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어떤 충신의 최후 (6)
“하-!”
퍽! 퍽! 퍽! 퍽! 퍽!
“으아아악!”
임대백 역시 어마어마한 맹위를 보였다.
천하에 명성이 쟁쟁한 홍묘의 대토사인 그! 그 역시 거대한 부용검芙蓉劍을 들고 나섰다.
사모蛇矛처럼 구불구불한 날을 가진, 거병이라 할 장검으로서 또한 폭풍 같은 검영이 전신을 가렸고, 그럴 때마다 주위가 완전히 피바다가 되고 있었다.
막여사는 변함없이 대장검을 들었다. 다섯 자 반에 달하는 검을 들고 또다시 화등같이 눈을 번쩍이며 적장을 찾아 나선 그는 변함없는 사신이었다.
군위제일, 천하제일의 명성이 괜히 얻어진 게 아니겠지만 열이건 스물이건 닥쳐들 때마다 검을 번뜩여 허수아비처럼 툭툭, 적의 목을 잘라 내고 있었는데, 그다지 힘조차 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크아아아압!”
콰차차차차창!
“으아아아악!”
그 뒤를 젊은 그들이 추적하고 있었다.
추룡, 임백호, 장청, 곽영, 문대위, 송민, 한자방, 허원소, 정백하, 조태형, 신학철. 피 끓는 젊은 사자들!
노련미는 이르지 못하는 듯했으나 거칠고 용감했다.
대월도에서부터 장창! 대장검을 들고 적진을 누볐는데, 칼끝에서 광풍이 일어나고 폭우가 쏟아지는 것 같다.
일반보다 크다 해도 머리 하나 차이건만 존재감들이 어찌나 커 보이는지 전장 속의 그들은 하나같이 거인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가운데가 밀린다! 좌군, 중앙으로! 우군, 측면으로!”
“와아아아아!”
중앙 돈대의 위에는 악염과 함께 전소가 눈을 부릅뜨고 깃발을 흔들며 휘주, 황석군에게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다.
노력으로 체질의 열세를 이기며 모든 것을 이루어 온 청년.
마침내 그는 서고자 했던 자리에 들어선 것 같았다. 시작부터 책사나 군사軍師이기를 원했던 그.
손끝 하나로 천군을 움직이는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추룡을 노력파라고 하지만 실제 친구들 중 가장 노력한 청년은 키 작은 그가 아닐는지.
사흘 낮, 사흘 밤.
“중군 뒤로! 양익 앞으로!”
“으아아악!”
양군은 살촉이 모두 떨어지고 칼이 톱이 될 정도로 쉬지 않고 부딪쳤다.
그러나 벤야시리는 결국 중원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나흘째 되는 새벽.
“군을 물려라! 전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온다!”
뿌웅∼! 뿌우우웅∼!
장성 아래에 진을 쳤던 북원군의 진영에서 긴 뿔고둥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결국 개미 떼처럼 밀려오던 북원군은 장성을 포기하고 이도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고지전이라는 악조건에 난관이 예고되었던 싸움! 밀어도, 밀어도 상대가 무너질 줄 모르니 해 봐야 손해만 커지는 것이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었지만 오기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었으므로 결국 군을 물린 것이었다.
“북원 놈들이 퇴각한다!”
“이긴 것인가?”
“해낸 것일세! 팔만으로 시작해 기어코 나라를 지킨 거야!”
“와아아아아!”
“오! 오! 오!”
더불어 장성, 팔달령, 군도산, 연산산맥이 뒤흔들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함성과 연호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가장 기뻐한 것은 역시 섬서군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시작이었으며 끝이었다. 주체의 이름 뒤에 묻혔을 뿐, 오랜 내전 동안 죽음으로 강산을 지켜 낸 영웅들이 이들이었던 것이다.
벅찬 환희가 모두의 가슴을 휩쓸었다.
새로운 시작 (1)
하지만 벤야시리는 여전히 적잖은 위협이었다.
“북원이 퇴각했다고?”
소식은 곧 금릉에 전해졌지만 주체의 표정은 적잖은 분노와 우려로 뒤덮였다.
“그렇다 하옵니다. 한데 보냈던 사신의 목을 베었다 하는군요. 군력이 증가되자 마지못해 잠시 물러선 것으로 또 침범해 올 기세입니다.”
“감히……!”
오랫동안 북평을 지켜 누구보다 북원을 잘 아는 게 주체이므로 그 역시 오래잖아 있을 일을 모르지 않았다.
벤야시리는 분명히 다시 침공을 해 올 것이었다.
원기가 주체의 초조함을 가중시켰다.
“좋지 않습니다. 섬서군부가 워낙 잘 대응해 줘 망정이지 내전 때도 사실 크게 위험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도 멀리 벗어나지 못한 채 오락가락했사온데, 와랄과 화친설까지 나도니 서둘러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군력을 총집결시켜 전쟁에 대비해야 할 느낌입니다.”
전쟁.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조정의 체계부터 안정시켜야 합니다. 하루라도 나라에는 군주가 없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대신들의 청을 받아들여 그만 위位를 이으시지요.”
황위.
이즈음 주체는 황위에 대한 제안을 세 번째 거절하고 있었다. 벤야시리 쪽에서도 말이 나왔듯 중원의 사람들은 모두 거병에 성공한 주체가 황제가 되리라 믿고 있었고, 남은 대신들 역시 그에게 황위에 오르라고 간하고 있었다.
후환이 두려워서도 그랬겠지만 현 황실에는 사실 주체만 한 인물이 없기도 했다.
건문제가 죽은(?) 만큼, 반란이 아닐 경우에는 태자인 그의 아들이 대통을 이어야 했지만 그는 이제 다섯 살이었다.
다섯 살 아이를 황제로 올리기에는 무엇한 바가 있었고, 다음 인물을 들자면 건문제의 동생인 주윤통과 주윤건이 있었다.
그러나 정치와 무관하게 지내고 있을뿐더러 그들을 황제로 추대하기는 북평의 사람들이 껄끄럽다.
형이 자살한 상태에 동생을 위에 올린다는 것은 또 다른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으므로 아무도 이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더 솔직히 주체도 황위에 올라 기략을 펼쳐 보고 싶지 않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회가 생긴 이상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야심일 수밖에 없고, 그해 여름도 다 가는 칠월 말, 결국 주체는 네 번째의 간청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사에 가장 빛나는 시대를 이루리라!”
승낙!
“만세, 만세! 만만세!”
오랜 환란을 겪은 중원에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오랜만에 포성 소리가 그친 북평.
도연의 얼굴에 크게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무슨 소리인가, 그게? 섬서군부가 철수를 시작했다고?”
그러했다.
까닭은 섬서군의 동태 때문이었는데, 그들이 철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북원군이 후퇴함과 함께 막여사는 섬서군과 휘주, 황석 등지의 의군들을 이끌고 다시 처음처럼 군도산으로 가 진을 치고 있었는데, 벤야시리가 이도로 돌아간 것이 확실해지자 곧 철수할 채비를 했던 것.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그러나 이것은 도연 등에게 있어 크게 뜻밖이었다.
내전과는 관계없지만 중원에 있어 막중한 공을 세우지 않았던가. 주체에게도 큰 신세가 되었다.
부자가 한 일이 다르지만 섬서군과 함께 두 사람 역시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정도가 되면 누구라도 공과를 얻으려 할 것인데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식으로 철수를 시작한 것이다.
고사하고 두 사람은 아예 도연조차 만나지 않았다.
북평으로 오던 당시, 진정성의 전투를 치른 추룡은 진압군이 퇴각함과 함께 바로 장성으로 달려왔고, 장성으로 온 후로도 별동대로 편성되어 도처로 이동하며 북원의 허를 노렸으며, 막여사 역시 팔달령의 돈대에서 부하들과 버텼다.
쉴 새 없이 전투가 벌어졌고 이후 북원군이 퇴각하기 시작하자 추적해 또 군도산으로 갔던 것이다.
만날 만한 여유도 없었지만 보다 뭔가가 수상했다.
당시에는 상황이 급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싸움이 끝났음에도 얼굴조차 내밀지 않고 바로 철수라니?
이런 부자父子의 모습은 일부러 도연을 피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는 같았다.
“분명히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일군一軍으로 휘주, 황석에서 온 의군들과 막여사 장군은 이미 거용관을 나섰고, 이군으로 장정희 참령과 대동, 연안의 병력이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쯤 모두 거용관을 나섰을 것입니다.”
도연으로서는 역시 크게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이 달아나듯 떠나는 것이란 말인가! 내가 뭘 어쨌다고?”
수장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알 수 없습니다. 오랜 싸움에 지친 병사들이 속히 돌아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무엇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다들 지칠 만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혀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인사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얼굴조차 내밀지 않고 떠난단 말인가! 혹시 섬서군에게 뭔가 서운하게 했던 것이 아니냐?”
하지만 수장들은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솔직히 우리야 신세만 져 온 터인데요. 위세를 부릴 상황이 못 됩니다.”
그도 그랬다. 섬서군은 나라를 위해 싸웠다지만 그게 북평을 지키는 것이기도 했고, 수효 역시 십만이 넘으니 거용관의 병력 정도로는 큰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도연은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부자가 고의로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때였다.
“총사님.”
입증이라도 하듯 바깥에서 바퀴 의자에 앉은 주탁이 들어왔다. 불구가 된 상태에서도 거용관에서 행정과 지원을 맡고 있었던 그.
“삼진을 마지막으로 섬서군이 관성을 떠났습니다. 가기 전에 잠깐 막 소협을 만났는데, 부친의 서찰이라고 전해 달라 하더군요.”
몸이 불편한 만큼 앉아서 포권을 취해 보인 후, 한 뼘이나 될 듯한 두꺼운 장부 몇 권과 함께 품속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 도연에게 건네줬다.
막여사가 남긴 편지.
펼쳐 보자 속에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인사 올리지 못하고 떠남을 해량해 주셨으면 합니다. 무운을 바라며 언제나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오이다.
장부는 섬서군의 군 명부였다.
출전한 병사들의 인적 사항이 기재된 것으로서 펼쳐 보니 절반이 시뻘겠다. 붉은 표식을 해 전사자를 표시한 것으로 수효가 육만이 넘었던 것이다.
“……!”
도연의 만면에 순간 불편한 빛이 어렸다.
서찰 같지도 않은 서찰, 명부를 주고 간 의도가 무엇일까. 명부를 남긴 의도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데 서찰에 담긴 내용은……!
“고지식한 인물이 말이야!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나 도연을 어떻게 보고!”
불편한 기색으로 서찰을 만지작대다가 결국 속이 상한다는 듯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서찰은 꼭꼭 품속에 간직했다.
“명부를 잘 보관하라! 출전한 섬서군 전원, 전사자의 가족들에게 모든 보상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니! 나는 금릉으로 좀 가 봐야겠다.”
마삼보와 장신이 있었다.
내전 내내 왕부를 지키며 전투를 지원했고, 이경륭의 북평 공격 당시에는 함께 나가 싸우기까지 한 상태였었다.
“뭐라고 했기에 그러시는지요? 막 장군만 한 인물이 예의에 벗어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 성싶사온데?”
도연은 휙, 고개를 저었다.
“너무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문제다! 이런 인물이 밥그릇이나 챙기고 산다는 게 이상하다.”
휙, 등을 돌려 바깥으로 나갔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깡다구 센 기승도 막여사에 대한 만큼은 대책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뭐, 도연이야 화를 내든지 말든지, 같은 시각 장정희를 비롯한 섬서군들은 위풍당당하게 대동, 연안의 깃발을 펄럭이며 돌아가고 있었다.
한결같이 밝은 기색이 가득했고, 병사들은 연방 싱글벙글 웃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자그마치 삼 년에 걸친 유혈의 전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얼마나 기쁠 것인가.
연산산맥을 온통 피로 물들이다시피 한 상태에 그들만 해도 육만이 넘게 죽은 처절한 전투!
삼 년 전 막여사를 따라 첫 출전 한 병력이 팔만이었는데, 그들 중에는 몇 명이나 살아남은 것인지 알 수도 없다.
경의의 표시로서 기마대라도 휘주, 황석 등의 무사들은 그들에 앞서지 않았고, 좌우에서 호위하거나 뒤에서 따르고 있었다.
금릉을 함락시키는 데 일조하는 등 작지 않은 일을 했으나 이들이 해낸 무훈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었다.
“섬서군이다!”
“무슨! 우리 산서군일세!”
“드디어 오는군!”
입증이라도 하듯 거용관에서 벗어나 행군하기 시작하면서 지나는 곳마다 이들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금릉에 진입한 북평군도 받지 못한 환영으로서, 거론되었듯 군인으로서 바르게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한 소임을 다한 이들은 이들뿐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