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1화 (11/250)

11

“남쪽이요? 장강이 나오는데요? 막다른 길이잖아요?”

심마백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마차를 버리고 배로 갈 생각을 하겠지.”

“그건 외통수나 마찬가지죠. 그러다 노출되면 피할 곳이 없죠.”

심마백이 우겼다.

“적도 그리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상식의 허점을 노려 남쪽을 택했을 것이라고 보는 거야. 환자를 데리고 가는 데는 아무래도 마차보다 배가 낫기도 하고.”

“강호 경험도 없는 연 낭자가 과연 그렇게 머리를 쓸까요?”

“연 낭자는 몰라도 호위하는 중랑이라는 자는 그렇게 할 거야. 그는 제법 강호를 알더군.”

장무강이 잠시 생각하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아우들에게 말했다.

“응천대와 교전을 하다 몰리면 우리는 직진하는 길로 도주한다.”

“오호. 우리가 미끼가 되자는 거로군요?”

위응환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글쎄다.”

장무강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텁수룩한 수염이 잔뜩 난데다 칼자국까지 난 얼굴이 미소를 지으니 오히려 험악해 보였다.

그때 심마백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들이 왔습니다.”

관도에 응천대가 나타났다.

진형을 갖춘 응천대는 거침없이 질주하였다.

선두에 십여 기의 마필이 앞장서고 그 뒤로 응천대 무사들이 따르는데 그 기세가 마치 폭풍과도 같았다.

“흥! 우리를 무시하는군.”

심마백이 코웃음을 쳤다. 응천대가 곧바로 정면돌파로 나온 건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기는 당금 강호에서 누가 응천대의 앞을 막을 수 있을까.

-쉬이익!

위응환의 대궁을 벗어난 화살이 관도에 꽂혔다.

응천대 선두에 서서 달리던 우원송이 말을 멈추고 손을 들었다.

뒤따르던 응천대 무사들이 한순간 멈췄다. 놀랍도록 절제된 움직임이다.

“어느 고인이 천무방 응천대의 앞길을 막으시는 게요!”

-쉬이익!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일장 가까운 곳에 박혔다.

우원송이 화살이 날아온 곳을 보았다.

야산 기슭에 세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

강소군은 의아했다.

알지도 못하는 연화심이 자신에게 방수가 되어 달라고 했다. 거절했는데도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자신을 구해 달아나고 있다.

적이 쫓고 있다는 건 자신도 알고 있다.

연화심이 아니었으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차라리 죽었으면.’

간혹 죽음의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죽을 수 없다.

그게 그의 운명이다.

강소군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그의 요상결은 일반 심법과 차원이 달랐다.

강소군은 마차벽에 기대어 운기토납을 하며 내상을 다스렸다.

연화심은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눈에 어린 감정은 미묘했다. 두려움과 분노, 서운함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눈빛이었다.

‘삼도문이라고 했나?’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새로운 인연과 엮이고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좋든 싫든 살아 있는 한 인연은 끊임없이 다가온다.

중랑이 마차를 모는 솜씨는 제법이었다. 거친 길임에도 불구하고 마차는 그리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쫓는다면 천무방이겠군.’

삼사(三師)가 죽었으니 요천루에서는 더 이상 그를 쫓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요천루주와의 결전을 아는 이들은 삼사뿐이다.

삼사는 결전의 공증인이었으나 루주가 죽자 약조를 어기고 그를 쫓았다.

요천루주와의 결전에서 내상을 입은 강소군은 삼사와 맞부딪힐 수 없었다.

그들을 피해 한 달가량이나 먼 길을 돌아 백륭사로 돌아왔는데 결국 그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들 또한 죽었다. 이제 요천루주와 그의 결전을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요천루에서 안다 해도 쫓을지는 의문이다.

요천루는 수많은 방파가 연합하였기에 결속력이 약했다. 루주의 복수보다는 남은 패권을 차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마차의 흔들림이 멈췄다.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강소군은 마차 창을 열었다.

나루터 풍경이 들어오고 뱃사공과 흥정을 하고 있는 중랑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마차 문이 열리고 중랑이 말했다.

“마차를 버리고 배를 타야 할 것 같소.”

중랑은 무뚝뚝하게 한마디 하고 앞장섰다.

강소군은 말없이 마치에서 내렸다.

“괜찮으시겠어요?”

연화심이 마차에서 나오는 강소군을 보고 다가오며 물었다.

연화심이 손을 내밀어 부축하려다 말고 멈췄다.

남녀를 따지기 앞서 아직 그럴 만한 사이가 아니다.

중랑이 그런 둘의 모습을 흘깃 보았으나 못 본 척 외면하고 배에 올랐다.

사공이 나서서 강소군을 부축하여 배 안으로 옮겼다.

한가운데 객실이 하나 있는 작은 배였다.

“마차는 악양으로 보내 주시오.”

중랑이 은자를 뱃사공에게 쥐여 주며 말했다.

뱃사공이 나루터에 있던 젊은 청년에게 은자를 건넸다.

청년은 마차를 몰고 나루터를 떠났다.

강소군은 객실 창에 기대어 이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돛이 활짝 펼쳐지고 배는 장강을 따라 흘렀다.

***

세 필의 말은 미친 듯이 달렸다. 장무강이 후위를 지켰다.

앞서 달리는 두 필은 나란히 달렸다.

심마백이 두 필의 말고삐를 모두 쥐고 몰았다.

심마백에 이끌려 가는 말에는 위응환이 엎어져 있었다.

“응환! 정신을 놓지 마라!”

심마백은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과연 응천대였다.

반 시진을 싸웠고 십여 명을 쓰러뜨렸으나 세 사람도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막내 위응환이 등과 옆구리 그리고 양팔에 깊은 자상을 입었고 심마백은 허벅지를 찔렸다.

죽지 않고 그 자리를 빠져나온 것만도 천행이었다.

심마백은 양팔을 쓸 수 없는 위응환을 대신하여 말을 몰았다.

어둠이 내리는 관도는 끝이 없었고 적들은 여전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장무강이 뒤를 보았다.

이십여 명의 그림자가 따라온다. 그들은 도망자들의 말이 지치기를 노리고 추적 속도를 조절하며 뒤를 쫓아왔다.

두 필의 말이 선두를 이끄는 걸 보니 인솔자가 두 명이다.

응천대 이 개 조가 투입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연 낭자를 쫓겠군.’

장무강은 우원송의 선택이 궁금했으나 물어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은 오늘 밤 이름 모를 관도에서 뼈를 묻을 것 같았다.

‘우원송, 역시 응천대주를 할 만한 자였다.’

장무강은 방금 전 싸움을 복기하였다.

우원송은 서두르지 않았다.

먼저 일개 조를 보내 세 사람의 실력을 타진한 뒤 곧바로 삼 개 조를 투입하였다.

적당히 시간을 끌다 몸을 빼려 했으나 응천대가 놔주지를 않았다.

악양 객잔에서 한 번 싸워 봤던 응천대였건만 수장에 따라서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대주 우원송이 지휘하자 응천대는 공수전환 움직임부터가 달랐다.

무엇보다 위응환이 일찍 부상을 입은 게 탈이었다.

우원송은 암기에 능한 위응환부터 집중공략을 했다.

위응환이 운신할 수 없자 장무강과 심마백도 크게 제약을 받았다.

위응환을 부축하고 필사적으로 도주하여 감춰둔 말을 타고 갈래길에서 직진을 하였다.

직진 길을 택한 것은 끝까지 적을 유인하려 함이었는데 우원송은 속지 않았다.

단지 이 개 조만 보냈다.

그들이면 충분하다고 여긴 것일 게다.

‘북쪽을 택했기를!’

장무강은 내심 바라면서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우원송만 한 자라면 신중하게 선택했을 것이다.

자신이 연화심이 남쪽을 택했으리라 생각했듯 그 역시 그리 판단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연화심 역시 무사하지 못하리라.

장무강이 다시 뒤를 돌아보며 쫓아오는 응천대를 살펴보는데 다급하게 외치는 심마백의 소리가 들렸다.

“아우, 조심하게!”

장무강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밤길이다.

밤길에 말을 달리는 건 쉽지 않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질주하던 위응환의 말이 무언가에 걸려 균형을 잃었다.

피를 많이 흘려 잠시 혼절했던 위응환이 말 등에서 튕겨 나갔다.

심마백이 재빨리 말 등을 박차고 날아올라 위응환을 낚아챘다.

그 사이 두 필의 말은 주인을 버리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장무강이 말을 멈췄다.

“마백! 응환을 안고 어서 가라!”

장무강이 자신의 말을 내주며 재촉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두 형님 먼저 피하세요.”

말에서 떨어지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위응환이 옆에 찬 쇠뇌를 들며 말했다.

대궁 대신 근접전에 유리한 쇠뇌를 쓸 작정이다.

부상 입은 양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쇠뇌를 들고 있기도 힘들어 보였다.

이를 본 심마백이 처연하게 외쳤다.

“형님! 차라리 같이 죽읍시다. 형님만 두고 나도 못 가겠소.”

심마백도 장창을 꼬나들고 앞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심마백은 어둠이 내리는 관도 복판에 서서 저편에서 다가오는 응천대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다쳤다고 저까짓 놈들에게 쫓기다니! 면이 서지 않소!”

이십여 명에 이르는 적과 홀로 맞선 심마백의 모습에 위응환은 호기가 치솟았다.

“크하하. 둘째 형님만 멋지게 죽으면 안 되지. 팔이 안 된다면 다리가 있다고.”

위응환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왼발로 쇠뇌를 지탱하고 오른발로 시위를 끌어당기더니 쉴 새 없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살을 재었다.

“이런 빌어먹을 수를 쓰는 날이 정말 올지는 몰랐네요.”

위응환이 툴툴거리며 웃었다.

언젠가 팔을 못 쓰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심마백이 놀리자 궁리 끝에 고안한 수다.

그런 심마백과 위응환을 보는 장무강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이 자식들이!’

적을 피해 악양까지 와서 객잔 숙수 행세를 했다.

무인의 칼로 야채를 다지면서도 아무 불평 없었던 아우들이다.

저녁에 술 한 잔 걸치면 그제야 지난날을 되새기며 웃고 떠들었다.

‘이런 호랑이들을 울타리에 가두었으니. 무강아! 네가 그러고도 무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장무강은 묵묵히 심마백의 옆에 가서 나란히 섰다.

응천대가 가까워지며 속도를 늦췄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가오는 기세가 느껴졌다.

장무강 형제들 앞에 섰을 때 마상에 있는 조장은 물론 경공을 펼쳐 따라온 응천대원들까지 고른 숨을 쉬고 있었다.

역시 노련한 놈들이었다.

마상의 조장 가운데 한 사람이 장무강에게 말했다.

“나는 응천 일조장 조정평이라고 한다. 당신들은 아무리 봐도 평범한 객잔 숙수들이 아니다. 대체 누군가? 신분을 밝혀야 묘비라도 새겨 줄 게 아닌가?”

조정평은 방건의 뒤를 이어 새로이 응천 일조장을 맡았다.

“강호에서 우리를 산동삼호라고 부른다. 나를 대호라고 불러 주면 고맙지.”

장무강이 양손에 든 식도를 흔들며 말했다.

조정평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산동삼호라면 무명소졸이 아니다. 산동지방에서는 꽤나 이름난 호걸들이다.

“과연 산동삼호였구려. 응천대가 고전한 것도 이유가 있었군. 하지만! 여기까지요. 연 낭자와 흉수는 어디로 갔소?”

“그걸 말해 줄 것 같으면 여기 서 있겠느냐? 헛소리 말고 어서 검이나 뽑지 그래?”

심마백이 장창을 겨누었다.

“귀하가 마창이겠군. 산동삼호 중에서 가장 성질이 급하다더니 과연 듣던 대로요.”

“흥! 구화마검이라면 그래도 강호에 이름깨나 알린 자인데 겨우 응천대 조장 자리밖에 못 얻었소?”

조정평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구화마검 조정평.

천무방 응천대의 일조장 신분이기는 하나 조정평 역시 내력이 없는 자는 아니다.

“각자 자신의 길이 있는 법.”

조정평이 말에서 내리며 검을 뽑았다.

“무인답게 대우하겠소.”

조정평은 천무방에 의탁했으나 한때 강호를 독주하던 무인이었다.

다수의 힘으로 몰아붙여 산동삼호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좋구나!”

심마백이 장창을 아래위로 휘두르며 쭉 뻗었다.

조정평이 가볍게 검을 저어 창을 쳐냈다. 그러자 창이 빙그르르 돌며 검을 타고 들어왔다.

“과연 마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