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3화 (1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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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춰라!”

응천 이조장이 손을 들자 따르던 무리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멈췄다.

어둠 속에 혈향이 흐르고 있었다.

응천 이조장은 말을 멈추고 안력을 돋우어 앞을 살폈다.

달빛이 내린 관도에는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 흔적이 역력했다.

핏자국도 상당하다.

그런데 시신이 없다.

‘여기서 그놈들을 잡았나 보군.’

응천대를 세웠던 암습자는 세 명이었다.

핏자국은 사방에 널렸다. 꽤 저항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적을 해치웠으면 복귀해야 하는데 오는 길에 마주치지를 않았다.

응천 이조장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당한 게 아닐까?’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응천대 이 개 조. 무려 스무 명이다.

게다가 일조장은 강호에서 제법 알아주는 고수 구화마검이다.

응천 이조장은 한 무리 말이 관도 저편으로 달려간 흔적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적의 흔적 같았다.

‘일단 따라 가보면 알겠지.’

응천 이조장은 잠시 망설이다 수하들에게 외쳤다.

“어서 가자!”

수하들을 독려하여 밤길을 달렸다.

***

연성결은 그들보다 한 시진 거리를 앞서 달리고 있었다.

삼도문은 서른 명에 불과했으나 정예였고 모두 말을 타고 있었다.

장무강과 심마백이 뒤에 처져 말을 달리고 있었다. 심마백은 위응환까지 안고 달리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연 문주. 아무래도 안 되겠소. 먼저 가시오. 우리는 천천히 합류하겠소.”

장무강이 앞을 향해 외쳤다.

연성결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장무강을 향해 소리쳤다.

“운성포로 올 것 없소. 바로 삼도문으로 가시오.”

연성결은 한 명을 장무강에게 호위로 붙여 주고 남은 수하들을 이끌고 다시 밤길을 달렸다.

삼도문 무사들의 눈에는 살기가 흘러나왔다.

응천대 무사들과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연성결은 감쪽같이 사라진 딸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악양으로 간 사실을 알아냈다.

직접 정예를 이끌고 밤길을 달려오던 중 산동삼호를 만났다.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에 응천대와 싸움이 벌어졌다.

응천대 무사들 대부분이 죽고 구화마검을 비롯한 몇몇이 흩어져 도주하였다.

삼도문은 응천대의 시신을 관도 옆 야산으로 숨겨 놓고 길을 되돌려 무한으로 가는 중이다.

연성결은 장무강의 판단을 믿었다.

연화심이 강을 이용해 무한으로 가고 있을 것으로 보고 먼저 가서 기다리려는 것이다.

“아가씨께서 중간에 내려 육로를 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옆을 따르는 화천대주 초지항이 길이 엇갈릴까 염려하여 말했다.

초지항은 삼도문의 고수이자 연성결이 믿는 심복이다.

그가 이끄는 화천대는 서른 명에 불과하나 삼도문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정예들이다.

삼도문은 무인 일백에 가솔 이백 모두 삼백 명에 불과한 작은 문파다.

무림문파라기보다는 상단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연성결은 한때 강호를 종횡하던 무인이었지만 애초에 복건의 상인 집안 출신이었다.

상재가 뛰어난 연성결 덕분에 삼도문은 작지만 알찬 문파였고 천무방이 눈독을 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지.”

딸을 구하기 위해 직접 밤길을 달려온 연성결이다.

마음은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문도들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연성결은 딸이 사라진 후 크게 후회했다.

차라리 천무방에게 진작 사업을 넘겼으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재화에 미련을 두었다가 딸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앞서가던 선두가 외쳤다.

“운성포가 보입니다.”

새벽이 오며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달은 이미 진 지 오래다.

하얗게 빛나는 강물이 거대한 용처럼 뒤틀어가는 길목에 불빛이 몇 점 보였다.

연성결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

포구의 새벽은 분주하였다.

침침한 어둠 속에서도 오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고기를 잡으러 가는 배들이 새벽어둠을 가르며 포구를 떠났다.

“마차를 구할 수가 없으니 말을 타야 할 것이오. 괜찮겠소?”

중랑이 물었다.

말도 어렵게 두 필을 구했을 뿐이다.

강소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곧 죽을 것 같던 사람이 하룻밤 만에 말을 탈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다니.’

중랑은 강소군의 회복이 경이롭기만 하다.

“이제 한나절만 달리면 삼도문 영역이오. 그때까지만 버티시오.”

강소군과 연화심이 말을 탔다.

중랑은 경신법을 발휘하여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새벽어둠을 타고 운성포를 빠져나갔다.

세 사람이 빠져나간 반 시진 뒤.

연성결 일행이 운성포에 당도했다.

초지항이 화천대를 풀어 수소문하니 연화심 일행으로 보이는 이들이 반 시진 전에 운성포를 빠져나갔다고 한다.

“여기서 삼도문까지 가는 길은 외길입니다. 서두르면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가자!”

연성결이 말을 돌리는데 저 멀리 한 척의 배가 포구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배 위에 서 있는 자의 기도는 언뜻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다.

주위로 무사들이 이십여 명이 서 있다.

연성결은 딸을 쫓는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연성결은 잠시 망설였다.

여기서 적을 막느냐 아니면 딸을 쫓아가느냐.

화천대주 초지항이 말했다.

“응천대 백 명이 모두 왔다고 했습니다. 저들은 스무 명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육로로 쫓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연성결은 바로 결단을 내렸다.

“서둘러라. 화심의 뒤를 따라간다.”

삼도문 일행이 관도를 질주하였다.

우원송도 배에서 삼도문 일행을 봤다.

한 떼의 기마가 움직이는 데 사뭇 비범하였다.

‘저들이 삼도문 화천대인가? 과연 소문대로군. 혈전을 피할 수 없겠구나.’

삼도문 화천대는 서른 명에 불과하나 개개인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다.

배가 포구에 닿자 우원송은 전령을 보내 육로로 오는 수하들에게 뒤를 따르라 명령하고 바로 추격에 나섰다.

“다 늙어서 이게 무슨 고생이람.”

운살이 투덜거리면서 뒤를 따랐다.

***

삼도문이 가까워지자 연화심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삼도문을 나설 때는 막연한, 하지만 반드시 이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나섰다.

그 바람대로 강소군을 만났고 삼도문으로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구양운이 죽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그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천무방이 어떻게 나올지는 명약관화.

자신들을 거스르는 문파를 천무방이 어떻게 했는가는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다.

몇몇 문파는 아예 몰살을 당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더욱 두려웠다.

연화심이 강소군을 보았다.

애초에 그의 도움을 받아 천무방의 청혼과 협박을 물릴 생각이었다.

천무방 휘하가 아닌 동맹 정도만 맺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었다.

구양운을 죽였으니 이제 그럴 여지는 사라졌다.

이런 사실을 아버지가 알면 어떻게 될까.

연화심의 마음은 무거웠다.

경공을 펼쳐 달리는 중랑은 이따금 강소군의 뒷모습을 보았다.

강소군의 정체가 궁금하였다.

그와 같은 고수가 있다는 말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 죽어 가던 이가 오늘은 말을 타고 있다.

‘아무리 강호에 기인이사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있을까?’

중랑은 강소군이 말을 모는 모습이 왠지 낯익다.

중랑은 낭인 시절 북방을 떠돈 적이 있다. 그때 말에서 자고 먹는 기병들을 본 적이 있다.

강소군의 기마술은 기병을 연상케 한다.

‘군문에 있었던 걸까?’

그때,

앞서가던 연화심이 갑자기 멈췄다. 뒤따르던 중랑이 몸을 솟구치더니 연화심의 앞에 내려섰다.

관도는 인의 장벽으로 막혀 있었다.

하나같이 흑의무복을 입은 그들은 어느 방파인지 알아볼 표식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천무방?’

연화심과 중랑이 암울한 눈빛을 교환했다.

‘이제 한 시진만 가면 되는데.’

적의 수는 서른 명 정도 되어 보였다.

그런데 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만치 않은 자들이다.’

중랑은 앞을 막아선 자들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응천대와는 기세 자체가 달랐다. 무언가 칙칙한 혈향이 느껴진다고 할까.

중랑은 삼도문이 자랑하는 정예 화천대보다 이들이 한 수 위라는 걸 직감했다.

천무방이 천하사패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당신들은 누군가?”

“알 필요 없다. 순순히 제압당한다면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암천 일대주 흑귀가 중랑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연화심을 향해 말했다.

연화심이 반박했다.

“당신들이 누군지 무슨 뜻으로 왔는지 설명도 없이 무조건 제압을 당하라니. 더구나 여기는 삼도문의 영역! 대체 그 말을 따를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흑귀의 전신에서 싸늘한 살기가 일었다.

연화심과 중랑은 밀려드는 살기를 감당하기 위해 내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저놈은 죽이고 여자와 말 탄 놈은 생포해라.”

흑귀가 수하들에게 일렀다.

천무방 암천대는 각기 서른 명씩 삼대로 나뉜다. 인원은 적지만 개개인의 무공이 뛰어난 자들이다. 그래서 적을 조용히 싹 쓸어버려야 할 때 나선다.

무자비한 살귀들이 모인 곳이 암천대. 그중에서도 일대주를 맡고 있는 흑귀는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을 잡아 오라는 명은 처음이다.

빨리 끝내고 돌아갈 생각뿐이다.

서른 명의 암천대원들은 순간 날 선 검처럼 살기를 일으켰다.

중랑이 검을 뽑아 세웠다.

연화심이 입술을 깨물더니 앞으로 말을 달려 중랑 앞에 서며 외쳤다.

“멈춰라!”

흑귀가 연화심을 보고는 손을 들어 수하들을 막았다.

“뭔가?”

“내가 따라가겠다.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

“두 사람은 구양운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두 사람을 놔준다면 순순히 따라가겠다.”

연화심이 중랑과 강소군의 안위를 두고 거래를 하려고 하였다. 중랑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어림도 없다는 얼굴이다.

연화심이 중랑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고마워. 중랑까지 죽을 필요는 없어. 어차피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야.”

중랑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암천대를 향해 서서 검을 겨눴다.

“너희가 사람을 데려가려면 이 검부터 부러뜨려야 할 것이다.”

흑귀과 기이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크크크. 너 같은 놈들은 수없이 봐왔다. 결과는 늘 같았지.”

흑귀가 손짓을 하였다.

“뭣들 하느냐? 저놈 원대로 해 줘라!”

선두에 서 있던 두 명의 암천대원이 바람처럼 달려 나왔다.

허리춤의 도를 움켜잡고 달려오던 흑의인들은 중랑의 앞에 이르자 도를 뽑았다.

차가운 광망이 번뜩이는 순간 두 자루의 도가 중랑의 목과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중랑은 피하는 대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몸을 힘차게 회전하였다.

-카카강!

두 자루의 도와 중랑의 검이 순간적으로 서너 차례 부딪혔다.

흑의인들 양옆으로 물러나는 듯하다 몸을 돌려 다시 공격하였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듯 한 사람은 목을 다른 이는 허리를 집요하게 노렸다.

도의 기세에 휘말려 회오리가 일며 먼지가 풀풀 날렸다.

중랑의 검은 날아드는 도를 비끼며 정면으로 부딪치는 걸 피했다.

순식간에 세 사람은 이십여 초를 나눴다.

흑귀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암천대원 두 사람의 협공이면 일문의 장로도 상대할 수 있다.

일개 호위무사가 두 사람과 비등하게 겨룰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흑의인들의 도는 거셌으나 중랑의 검은 유연하고 빨랐다.

-쨍, 채쨍!

중랑은 자신의 검세가 평소보다 훨씬 순조롭게 이어짐을 느꼈다.

중랑은 오늘 이 자리를 자신의 죽을 자리로 받아들였다. 마음을 비우니 검이 오히려 자유로웠다.

밤마다 수련하며 그토록 원했던 천성육십사식의 오의가 머릿속을 스쳤다.

중랑의 검이 하늘을 휘젓다가 떨어져 내렸다.

-슈슈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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