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조정평은 심마백의 수법을 크게 칭찬을 하고 몸을 풍차처럼 돌렸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십여 합을 부딪쳤다.
막상막하였으나 허벅지에 부상을 입은 심마백은 아무래도 움직임이 둔했다.
‘구화마검이라면 꽤나 알려진 자인데 천무방에서 응천대 조장이나 하고 있을 줄이야.’
장무강이 탄식하였다.
그들이 악양에 은거한 지가 오 년 되었다.
강호에 대한 소식을 놓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천무방은 소문으로 듣던 것 이상이다.
“오조는 나머지 적을 제압한다!”
아직 마상에 있던 자가 응천 오조장이었나 보다.
그는 조정평과 심마백의 싸움을 아랑곳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응천 오조 열 명이 일시에 나섰다.
-쉭!
쇠뇌를 벗어난 철시(鐵矢)가 응천 오조장을 향해 날아갔다.
응천 오조장이 도를 휘둘러 철시를 쳐냈다.
응천 오조 세 명이 위응환을 향해 달려들었고 일곱 명이 장무강을 덮쳤다.
“어림없다!”
장무강이 양손의 식도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위응환의 앞으로 몸을 날렸다.
위응환의 위기부터 해소하려는 것이다.
위응환은 땅바닥을 굴러 앞에서 짓쳐 오는 적의 도를 피하다 몸을 솟구치며 옆에 있는 자의 머리를 걷어찼다.
“큭!”
위응환은 화살과 암기술 외에 경공이 뛰어났다. 그만큼 발재간이 좋다는 뜻이다.
죽어 가는 것만 같았던 위응환의 임기응변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머리를 맞은 무사가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네놈들은 발로 싸워도 이길 수 있다.”
위응환이 이를 악물었다.
그 사이 장무강이 적을 물리고 위응환의 앞에 섰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직진을 하다 보니 몸 여기저기에 자상을 입었다.
“대형! 형님이 그러면 저는 정말 죽습니다. 먼저 몸을 돌보셔야 합니다.”
위응환이 장무강의 상처를 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 아니냐. 피륙의 상처가 좀 있다고 대수로울 게 뭐냐? 이제 진짜로 한바탕 해보자.”
장무강이 위응환과 등지고 식도를 교차하여 들었다.
위응환도 품에서 비도를 꺼내 양 손에 잡았다. 부상당한 팔이 연신 부들거렸다.
뱀의 혀처럼 칼과 검이 날름거리며 다가왔다.
-챙! 채앵!
장무강의 식도가 마치 광풍에 날리는 낙엽처럼 사방에서 번뜩였다.
“크윽!”
응천대 무사 두 명이 가슴을 난자당하여 죽었다.
응천 오조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장무강이나 위응환의 움직임이 아까와는 달랐다.
먼저 싸움은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으나 이제는 죽음을 앞두고 한 명이라도 더 끌고 가겠다는 동귀어진 수법이다.
장무강과 위응환은 연이어 살초를 펼쳤다.
“조심하시오. 이들은 오 년 전까지만 해도 산동에서 이름을 떨친 자들이오.”
조정평이 심마백의 창을 쳐내며 응천 오조장에게 주의를 주었다.
응천대 가운데 산동삼호의 실력을 제대로 아는 자는 조정평뿐이었다.
‘흥!’
응천 오조장은 내심 콧방귀를 꼈다.
방건이 구양운의 죽음에 대한 죄를 뒤집어쓰고 옥에 갇힌 후 갑자기 일조장이 된 조정평이다.
동고동락한다는 응천대와는 달리 상부에서 내리꽂힌 인물이었기에 응천 오조장은 은근히 반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죽여 주지.”
응천 오조장이 이를 갈며 마상에서 몸을 솟구쳐 낭아도를 휘두르며 덮쳤다.
-땅! 따따다 당!
장무강의 식도와 부딪혔다고 생각하는 순간 낭아도는 연달아 타격을 입고 뒤로 튕겨 나갔다.
마상에서 내리치는 기세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헉!’
응천 오조장은 당황하였으나 그 역시 만만치 않은 자다.
재빨리 보법을 밟아 식도의 공세권을 벗어나며 낭아도로 몸을 감쌌다.
응천 오조장이 잠시 밀리는 사이 양쪽에서 장무강을 향해 검과 도가 날아들었다.
장무강은 오른쪽 옆구리로 날아드는 도는 포기하고 왼손의 식도로 검을 내리찍고 오른손의 식도를 밑에서 위로 그어 올렸다.
“크윽!”
검을 쓰던 자는 배에서 가슴까지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대신 장무강의 오른쪽 옆구리를 칼이 할퀴고 갔다.
살이 뭉텅이로 떨어지는 것만 같은 아픔에 머리끝이 뾰쪽 서는 것만 같았다.
“욱!”
나직한 신음과 함께 등을 맞댄 위응환의 움직임이 전해왔다.
돌아볼 틈도 없이 다시 검과 도가 날아왔다.
‘적을 몰랐구나.’
응천대의 장점은 조별 연수합격이다.
모홍객잔에서 쉽게 패퇴시킬 수 있었던 것은 좁은 문을 지키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구양운이 좀 더 머리를 썼다면 산동삼호를 바깥으로 끌어내 싸웠을 것이다.
싸움은 양쪽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갔다.
응천대도 강했지만 산동삼호도 만만치 않았다. 장무강과 심마백은 절정을 넘보는 고수였다.
싸움이 길어지며 어둠이 완연하게 깔렸다.
희미한 달빛이 관도를 비칠 뿐이다.
조정평은 여간해서 심마백을 제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는 승부수를 띄워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검을 곧게 찌르는 허초를 보내니 심마백이 창으로 후려치는 동시에 뻗었다.
조정평의 검이 빙그르르 돌았다. 순식간에 아홉 개의 검영이 피어났다.
달빛을 받은 검영이 마치 꽃과 같았다.
“구화(九花)?”
구화마검이라는 별호를 낳은 조정평의 비기가 펼쳐졌다.
심마백은 손에 든 창을 회전시키며 어깨 위로 돌렸다.
창이 심마백의 어깨를 타고 흐르다 갑자기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마치 뱀이 혀를 날름거리듯 창끝이 검영을 향해 날아갔다.
조정평의 검화가 창끝에 찍혀 사라졌으나 마지막 남은 검화가 심마백의 가슴을 스쳤다.
심마백이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으나 허벅지의 부상으로 보법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었다.
-파팍!
조정평의 검화가 스친 심마백의 가슴이 피범벅이 되었다.
“크윽!”
심마백이 무릎을 꿇었다.
조정평의 검이 다시 심마백을 향해 날아갔다.
딱 죽는 순간이었다.
그때.
“둘째 형!”
-쉭!
위응환이 자신의 앞으로 날아드는 도를 도외시하고 손에 든 비도를 조정평을 향해 날렸다.
조정평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비도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검을 회수하여 비도를 쳐냈다.
“조심해!”
장무강은 위응환에게 날아든 도를 쳐내는 대신 자신의 허벅지에 날아든 검을 막지 못하고 찔렸다.
“가라!”
조정평이 날아드는 비도를 쳐내는 사이 심마백이 창으로 땅을 쓸 듯이 휘저었다.
조정평이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창이 한 자 길이로 쭉 뻗어 나가며 조정평의 다리를 훑었다.
“크윽!”
조정평은 허벅지를 베이며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 사이 심마백이 장무강과 위응환의 옆으로 굴러왔다.
세 사람은 품자형으로 등지고 섰다.
“대단하구려. 부상을 입은 몸으로 이렇게 버티다니.”
다리에 부상을 입은 조정평이 이를 악물면서도 내심 감탄하였다.
강호에서 만났다면 벗으로 삼고 싶을 만한 호걸들이다.
그와 산동삼호 간에 아무런 원한이 없다. 이 싸움은 그저 몸담은 조직의 명 때문에 치르는 것이다.
응천 오조장은 강호 독행의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조정평을 향해 소리쳤다.
“일조장! 뭘 하시는 것이요! 수하들 앞에서 적을 칭찬하다니. 어서 저들의 숨통을 끊읍시다.”
수하를 넷이나 잃은 응천 오조장이다. 그 역시 장무강의 식도에 옆구리와 허벅지를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조정평이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조직에 몸을 담은 이상 무인의 삶을 살기는 어려웠다.
“응천 일조! 저들을 명예롭게 보내라!”
조정평의 명이 떨어지자 응천 일조 열 명이 산동삼호를 향해 다가갔다.
“크크크. 오너라. 너희쯤이야!”
심마백이 힘겹게 장창을 들었다.
“퉤. 마백, 작작 좀 해라. 저놈들 겁나서 오겠냐!”
장무강이 목에서 치솟는 핏덩이를 내뱉으며 말했으나 기력이 딸려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위응환은 말을 할 기력도 없었다.
그런데 다가가던 응천 일조원들이 그 자리에 멈췄다.
-두두두두.
관도 저편 어둠 속에서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인마가 나타났다.
삼십여 명에 이르는 무인들이었다.
“삼도문?”
조정평은 희미한 달빛을 받아 빛나는 무인들의 가슴 표식을 알아보았다.
세 자루의 도가 하얀 수실로 새겨져 있다.
응천 오조장의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조정평! 네놈이 무인 흉내를 낸답시고 지체하다 일을 망쳤구나!’
속으로 분통을 터뜨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응천대는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응천 일조장이 윗전이다.
“대형을 갖춰라!”
남은 응천대가 밀집대형을 이뤘다.
그새 삼도문이 다가왔다.
“혹 산동대호 장 대협 아니신가?”
선두에 선 자가 장무강을 알아보았다.
장무강은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연 대협?”
“맞소. 삼도문의 연성결이오!”
***
우원송은 두 조를 산동삼호를 쫓게 하고 한 조를 북쪽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 조를 끌고 남쪽으로 질주하였다.
한참 달려가는데 관도 저편에 이쪽으로 오는 마차가 보였다.
“저 마차를 수색하라.”
마차를 보자 우원송이 지시하였다.
마차에는 아무도 없었다.
응천 이조장이 마부에게 물었다.
“해가 지는데 빈마차를 끌고 어디를 가는 게냐?”
“그저 심부름하는 것뿐입니다.”
“심부름?”
“악양까지 가져다주라더군요.”
“그게 누구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인 한 사람과 젊은 여인 그리고 ….”
“어서 길을 가자!”
마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편에서 듣고 있던 우원송이 외쳤다.
연화심이 남쪽 길을 택했을 것이란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
이제 쫓기만 하면 된다.
“전력을 다해 질주한다.”
우원송은 응천대를 독려하여 해가 지기 전에 나루터에 당도할 수 있었다.
“흉수들에 대해 수소문해 봐라.”
잠시 후 응천 이조장이 뱃사공 하나를 데려왔다.
“이자의 말이 흉수 일행이 탄 것으로 보이는 배가 반 시진 전에 떠났답니다.”
우원송이 뱃사공에게 직접 물었다.
“어디로 간다던가?”
“그건 저도 모릅니다.”
뱃사공이 고개를 저었다.
은자를 받기는 했으나 모르는 것까지 답할 수는 없었다.
우원송이 물었다.
“무한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가 어디인가?”
“운성포가 가장 가깝지요.”
우원송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응천 이조장을 불렀다.
“다섯 조를 넘겨주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명일 해뜨기 전까지 운성포를 포위해야 한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우원송의 명을 받은 응천 이조장이 다섯 조를 이끌고 말을 달렸다.
우원송은 지필묵을 꺼내 뭔가를 쓰더니 전령을 불렀다.
“너는 악양 안가를 찾아 이 서찰을 전해라.”
전령도 떠났다.
우원송은 남은 두 조를 직접 이끌고 배에 올랐다.
운살이 뱃전에 기대어 술을 마시다 물었다.
“그들이 운성포에 내릴 거라고 생각하나? 꽤나 영악한 놈들이던데?”
“어디에 내리든 그들은 잡히 게 되어 있습니다. 갈 곳이 뻔하지 않습니까? 가장 빠른 길로 가서 길목을 지키면 그들을 잡을 수 있겠지요.”
“삼도문으로 간다는 말이로군. 그렇긴 하지만 무한 일대는 삼도문의 영역이라는 걸 모르나?”
“응천대라면 삼도문과 해볼 만하지요.”
우원송이 말을 끊고 어둠이 찰랑이는 강물로 시선을 돌렸다.
전령에게 건넨 서찰은 암천대에게 전해질 것이다.
암천대는 천무방에서 적을 말살할 때 동원하는 무력이다. 때로는 비열하고 잔인한 수법까지 불사하기에 어둠 속의 무력으로도 불린다.
‘암천대가 나왔으니 흉수는 물론이고 삼도문까지 멸문될 것이다.’
운살은 암천대까지 투입됐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마 알았다면 자기는 손을 쓸 필요가 없다고 빠지려 들지도 모른다.
우원송은 굳이 필요 없는 말까지 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천지풍운은 식객이지 진정한 천무방 사람이 아니었다.
‘내일! 또 하나의 문파가 강호에서 사라지는구나.’
잡다한 문파들이 사라지고 난 뒤 천무방은 말 그대로 천하제일방이 될 것이다.
뱃전을 잡은 우원송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