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3화 (3/250)

3

“대단한 자로군요. 일파의 호법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입니다. 혹시 누군지 아십니까?”

중랑이 곁에 있는 연화심에게 물었다.

삼도방 셋째 구양운은 제법 뛰어난 인재라고 들었다. 그런데 장무강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화심도 아는 바가 없어 대답하지 못했다.

중랑이 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천무방 놈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자가 고수라 하더라도 우리를 쉽게 빼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반점으로 들어서자 장무강이 손짓을 하였다.

“따라오게.”

장무강은 두 사람을 데리고 주방 뒤편 창고로 갔다. 식재료가 잔뜩 쌓여 있는 창고였다.

장무강이 바닥에 있는 문을 열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지하는 서늘하였는데 비린내가 났다. 한쪽에 고깃덩어리들이 걸려 있었고 다른 쪽은 생선이 담긴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장무강이 벽 한쪽에 있는 장을 치우자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틈이 나왔다.

“이리로 가다 보면 사다리가 나오지. 그 사다리를 올라가면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걸세.”

연화심이 장무강에게 포권을 하였다.

“번거로움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어서 가게. 그들이 곧 들이닥칠 걸세.”

“대협께서 혼자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중랑은 잠시 자기가 남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쓸데없는 걱정은 말게.”

장무강이 등을 떠밀었다.

통로는 허리를 숙여야 할 만큼 낮았고 한 사람만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삼십여 장쯤 가자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나왔다. 사다리를 오르자 나무판자가 막고 있다.

중랑이 나무판자를 밀치자 빛이 들어왔다. 위로 올라가니 어느 작은 집 거실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실내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짧은 팔자 콧수염과 턱수염이 인상적이었는데 모홍객잔 숙수 차림이었다.

“이리로 오시죠.”

숙수가 두 사람을 데리고 뒷문으로 갔다.

문밖은 좁은 골목길이다. 간밤의 비가 온갖 쓰레기를 휩쓸어갔는지 골목길은 깨끗했다.

“저 끝에서 꺾어지면 서문으로 가는 대로가 나올 겁니다.”

“대로는 눈에 띌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까?”

숙수가 잠시 생각하더니 앞장섰다.

“따라오시죠.”

숙수는 이리저리 골목길을 돌았다.

“저기가 서문입니다.”

높다란 서문 문루가 보였다. 활짝 열린 성문으로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다.

“소문(小門)이 있지 않을까요?”

연화심은 서문을 지키는 군사들과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성마다 대문 외에 별도로 작은 문을 여러 개 둔다.

“내가 추적자라면 소문을 감시할 겁니다. 여러 사람에 섞여 성문을 빠져나가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죠.”

평범해 보였는데 숙수도 무림인인 모양이었다.

“고맙소. 이제부터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

중랑이 숙수에게 포권을 하였다.

“별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숙수가 연화심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조심하라고 다시 한 번 더 당부하고 돌아갔다.

중랑이 성문을 보다 말했다.

“차라리 여장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들은 남자 둘을 찾을 겁니다.”

연화심이 생각하니 그럴 듯했다. 그 길로 두 사람은 옷가게를 찾았다.

“여기는 여자 옷만 파는 곳입니다.”

남자 둘이 들어오자 주인이 말했다.

“알고 왔네. 옷 좀 보여 주게. 옷을 갈아입을 곳은 있나?”

연화심이 옷을 골라 입고 나왔다.

삼단 같은 머리를 감고 햇볕가리개까지 쓰니 영락없는 어염집 규수로 보였다.

중랑이 연화심의 검을 천으로 싸서 자신의 등에 맸다.

두 사람은 성문으로 갔다. 누가 봐도 평범한 어염집 규수와 호위로 보였다.

수문을 지키는 관병 몇이 어슬렁거렸으나 길 가는 사람을 막지는 않았다.

‘이런….’

성문을 나서는데 중랑은 자신들을 향한 눈초리를 느꼈다.

천막을 친 찻집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몇 놈이나 왔다는 말인가.’

천무방이 왜 강호 제일의 방파로 불리는지 알 것만 같았다.

객잔을 감시하고 있는 것과 별도로 성문을 모두 감시하려면 적잖은 인원이 필요하다.

중랑과 연화심은 태연히 지나갔으나 시선은 계속 따라붙었다.

***

연화심과 중랑이 성문을 빠져나갈 즈음 구양운은 모홍객잔 앞에 모여든 천무방 무사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장무강에게 쫓겨 나온 그는 악에 받쳤다.

“두 연놈을 반드시 잡아라! 객잔 주인이라는 숙수는 고수다. 그는 죽여도 좋다.”

대낮 악양 한복판에서 그는 버젓이 살인을 지시하였다.

천무방 무사들은 객잔 앞 양쪽 길을 막고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검과 도를 든 십여 명의 무사들이 객잔 문 앞에 정렬하였다.

무사 둘을 향해 방건이 눈짓하며 나직이 말했다.

“길을 열어라.”

방건의 명을 받은 무사 둘이 달려가더니 객잔 문을 발로 차서 부수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쾅!

“크악!”

두 사람이 들어가자마자 튕겨 나왔다.

활짝 열린 객잔 문으로 장무강이 나왔다. 문을 지키고 선 장무강은 두 자루의 식도를 들고 있었다.

“저놈이다! 저놈을 죽여라!”

장무강에게 모욕을 당했던 구양운이 이를 갈며 무사들을 독려하였다.

무사들이 객잔 문과 창문, 이 층 난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힘차게 도약한 무사가 이 층 난간에 내려서는 순간 안에서 창이 튀어나왔다.

“크윽!”

무사는 불쑥 튀어나온 창에 어깨를 찔려 떨어졌다.

이어 한 사람이 창을 들고 나와 난간에 버티고 섰다. 양 갈래로 난 짧은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는데 역시 숙수 차림이었다.

창문을 넘으려던 무사들 또한 안에서 날아온 암기에 황급히 몸을 빼어 물러났다.

“적이 매복하고 있다. 방호구를 최대한 활용하라.”

객잔 앞에서 공격을 지휘하는 응천 일조장 방건의 안색이 침중하였다.

‘한낱 객잔 숙수가 이런 고수일 줄이야.’

무림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천무방의 선봉 응천대 무사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응천대 무사들이 밀물처럼 몰아쳤으나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문을 지키는 덩치 큰 숙수는 세 사람을 한꺼번에 날려 버렸고 이 층을 막고 있는 창은 뱀의 혀처럼 날아오르는 무사들을 핥았다.

아래층 창 쪽은 다가가기만 하면 암기가 쏟아지니 접근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악양에 이런 고수들이 웅크리고 있다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방건은 일단 물러나고 싶었다. 적을 모르는 상태에서 싸운다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없다.

일조가 정면을 뚫고 이조가 아래층 창문, 삼조가 이 층 난간으로 진입하기로 되어 있는데 어느 조 하나 대원 하나 들여보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벌써 십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마저도 저들이 일부러 살려 준 것이다.

살수를 썼다면 벌써 네다섯 명은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뭣들 하는 거야! 객잔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다는 말이냐?”

구양운은 직접 상황을 보고 있으면서도 무사들을 탓했다.

응천대 서른 명이라면 작은 문파 하나는 밀어 버릴 전력이라는 자부심만 믿고 싸움을 독려하였다.

그때 구양운을 향해 번뜩이는 물체가 날아왔다.

-쉭!

“조심하십시오!”

방건이 외쳤고 구양운의 호위 둘이 검을 뻗어 날아오는 비도를 쳤다.

-치잉.

비도는 빨랐고, 실린 힘은 묵직했다.

호위 하나의 검은 빗나갔으나 다른 호위는 뒤를 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비도는 호위의 검에 뒷부분이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날아들었다.

“헉!”

구양운도 자신의 검을 빙그르르 돌려 비도를 쳐내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구양운의 얼굴에 비도가 박히려는 순간.

어디선가 한 줄기 경력이 몰아쳐 비도의 흐름을 비틀었다.

비도는 구양운의 머리 옆을 스쳤다.

구양운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비도가 베고 간 머리칼이 한 줌이나 흩어졌다.

“크크크. 암중에 호위하는 고수가 계셨군. 그러나 두 번째 비도도 막아낼 수 있을까?”

비도가 날아온 객잔 창 너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천무방 삼공자를 죽인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어투다.

구양운은 등골이 서늘해지며 소름이 끼쳐 호위들 무리 뒤로 몸을 숨겼다.

“삼공자! 이대로는 무리입니다. 전열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방건이 구양운에게 다가가 말했다.

구양운은 객잔 안에서 수모를 당한 데 이어 다시 패하게 되자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후퇴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무패의 응천대가 오늘 물러난다면 내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단 말이냐?”

방건은 귀하게만 자란 천무방 삼공자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천무방이 강호쟁패에 뛰어들어 수많은 적을 무너뜨릴 때 대공자 구양초와 이공자 구양수의 활약이 컸다.

나이가 어려 보고만 있어야 했던 구양운은 호승심이 강했다.

약관의 나이를 지나자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사방을 쑤시고 다녔다.

방건이 보기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애송이였다. 하지만 구양운이 언제 죽든 그걸 따질 계제가 아니다.

지금 모두 죽을 판이다.

-빠드득.

구양운은 이를 갈았다.

방건의 진언에 이조와 삼조장도 수하들을 뒤로 물리고 구양운만 쳐다보았다.

“포위를 풀면 적들이 도주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방호구를 정비하고 궁수를 데려와 재차 공격한다.”

“여기는 악양 한복판입니다. 길을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관에서도 무한정 봐주지 못합니다.”

방건이 재차 간언하였다.

“뒷일은 걱정 말라고! 죽을지언정 물러나지 않는다는 응천대의 혼을 잊었나?”

‘이런 시팔.’

적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고자 의도적으로 만들어 퍼뜨린 것이 천무방의 선봉 응천대의 혼이다.

사실 무수한 싸움에서 응천대는 패하기도 하고 후퇴도 했으며 심지어 두어 차례 전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응천대가 무패라고 불리는 건 일부러 퍼뜨린 풍문 덕분이다.

오늘 서른 명의 응천대가 모두 죽는다 해도 강호에서는 여전히 무패의 응천대로 불릴 것이다.

그때 길 끝에서 누군가 달려와 부복하였다.

“삼공자께 아룁니다. 추적대상인 남녀가 서문을 빠져나갔습니다. 지금 뒤를 밟고 있습니다.”

방건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빠져나갈 구멍이 생겼다. 구양운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할 것이다.

“객잔에 비밀통로라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저놈들이 버티며 시간을 끌었던 것이죠. 여기서 저놈들과 결전을 벌이면 적의 계략에 빠지는 셈입니다.”

구양운이 어딘가를 향해 포권을 하였다.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적을 쫓아야 하니 이 객잔을 감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크흠.”

헛기침 소리가 들려 왔다. 알았다는 뜻이다.

구양운은 객잔을 노려보고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쥐새끼 같은 년! 이런 수작을 부려! 방건, 빨리 수하들을 정비해 따라와라. 이 객잔은 나중에 처리한다.”

구양운은 호위 넷과 함께 골목을 질주하였다.

***

소로를 따라오던 놈이 길옆으로 가더니 나무에 표식을 남겼다.

무척 발이 빠른 자였다. 놈은 표식을 남기고 다시 오다 멈췄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중랑이 재빨리 튀어나갔다.

놈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뒤도 안 돌아보고 질주하였다.

중랑은 적을 쫓지 않고 연화심이 간 쪽으로 달려갔다.

연화심은 백륭사로 가고 있을 것이다.

산길 절벽을 따라 난 소로였다.

소로는 강가에서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쪽은 강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위로 올라 백륭사로 가는 길이다.

중랑은 갈래 길 한가운데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여기서 적을 맞이할 작정이다.

중랑은 지나온 소로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연화심이 왜 백륭사로 가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무척 중요한 일이라고만 했는데 중랑은 그녀 자신도 확신을 못 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연화심을 호위한 지가 한두 해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봐 왔다. 연화심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바위에 앉아 있는 중랑의 마음은 무거웠다.

천하사패의 하나인 천무방.

그들의 손에 쓰러진 문파가 한둘이 아니라는 건 중랑도 잘 안다. 그래서 안타깝다.

‘문주님! 죄송합니다. 힘이 되어 주지 못해 드려서.’

중랑은 삼도문과 생사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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