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8화 (18/250)

18

다음날 연성결은 삼도문 가솔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모두 그동안 고생했소. 알다시피 강적이 삼도문을 노리고 있소. 긴말하지 않겠소. 넉넉지는 않겠지만 각자 나눠준 걸 가지고 떠나시오. 주변 문파와 상단에 말을 해 놓았으니 살길은 있을 것이오.”

연성결은 재산을 헐값에 처분하였다.

천무방과 삼도문이 대판 싸웠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으니 제값을 치르고 살 사람이 없었다.

평소 거래하던 곳조차 기회다 싶어 가격을 후려쳤다.

연성결은 자신의 몫까지 떼어 가솔들에게 나눠 주었다.

“형님! 말이 다르잖습니까?”

척무량이 반발하였다.

떠날 사람은 떠나더라도 남겠다는 사람들은 데리고 연성결의 고향 복건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돌연 연성결은 마음을 바꿔 모두 떠나라고 한다.

“이 사람들에게는 여기가 고향이나 마찬가지네. 물설고 낯선 복건까지 가자고 할 수는 없네. 삼도문이 문을 닫은 이상 천무방에서 저들을 해치지는 않을 걸세.”

복건으로 간다 해도 천무방의 마수는 따라올 것이다.

차라리 여기서 흩어지는 게 낫다고 연성결은 생각했다.

“아닙니다. 저희가 끝까지 모시겠습니다.”

화천대를 비롯한 삼도문의 도수(刀手)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척무량과 황의채도 강하게 반발하였다.

“정히 그렇다면 자네들이 남겠다는 문도들을 데리고 먼저 복건으로 떠나게. 나는 나머지 정리를 하고 뒤따르겠네.”

“천무방에서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위험합니다.”

“지금 길을 나서도 마찬가지네. 오히려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 자네들이 빠져나가기 수월할 거야.”

“그게 말이 됩니까? 안 됩니다.”

척무량은 말도 안 된다는 듯 펄펄 뛰었다.

“의채! 네가 문도들을 데리고 먼저 떠나라. 내가 화천대와 함께 형님을 모시고 가겠다.”

척무량이 워낙 강하게 주장하니 말릴 수 없었다.

오후에 하나둘 사람들이 삼도문을 떠났다. 이곳이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니 복건까지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문주님! 크흐흑!”

떠나는 이들이 분루를 흘렸다.

연성결이 그들의 등을 다독였다. 그의 눈에도 굵은 이슬이 맺혔다.

***

황의채는 이틀을 더 머물다 사흘째 되는 날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삼도문도들을 이끌고 복건으로 떠났다.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무사히 오셔야 합니다.”

황의채와 삼도문도들을 배웅하고 돌아선 연성결의 눈빛은 착잡했다.

넓은 장원에 척무량과 화천대 이십 명만 남았다.

“초지항! 장원 경계를 맡아라. 인원이 많지 않으니 외곽은 버리고 내전 주위를 세 사람씩 짝을 지어 경계를 서도록 하라.”

초지항이 읍을 하고 화천대를 끌고 갔다.

“무량. 자네는 나를 따라오게.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절대로 흥분하지 말게.”

연성결은 척무량을 데리고 내전으로 갔다.

내전에는 산동삼호와 연화심, 그리고 강소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마백과 위응환은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얼굴이 창백하였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홍옥비도 때문이오.”

연성결이 강소군을 보았다.

강소군이 홍옥비도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장무강이 비도를 보았다.

저 작은 비도로 운살이 죽었다.

장무강은 난전 중에 운살이 죽는 걸 보았다. 보기는 했으나 강소군이 어떤 수법을 펼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산동삼호 세 분은 이 일과 관련한 증인이라 모셨소.”

연성결이 장무강을 보며 말했다.

장무강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관련되어 있다니요?”

연성결은 대답을 않고 척무량을 향해 말했다.

“무량! 부탁이 있네.”

연성결의 낯빛이 심상치 않자 척무량이 숙연한 얼굴로 경청했다.

“오늘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네는 화심을 데리고 복건으로 가야 할 걸세. 그렇게 해 주겠나? 그렇게 못하겠다면 나가 주게.”

연성결의 단호한 말에 척무량이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형님이 말씀 안 하셔도 형님과 화심을 무사히 복건까지 모실 겁니다.”

“그렇게 해 주겠나!”

연성결이 되묻자 척무량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연성결이 이번에는 강소군을 봤다.

“자네의 지인이 누군가에게 죽었네. 자네는 복수를 위해 그 사람의 가족까지 해칠 것인가?”

의미심장한 말이다.

강소군이 대답하기 전에 장무강이 먼저 말했다.

“그건 대장부의 복수가 아니지요. 삭초제근은 간악한 무리가 후환이 두려워하는 행동이오.”

“자네에게 물었네.”

연성결이 재차 강소군에게 물었다.

“혈연이라고 해서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닌 것까지 책임을 질 이유는 없습니다.”

강소군이 대답하는데 무척 우울하였다.

“좋네!”

연성결이 모두를 둘러보았다.

“홍옥비도의 주인은 내 손에 죽었네. 자네가 청옥비도의 주인으로 홍옥비도의 주인과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네. 나는 그 죽음에 책임을 지겠네.”

모두가 깜짝 놀랐다.

강소군의 얼굴이 굳었다.

싸늘한 기운이 순식간에 방 안을 덮었다.

아직 내상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한 위응환과 내공이 부족한 연화심은 속이 울렁거렸다.

연화심은 예감하고 있었던지 흑, 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자네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아네. 겨루자고 할 생각도 없고 자네를 죽일 생각도 없네. 자네가 원한다면 이 자리에서 내 스스로 죽을 것이네.”

피는 피로 치러야 한다. 그래서 핏값이라고 한다.

강호의 불문율이다.

연성결은 스스로 죽겠다고 한 것이다.

“무슨 소리! 핏값을 받으려면 스스로 받아내야지! 능력이 없으면 복수도 없다!”

척무량이 다시 벌떡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기세다.

“무량! 나와 약조하지 않았는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지켜보겠다고.”

연성결이 호통을 쳤다.

연성결이 척무량의 말을 막고 강소군에게 말했다.

“다만 복수는 나 하나로 끝내는 걸로 한다면 이 자리서 목을 내놓겠네.”

장무강은 연성결의 뜻을 알았다.

강소군이 절대고수라는 건 이 자리 고수들은 모두 알고 있다.

강소군의 몸은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무공이 뛰어나니 이 자리 모두가 합공을 한다 해도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이후 강소군이 공력을 회복하여 다시 찾아온다면 그때는 모두가 죽은 목숨이다.

연성결의 뜻에 모두가 숙연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지인의 혈채를 요구하는 것도 그에 응하는 것도 강호의 도리다.

물론 연성결이 죽는다면 그 혈채를 척무량이나 연화심이 요구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강호는 끝없이 피에 젖는다.

장무강이 문득 궁금하여 물었다.

“연 문주께서는 이 비도에 우리도 연관이 있다는데 저는 오늘 처음 봅니다. 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입니까?”

연성결이 산동삼호를 봤다.

“오 년 전 산길을 가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에 달려갔다네. 그곳에서 자네들을 만났지.”

장무강과 형제들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연성결이 증인이라고 한 뜻을 알았던 것이다.

장무강이 입을 열었다.

“당시 우리들은 금의위에게 쫓기고 있었소. 수없이 격전을 치르며 도주하였는데 금의위 천호와 동창의 고수가 끝까지 따라붙었소.”

연성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갔을 때는 위기일발의 상황이었다네. 산동삼호는 중상을 입은 상태였지.”

연성결은 일단 싸움을 말렸다.

그러나 동창의 고수와 금의위 천호가 일개 무인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오히려 검을 돌려 연성결까지 죽이려 들었다.

“동창의 고수는 정말 대단했소. 게다가 금의위 천호 역시 정상이었다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오.”

그러나 두 사람도 산동삼호와의 격전으로 지친 상태였다.

산길에서 우연히 나타난 무인이 회천십이도의 고수라고 생각지 못한 것도 연성결에게는 다행이었다.

연성결은 두 사람을 해치우고 산동삼호를 구해 은신처에 숨겼다.

그리고 다시 싸웠던 장소로 달려갔다.

동창에서 시신을 발견하면 회천십이도의 흔적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든 것이다.

“두 사람의 시신을 수습하다 동창의 고수 품에서 홍옥비도를 발견했소. 예사롭지 않아 보여 따로 보관해 두었는데 결국 화를 부르는구려.”

연성결이 말을 마치자 침묵이 흘렀다.

장무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 문주가 아니었다면 우리 산동삼호의 목숨은 그때 끊어졌을 것이오. 우리 때문에 연 문주께서 오늘 혈채를 갚아야 한다면 산동삼호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소.”

심마백과 위응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척무량도 자리에서 일어나 연성결에게 포권을 하였다.

“나는 이미 형님과 한날한시에 죽기로 했소. 형님의 오늘 부탁은 들어줄 수 없소. 오늘 같이 죽겠소.”

척무량이 강소군을 보며 말했다.

“강소군. 나오시오. 나부터 죽여야 할 것이오.”

연성결의 눈에 물기가 비쳤다.

헛살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모두 자리에 앉아 주게. 부탁일세.”

연성결이 강소군을 보며 일어났다.

“그자를 죽인 건 나네. 자네가 복수를 한다면 기꺼이 도를 뽑겠네. 하지만 나 한 사람으로 그 빚을 청산해 주게.”

강소군이 고개를 저었다.

모두 긴장하였다.

강소군이 천천히 일어났다.

“홍옥비도의 주인은 여인이었소.”

강소군은 말을 마치고 방을 나갔다. 짙은 살기도 어느새 사라졌다.

모두가 어리둥절하여 서로를 보았다.

“여인이라면? 고자가 될 수 없잖아?”

위응환이 낄낄, 웃었다.

곧이어 어이가 없다는 웃음이 터졌다.

강소군은 심장이 칼에 찔린 것만 같았다.

연성결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다면 홍옥비도의 주인 장영영은 결국 동창의 손에 죽은 것이다.

‘아니, 단순한 가정일 뿐이다. 그녀가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강소군은 애써 자신의 생각을 돌리려 했지만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자 진기가 격탕하고 간신히 가라앉힌 내상이 도졌다.

-울컥!

결국 핏물을 한 덩이나 토하고 말았다.

“강 대협!”

뒤늦게 강소군을 따라 나온 연화심이 기겁하여 달려왔다.

“괜찮소!”

강소군이 손을 저어 연화심을 밀치고 자신의 거처로 갔다. 아무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연화심은 홍옥비도의 내력 때문에 노심초사했던 것은 까맣게 잊고 서운해하였다.

한고비 넘어가면 또 다른 한고비가 나온다.

연성결과 척무량, 산동삼호가 당시의 일을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데 화천대원 한 명이 달려왔다.

“아침에 떠났던 황 장로님과 문도들이 적에게 쫓겨 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모두 벌떡 일어났다.

적이라면 천무방이다.

모두 병장기를 챙겨 뛰어나갔다. 과연 황의채와 삼도문도들이 천무방 무사들과 격전을 벌이며 쫓겨 오고 있었다.

“황 장로님! 여기는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장원으로 피하시오.”

초지항이 우렁우렁 외치며 화천대와 함께 천무방 무사들을 막아서는 모습이 보였다.

-챙!

도검이 부딪히고 부러진 칼날이 튕겼다.

“아우야!”

척무량이 도를 뽑아 들고 달려갔다.

황의채는 어깨에 부상을 입고 삼도문도들의 부축을 받으며 달려왔다.

삼도문도들 역시 피투성이다.

“매복에 걸렸습니다.”

연성결은 분노했다.

“물러나라!”

연성결이 대로하여 외치자 화천대가 뒤로 물러났다.

“우원송! 이게 무슨 짓이냐? 떠나겠다는 사람의 발목을 잡다니!”

우원송이 걸어 나왔다.

“진작 그랬으면 아무 일이 없었을 거요. 하지만 이제는 늦었소! 방주께서 친히 오시고 있소. 삼도문도들은 단 한 사람도 장원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지키란 명령이오!”

우원송의 전서구를 받은 구연강은 운살과 흑귀가 죽고 암천일대가 궤멸 수준으로 당했다는 소식에 대로하였다.

내가 친히 연성결과 그놈의 목을 따겠다!

구연강은 정예 무력대를 먼저 보내고 뒤이어 직접 무력을 이끌고 올 것이라 하였다.

“흥! 구연강이 온다고 달라질 게 있을 것 같으냐? 삼도문도 한 사람의 피는 천무방 열 놈의 목숨이 될 것이다!”

척무량이 고성을 지르며 달려가려 했다.

연성결이 도를 내밀어 제지했다.

“좋다! 내가 직접 천무방주와 사생결단을 낼 것이다! 그에게 전하라. 기다리겠다고.”

우원송이 포권을 하고는 수하들을 물렸다.

“그 말씀 지키실 것이라 믿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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