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38화 (138/150)

# 138

어떤 충신의 최후 (2)

“으아아아악!”

쇠 고슴도치 마냥 고지에 진을 치고 오랫동안 속을 썩여 왔던 섬서군이 물러서기 시작하자 벤야시리 등 북원군은 득의만면했고, 섬서군을 쫓아 계속 장성 쪽으로 물밀듯 밀려왔다.

“최대한 저항하라!”

투콰쾅-!

“와아아아!”

당연히 섬서군도 녹록히 물러서지는 않았다. 물러서면서도 이를 악물고 계곡들을 봉쇄한 채 격렬히 반격을 퍼부었고, 계곡들이 또 시체들로 메워지면 다시 다음 능선으로 물러섰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포열은 식을 줄 몰랐고, 퍼부어지는 신화비아로 하늘에서는 연일 불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악전고투 속에 쌍방이 무수한 희생을 내었고, 결국 삼 저지선도 무너졌다.

“장성으로 간다. 수비대와 함께 죽음으로 사수할 것이다!”

“와아아!”

피투성이가 된 수하들을 이끌고 막여사는 결국 군도산의 모든 고지들을 내어 준 채 장성까지 물러서고 말았다.

최선을 다해 저항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장성에서 수비대와 힘을 합쳐 싸우기로 단안을 내린 것으로, 무너지면 그것으로 국경 수비는 끝난다.

내전에 이어 중원 본토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가장 철벽인 곳이 장성이지만 현 상태로는 도저히 지켜 낼 정도가 못 되었다.

하지만 국경의 상황이 이 지경이 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군인의 임무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 많았다.

“격멸시켜라! 금릉이 함락되었다 해도 끝난 것은 아니다. 맞불로 북평을 장악한다. 주체는 남하했지만 손주 놈 등 가족들이 남아 있는바, 북평을 치고 놈들을 사로잡아 태자 전하와 교환한다!”

“와아아아-!”

콰콰콰쾅-!

“으아아아악!”

금릉 함락의 소식과 함께 화북의 싸움은 오히려 더욱 치열해졌다.

알려져 있듯 주체가 우회함으로 산동성 등지에는 여전히 이십만의 진압군이 남아 있었는데 그들이 필사적으로 북평으로 진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호통 속에 의도는 그대로 들어 있었다.

주체가 금릉을 장악했다고 해도 건문제의 생사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죽었다지만 피신한 것으로도 예측되었고, 이에 금릉을 내어 준 대신 북평을 장악하자는 계획이었다.

그런 후 주 세력인 남부에서 병력을 만들어 진군하기를 기다려 아래위에서 협공을 가해 주체를 잡자는 것.

이를 막고 있는 것이 도연이었다.

주체가 남하함과 함께 그는 덕주 아래로 내려와 남은 병력을 이끌고 주체를 추적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후방에서 대응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도 상대가 워낙 필사적인 만큼 거의 대책이 없었다.

병력은 각기 십만과 이십만 정도로서 보름 만에 산동을 내어 주고 계속 밀리고 있었던 것.

귀계를 지닌 그도 도리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주체가 이끌고 남하한 이십만은 북평군 중 가장 강력한 정예였다. 기병들도 대부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고.

남은 것은 민병들로 이루어진 궁대와 보병이 모두였는데, 처음부터 그래 오긴 했지만 수효도 부족하고, 숨 쉴 겨를도 없이 계속 밀어붙이고 있어 책략조차 세우기 어려운 상태였다.

오로지 사력을 다해 방어하고 있을 뿐인 위기에 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놈들! 벤야시리가 대군을 이끌고 장성의 턱 아래까지 밀려왔다 하거늘!”

밀리며 계속 국경의 위기를 부르짖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반역으로 정권을 뒤엎은 놈들이 나라 걱정을 하는 척하니 세 살짜리도 웃겠구나! 북원도 적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벤야시리는 황상의 화의에 응했고, 후방을 쳐 주기로 약속했다. 그러고 보면 섬서 놈들도 수상쩍다. 치라고 한 너희는 두고 군도산까지 넘어가 헛짓을 하고 있으니! 오래잖아 남부에서 반격이 시작될 것이거니와, 순순히 목을 늘어뜨려라!”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북부와 남부, 파인 골이 싸움을 지속케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싸움을 마치고 서둘러 장성으로 가야 할 텐데.

타는 속이 되었지만 대책이 없었고, 도연은 결국 덕주도 내어 주고 또 진정성까지 물러섰다.

그야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하지만 진압군들의 반격은 거기까지였다.

진정성으로 물러나 방벽에 진을 치던 날 밤.

“총사님.”

“자네로군!”

도연의 얼굴에 크나큰 기쁨의 빛이 떠올랐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아니 어쩌면 그가 목이 빠지게 기다렸던 사람인지도 모르는 한 자그마한 체구의 청년이 어둠을 틈타 적의 진영을 피해 그를 찾은 것이었다.

지쳐 보였지만 지혜로 번쩍이는 눈.

비둘기 전소였다.

“전하께서 금릉을 장악하셨다는 소식 들었다. 상황이 어찌 되어 있는가?”

전소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들으신 대로 입궁하셨습니다. 급히 달려오느라 후의 일은 모르지만 우린 삼한산에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서주徐州에서 좌회하여 태행산을 따라 치고 올라온 것입니다. 군도산 쪽은 어찌 되어 있던가요?”

“크게 좋지 않다. 오랫동안 섬서군이 잘 막고 있었지만 벤야시리가 육십만으로 밀고 온 상태다. 수일 전에 군도산 끝에서 밀렸다 하니 지금쯤 장성에서 대치하고 있을지 모른다. 속히 가 봐야 한다. 병력이 얼마나 되는가?”

“만 오천, 기병입니다.”

“만 오천?”

도연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그렇습니다. 수장은 악 보주님과 황석 홍묘의 임 대토사이십니다. 출발은 만에 미치지 못했지만 올라오며 협력하기 시작한 현감, 태수 들이 계셔 병력이 늘어난 상태입니다.”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장강 전투에 배후를 친 병력이 있다 해 그가 나섰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힘을 써 주다니! 한데 홍묘라니? 그들이 어째서 돕는 것이냐?”

“외톨이 늑대가 있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임백호가 홍묘의 소토사였습니다. 설득하여 달의 무사들과 일족을 이끌고 지원한 것입니다.”

“아하……!”

뜻밖이라는 표정이 되었으나 도연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그는 북평으로 왔을 때 임백호를 봤고, 노력하기에 따라 우두머리가 늑대가 될 것이라 예견했는데, 정확한 신분은 몰랐다. 어느 방면의 늑대(?)인지는 몰랐고, 친구들과 함께 향용에 몸담고 있으니 그냥 일반 향용 방파의 아들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점치긴 했지만 사람인 만큼 다 알 수 없는 조화! 그럼에도 모든 게 사실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홍묘는 크게 번창할 것이다. 삼족의 수장으로 자리할 것이며, 명의 무벌로 군림하리라! 채비해 달라 일러라.”

“명!”

전소는 지체 없이 어둠을 뚫고 온 길을 되돌아 달려갔다.

그리고 새벽.

“공격하라!”

콰콰콰콰쾅-!

“와아아아!”

내전이 시작된 후 몇 번이나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진정성의 평원에 또 한 번의 대회전이 시작되었다.

공성전으로 시작되었다. 도연이 성벽 뒤에 진을 침으로 포격과 함께 진압군이 다시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한 것.

“수성하라!”

콰콰콰콰콰쾅-!

맞서 대기하고 있던 도연 등 북평군들도 무지한 포격을 가하며 수비에 나섰다.

하늘이 새카맣도록 화살 세례를 퍼붓고, 필사적으로 벽을 타고 넘으려는 자들을 막아 내며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 것.

한데 접전이 시작된 지 반 시진.

“퇴치한다!”

“와아아!”

두두두두두두-!

진정성을 탈환하고자 총력으로 공세를 퍼붓던 진압군에게 또 한 번의 재앙이 닥쳤다.

느닷없이 후방에서 지축이 진동하는 말굽 소리와 함께 보병들에게 있어서는 저승사자와 같은 기병들이 새카맣게 출현한 것이었다.

“무언가, 저놈들은! 어느 방면의 기병들인가!”

공성에 총력을 쏟아붓던 진압군들로서는 당연히 기겁을 할 수밖에 없다.

불시에 배후를 기습당한 것이었는데, 그것도 기병이다 보니 속도에서 따를 수가 없었다.

“투창!”

“흐아아아아-!”

투투투투투!

“으아아아악!”

지축이 울린다 싶은 순간 삽시간에 등 뒤까지 치달려와 방비할 틈조차 없이 머리 위로 새카맣게 장창의 폭우를 퍼부어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흩어져라! 국경이 위험한 상태에 이런 따위의 싸움은 할 바가 못 된다!”

콰차차차창!

“크아아아악!”

선봉군은 변함없이 무시무시한 철갑 기병이었다.

치달려오자 바로 진영 한복판으로 들어와 어마어마하게 창검을 번쩍이며 진압군을 헤쳐 놓기 시작했는데, 완전히 무인지경처럼 적진을 누빌 지경.

“원군이다! 밀어붙여라!”

“와아아아아!”

당연히 북평군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는 없다.

도연이 명령하기보다 더 빠르게 별장들이 성문을 열고 병력을 이끌고 달려 나가 앞뒤에서 협공을 가하기 시작했다.

“대체 뭔가! 북평의 기병들은 다 연왕을 따라갔는데. 그들이 여기까지 올 리도 없고.”

분명히 주체의 기병이 여기로 올 리는 없었다.

금릉을 함락시켰다 해도 여전히 적지의 한복판일 수 있는 곳!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만큼 일이 수습되기까지 금릉에서 진을 치고 수성에 돌입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압군 쪽에도 기병이 거의 없었다.

평안이 사만을 이끌고 내려갔다가 양주에서 대패함으로 올라올 병력도 대비할 병력도 없었던 것이다.

어쩌겠는가.

“물러서라! 덕주로 다시 내려간다!”

“와아아아!”

접전이 시작된 지 한 시진, 기습에 당황한 진압군들은 앞뒤에서 협공을 받고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또 무수한 사상자를 낸 채 사방으로 흩어져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장성으로!”

“하-!”

콰두두두두두!

그러나 도연 등 북평군은 추적하지 않았다. 더 급한 것이 그들보다 장성으로서, 얼마간의 수비군만 남기고 바로 병력을 몰아 북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기병들은 한발 더 빨랐다. 진강에서 그랬듯 진압군이 퇴각하는 게 보이자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기수를 북으로 돌려 치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전소가 잠깐 찾아갔을 뿐, 추룡을 비롯한 모두는 아무도 도연을 만나지 않았다.

응천부.

“살려 줘야 한다고? 저 간효한 역신 놈을 말인가?”

주체의 얼굴은 변함없이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중원이 넓어서인지, 진정성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금릉은 비교적 차분함을 되찾고 있었다.

인질로 끌려 나왔던 사람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역신들이 처단되는 등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체는 끔찍하게 싫은 기색이 되어 있었는데, 까닭은 방효유 때문이었다.

울화가 치밀어 잡혀 온 황자징과 제태는 그 자리에서 처단했지만 유독 방효유만은 아직 옥에 가두어 두고 있었는데, 까닭은 도연 등 주변 인물들의 만류 때문이었다.

일찍부터 도연은 이런 권언을 했다.

-고집이 센 인물로 방효유의 학식은 일세를 풍미하고 있습니다. 응천부를 함락하셔도 그는 아마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를 죽이시면 안 됩니다. 그가 바로 중원유림中原儒林의 대표이며 남부의 민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설득하는 것이 바로 남부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체의 생각은 달랐다.

“용서할 수 없다! 학자라면 학자다워야지. 일찍부터 그는 유삼오, 제태, 황자징 등과 함께, 황상의 저변을 맴돌며 번왕들에 대한 반감을 심었고, 결국 연치 어리신 분을 부추겨 골육상잔을 일으켰다. 이경륭이 대패를 했음에도 황상을 기망한 채 오히려 상을 내렸고, 뒤늦게 나섰다고 하나 모르지 않을 텐데 또한 세력을 옹호해 입을 다물었다. 뿐만 아니라 영토를 분할하겠다는 등 번번이 되지도 않는 간계를 세워 싸움을 가속화시켰고, 백성들을 인질로까지 세웠다. 진정으로 충신이었다면 황상께 다가섰을 때 사실을 밝히고 주위의 역신들을 물리치는 등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사력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행위는 반대였으니, 또한 간신으로서 세상을 망친 자인 것이다.”

조목조목 죄를 들췄다.

그러나 원기 등 주위의 인물들은 역시 우려를 표시했다.

“물론 죄를 헤아리자면 그렇습니다. 하나, 도 총사의 말씀대로 그는 유림이 인정하는 대학자이고, 남부의 민심이기도 합니다. 명이 시작된 후 북부와 남부는 계속 등을 돌리고 있사온데, 민심부터 진정시키는 게 옳은 줄 아옵니다. 그를 해치면 천하 유림의 학사들과 남부의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니 중용하여 남북의 골을 메우시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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