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40화 (140/150)

# 140

어떤 충신의 최후 (4)

“두 분이신데 이쪽은 환우기 장군님이십니다. 섬서군과 연합하는 상태로 섬서군 쪽은 막여사 장군님께서 맡고 계시고. 현재 모두 장성 위로 올라가 계시고, 내부는 주탁 장군님께서 살피고 계십니다.”

“주탁 장군이라니? 뭔가 잘못 이야기한 게 아니오? 장군은 오래전에 험한 일을 당하셨다고 들었는데?”

주체를 호위해 갔다가 단근질로 불구가 된 그.

하지만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몸이 부자유하다고 마음까지 부자유한 것은 아닙니다. 내부를 살피는 정도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오래잖아 지휘부 건물 속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은 채 수하 병사들의 도움에 의해 나온 것이었다.

“주 장군님!”

그를 본 기병들의 수뇌진 중 여러 명의 젊은 장수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 나갔다.

“헛……!”

의자에 앉아 나온 인물은 주탁임에 틀림없었다.

서지도 못하고 그대로 거동이 불편한 몸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눈빛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는 내색을 하며 몰려나온 장수들을 보며 크게 놀랍고도 반가운 표정을 떠올렸다.

“이게 누구십니까? 막 대협……! 여러분이 아니십니까?”

휘주, 황석의 기병들 속에 그들이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오랜만에 존안 뵙습니다. 무사하셨군요.”

가슴이 찌르르한 순간이었다.

단근질을 당해 걷지도 못하는 불구가 되어서도 장성을 지키는 그.

금시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듯 눈자위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누르며 주탁은 웃었다.

“핫핫! 설마 대협들께서 와 주셨을 줄이야. 정말 반갑습니다. 거동이 좀 불편해서 그렇지 건강합니다.”

참으로 정신이 건강한 것이다.

“우양 장군님께서는?”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성격이 좀 강해서 잡혀가 반발을 했어요. 완맥까지 다치게 되어서 도리가 없습니다.”

단근질이란 손목, 발목의 심줄을 잘라 수족을 쓰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었다.

미루어 주탁은 발목의 심줄만 잘린 듯하지만 우양은 손목의 심줄까지 잘린 것 같았다.

일반인에게도 마찬가지지만 무인에게 있어 이 형벌은 사형을 당하는 것보다 더 비참하다.

가슴이 아팠지만 친구들은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자 바로 비무를 이야기하셨을 정도로 담백한 성품이셨지요. 일단 온 사람들이 만 오천입니다. 할 일을 지시해 주십시오.”

주탁은 추룡이 든 월도를 감개무량한 시선으로 보며 미소 지었다.

“기병이시니 수비보다 지역 경계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북문으로 나가 기습도 해 주시고요. 오셨으니 수비 임무를 교체하겠습니다.”

장수로서 오랫동안 거용관을 방어했던 만큼 판단이 빨랐다.

“총사님과 보병들도 올 것이라 하니 전원 올라가라. 관성은 이제 기병들이 지킬 것이다.”

“명!”

주둔하던 수비 병력은 즉시 성벽을 따라 치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장님들께서는 안으로 드시지요.”

그러나 추룡과 친구들은 사의를 표시했다.

“저희는 장성에 먼저 올랐다 오겠습니다. 막 장군님을 뵙고 싶은데 어디에 계십니까?”

“팔달령 중앙 돈대에 계신데 좀 멉니다. 먼 길 오셨으니 잠시 쉬었다 올라가시지요?”

그러나 아무리 피곤해도, 추룡에게 있어 막여사를 만나는 일보다 중한 것은 없다.

“괜찮습니다. 뵙고 나서 다시 오겠습니다.”

“정히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주탁은 미소와 함께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더불어 임대백이 명령을 내렸다.

“지형만 봐도 어디가 중요한지 알 거다. 관성 수비는 우리가 맡는다. 이동!”

“명!”

달의 무사들이 빠르게 성벽 위 등 곳곳으로 올라가 수비를 시작했고, 악불비 역시 명령했다.

“지역 경계를 시작한다! 유 당주를 따라 지형부터 살핀다!”

“따르라!”

“하-!”

두두두두두!

악충보의 무사들 역시 다시 출격했다. 기병 자체의 모습으로 늘 해 왔듯 지역 순회에 나선 것이었다.

“보병이 올 때까지 우리는 장성 수비를 지원한다! 따로 명령을 내릴 때까지 군교들을 따르며 주위 정황을 살펴라!”

남은 병력들도 할 일을 찾았다.

“명!”

모두가 향용의 인물들인 데다 차후 합류한 병력도 오랫동안 내전을 치러 머뭇거림이 없다.

명령하는 대로 척척이다.

이런 모두를 보며 주탁은 크게 기뻐했다.

“지휘부로 들어가시지요. 상황판을 보시면서 대응 계획을 세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고의 영웅이었다.

비록 몸은 불편하게 되었지만 진정한 무사의 혼을 가진 장수임을 알 수 있었다.

반 시진 후.

“아버님!”

“소자입니다.”

장성으로 오른 추룡과 악벽강, 친구들은 마침내 막여사를 만났다.

팔달령의 아래쪽은 여전히 검붉은 핏물과 시체로 덮여 있었는데, 잠시 포화가 멈춘 상태였다.

사 년 만에 만난 부자지간. 악벽강, 임백호와 만난 시일도 그 정도가 되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처음이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막여사를 만난 추룡이 코가 한 발이나 빠진 표정이 되었던 것이다. 죄인이라도 되듯 잔뜩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죄송해요, 아버지.”

뭐가 죄송하다는 것인지?

하지만 뭐, 막여사는 여전히 같았다. 힐끗 추룡을 살펴본 후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모두를 대한 것이다.

“오더라도 일 년은 더 걸릴 것이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빠른 것 같구나. 여기서는 그런 거창한 환도는 못 휘두른다. 좁아서 아군이 다칠 수 있다.”

“예!”

여전히 참 희한한 부자지간 같았다.

워낙 막여사의 태도가 이러하다 보니 추룡도 어제 본 사람처럼 그를 대할 수밖에 없었는데, 최소한 손이라도 잡고 기쁨을 보여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이상한 것이다.

“제대로 쓸 줄이나 알고 들고 있는 것이냐?”

“부족하지만 장인어른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만 오천 기병과 함께 거용관에 계십니다.”

“응, 상당히 왔군. 달단 녀석들은 아직 모를 테니 조용히 대기하고 있다가 공격해 오면 북문으로 나가 뒤통수를 좀 때려 줘라.”

“넵!”

할 말 다 했다는 듯 막여사는 계속해서 악벽강에게 시선을 옮겼다.

“새아기는 웬일이냐? 시어머니를 살펴 드려야 하는 게 아니었느냐?”

악벽강의 얼굴이 붉어지며 모처럼 웃음이 돌아왔다.

“그래야 하는데 산채에 계셔서…… 안전한 곳이고, 허락도 받았습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진짜 무림 일에서 손을 떼려고요.”

“응, 말은 다들 그렇게 하지.”

걸작이었다.

“영광입니다, 아버님!”

그래도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은 달랐다.

“와 줘서 고맙네. 이야기 많이 들었어. 룡이가 크게 신세를 지고 있다던데 모쪼록 오랫동안 잘 부탁함세. 임 소토사도 와 줘서 고맙고.”

일일이 친구들의 손과 어깨를 잡으며 호의를 보였다.

“나라를 지키는 일이온데, 아버님에 비하면 소자들이야! 무조건 영광입니다!”

천하제일의 명성을 지닌 무사! 그냥 입이 귀에 걸려서 싱글벙글했다.

그러나 웃음은 잠시.

“공격하라!”

“와아아!”

쒸이익!

투투투투투!

“으아아악!”

올라온 지 불과 이각여 만에 일은 또 벌어졌다.

잠시 멈췄던가 싶은 북원군의 맹공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새카맣게 신화비아가 퍼부어지면서 시체가 즐비한 벼랑을 따라 새카맣게 벤야시리의 대군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려가거라. 조금 전 한 말 잊지 말고.”

잠시 편안한 모습을 보였던 막여사의 눈 역시 다시 냉광을 뿜기 시작했다.

“대응!”

콰콰콰콰쾅-!

냉소가 떠오름과 함께 바로 천지를 진동시키는 포격이 시작되었고, 궁수들이 일제히 시위를 당기는 속에 수비가 시작되었다.

전에도 한 번 겪었던 일.

“꼭 개미 떼 같군!”

어마어마하게 밀고 올라오는 북원군을 싸늘한 눈으로 훑어본 후 추룡과 친구들은 서둘러 장성 아래로 다시 내려갔다.

자신들이 할 일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밤.

“뛰어넘어라!”

“흐아아아!”

콰차차창! 펑!

“으아아악!”

한번 시작된 북원군의 공격은 좀처럼 멈춰지지 않았다.

일 차, 이 차, 삼 차, 수만 대군이 연거푸 파도처럼 장성으로 밀려오며 어마어마한 공세를 퍼부었는데, 수라장도 이런 아수라장이 없다.

군도산에서부터 내내 그래 왔지만 밤이라도 하늘이 어둡지 않을 정도였다.

워낙 어마어마하게 불꼬리를 문 신화비아가 퍼부어져 마치 하늘에서 불비가 내리는 것 같은 것이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화포도 포열이 식을 틈이 없었다. 겨냥하고 말고도 없었다. 워낙 장성 아래 전체가 원군들로 새카맣게 들어차 있으니 그냥 발사하기만 하면 되었다.

낮부터 시작된 싸움에 장성 아래쪽은 또 시체로 덮여 원군들도 사다리 같은 게 필요 없었다. 그냥 시체를 밟고 올라와 아귀같이 막 달려드는 것이다.

말이 쉽지 처참한 정경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수비군 역시 수라처럼 대응했다.

온 전신에 피 칠을 하고도 눈을 번쩍이며 사력을 다해 창검을 휘둘러 올라오는 적을 베고 치고 찌르며 고투를 치르고 있었다.

밀리면 끝이라는 일념 하나로 어금니가 으스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끝도 없이 새카맣게 밀려오는 원군에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버거운 것은 그들과 달리 쉴 시간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병력이 많으므로 북원군들은 대를 나눠 휴식을 취하며 번갈아 맹공을 가해 오고 있지만 수비군은 하루 한두 시진이나 휴식을 취할까?

쉬지도 못한 채 방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버텼다는 자체조차도 혀가 내둘러질 정도의 고투였다.

“준비!”

그런 속에 추룡과 친구들, 악충보의 기병들도 눈을 번쩍이며 출정 채비를 했다.

전투는 고지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 거용관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산 계곡을 막은 관성은 남북으로 문이 있었다.

남문은 북평 쪽에서 들어오는 문이었고, 북문은 관성을 통과해 북으로 나가는 문이었다.

대단히 중요한 위치가 되는 것으로, 전체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늘 집중 공격을 당하는 곳이었다.

추룡과 친구들 등 악충보의 정병은 철갑마를 타고 앞에서 버텼고, 뒤를 또 방패대가 받쳤다.

“열어라!”

콰르르르릉!

그리고 한순간 문이 열린다 싶은 순간!

“섬멸시켜라!”

“흐아아-!”

콰두두두두두두!

봇물처럼 대기하고 있던 기병들이 치고 나갔다.

“이놈들!”

콰장창창창-!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추룡은 또 대월도의 광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삼척동자도 알듯 거병의 특성은 힘과 파괴력이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보다 웅장한 공력이 필요한 것으로 휘둘러지는 자체가 엄청난 위협이 되는 것이다.

역대로부터 역발산이라 표현될 정도의 힘을 가진 장수들은 모두가 이런 거병을 휘두르며 천군만마를 헤집었는데, 그럴 수 있는 까닭은 역시 천부의 힘과 공력을 바탕으로 휘둘러지는 쉰 근이 넘는 거병의 파괴력에 있었다.

술수도 술수지만 광풍을 일으키며 휘돌아 가는 거병 자체를 방어할 수 없는 것이다.

칼이고 뭐고 부딪쳤다 하면 일반의 창검 정도는 수수깡처럼 부러지거나 손아귀가 찢어져 놓치게 되고, 갑옷을 입었다 해도 적중되면 뼈가 으스러져 버리는 중상을 입는 것이다.

일반의 보병들은 절대 이런 용력을 지닌 장수들을 막지 못한다.

“으아아!”

입증이라도 하듯 철갑을 씌운 적낭자를 타고 나간 추룡이 광풍을 일으키며 대월도를 휘젓기 시작하자 북원군들은 혼비백산하여 피하기 급급했고, 뒤따라 친구들이 마찬가지로 웅장하다 싶은 대장창을 휘두르며 밀고 나가는 등, 일천 철갑마가 날뛰기 시작하자 북문 쪽으로 몰려왔던 원군들은 정신없이 흩어졌다.

“들이쳐라!”

“와아아아!”

더불어 장창과 방패를 앞세운 보병들이 뒤를 받쳐 들이쳐 나가면서 북문 앞은 완전히 원군의 시체로 덮이기 시작했다.

“놈들…….”

새벽이 되어 힘이 빠질 즈음에야 추룡 등 밀고 나간 병력은 핏물을 뒤집어쓴 채 돌아왔는데 부지기수로 깔린 게 허둥대다 당한 북원군의 시체로서 수효가 몇이나 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이것을 신호로 악화 일로에 놓여 있던 장성의 싸움도 호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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