서 앉게. 점심 먹어야지?”

벌써 해가 중천에 떴다.

장 노대가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삶아 놨던 면에 펄펄 끓는 육수를 붓고는 고기 몇 점을 올려 가져왔다.

장사치가 면을 휘휘 젓는데 젊은 낭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를 집어 들고 내원으로 들어가는 젊은 낭인의 뒷모습을 흘겨본 장사치가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어린놈이 싸가지가 없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도 모르는 모양이지?”

주방에 있던 장 노대가 말을 받았다.

“말조심하게. 시비 붙으면 어쩌려고 그래.”

“흥! 나도 왕년에 칼 좀 썼다고.”

“흐흐. 자네가 안 해 본 일이 도대체 뭔가?”

장 노대가 장사치의 말을 받아 주며 다독거렸다.

장사치는 단골인지 장 노대와 허물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새벽에 손님이 들어온 모양이지?”

장사치가 소면을 한 입 베어 물고는 장 노대에게 물었다.

장사치는 밤새 반점에서 술을 마시다 새벽녘에야 객방에 들었다.

그가 객방으로 갈 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났던 것을 기억한 모양이다.

“객잔에 손님이 드는 거야 당연하지.”

젊은 낭인이 남긴 빈 그릇을 치우며 장 노대가 말했다.

“뭐 하는 사람인데 새벽에 객잔에 들어?”

아무래도 이것저것 참견하는 것이 장사치의 천성인 모양이다.

장 노대는 입이 무거웠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맸던 모양이더라고. 무어 그리 궁금해하는가. 어서 식사나 하게.”

장 노대는 주방으로 들어가며 장사치가 여태껏 목숨 붙이고 사는 게 용하다는 생각을 했다.

호기심 때문에 화를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장사치 이름은 노이칠이다. 그게 본명인지는 알 수 없다.

객잔에 드는 손님 중에는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는 이도 수두룩하다.

온갖 손님이 드나드는 곳이 객잔이다. 화양객잔처럼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곳은 떠돌이 장사치나 돈이 궁한 낭인, 관에 쫓기는 죄인 등 온갖 사람이 몰려든다.

노이칠은 그나마 괜찮은 손님이다. 매년 이맘때 와서 보름 정도 묵었다 간다.

뭘 거래하는지 묻지 않았건만 알아서 떠드는데 차를 거래하는 것 같았다.

장 노대는 노이칠보다 새벽에 든 손님에게 더 신경이 쓰였다.

새벽에 골목을 쓸고 있는데 그가 나타났다. 피투성이 차림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점심께가 되었는데도 조용해서 죽은 게 아닐까 걱정되어 문을 두드렸더니 점심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장 노대가 객잔을 한 지가 수십 년이다. 행동거지에서 신분을 알아낼 정도는 된다.

피투성이 손님은 척 봐도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자가 뒷골목 객잔을 찾아왔다는 건 쫓는 적이 있다는 뜻이다.

장 노대는 소면을 한 그릇 말아 젊은 손님이 머무는 객실로 갔다.

강소군은 그새 옷을 갈아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으나 창백한 낯빛은 숨길 수 없었다.

“점심 가져왔습니다.”

강소군은 고개만 끄덕였다.

장 노대가 소면 그릇을 탁자에 두고 방을 나왔다.

***

젊은 낭인이 먼저 외출하고 뒤이어 노이칠이 나갔다.

장 노대가 반점 계산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손자 장웅이 들어왔다.

“할배, 먹을 거 없어?”

“주방에 면 삶아 놨다.”

장 노대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다시 감았다.

“배고파. 할배가 좀 말아 줘.”

장웅이 반점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장 노대가 주방으로 들어가며 한마디 하였다.

“다 큰 놈이 할애비를 부려 먹지 못해 안달이냐?”

투덜거리면서도 소면 한 그릇을 말아 왔다.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게냐? 이제 들어오게.”

갓 스물이 된 장웅은 뒷골목의 건달이다.

하나뿐인 아들이 평생 속을 썩이다 창기와 눈이 맞아 낳은 손자다.

아들이 뒷골목 싸움에 끼어들어 죽은 후 어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후 장 노대가 키웠다.

손자는 아버지를 닮아 밤마다 도박판을 전전하였다. 이제 머리가 컸다고 건달패 일에도 간간이 끼는 것 같았다.

간밤에도 밤새 나갔다가 이제야 돌아온 것이다.

“걱정 말아. 조만간 한몫 잡으면 이까짓 객잔 때려치우고 편히 살게 해 줄게.”

하는 짓은 건달이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착한 놈이다.

“네놈만 제대로 살면 된다. 할애비 걱정할 것 없으니 네 앞가림만 하면 된다고.”

장 노대가 혀를 찼다.

장웅이 소면을 먹으며 말했다.

“밖에 천무방 사람이 쫙 갈렸더라고. 천무방 알지?”

“천무방?”

“호북에 있는 무림방파인데 명성이 자자한 곳이야.”

장 노대도 들어봤다. 혹시 손자가 얽힐까 봐 걱정이 됐다.

“무림인 가까이하지 마라.”

한마디 하고는 일어서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강소군이 있는 방 쪽을 봤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마구간 쪽에서 말울음 소리가 들렸다.

“말이 있나 보네?”

장웅이 물었다.

뒷골목 객잔이라 말을 타고 오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말만 마구간이지 평소에 창고로 썼다. 강소군이 타고 온 말이 들었으니 마구간이 됐다.

“간밤에 손님이 타고 오신 거야. 행여 딴생각 마라. 소면 다 먹었으면 말에게 여물이나 갖다 줘라.”

“에이, 밤새 고생하고 왔는데 말 여물까지 챙기라고?”

장웅은 투덜댔다.

장웅이 음식 찌꺼기를 담은 뜬물을 가지고 마구간으로 갔다.

여물통에 뜬물을 부은 장웅이 말을 살폈다.

‘제법 잘 빠졌네?’

가져다 팔면 꽤 돈을 받을 것 같았다.

물론 장웅은 아직 손님의 말을 가져다 팔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말을 살피다 엉덩이에 찍힌 낙관을 봤다.

‘천무방의 말이잖아?’

엉덩이에 천무라는 낙관이 똑똑하게 보였다.

장웅은 성안에 천무방 사람이 쫙, 깔렸던 게 생각났다.

‘천무방 무인이 우리 객잔에?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장웅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천무방 무인들이 저잣거리 객잔을 뒤지고 다니는 것과 뒷골목 으슥한 객잔에 천무방 말이 있는 것.

장웅은 두 사실을 연결 지을 정도의 머리는 쓸 줄 알았다.

‘이 말을 타고 온 자를 찾는 거야.’

장웅은 자신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음을 알았다.

장웅은 다시 반점으로 돌아와서는 탁자를 닦고 주방을 정리하는 척하며 객실 쪽을 지켜보았다.

“네가 웬일이냐? 객잔 일을 다 돕고.”

장 노대가 별일 다 보겠다는 듯 한마디 하였다.

“내가 시키는 일은 늘 다 했지. 할배가 시키지를 않잖아?”

“네놈이 보여야 일을 시키지.”

“그런데 간밤에 왔다는 손님은 식사도 안 하나? 도통 보이지를 않네?”

“방에 가져다드렸으니 걱정할 것 없다.”

조손이 이런저런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밖에 나갔던 노이칠이 들어왔다.

“오늘은 일찍 돌아오는군.”

장 노대의 말에 노이칠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바깥 분위기가 아주 살벌해. 칼 찬 놈들이 사방을 뒤지고 다니고 있더라고. 이럴 때는 그저 방구석에 처박혀 술이나 마시는 게 엄한 화를 피하는 길이지.”

“잘 생각했네. 앉게.”

노이칠이 문 쪽 자리에 앉았다.

장 노대가 돼지고기 삶은 걸 썰고 호박씨 볶은 걸 접시에 담아 내왔다.

장웅이 내원으로 가더니 구석에 놓인 빗자루를 들었다.

“오호? 네가 웬일이냐?”

노이칠이 장웅이 빗자루를 드는 걸 보고 한마디 하였다.

그가 몇 년 동안 화양객잔을 드나들었는데 장웅이 비질하는 건 처음 봤다.

장웅은 마당을 쓸면서 강소군이 머무는 객실을 흘깃거렸다.

노이칠은 술을 마시면서 장웅을 지켜보았다.

바닥을 대충 쓴 장웅이 빗자루를 세워 놓더니 강소군의 객실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식사 다하셨으면 그릇을 내가겠습니다.”

대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

장웅이 다시 문을 두드리자 그제야 목소리가 들렸다.

“가져가라.”

장웅이 강소군의 객실로 들어가더니 빈 소면 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장웅이 강소군의 객실 문을 닫고 그릇을 가지고 반점 쪽으로 왔다.

장 노대는 반점 탁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장웅은 빈 그릇을 주방에 놓고 잠시 서성거리더니 주방을 나와 바깥 출입문 쪽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노이칠이 손을 뻗어 장웅의 팔을 잡았다.

“대작하는 사람이 없으니 심심하군.”

장웅이 뿌리치려 하자 노이칠이 엄지손가락으로 곡지혈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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