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7화 (7/250)

7

“완전히 미친놈이잖아?”

강소군의 말에 구양운이 주위를 돌아보며 황당하다는 듯 양손을 벌리며 동조를 구하듯 말했다.

천무방 무사들이 킬킬거렸다. 아무리 봐도 강호를 모르는 듯했다. 그래도 그렇지 칼 든 무사들이 수십 명이 있는데 삼공자를 죽이겠다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양운의 뒤에 선 방건은 생각이 달랐다.

방건은 신중한 자인 데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신강삼랑이라는 말이 나오면서부터 불길한 느낌에 휩싸였다.

연화심이 강소군에게 매달리는 걸 보며 간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짐작했다.

‘이상해. 이상하리만치 침착해.’

방건은 강소군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세상에는 왕왕 생각 밖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죽을 위기는 그 예상 밖의 일 때문에 닥치곤 한다.

방건의 본능이 경고를 보내왔다.

방건이 구양운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삼공자, 일단 저자를 보내고 연 낭자와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이미 질투의 화신이 된 구양운의 귀에 방건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연화심이 간절하게 매달리는 저놈을 자신이 직접 잡아 무릎 꿇리고 싶었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목을 쳐서 자신이 얼마나 강한 자인지 똑똑히 알려 주고 싶었다.

다시는 저항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밟아 주고 싶었다.

“크크크. 나를 죽인다고? 방금 네가 무슨 말을 한 줄 아나? 감히 천무방의 직계를 죽인다고 운운한 거야. 그것만으로 네놈은 죽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구양운은 한 발 한 발 다가가며 강소군을 노려보았다.

강소군은 다가오는 구양운을 주시하였다. 아무런 흔들림이 없다.

그럴수록 구양운은 분노가 치솟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 여겼다.

방건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

구양운의 앞을 가로막으며 수하들에게 외쳤다.

“삼공자! 굳이 직접 나설 것 없습니다. 뭐 하고 있나? 저자를 제압하라.”

방건의 눈짓에 무사 둘이 달려갔다.

무사들은 양쪽에서 강소군의 팔을 잡아 비틀며 발로 무릎 뒤를 내리찍었다.

-퍽!

무사들이 강소군이 다리를 내리찍었으나 강소군은 꿈쩍하지 않았다.

아니, 무사들은 애초에 팔조차 비틀지 못했다.

‘역시 고수였다!’

방건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깨달으며 오늘 이 자리가 흉할 것임을 직감하였다.

“이 자식이!”

무사들이 다시 힘을 써서 강소군의 팔을 비틀며 남은 손으로 각기 복부와 목덜미를 가격하려 했다.

강소군이 팔을 휘젓자 무사들의 자세가 흐트러지며 공세는 무위로 돌아갔다.

“이들을 믿는다면 마지막으로 경고하지. 그냥 가라.”

강소군이 구양운에게 말했다.

질투심에 눈이 뒤집힌 구양운의 귀에 이 말이 들어올 리 만무다.

그의 눈에는 강소군이 수하들에게 잡혀 있는 지금이 호기였다.

“이놈, 죽어라!”

구양운의 검이 양팔이 붙잡힌 강소군의 상중하 급소를 노리고 뻗었다.

“공자! 조심하시오!”

방건이 외쳤으나 이미 늦었다.

“크흑!”

강소군의 양팔을 잡은 무사들이 피를 뿌리며 튕겨 나갔다.

동시에 강소군의 왼팔이 원을 그리며 구양운의 검끝을 감았다.

구양운의 검이 강소군의 손을 따라 둥글게 말렸다.

강소군의 오른손이 구양운의 가슴을 쳤다.

-퍽!

구양운의 동작이 멈췄다.

구양운은 두 눈을 부릅뜨고 움푹 꺼진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이어 고개를 들어 강소군을 보았다.

구양운이 입을 열려는 순간 핏덩어리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검붉은 덩어리는 그냥 피가 아니라 내장 덩어리였다.

단 한 수에 내장이 박살났다.

“삼공자!”

방건이 달려가 구양운을 부축하였다.

구양운이 뭐라고 입을 열려다 말고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방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삼공자! 공자님! 정신 차리시오.”

방건이 구양운의 목덜미에 손을 댔으나 이미 절명했다.

천무방주 구연강이 애지중지하는 삼공자 구양운이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독하구나!”

방건이 강소군을 노려보며 발악하듯 외쳤다.

“응천대는 들어라. 삼공자가 절명했다. 복수를 하지 못하면 모두 오늘 이 자리에서 뼈를 묻는다!”

응천대 무사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다 검을 앞세워 달려들었다.

-쉬쉬식!

날렵한 검들이 뱀처럼 강소군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소군이 달려드는 검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움직임은 간결하고 손놀림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천대 무사들의 검은 강소군에게 닿지 못했다.

오히려 강소군의 권과 장, 금나에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빠각!

“크윽!”

-퍽!

강소군은 한 사람에게 두 수 이상을 쓰지 않았다. 마치 약속대련이라도 하는 듯 가볍게 쳐냈다.

그 가벼운 손놀림에 응천대 무사들은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졌다.

방건은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생사고락을 같이한 수하들이 불나방처럼 스러진다.

사신이 따로 없었다. 방건이 검을 꼬나쥐고 달려들려는 순간.

창노한 불호가 터졌다.

“나무아미타불. 시주! 손에 자비를 베푸시오. 그들 모두 죽일 셈이오?”

방건이 정신을 차렸다.

“멈, 멈춰라! 모두 물러나라!”

방건이 수하들을 제지하였다.

수하들을 더 이상 무의미한 죽음으로 내몰 수가 없었다.

응천대 무사들이 물러나자 강소군도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제대로 서 있는 응천대 무사는 대여섯 명. 순식간에 스무 명이 넘게 쓰러졌다.

“귀하의 존성대명이 어찌 되시오?”

방건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강소군은 담담한 눈빛으로 방건을 보았다.

“….”

방건은 강소군의 눈을 보자 가슴이 떨렸다.

너무나 차분하여 도저히 방금 살인을 한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 기묘함이라니.

죽고 죽이는 싸움터에서 살다시피 한 방건도 소름이 끼쳤다.

‘사신(死神)이다!’

방건의 뇌리에는 살신이라는 단어만 맴돌았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건 사신뿐이다.

눈앞에 있는 자가 그런 자였다.

강소군은 방건의 물음에 대꾸를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응천대 무사들이 주춤주춤 물러나며 길을 열었다.

나루터에 기이한 정적이 흘렀다. 가을 햇볕이 잔혹한 살인현장을 따사로이 비출 뿐이다.

강소군은 정적 속으로 사라졌다.

“흐윽!”

누군가가 나직한 신음성을 터뜨렸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꼼짝 못 하고 있던 사람들의 의식이 풀렸다.

살아남은 응천대 무사들이 쓰러진 동료를 보았다.

방금 전까지 살아서 펄펄 날뛰던 동료들이 피를 뿌리고 쓰러져 있다.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죽고 죽이는 싸움을 수없이 겪어온 응천대 무사들도 너무나 갑작스런 참사에 얼이 빠져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방건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구양운이 죽었다.

이대로라면 돌아가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다시 강소군 앞에 나설 자신이 없었다.

명령을 내린다 한들 따를 무사도 없다. 짧은 순간이지만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 앞에 서면 죽는다!

중랑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강소군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저자가 누굽니까?”

강소군이 사라지자 그제야 연화심에게 물었다.

연화심이 겁에 질린 얼굴로 떠듬떠듬 대답했다.

“강소군.”

***

방건은 구양운과 응천대의 시신을 거두어 마차에 싣고 응천대 무사들과 떠났다.

한 달 가까이 점거했던 천무방 사람들이 사라지자 백륭사는 다시 평온을 찾았다.

철우대사가 연화심을 주지실로 불렀다.

철우대사의 안색이 침중하였다.

“여 시주는 어찌하여 그를 살귀의 길로 끌어내려는 것이오?”

“….”

연화심은 할 말이 없었다.

천무방의 야욕을 막고자 강소군을 청하려 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옳은 생각이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구양운에게 치를 떨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숨이 끊긴 걸 보자 강소군이 두려워졌다.

연화심은 강소군을 찾아온 것이 치기 어린 낭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소군을 삼도문의 위기를 구할 협의지사로 여겼던 것은 확실히 착각이었다.

그는 무자비한 사신이었고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화를 키웠구나. 어리석었어.’

무모한 행동에 대한 자책감도 들었다.

구양운이 죽었다.

천무방에서 가만있을 리가 없다.

자신이 관련된 이상 삼도문은 이제 정면대결을 피할 수 없다. 그 결과는 아마도 삼도문의 멸문이 될 것이다.

‘아, 안 돼… 나 때문에… 어떻게든 그를 잡아야 해.’

연화심은 다시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이 됐다. 강소군에 대한 두려움보다 삼도문의 멸문이 더욱 끔찍했던 것이다.

일단 강소군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다.

“백륭사에서 그를 받아 준 까닭은 무엇입니까?”

“여 시주께서 잘못 아신 것 같구려. 온다고 막을 수 없고 간다고 해서 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여 시주께서 직접 보지 않았소?”

“단지 그뿐이란 말인가요?”

“그가 말했소. 백륭사에 머무는 동안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 하지 않는다면 자신 역시 죽이지는 않겠다고.”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나 역시 알 수 없는 사람이오. 어느 날 문득 나타났고 한동안 사라졌다 오늘 다시 본 것뿐이오. 그는 바람 같은 사람이오.”

연화심은 철우대사의 말에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찾아온 바람에 백륭사에 혈겁이 일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죽은 이가 천무방 삼공자라고 들었소. 세상 모든 걸 가진 듯 자신했으나 그리 허망하게 가는 게 중생이오. 여 시주께서도 이 일로 얻는 바가 있으시기를 바라오.”

“천무방은 호북무림을 석권한 패자입니다. 제 집안에게 복속하기를 종용하고 있지요. 아버지는 그들이 걷는 패도에 동의하지 않으시기에 거절하고 있고요.”

“아미타불. 인간사 흥망성쇠는 끝없이 변화하는 윤회의 과정일 뿐이오. 지킬 수 없다면 차라리 버리는 게 도를 얻는 길일 것이오.”

“그럴 수는 없어요. 딸린 식솔이 삼백여 명입니다. 장원을 버리면 그 사람들은 어디 가서 어떻게 산다는 말입니까?”

“그 생각이 자만이고 욕심임을 알지 못하는구려.”

아직 어린 연화심은 철우대사의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철우대사와 연화심이 말을 나누는 동안 중랑은 주지실 밖을 서성거렸다.

중랑의 머릿속에서는 강소군의 움직임이 떠나지 않았다.

응천대 무사들의 검은 강소군을 정확히 찔렀으나 그가 팔을 저으면 알 수 없는 힘에 휩쓸려 비껴갔다.

힘 있게 지른 검들이 마치 바람에 휩쓸린 갈대처럼 우수수 쓸려 다녔고 그 사이를 강소군의 권이나 장이 갈랐다.

‘태극권이 적의 힘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주위 공간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그런 무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천하에 무수한 고수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열 사람을 십대고수라고 부른다.

중랑은 십대고수를 만난 적이 없다.

‘십대고수 중에 저렇게 젊은 사람은 없지 않은가?’

십대고수 가운데 가장 젊다는 자가 서른 중반이라고 알려진 창천무룡 남궁악이다. 그의 무공은 강호에서 불가사의로 통한다.

강소군은 그보다도 젊어 이제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인다.

‘반로환동?’

중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너무 충격을 받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라는 생각을 들었다.

전설에나 나오는 반로환동까지 떠올리다니.

답답해진 중랑이 뜰로 내려가 검을 뽑았다.

중랑은 검을 휘두르며 잡념을 떨쳤다.

그가 믿는 검은 하나뿐이다.

적과의 거리를 최단 시간 갈 수 있는 검로.

연성결이 준 천성검보(天星劍譜)의 천성육십사식은 이를 가능케 하는 절학이다.

중랑은 천성육십사식을 익히며 낭인에서 무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순식간에 천성육십사식을 모두 펼친 중랑은 그 자리 우뚝 서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 칠성. 십성에 이르면 그자의 몸에 닿을 수 있을까?’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왠지 자신이 없었다.

중랑은 자기도 모르게 주지실 뒤편 언덕을 보았다.

강소군의 초막이 있을 언덕은 어둠에 싸여 있다. 그 어둠에 귀기가 느껴진다.

살면서 누군가를 두려워하기는 처음이다.

‘강소군… 당신은 누구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