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혼례 (2)
“나 정도는 곧 따라잡을 거야. 하지만 이젠 목표가 내가 되어서는 안 되네. 아버님들 쪽을 생각해야지.”
막여사, 임대백, 악불비.
친구들 역시 다들 동감했다.
“하하…… 정말 그래야 할 것 같아. 막 형에게 늘 아버님과 한번 해 보라고 했는데, 장성 전투에서 보니 역시 아직은 아닌 것 같았어. 토사님도 보주님도 상상을 넘어서는 무위를 감추고 계시던데, 그냥 가볍게 손을 놀려도 적장의 목이 툭툭 잘라지더군.”
“사실 우리야 뭐, 어린애일세. 평생 가도 아버님들의 범주에 이르게 될지 몰라. 그럼 이젠 월도법도 같이 수련해 보기로 하세.”
임백호는 멈칫하는 기색을 떠올렸다.
“그래도 되나? 그건 탕음악가의 진수 중 진수인데. 사위라서 막 형에게 주신 거잖아.”
싱글벙글 친구들은 웃음 지었다.
“우리도 사위는 아니거든. 그래도 좀 배웠다 이걸세.”
추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전부는 아니야. 아무래도 보주님께서 원하시지 않을 것 같아서. 조금 변형시켰네. 그래도 별로 다르지 않아. 핵심 수법은 다 들어 있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임백호의 의문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늘 이해가 안 가는데, 막 형은 진짜 욕심도 없나? 아무리 친구라도 그렇지 있는 대로 그렇게 다 퍼 줘 버리면 어쩌려고?”
분명히 이상했다.
하지만 추룡은 편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게 내 욕심인데, 전에도 말했지만 절기를 감추고 혼자서 뛰어난 건 아무나 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발전은 없네. 거기에 안주하거든. 반대로 다른 누군가도 지니고 있다 하면 열심히 해야 하지. 아니면 뒤처지게 되니까, 스스로 채찍질하는 것일세. 그래도 전부는 아니니 염려 말게. 그사이 난 또 비밀이 하나 생겼어. 우연히 이인을 한 분 뵙게 되었네. 때가 되면 말해 줌세.”
밝히지는 않았지만 장삼풍일 것이었다.
“힝…….”
친구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포기해야겠군. 좀 게을러져야 따라갈 건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네를 어떻게 당하겠어.”
죽어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니, 실력은 능가하게 될지라도 이 자세만큼은 도저히 따르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보름이 더 지나면서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악충보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헛헛…… 사제, 혼인을 한다고?”
“사형들!”
“오랜만일세.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
“장 도사님.”
소림사에서 정명, 정업 등이 오는가 하면 북평에서 장신과 악서희 내외까지 달려왔다.
“혼인하는 것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게 되는군. 얼마나 기쁜지 몰라.”
“바쁘실 텐데 어떻게 오신 것입니까?”
“마 태감께 양해를 구했네. 아, 아니지. 이번에 개명하셨군. 이젠 정鄭 태감님이시네. 외자로 화和 자를 쓰시네. 폐하께서 이름을 하사하셨지.”
“세손 저하께서 이름이 이상하다고 하시더니 진짜 바꾸셨군요. 전 오히려 마 태감님이 더 정겨운데요.”
“핫핫…… 사실은 나도 그렇네. 새 이름 역시 편안한 느낌이고 좋아. 제독이 되셔서 곧 광동으로 가실 걸세. 함대를 이끌고 동왜에 들렀다가 천축 쪽으로 움직일 것인가 봐.”
“이야!”
추룡은 자신의 일처럼 기쁜 기색을 떠올렸다.
북평 사람들 중 누구보다 마삼보에게 추룡이 호감을 가진 것은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마침내 신천옹이라 한 그가 꿈을 펼치는 것이었다.
“잘되었군요! 함대를 거느리고 대해를 누비는 모습, 상상만 해도 멋집니다. 저도 함께 가 보고 싶을 정도군요.”
“주선해 줄까? 태감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인데?”
“그러고 싶긴 하지만…….”
추룡은 아쉬운 기색이 되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혼인하자마자 집을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고사하고 막여사가 허락이나 해 줄지.
“자네들도 축하하네! 동서를 도와 큰일을 해 줬다 하더군.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네.”
“저희야 한 일이 뭐가 있다고요.”
전소, 임백호 등 친구들도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추룡이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도 아는 사람이었고, 둔촌의 가족들에 악충보의 가족들, 도처의 현감들 등 많은 인물들이 찾아와 감사와 격려를 했던 것이다.
“늦었지만 감사드립니다. 막 대협께서 흑무사였다고 하더군요. 딸들을 구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혼인하신다니 축하드립니다.”
화촌의 사람들도 달려왔다.
왕평 일당을 치면서 전날 잊혔던 감사까지 함께 받고 있었다.
“자네 말인데!”
“와 줘서 고맙네, 순문.”
그러나 가장 바쁜 것은 역시 악불비를 비롯한 임대백, 막여사 등이었다.
이순문, 석천중, 조해흥 등 정계의 친구들, 장정희 등 섬서, 산서의 무장들, 향용의 패주들이 사방에서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다지 내키는 표정은 아닌 듯했지만 흑묘와 청묘의 토사들까지 찾아왔다.
“유감이 많아. 남평에 갔을 때 죽어도 안 나설 것같이 말하더니만. 얼빠진 천중이에게 가야 했나?”
“흠흠…… 나 얼 안 빠졌네.”
“핫핫…… 그래, 미안하네. 다들 어찌하고 있나?”
이순문은 몹시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기색이 밝았다.
“덕분에 귀주로 가게 되었네. 좌천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안순安順에 영지가 좀 생겼어. 거기다 박아 놓고 남부를 살피라는가 봐.”
막여사는 빙긋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턱내게. 솔직히 자넨 딱 목이 잘려야 하는 것인데, 북평 사람들이 유감이 좀 있지, 아마?”
“크크…… 아주 많지. 간신히 산 걸세. 고맙네!”
“해흥이 자넨?”
처음 모습을 보인 인물로서 조해흥은 각진 얼굴에 건장한 무골형의 남자였다.
“별로 한 것도 없고, 현상유지일세. 파직되지 않은 게 다행이지. 역시 자네 덕분인 것으로 아네.”
석천중이 미소 지었다.
“중간에서 열심히 연락을 전하지 않았는가. 내 쪽으로 병력에 군량도 지원했고. 절대 작은 공이 아닐세.”
“천중이 자네는?”
“정주로 내려오게 생겼네. 은퇴할 생각이었는데 정주라 하니 생각이 바뀌더군.”
피식, 막여사는 실소 지었다.
“도연이 머리를 쓴 거로군. 그렇게 해서 해흥과 함께 공조하게 해 중부를 살피게 하는 한편, 발 빠르게 군력을 취한 거야. 감숙 역시 텃밭이니 그것으로 북방 사 개 성을 완전히 장악하는 거군. 확실히 빼어났어.”
막여사가 이순문을 두고 연안을 택했을 정도로 북평에 있어 산서, 섬서는 정말 중요했다.
훗날 명이 망하게 된 이유조차 섬서, 산서의 봉기로 인해서였을 정도로 위치나 군사적으로 요충지인 것이었다.
북평에 있어 목덜미의 비수고, 중원에 있어 머리 위의 망치 같은 지역.
하지만 지금에야 도연이 꾀를 내든 말든 별 상관이 없었다.
장정희 등이 히죽이 웃었다.
“그런들 피의 고지에서 삼 년이나 사선을 넘으며 쌓은 결속이 무너질 리 없지요. 다들 변함없습니다. 부하들은 장군을 아예 신으로 생각하는 터인데 섬서, 산서의 군벌을 쉽게 생각했다간 큰코다칠 것입니다.”
유사시에는 언제건 다시 뭉쳐질 수 있다는 뜻이다.
막여사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무튼 인사들 나눕시다. 들은 바 있겠지만 이쪽은 홍묘의 임 토사와 흑·청의 토사이신데, 의좋게 지내셨으면 싶습니다. 여기 두 친구가 정주, 귀주에 있고, 연안의 정 장군에 해흥까지 포함하면 중·남부와 북부에 두루 힘이 미치고, 도처의 향용에 토사님들까지 벗이 되는 것이니 이보다 좋은 일이 없을 듯합니다만.”
다들 손을 잡았다.
“잘 부탁드리겠소이다. 친구가 되어 밝은 앞날을 모색하는 게 어떨까 싶구려.”
“뵙게 돼서 기쁩니다.”
유사 이래 한족과 등을 돌리고 있었던 묘족.
영락 시대에 이르러 그들 역시 막강해졌다.
하남, 호북의 홍묘를 중심으로 군·관부와 친분을 가지면서 중원의 무벌로서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이었다.
밤.
그런 속에 그가 다시 추룡을 찾아온 것은 식을 올리기 전날이었다.
“막 삼호, 밖에 좀 나가 보게! 손님이 찾아오셨네.”
혼인을 하루 앞두고 추룡은 장완옥과 함께 황남관에 있었는데, 밤이 이슥해 잠자리에 들려 할 즈음 또 장원을 지키던 무사 하나가 허둥지둥 추룡에게 달려온 것이었다.
“어느 분이시기에 여기에…….”
잠자리에 들려다 말고 추룡은 크게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었지만 이례적인 일로서, 모두가 악충보로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황남관의 경우는 별로 알려져 있지도 않고 추룡 역시 내내 악충보에서 지내다가 식을 앞두고 장완옥에게로 온 것인데 여기로 누군가가 왔다 하니.
하지만 왔으니 기별하는 것이고, 장원 앞으로 나간 추룡의 눈이 또 크게 휘둥그레졌다.
“세자 저하!”
그러했다.
주고치. 나가 보니 장원의 앞에는 한 대의 사두마차가 서 있었고, 어둠 속에 세 명의 금의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십왕봉에 있을 당시와 똑같이 유곡과, 맹광 그리고 주고치가 찾아왔던 것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때와 달리 다들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
“알현하나이다.”
추룡은 서둘러 한 무릎을 꿇고 주고치에게 예를 올린 후 행여 누가 볼세라 세 사람을 장원 안으로 안내해 들였다.
턱이 셋, 목이 둘이라 할 정도로 투실투실한 얼굴에 주고치는 비 오듯 땀을 뻘뻘 흘리며 북평에서 처음 만날 당시처럼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일세. 경사가 있다는 소식이 있어 들렀네. 혼인을 한다고?”
추룡은 포권을 취하며 삼가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오랫동안 미루고 있었던 일이오라.”
“장 도사가 갑자기 휴가 신청을 했다기에 무슨 일인가 알아보았네. 그랬더니만 경사가 있다더군. 축하하네. 그리고 감사하네.”
“황송합니다. 하온데 저하께서 어떻게 여기까지……? 많이 바쁘실 터이온데…….”
유곡이 웃음을 실으며 넌지시 일렀다.
“이젠 태자 전하라 칭해야 하네.”
그대로였다. 주체가 황제가 된 만큼 주고치는 태자의 신분이 된 것이었다.
“아! 습관으로 그만…….”
그러나 주고치는 별거냐는 듯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편안히 말했다.
“괜찮네. 전하면 어떻고 저하면 어떤가. 그게 그거지.”
계속 땀을 닦으며 말했다.
“찾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세. 급할 때만 사람을 찾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이지. 보다 어인 일인가? 도 총사께 듣자니 그렇게 큰일을 하고도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떠났다던데.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님을 아는가?”
또 가을이 시작되어 그다지 더운 기온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땀을 흘리는 주고치를 보며 추룡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천민은 한 일조차 없고, 부친은 원래 성격이 그러하셔서……. 마땅히 할 일을 하셨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워낙 학 같은 분이시라. 혼인 후에는 어찌하려고?”
“남평으로 돌아갈 계획이옵니다.”
“남평?”
주고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네까지 간단 말인가? 출사도 하지 않고?”
추룡은 계속 삼가 대답했다.
“부족한 몸이라 수업도 더 쌓아야 할 것이고, 부친과 약속했습니다.”
유곡이 실소 지었다.
“말이 되나. 자네가 부족하다 하면 그조차 아닌 실력으로 대도시위帶刀侍衛가 된 우린 어쩌라고?”
종사품직. 황실을 지키는 무장으로 모두가 좋은 날을 맞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주고치 역시 옳지 않다는 듯 말했다.
“가면 다시 나오기 힘드네.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죽기까지 부족함을 느끼지. 조정에는 지금 많은 인재가 필요하네. 더 정확히 백성들에게 덕 있는 사람이 필요하네.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부족하더라도 나누는 것이 옳지 않겠나?”
틀리지 않았다.
비 온 후에 물을 준들 달가워할 수목이 없으니 없어도 메마를 때 나누는 게 군자의 덕목인 것이다.
늘 그랬듯 맹광이 점잖게 말문을 열었다.
“황상께서 북평으로 도읍을 옮기실 계획을 세우고 계시네. 급한 불은 껐지만 남부는 안정되지 못하고 여전히 북방이 위험하기 때문일세. 전하께 치정을 맡기고 달단을 도모하시려는 것 같은데, 우리도 자네가 함께 있어 줬으면 좋겠다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