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46화 (146/150)

# 146

새로운 시작 (5)

“전 형까지?”

다들 더욱 수상쩍다는 표정이 되었다.

문대위와 장청만이 알겠다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됐어! 민이는 좀 뜻밖이지만 그럼 그렇게 하지. 신경 쓰지 말고 올라가세. 전부 거기서 거기야. 별일 아니니까.”

“무슨 일인지 알고는 있어야지. 설명부터 좀 해 봐!”

그러나 둔촌 일당은 웃기만 할 뿐 입을 다물었고, 문대위와 장청도 웃음만 지었다.

“지금 이야기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안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서. 하라 하고 우린 그냥 원래의 목표대로 매진하면 돼.”

의아했지만 그래서 일당 중 전소, 송민, 곽영, 세 사람이 빠졌고, 장청, 문대위, 한자방 등 일곱 사람만 승격 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들 세 사람이 빠졌다는 것! 이것은 순욱을 비롯한 유원헌, 악불비에게조차 적잖게 뜻밖인 일이었다.

“무슨 소린가? 전소가 사의했다고?”

추룡과 더불어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그!

순욱이 낭패한 기색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뭔가 다른 계획이 있다는 것 같은데 속셈을 모르겠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인데……. 더 문제는 막 삼호도 빠졌다는 것입니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실력도 있고 공도 큰데 혹시 어린 마음에 단주 직위가 서운했던 게 아닐까요?”

악불비의 눈빛 역시 흔들리는 듯했지만, 그러나 곧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됐으니 편하게 해 주게. 욕심으로 잡아 두기에는 아까운 그릇들이니. 더 커질 수 있도록 일부러라도 밀어줘야 할 아이들일세.”

유원헌, 순욱의 얼굴에 다시 멈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 말씀은? 설마 악충보를 떠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까?”

전소, 송민, 곽영이 악충보를 떠난다!

추룡은 그렇다 치고 임백호 역시 빠졌으니 그리되면 초기 일곱 친구 중 다섯이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악불비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네. 위치만 조금 달리할 뿐이지.”

이상한 이야기였다.

전소 등의 눈치도 그렇고, 말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악충보를 떠날 것이라는 그런 어투 같았는데, 그러면서도 아니라고 하니.

하지만 뭐, 악불비가 그렇다 하니 순욱이나 유원헌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 하시니 그럼 그렇게.”

더 위에 향주 자리도 비었고, 당주 자리까지 비었는데, 희한치도 않게 단주직과 친구들 이야기만 나오는 이유가 뭘까?

어쨌건 승인이 나자 순욱은 곧 다시 사 층, 내당 부서로 돌아와 으르댔다.

“보주께서 허가하셨다. 딱 질색인 놈들이지만 최선을 다해라. 바보같이 웃지도 마라. 위엄을 갖춰야만 부하들이 든든히 따르는 것이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 도처에 문제가 산재해 있을 것인 만큼 맡은 지역부터 돌아본다. 출발!”

“하-!”

두두두두두두.

그리고 다시 시작.

마침내 친구들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평원을 치달리기 시작했다. 일호의 무사로서 시시덕거리며 땀 냄새 나는 신입 옥사로 들어가던 게 어제 같은데……!

다들 가슴이 두근거렸다.

새로운 날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제 돌아왔소. 당신, 변함없이 아름답구려.”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그런 사이 막여사와 추룡, 악벽강은 황산성, 남문통의 황남관으로 가 장완옥과 재회하고 있었다.

대사면령과 함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시점, 십왕봉으로 들어갔던 악충보의 가족들과 피신했던 사람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장완옥 역시 다시 황남관의 별원으로 돌아와 있었다.

남평을 떠나 오 년 만에 재회한 터이지만 막여사와 장완옥은 여전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당신.”

아침에 헤어졌던 사람들처럼 막여사는 차 밭을 살펴보러 갔을 때와 똑같이 다정하게 장완옥을 감싸며 애정을 표시했고, 장완옥 역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는 듯 미소 지으며 편안히 그를 맞이했다.

일반 같으면 기뻐서 어찌할 줄 몰라 할 터인데, 너무 담담하기만 하다.

이런 두 사람을 보며 추룡은 멋쩍게 미소 지었다.

“원래 이렇습니다. 여간하셔서 큰 기복을 보이시지 않습니다. 항상 같은 모습이시지요.”

일반이 보기에는 분명히 기이한 가족인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악벽강은 까닭을 이해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무한 신뢰를 지니셨군요. 어머님께서는 하늘이 무너져도 아버님이 돌아오실 것이라 믿으시고, 아버님 역시 백 년이 지나도 어머님께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기다리실 것을 믿어 그런 것 같습니다. 장성에서 가가를 만나셨을 때도 그러셨죠. 때가 되면 당연히 올 것이라 믿으셔서 반색을 않으신 것 같아요. 정말 거인 같은 분들이십니다.”

서른세 살. 변함없이 폭발적인 기품과 함께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

오히려 전에 비해 기품이 더 보태진 것 같았다.

“저 역시 이젠 어머니처럼 가가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아버님이 전장에 계심에도 차분하신 모습이 너무 이상해 보였는데, 마침내 까닭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만치 아버님을 믿으시는 것이지요. 원래도 웃도셨지만 가가께서도 이젠 저의 영역을 완전히 넘어서셨습니다. 아버님이 그러하듯, 운명을 제외한 나머지 가가를 어찌할 무엇은 없을 것입니다.”

천하제일의 뒤를 쫓고 있다는 뜻일까.

전장으로 가는 연인을 걱정해 마지막이라는 약속까지 하고 따라나섰던 그녀였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이번에는 추룡을 도울 것이 없었다.

폭풍처럼 월도를 휘두르며 질주하는 곁으로 다가서기조차 어려워, 마침내 추룡의 무위가 이젠 자신이 짐이 될 수 있는 경지에 올랐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믿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추룡이 군도산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가도 짐만 될 것이라 장완옥이 말렸듯이 그녀 역시 이젠 같은 상황이 된 것이니까.

“괜한 말씀인 것이지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물론 더 노력할 것입니다만.”

추룡은 변함없이 어제처럼 미소 지었다. 청년으로서 한층 더 의젓해진 그였다.

그리고 시작된 가족회의.

악불비를 비롯한 막여사, 임대백, 곽문, 전소의 할아버지, 한자방 등 친구들의 부친이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기이한 인연으로 아이들이 연인, 친구가 되어 다들 일가가 된 것 같소이다. 때가 되었으니 식을 올려 주는 게 어떻겠소이까. 부족한 생각이지만 악충보에서 한 번에 식을 치러 우정을 더욱 공고히 해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합동 혼인.

악불비에게서 나온 제의였다.

“얼마나 좋은 일일는지요. 우리는 이견이 없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임대백의 경우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러나 고개를 끄덕였다. 홍묘의 무사들이 모두 있었고, 가족은 부르면 되기 때문이었다.

이 시대의 관습상 양가가 멀리 떨어진 경우 처가에서 한 번, 돌아가 본가에서 또 한 번, 두 번 식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혼례 (1)

한 달.

“흑무사?”

갑자기 악충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글쎄, 그렇대!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만 막 삼호가 신양 영웅 대회의 흑무사였다는군. 군위검 막 장군의 아들이기도 하다는 거야. 소저와 혼인한다던걸.”

“둔촌 일당도 같이 식을 치른다 들었네. 이젠 단주님들이지.”

“햐……!”

결국 숨기고 있던 추룡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었다.

“대체 뭐 그런 일이 있어? 천하제일쯤 되는 사람의 아들이 왜 말단 무사로 있었던 거지? 뭔가 실수해서 가출이라도 했던 건가?”

“가출한 건 임백호일세. 그는 또 홍묘의 소토사였다던걸. 그래서 홍묘 무사들이 왔던 거고. 과거를 치르러 온 길에 항주에서 막 삼호가 들치기를 당했다더군. 거기서 만나 다들 친구가 되었다 하네. 막 장군의 아들과 홍묘의 소토사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니 기도 안 차.”

“정말 기도 안 차는군.”

뜻밖의 일에 다들 눈만 끔벅거렸다.

마지막에 가서 한 말은 다 같았다.

“부럽다. 소저와 혼인이라니!”

악용, 악완소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무엇입니까, 아버지! 화촌 사건 때 좀 이상하다 싶긴 했습니다만, 그가 막 장군의 아들이라니요? 더욱이 벽강과 정혼까지 한 사이라니! 왜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그들에게는 더욱 뜻밖의 일인 셈이었다.

그러나 뭐, 악불비는 태연히 대답했다.

“어차피 이렇게 알 일인데 서둘러 떠벌릴 일이 무엇이겠느냐. 친구들과 함께 머물기를 원하니 도리도 없었지. 잔말들 말고 혼례식 준비나 해라.”

역시 눈만 끔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황당해진 것은 역시 순욱, 유원헌 및 특과의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것입니까?”

“그렇다는군.”

그러면서도 가장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인물들이기도 했다.

“어쩐지 실력이……. 그래서 그랬던 것이군요.”

“그런 것 같네.”

“그러면 이제 어찌 되는 것입니까?”

“어찌 되긴 뭘, 축의금 준비해야지.”

“아!”

피식, 그뿐이었다.

보다 바빠진 것은 악벽강 등, 식을 치를 처녀들이었다.

“축하해요, 아가씨! 드디어…… 그런데 설마 막 삼호님이시라니. 늘 막 부인마님 곁에 계셔서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괜찮으신가요?”

많은 어려움 속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혼례를 올리게 된 악벽강.

그녀의 눈자위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괜찮냐니? 뭐가?”

“막 삼호님, 정말 좋은 분이셔요. 신입 때부터 처녀들에게 은근히 소문이 나 있을 정도로. 인물도 좋고 실력, 성품, 하나도 나무랄 데가 없죠. 체격도 용모도 최고고. 너무 그래서 다들 가까이 가지 못했는데 연세가 좀…….”

다른 것은 몰라도 역시 나이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악벽강은 붉어진 눈자위로 미소 지을 뿐, 여기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추룡을 처음 만난 것이 스물여덟 살 때, 지금은 서른세 살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이를 먹지 않았다.

그냥 곱상하게 생긴 처녀가 아니라 씩씩해 보인다 싶을 정도로 균형 잡힌 모습이라 여전히 스물대여섯 살의 모습.

오히려 추룡만 나이를 먹었다.

싱거운 듯 싱글벙글 잘 웃고 소년 같은 점도 보이던 그였지만 오랜 내전을 보내며 한층 더 뼈대가 굵어지고 의젓해져 스물일고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것이다.

숫자에 불과할 뿐.

보다 마음이 중요한 게 사실인 것 같았다.

처음 좋아하게 될 때는 그녀조차 나이를 걱정했지만 지금은 하늘이 무너져도 자신의 곁에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처음부터 남 같지 않았지만 연인을 지나 지금에 와서는 이미 부부 같은 그런 느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오 년이란 기간이 사실 짧지도 않았다.

“노력해야겠지.”

붉어진 눈자위로 간단히 대답을 일축하고 있었다.

“하아아압!”

파파파!

쾅-!

“와앗!”

그런 반면 신랑감들은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분주히 지역을 순회하며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유무를 살피고 내전으로 생겨난 떠돌이 불한당들을 감시하는 등의 일을 하는 외에도 시간이 나기만 하면 특과의 연무장으로 달려와 무예를 수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열심인 것은 전소, 송민, 곽영, 임백호, 네 사람이었다.

다른 계획을 가졌다 했듯 전소 등 세 사람은 그래서 집중하는 것 같았고, 임백호의 경우는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우려 하는 기세였다.

황석으로 가게 됨으로 오랫동안 친구들과 만나지 못했던 여백을 한 번에 다 보충하자는 그런 눈치.

그러나 역시 아직은 추룡에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노력한 점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실력이 늘어 있었지만 사부님에게는 아직 안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처럼 쉽게 패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부딪치면 오십 합이 넘어가곤 했는데, 위협적으로 압박하기까지 하곤 해 추룡조차 놀랄 정도였다.

“악력握力이 대단히 늘었군. 황석에 가서 도끼질만 했나? 밤에는 잠도 안 자고 내공심법만 수련했지?”

“그러는 막 형은? 물 만난 고기였지? 틈날 때마다 산속으로 들어가곤 했던 자네였는데, 아예 산에서 살았으니 오죽했겠어? 언제쯤 따라잡을지 알 수가 없군!”

임백호는 투덜거렸지만, 그러나 추룡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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