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어떤 충신의 최후 (3)
“그런 자를 용서하고 중용까지 하라니!”
주체는 이가 갈렸지만, 그러나 모두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번왕 삭번과 함께 골육상잔으로 시작되었던 이 내전은, 더 전에 홍무제가 했던 실수로 남북 간의 대결 국면처럼 변해 있었는데, 물론 지금까지 당한 것은 북부의 사람들이었다.
이렇다 보니 대신들이라 할, 비중 있는 남부의 사람들을 모두 잡아 죽이면 보복 형태처럼 보여 갈라진 골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알려져 있듯 남부에는 널리 유교가 퍼져 있고, 대표 격인 인물이 방효유니 달래어 남북의 골을 메워 보자는 뜻이었다.
“모르겠으니 알아서 회유시켜 봐라!”
끔찍하게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주체는 양보했고, 원기 등은 방효유의 제자 하나를 보내 그를 설득시켰다.
“스승님, 연왕이 지난 일을 잊고 중용의 뜻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실 만큼 하셨으니 남부를 생각해서라도 응하시는 게 어떠실지요?”
그러나 방효유는 오히려 제자를 꾸짖었다.
“너는 나를 따라 여러 해 동안 공부를 했으면서도 아직 군신지의가 뭔지도 모르느냐? 썩 물러가라!”
충신이라서 그런 것인지 뭔지 버티기 시작한 것.
“말을 듣지 않는다 합니다. 전하께서 직접 만나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주체는 이래도 저래도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대大가 중요한 만큼……!
“데리고 오라!”
옥 속의 그를 데리고 오라 명했고, 포박된 그가 끌려오자 직접 내려가 오라를 풀어 줬다.
“거병은 어쩔 수 없었소.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부황께서 붕어하신 후 조정은 혼란했고, 이에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보필했던 것을 헤아려 일어섰던 것이오.”
주나라의 제왕 주공이 조카인 성황을 보필해 선정을 베풀며 태평성대를 이룬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방효유는 코웃음 쳤다.
“말씀은 그럴듯하지만 그렇다면 왕야가 섬길 성왕은 어디에 계시오이까?”
건문 황제를 일컫는 것이다.
주체는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분사하셨소. 나의 뜻이 아니었소.”
방효유는 계속 코웃음 쳤다.
“그러면 법통에 따라 태자 전하께서 보위를 이어 황제가 되셔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물러설 의향이 있으시오이까? 아니면 찬위簒位에 지나지 않을 것이오.”
법통.
효 황후가 시체로 발견되는 등 적잖은 큰불이 났지만 다행이라 할지 건문제의 아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매우 어렸다.
주체의 눈에 결국 참았던 분노가 다시 어렸다.
“다섯 살짜리 코흘리개를 황제로 즉위시키고 또 도깨비짓을 하겠다는 소린가?”
그냥 뭐, 웃을 수밖에 없다.
설득을 포기하고 그를 문초했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지 그렇게 성인은 못 된다. 지겹게 들었던 법통 타령을 하니 그러면 이제 너에게 묻겠다. 너는 천하의 대학자로 명성이 있는데 모든 지식을 뽑아내어 대답해 봐라. 나는 고 황제 폐하의 황명에 따라 북평을 맡았던 번왕이다. 이르심에 따라 병력을 키웠고, 국경을 지키는 소임을 다했다. 하나 너희는 끊임없이 누명을 씌우고 나를 해하려고 했는데 나의 죄가 무엇이냐?”
주체의 죄.
“…….”
방효유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째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냐? 너는 예법을 숭상해 지금도 법통을 주장한다. 전날 태위의 물망에 올랐던 내가 북평으로 가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그러면서도 태조께서 붕어하시자 칠 일 만에 졸속 장례를 치르는 등 어디에 영안되어 계신지조차 모른다. 제대로 예법과 법통을 지킨 것이냐?”
“…….”
방효유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번왕들과 화합해 번영된 나라를 이끌어 갈 생각은 하지 않고 더 먼저 어린 황상을 부추겨 숙질간에 적개심을 심고 골육상잔을 일으키게 했다. 아비의 장례식에 온 자식을 내쫓고 친족 간에 피를 흘리게 하는 게 유교의 가르침이더냐?”
“……!”
“황상을 기망해 패장을 승장으로 바꾸어 상을 내리고, 실컷 이용하다가 국가를 위태롭게 했다는 둥 하며 죄를 전가시켜 사형에 처하라 하는 게 지각 있는 학자가 할 행동이더냐? 처형해야 할 자들은 분명히 따로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
“고사하고 전화戰禍가 코앞에 닥쳤음에도 황상을 피신조차 시키지 않았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그렇다 치고, 황상께서 분신을 하기까지 너는 무엇을 했느냐? 오늘 황상을 그 지경으로 만든 게 너희들인 것인데, 세 치 혀만 놀릴 줄 알았지 제대로 한 것이 없구나. 역대의 군왕 중 자신이 위태롭다고 부녀자를 끌어내어 인질로 삼은 인물은 하나도 없었거니와, 찬위라 하니 위대한 충신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마!”
주체는 주저 없이 명령했다.
“남부의 민심이 아니라 천하의 민심이 있다 해도 용서치 못한다! 입을 찢고 보는 앞에서 십족十族을 모두 잡아들여 처형시켜라! 제일 마지막이 그다!”
어마어마한 형벌이 떨어진 것이었다. 삼족도 칠족도 구족도 아닌 십족! 고금에 없었던 일로서 그의 분노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방효유는 그 자리에서 입이 찢어졌고, 가족들이 잡혀 와 그가 보는 앞에서 참수되었으며 마지막으로 그 자신도 참수되어 취보문 앞에 효시되었다. 후로도 팔백 명에 달하는 식솔들이 참수당하고 유배되었다.
하늘이 난을 내리니 그 연유를 어찌 알쏘냐.
간신이 흉계로 나라를 농락한다.
충신이 분을 발하니 피눈물이 흐르는구나.
이제 주인을 따르고자 하니 무엇을 바라랴.
슬프도다, 무릇 나의 잘못은 아니거늘.
참수되기 전 방효유가 남긴 마지막 글이었다. 글 속에는 자신을 충신, 끝까지 잘못이 없고 주체를 간신이라 표현하고 있었는데, 과연 잘못이 없었던 것인지?
세상의 평가는 둘로 나누어졌다.
일부에서는 그를 충신이라 하고 일부에서는 황자징과 함께 나라를 망친 간신이라 한다.
그러나 사록이나 민간에 남은 기록 어디를 뒤져 봐도 학자로서의 명망만 인정할 수 있을 뿐, 그가 충신이었다는 근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니, 마지막 남긴 글이 그렇듯 일을 벌인 것은 황자징이었고, 마지막까지 절개를 지켜 죽음을 택했으니 실제로 충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신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진정한 충신은 군왕이 그릇된 길을 갈 때 깨우쳐 바르게 가게 하고 이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인물인 것이다.
섬기기는 다했으나 황자징과 마찬가지로 여러모로 과신한 점이 보이고, 그로 인해 섬기던 주인을 피신조차 시키지 않은 채 죽게 했으니 충, 간신을 떠나 우신愚臣에 가까운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국경이 위태롭다! 남부를 비롯한 전국의 태수들과 현감, 번왕, 장수 들에게 전하라. 이것으로 싸움을 끝내야 하되, 지난 일에 대해서 일절 묻지 않을 것이며, 모두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더 이상 혼란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주체는 계속해서 도처로 사람을 보내 화의를 제안했다.
사실 더 이상의 내전은 무의미할 뿐이었다. 국경이 위험한 만큼 그 자신부터 병력을 이끌고 북평으로 달려가야 할 처지인 것이었다.
또 한 번 울화를 참고 특별한 명령을 했다.
“벤야시리에게도 사신을 보내라. 싸우고 싶지 않으니 군을 물리라고. 그리하면 지금까지의 일을 잊고 친화에 애써 나도 적으로 삼지 않겠다. 와랄에도 보내라! 침략지 않는 한 똑같이 형제로 여기겠노라고.”
오랜 정쟁과 삼 년에 거친 싸움에 시달린 중원, 우선적으로 안정을 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일 뿐, 장성의 상황은 급박했다.
“공격하라!”
“와아아아아!”
펑! 펑! 펑!
“으아아아악!”
안정을 위해 주체는 사신까지 보내라 했으나 대군을 이끌고 들이닥친 벤야시리는 장성을 넘기 위해 맹공을 퍼붓고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군도산 등지의 고지를 사수했지만 결국 장성 안까지 물러선 섬서군은 북평의 수비대에 협력을 요청해 함께 맞서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나쁜 관계도 아니었지만 국경을 지키는 일에 적과 아군이 따로 없었던 것.
장성의 수비대는 그대로 삼만여뿐이었다.
밀려오는 북원군과 싸우느라 섬서군 역시 십만으로 줄어들었고.
오만 명이 전사한 것인데, 워낙 전쟁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사오만 명의 목숨이 꼭 무슨 개미라도 죽은 것같이 여겨질 정도다.
실제로는 피가 바다를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룰 정도로 극악한 참상인 것이었다.
모두 합쳐도 십삼만.
북원 쪽도 어마어마한 피해가 났지만 그래도 여전히 오십만이 넘었다.
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네 배가 넘는 병력이 집중 공격을 퍼붓는 장성을 이 수효로 지켜 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막여사, 장정희 등 섬서군은 최선을 다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전멸하는 한이 있어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 이곳보다 튼튼한 방벽은 어디에도 없거니와 밀려나면 중원을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다!”
“와아!”
방패까지 뚫는, 빗발치듯 퍼부어져 내리는 신화비아의 폭우와 인해전술을 맞아 밤낮 없이 포격을 가하며 죽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핏물은 바다를 이뤘고, 장성 아래에도 시체가 쌓여 사다리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전날 칭기즈칸이 침공할 때 그랬다던가.
어쩌다 간간이 포성이 멎을 때면 벤야시리도 지독한 짓을 했다.
“모조리 끌어내 불에 태워라!”
“아아악!”
사로잡힌 병사들을 끌어내어 아군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공포를 주기 위함이었다.
항거하다 잡히면 이리될 것이니 도망치거나 항복하라는 뜻이다.
누구에게라도 닥칠 수 있는 일인 만큼 이를 본 섬서군들은 하얗게 안색이 질리곤 했다.
하지만 막여사 역시 강력하게 대응했다.
“허튼 공갈에 지나지 않는다. 공포심을 줘 사기를 꺾고 흩어지게 하는 의도로, 넘어가면 더 비참해진다. 전날 저런 짓으로 장성을 넘은 칭기즈칸은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을 끌어내어 난도질했다. 물러서면 내 가족들이 학살당하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하들을 독려해 공포를 분노로 바꾸는 한편, 어디에 이런 면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 역시 독함을 보였다.
“모조리 끌어내어 목을 베라!”
“와아!”
그럴 때마다 마찬가지로 사로잡은 포로들을 끌어내 원군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쳐 내 적의 기를 꺾고 부하들의 사기를 고취시켰다.
잔혹한 짓을 멈추지 않는 한 똑같이 희생자가 생김을 맞대응으로 보여 준 것이다.
당연히 북원군 및 벤야시리 역시 안색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독한 놈입니다. 저러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워낙 설쳐 대어 아랫것들도 겁을 먹지 않습니다.”
“지독한 놈! 오죽하면 삼 년이 넘도록 고지에서 진을 치고 꿈쩍하지 않았겠는가마는! 밀어붙여라! 어떤 일이 있어도 함락시키고 오늘은 북평으로 진입해야 한다!”
“공격!”
콰콰콰쾅-!
“와아아아아!”
벤야시리는 이를 갈며 거듭 공격 명령을 내려 맹공을 가했다.
그러나 그 오늘은 내일이 되었고, 내일은 모레가 되었으며 모레는 꿈이 되었다.
진정성 전투가 끝난 지 닷새!
“문을 열어라! 황석, 안휘에서 온 원군이다!”
두두두두두!
급기야 만 리 길을 달려온 휘주, 황석 등지의 기병들이 위풍당당하게 거용관으로 들이닥친 것이었다.
“황, 황석……?”
관성을 지키던 수비대의 얼굴에 적잖게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뜻밖의 원군이기도 했지만 휘주, 황석에서 병력이 왔다는 것은 아주 의미가 컸다.
삼척동자도 알고 있듯 휘주나 황석은 중부에 속한다.
분명히 아직은 그런 게 아니었지만, 중부도 지원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비쳐지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반증이라면 중부도 주체를 따르기 시작했다는 뜻인 셈이다.
북부군만으로 악전고투하던 터에 당연히 이보다 더 사기가 고취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중부에서 원군이 도착했다! 어서 맞아들여라!”
“와아아아!”
곧바로 거용관의 문이 열리며 군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특히 더 좋은 것은 들어선 수장들이 어색하게 머뭇거리지를 않는다는 점이었다.
“곧 도 총사께서도 오실 것이올시다. 누가 책임을 맡고 있소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