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마지막 사상四象 (3)
혼인 전날 밤 찾아온 주고치의 이야기.
잔뜩 눈치를 보며 계속 말했다.
“그래서 올리는 부탁이온데…… 정혼하기 전의 약속은 남평으로 돌아간다는 것과 세상이 안정되기 전까지는 출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만…… 소자도 대리사로 가면 안 될까요?”
과시를 치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친구들이 간다 하니 흔들리는 모양이군. 그 이야기는 친구들이 한 것이냐?”
추룡은 조심조심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사실은 혼인 전날 밤 태자 전하께서 찾아오셨었어요. 축하해 주시며 이르시더군요.”
막여사의 얼굴에 멈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주고치가 또 왔었다는 이야기냐?”
“진작 말씀 올렸어야 할 일이지만 악충보에 계셔서 드리지 못했어요. 아버지께 봉황산 주위의 땅을 영지로 내리시겠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어요.”
사소한 일이 아니었지만 좀처럼 속을 잘 털어놓지 않는 추룡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막여사와 관계없이 찾아왔고, 영지에 대한 일은 돌아가면 알 일이니까.
나라에서 땅을 영지로 내리면 안쪽에 땅을 가지거나 거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의 땅을 주거나 보상을 하여 이주시키는 관례가 있었다.
건구현에는 꽤 큰 소란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좋은 쪽의 소란이었다.
그러나 관심 없다는 듯 막여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런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하는 거냐?”
추룡은 계속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은밀히 오신 분이기도 하고 때까지 놓쳐서요.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황상께서 막북을 도모하려 한다고 하시더군요. 티므르가 남하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토번, 안남, 동왜까지 들썩여 힘을 모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티므르……?”
막여사의 얼굴에 또 멈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워낙 멀리 있어 소수의 인물 외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티므르는 세기의 영웅이었다.
묘와 치우황제의 관계가 거론된 적이 있지만 북방으로 올라가 토이기에 뿌리내린 가우리의 또 다른 일족, 돌궐로서 유럽을 정복한 인물. 칭기즈칸에 비교될 정도의 인물이었다.
병력만도 수백만, 벤야시리도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가 남하한다는 것은 북원과 비교도 안 되는 큰 위험이기도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다는 것 같았어요. 치정을 맡으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자꾸 마음에 걸려서……. 이대로 남평으로 가는 게 옳은 것인지 의혹이 들어요.”
“그래서 어찌하려고?”
추룡은 난처한 기색으로 삼가 말했다.
“전하의 권언도 그렇고 도처가 흉흉하니까…… 허락하신다면 대리사로 가서 시험을 치르고 싶어요. 주어진 일을 하면서 부족한 공부를 하려고요. 허락해 주셨으면 해요.”
막여사는 묘하다는 듯 추룡을 봤다.
“왜 번거로운 일을 하려는 게냐? 기왕 할 생각이면 처음부터 원하는 곳에서 하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사실 어디건 가능했다.
하지만 추룡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한 것도 없이 그러기는 싫어서요. 미숙한 몸으로 나와서 말썽만 부렸을 뿐 내전 중의 일은 전부 아버지께서 하신 것이잖아요. 소자는 방해까지 한 셈이고…….”
“방해라……!”
막여사의 눈빛이 깊어졌다.
“기왕 말했으니 일러 보거라.”
“어머니 말씀도 계셨고, 곰곰 생각해 봤는데, 아버지께서는 섬서, 산서의 군벌을 결속시키면서 남모르게 많은 포석을 놓으셨던 것 같아요. 단순히 생각하면 그냥 북평을 견제하려고 시작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해요. 도중 대신들의 횡포가 지나치고 달단까지 나섬으로 나라를 생각해 군도산으로 가신 것 같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 생각했어요. 진짜 핵심은 따로 있다고. 대왕 전하를 마지막 대안으로 생각하신 게 아니셨던가요?”
주계를 대안代案으로!
그야말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다시 말씀드려서 아버지께서는 금릉과 북평을 모두 마땅히 여기지 않으셨다고 봐요. 더 전에 남북 대결을 우려하셨고요. 이로 인해 대왕 전하를 택하신 것이죠. 장강에서 양군이 대치할 때만 해도 승패를 헤아릴 수 없었던 상황으로, 그대로 싸움이 벌어졌다면 양자는 공멸했겠죠. 그렇게 되면 대왕 전하를 보위에 올리려 하셨던 것이죠.”
경악할 이야기.
막여사가 주계를 황위에 올릴 생각을 했다!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그의 계획은 완전히 일반의 범주를 넘는다. 황자징 일파를 중심으로 한 건문제나 주체와 달리 주계는 온건하고 남북 감정과도 관계가 없으니 양자가 무너질 경우 사실 좋은 대안이 되었을 수도 있었고.
다만 추룡이 주고치를 택했던 것이다.
“어머니를 휘주로 불러 소자를 잡아 둔 것 역시 남하하실 때에 대비한 포석 중에 하나였다 생각해요. 함부로 나선 것은 죄송하지만…… 그러나 주고치 전하는 좋은 분이셔요. 뵙자 곧 호감을 느껴 버려서……. 때가 이르면 모든 싸움을 멈추게 하고 무조건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펼치겠다 하셨는데 분명히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 믿어져요. 그래서 움직인 것이에요.”
그야말로 부자가 모두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장성으로 갔을 때 눈치를 보며 죄송하다 했던 것이었던지.
연화봉에서도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과 상관없이 더 먼저 세워져 있다 한 어떤 보완책.
“흠……!”
막여사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늘 부족하다 배워야 한다 말하지만 뜻밖에 아들이 어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치 않는 소릴 하는군. 터무니없다만 그냥 대충 그렇다 치고, 그러면 후에는? 아비는 달단과 맞서 장성에 있었다. 어떻게 중앙으로 내려왔겠느냐?”
추룡은 어렵잖게 대답했다.
“북평 등 도처의 사람들이 피신할 시간을 번 다음, 후퇴하시는 척 연안으로 다시 가셨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것으로 벤야시리는 장성을 넘을 것이고 도 총사님 및 싸우던 조정군은 손을 잡았겠죠. 우선 그들을 막아야 할 테니까요. 그리되면 달단까지 공멸共滅하게 돼요. 기다려 섬서, 산서군을 이끌고 마무리하시면 되는 것이고요.”
“그럴 힘이 있었다고 보느냐? 고사하고 벤야시리가 남하하지 않고 연안으로 추적해 오면?”
추룡은 고개를 저었다.
“장성에 십만이 있었고, 연안에도 복병이 있었잖아요. 아버지께서는 처음부터 섬서삼군 중 동천, 유림군을 남겨 둔 채 대동으로 가셨으니까요. 마지막에 온 것을 보니 오만은 되겠던데, 아무렴 중원을 노리는 벤야시리가 연안으로 추적해 가지도 않겠죠. 화북에 있던 조정군이 이십만, 도 총사님이 거느렸던 병력이 십만, 장강에 있던 양군이 삼십오만, 도합 육십오만에 벤야시리의 병력이 육십만이었으니 부딪치면 역시 공멸일 수밖에 없잖아요. 어느 쪽이 이기건 많이 남지는 않죠. 십오만이면 수습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악충보와 향용들, 홍묘 등도 있다.
출격하면 도처의 민병들이 더 따랐을 것이고. 그야말로 공명을 무색케 하는 책략을 세웠던 것이다.
“그만하면 됐다.”
하지만 막여사는 사실 여부를 말하지 않고 이야기를 돌렸다.
“입 벙긋도 말아야 할 쓸데없는 이야기고, 보다 주고치가 또 찾아왔었다니 미루어 그가 의리를 아는 인물인 것 같구나. 그렇다면 선택을 잘한 것이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아비가 아는 주체는 결벽증이 있는 인물이다. 도연 역시 소신이 너무 강하고. 의지가 곧은 사람은 그들의 아래서 버티기 힘이 든다. 무조건 따르지 않는 한 화를 당할 것이니. 그러나 중간에 주고치가 있고, 그에게 덕이 있는 것 같으니 안심이 되는구나.”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내전 속에 인내를 배우고 세상을 보는 눈까지 키운 것 같으니 이젠 되겠다. 자만하지 않는 한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겠지.”
허락했다.
“그리하여라. 이제 가면 아비는 남평에 뼈를 묻을 것이다. 다시 나오게 된다면 필경 또 네 일 때문일 것인데, 계신공구 해야 할 것이다. 더는 나도 혈해에서 헤매고 싶지 않으니.”
“감사해요, 아버지. 소자는 정말 어떻게 은혜에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추룡은 가슴이 뭉클해짐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천하의 부모가 모두 같을 것이지만 정말 이런 부친은 드물다.
삼 년이 넘도록 군도산의 피바다 속에서 헤맸으면서도 끝까지 아들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추룡의 출사는 의외로 한참이나 더 후로 미루어졌다.
“하-!”
두두두두두두!
“하하…… 틀림없이 이럴 줄 알았네! 막 형은 남아야 하거든! 남평으로 가면 보나 마나 쉽게 안 나와. 큰일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거든.”
다음 날 남평으로 가는 배가 들어옴과 함께 막여사와 장완옥, 악벽강은 남평으로 향했다.
그러나 추룡은 전소 등과 함께 곧바로 황석으로 가고 있는 임백호를 따라잡을 듯 서쪽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솔직히 함께 나선 건 계획적이었지? 남평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전소가 꾸민 걸세!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서쪽으로 가는 것은 서부를 보기 위해서였다.
남평에서 시작해 중부, 북부까지 봤지만 호북, 호남, 귀주, 사천, 청해 등 서부를 보지 못했던 터인데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화서의 환경까지 살피고자 했던 것.
악벽강이 함께 움직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출사하면 함께 지내야 하므로 얼마간이라도 시부모님을 모시며 남평을 알아 둬야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출사는 팔 개월이나 늦어졌지만 이듬해 봄, 영락 원년 오월!
“무과 장원壯元, 막추룡!”
“와아-!”
“하하…… 이번에는 제대로 했나 보군!”
화서를 둘러보고 개봉으로 간 추룡은 친구들과 함께 무과에 응시해 마침내 목적했던 대로 대리사의 무관이 되었다.
천하는 계속 빠르게 안정을 찾아 가고 있었고.
그러나 그가 출사해 대리사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삼 년이나 더 지난 후, 무관외직으로 경력을 쌓으며 다시 형부과시를 치러 문관내직으로 돌아서면서였다.
“쉬운 길을 두고 참 멀리도 돌고 있군. 글쎄, 실력을 모르지 않는데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나?”
“전하.”
형부과시였으므로 정주 자사가 된 석천중이 사실을 알아 주고치에게 연락을 취하므로 다시 그들은 만났고, 초급 판관을 거쳐 추룡은 십 년 후 대리소경이 되었다.
그러나 도연이 예견한 그의 시대가 열린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인 선덕 시대였다.
영락제 주체의 제위 기간은 이십이 년.
황제가 된 주체는 육 년에 거쳐 북평의 방벽을 튼튼히 하는 등 자금성을 축조해 북경北京으로 지명을 바꿔 천도했으며, 영락 팔 년에 대군을 이끌고 막북친정漠北親征에 나섰다.
부단히 달단을 설득해 화친을 꾀하려 했으나 벤야시리는 계속 보낸 사신의 목을 잘랐고, 위협이 계속됨으로 결국 정벌에 나선 것이었다.
죽기까지 종족을 위해 싸우는 병정개미의 업.
그대로 주체의 생은 전장에서 점철되었다. 북평으로 가면서부터 시작된 운명으로서, 제위에 오르기까지 싸웠고 후에도 억척스럽게 싸웠다.
황제이면서도 직접 군사를 이끌고 다섯 차례나 정벌에 나섰으며, 정벌을 통해 결국 벤야시리를 치고 달단을 완전히 괴멸시켰다.
하나 그런 사이 서부 와랄(오이라드)의 세력이 또 확장되어 위협이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다시 친정에 나서 죽기까지 막북 정벌을 시도했던 것이다.
최후 역시 전장에서 맞이했다. 영락 이십이 년, 오 차 정벌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취미강이라는 지역에 이르러 임종을 맞이했으니 그때 그의 나이는 육십오 세였다.
육십오 세의 고령에도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적지를 누비며 전투를 수행했던 것이다.
그의 투쟁은 북방에서만 그친 것만도 아니었다.
즉위할 당시 도연이 구도를 세웠듯 서西로는 토번(티벳, 네팔)으로 세력을 뻗쳐 지배권을 장악했고, 남南으로는 안남(베트남)을 장악했다.
뿐만 아니라 동왜까지 힘을 뻗쳐 침입을 물리쳤으니 가히 중원에 있어서는 불세출의 영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워낙 억척스러운 투사여서 그랬던지 가장 우려되었던 토이기와의 충돌 역시 피할 수 있었다. 동시대의 영웅으로서 서유럽을 장악했던 토이기의 황제 티므르는 중원의 강성함에 천축으로 정벌의 방향을 돌렸다.
정화(마삼보)를 제독으로 한 함대를 파견하여 오대양을 누비게 했으며, 각국에서 조공을 거둬들이는 등 세계에 명의 위엄을 떨치기도 했다.
신천옹이라 했던 그는 꿈꿔 왔던 대로 대양을 누비며 입항할 때마다 배마다 황금을 싣고 돌아왔다.
장담했던 대로 중원 사상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시대를 이룩했던 것이다.
주체가 국경의 위험을 불식시키며 싸우는 사이 치정治定은 그대로 주고치가 맡았다.
온후한 성품의 그는 등을 돌리다시피 한 남북의 사이를 덕치德治로 달래며 고르게 남북의 경제를 부흥시키고 조세를 내리는 등 백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배려를 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명命이 짧았다.
육십오 세로 영락제가 운명을 다하자 그를 이어 홍희제洪熙帝로 등극하였으나, 즉위 후 일 년 만에 숨을 거두었다.
까닭은 비만에 있었다. 북평의 세자로서 오랫동안 받아 왔던 심적 압박감으로 폭식을 했던 그는 식습관이 좋지 않았고, 이로 인해 나이가 들면서 급속도로 체력이 떨어져 비둔해진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즉위 후 곧 숨을 거뒀던 것이다.
뒤를 이은 것이 주첨기였다. 주고치에 이어 선덕제宣德帝가 된 그는 홍희제의 뜻을 이어 중원의 국경을 확정하고 끊임없이 이어졌던 모든 싸움을 그치게 했으며, 백성들의 안정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이들 두 사람의 업적을 역사는 인선仁宣의 치治라고 칭송했다.
홍희제의 묘호가 인종仁宗이고, 선덕제의 묘호가 선종宣宗이었으므로 주고치와 함께 이룬 태성성대를 머리 자를 따 인선의 치라고 기록한 것으로 요순堯舜의 시대에 버금가는 덕치德治를 했던 것이다.
“어릴 적 짐은 그대를 도독으로 임명했었다! 아직도 기억하는가.”
대리소경을 거쳐 홍희 시대에 사경에 올라 법을 공고히 했던 추룡은 선덕제의 즉위와 함께 여리黎理로 개명하고 도독이 되어 그를 보필하며 함께 국경을 정립했다.
사상四象 중 정화가 선덕제까지 남긴 했으나 초기에 세상을 떠났고 도연은 더 일찍 입적했으나 그는 선덕제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아 인선의 치를 이루었던 것이다-산채로 성기를 자르고 자궁을 도려내는 궁형, 삶아 죽이는 팽형 등도 모두 이 시대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그는 혜성같이 나타나 두각을 나타낸 영웅도 대명을 떨친 협객도 아니었다.
한 발 한 발, 오랜 세월을 거쳐 꾸준한 노력과 인내로 큰 것을 이룬 남평의 나무꾼이었으며 말단의 견습 무사였다.
보조를 함께한 친구들 역시 그러했다.
임백호는 홍묘의 대토사로서 임대백을 이어 삼 묘의 수장이 되었으며, 전소는 명군의 책사가 되었다.
곽영과 송민은 추룡을 보좌해 대도시위가 되었으며, 장청, 문대위, 한자방, 정백하, 허원소, 조태형, 신학철 등은 마흔 살에 개파하여 마침내 안휘, 섬서, 산서 등지의 웅주들이 되었다.
그러나 모두 영웅으로 출발하지는 않았다.
부단한 노력으로 천하 각처에 세를 구축한 그들은 모두가 말단 무사들이었다.
『견습무사』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